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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8)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역대상29:10-14)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784 추천수:3 112.168.96.218
2018-11-18 16:32:36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8)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역대상29:10-14

 

오늘은 추수 감사절입니다. 주보 표제 시로 예전에 제가 썼던 시를 올려놓았습니다. “늙은 가을에도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라는 시입니다. “상쾌한 몸 아니지만/ 새벽에 일어날/ 호흡 있음을 감사하고// 큰 능력 없지만/ 예배당에 가/ 기도할 수 있어 감사하고// 풍성한 식탁 아닌지만/ 아침 식탁에 앉아/ 같이 먹을 식구 있어 감사하고// 넉넉한 살림 아니지만/ 매일 일할/ 자리 있어 감사하고// 반기는 사람 많지 않지만/ 마음 열고 환하게/ 웃어줄 사람 있어 감사하고// 마음대로 되는 세상 아니지만/ 때때로 되어지는/ 일이 있어 감사하고// 희망이 뭉게구름으로 오지 않지만/ 언제나 기대가/ 잠들지 않아 감사하고// 죽으면 끝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천국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있어 감사하고// 사는 날 동안/ 그렇게 감사하며/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날 때와 저녁에 잠을 잘 때 기도하면서 의식적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세 번 합니다.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도 “감사합다.” 기도하며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 마지막 말이 “감사합니다.”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태풍이 불어와도, 미풍이 불어와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늘 감사하며 산다면 큰 부자가 아니어도, 큰 업적을 남지 못했어도, 눈에 띄는 대단한 일을 하지 못했어도 한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제 죽음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이 때 어떤 말을 합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 감사하는 마음

죽기 전에 마지막 드린 감사 기도가 오늘 읽은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역대상 29:13)”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29장에는 마음이라는 말이 5번 나옵니다(3,14,17,18,19) 3절에는 다윗의 마음이 나옵니다. 17절에는 하나님이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가졌던 마음이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온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송축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방에서 홀로 그런 것이 압니다. 왕으로서 공식적인 석상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요즈음 말하면 은퇴식을 하면서 온 백성이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신앙인 대통령도 텔레비전에 나와 국민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못합니다. 목사님들 모임이 있어 서울에 있는 어느 까페를 가니까 벽에 주의 사항을 써 놓았는데 “기도하지 말 것, 성경 읽지 말 것”이라고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당당하게 백성들 앞에서 죽음을 앞둔 늙은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니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 진 일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렇게도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은 전쟁하며 피를 많이 흘려서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고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인생 마지막에 자식에게 성전을 지을 수 있게 헌물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되어질 일을 믿음으로 미리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축하지 못하도록 했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자신에게 불편하게 하고 자기 뜻을 들어 주지 않으면 원망합니까? 자식들도 그렇게 부모들이 희생하면 길러놓았는데 한 가지만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왜 간섭하느냐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감사를 잃는다고 했습니다. 감사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얼마나 자식들이 감사를 잃었는지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할 때 증여를 취소하는 “불효자방지법(효도법)”을 제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그렇게도 필생 소원인 성전 건축이 거부당했는데도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백성들 앞에서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태도이고 해석입니다. 탕자같은 아들, 탕녀같은 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십자가의 사랑의 깨닫게 되었다고 해석하면 그 자식 때문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감사할 때 하나님이 “그래 그렇게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내 마음에 합한 마음이야.”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계속 다윗의 생애를 통해 다윗의 어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인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교훈받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하나님께 합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천천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는 시편을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50편 중 다윗이 쓴 시편은 73개입니다. 다윗은 그 시편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구절을 찾아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시편 7편을 보십시오. 이 시는 사울 왕가를 지지하는 베냐민 사람 구시의 모함으로 인하여 도피 생활 중에 있었을 때 기록한 시입니다. 1,2절을 보세요. 얼마나 억울하고 불평할 만한 사항입니까? 그러나 다윗은 무엇이라고 마지막에 고백합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시 7:17)” 조금만 부당하게 대우받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어떻게 감사하는가 시편 9편 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시 9:1)” 전심으로 감사합니다. 가식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편 18편 49절에서는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목동 시절부터 왕이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터에서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시편 30편 12절에서는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바셋바를 범하고 살인죄를 지었지만 회개하여 용서받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편 57편 9절에서는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이나 엔게디 굴에 숨어 있을 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언약에 따라 자신이 죽지 않고 구원받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때 예수님이 미리 감사하는 것처럼, 다니엘이 죽음의 위기에 있지만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것처럼 지금은 위기이고 지금은 죽을 형편이지만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편을 통하여 보면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전천후 감사를 하는 감사지수가 높은 삶을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8)”라고 말씀하시는데 다윗이 그런 삶을 실제로 산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이 어떻게 감사했는지 보십시오. 10절, 13절을 보십시오. 찬양의 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2절부터 5절까지 보십시오. 물질을 드려 감사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힘을 다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즐거운 마음으로 드립니다.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정직한 마음으로 드립니다. 마음의 감사도 중요하지만, 마음속에 갇혀 있는 감사가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실천적 감사 생활을 한 것입니다. 현대인의 질병 중에 만연하여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감사 불감증입니다. 풍요 속에 나타나는 질병입니다. 부족함 없는 풍요 속에 살다 보니 안락한 부모의 집에서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살면서도 부모의 말 한마디에 불평합니다. 사람은 막장에 갇혀 물이 없어 봐야 물의 고마움을 알고, 공기가 없어 봐야 산소의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결핍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감사를 모릅니다. 감사 불감증에서 벗어나려면 감사를 생활화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게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감사절기를 그렇게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유월절과 칠칠칠 장막절을 통해 감사를 생활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사주일을 지키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녀교육을 시킬 때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하게 하고, 자기 전에도 부모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라고 하게 하면 아이들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2. 감사의 결과

어떤 경우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어떻게 될까요?

2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소원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2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40년 동안 왕으로 이스라엘을 삼권을 가지고 다스렸습니다. 사울왕처럼 인간이 통치하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신정통치의 왕으로 신정통치의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왕들은 다윗의 길로 행한 왕과 다윗의 길로 행하지 않는 왕으로 나누어졌습니다.

2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부하고 존귀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재산이 얼마나 많았는지 3절을 읽어 보세요. 하나님을 위한 성전 건축을 위해 이미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유재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4절 이하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오빌의 금 3천 달란트(102톤) 당시 최고급 금 1톤 트럭 102대 분입니다. 순은(제련된 은) 7천 달란트(238톤)입니다. 그 당시 계산법으로 1달란트가 3천 세겔이고 이것은 6천 드라크마(데나리온)입니다. 1달란트면 노동자 6천일 노임입니다. 금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금은 합하면 1만 달란트인데 6천만일 노동자 품삯입니다. 어떤 분은 다윗의 재산이 아마 40-50조는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분이 있습니다. 정확히 우리는 모르지만, 당시 입법, 사법, 행정권을 쥐고 통치한 왕으로 엄청난 부를 누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존귀함을 받아(17:17-18) 당시 주변 국가를 평정하고 최고의 왕으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후손들도 그를 최고의 왕으로 존경했습니다. 본래 아버지도 큰 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목동인데 다윗이 대왕이 되어 이 정도 부귀를 누렸으니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습니까? 축복과 감사는 밀접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고리가 끊어졌다면 연결하시길 바랍니다. 자꾸 축복만 바라지 말고 감사를 해 보십시오. 축복이 물이라면 감사는 수도 꼭지입니다. 수도꼭지를 열면 축복은 흘러나옵니다. 수도꼭지를 얼마나 여냐에 따라 양도 달라집니다. 열면 크고 작은 축복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의 고리가 끊어지면 축복도 진정한 축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으로 방종하고 그것으로 오용하고 남용하다가 사울처럼 끝이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은 물인데 홍수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축복의 고리를 약한 고리가 아니라 강한 고리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복을 주었는데도 감사하지 못하는 감사 불감증에 걸리지 마시고, 복을 받을 때만 감사하는 믿음 약한 삶을 살지 마시고, 어떤 조건에서도 감사하는 참으로 복받는 신앙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윗처럼 잘 될 때도, 잘 못될 때도, 추방될 때도, 쫓겨 다닐 때도, 배신당할 때도, 왕위를 잃었을 때도, 왕위를 다시 찾았을 때도, 자식을 잃었을 때도, 다시 자식을 얻었을 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면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전천후 감사 생활, 조건 없는 감사 생활, 생활화된 감사 생활을 하면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감사하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감사하면 명예가 주어집니다. 감사하면 물질의 부가 주어집니다. 감사하면 건강이 주어집니다. 감사하면 마음의 평안함이 주어집니다. 감사하면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감사하면 인정을 받게 됩니다. 감사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존귀함을 받습니다.

토머스 J. 네프(Thomas J. Neff)는 그의 책 <최고 경영자가 되는 길>이라는 책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성격을 연구 분석한 결과 그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마음속에 "넘치는 감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의과대학팀이 1937년부터 72년 동안 '잘사는 삶의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2학년 학생 약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이고 잘사는 삶의 공식이 바로 '감사하는 자세'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세계인의 존경을 받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무려 27년 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취재하러 나온 한 기자가 물었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서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답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로버트 에몬스(Robert Emmons) 심리학 교수는 감사 일기를 꾸준히 쓴 그룹과 일상적인 일기를 쓴 그룹으로 나눠 꾸준히 기록하게 한 뒤 비교해보니, 감사 일기를 쓴 그룹의 75%가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숙면에 도움이 되고, 업무 성과까지 좋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감사는 신체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친사회적 행동을 증가시키고 부정정서를 낮추어 줄 뿐 아니라 우울증상을 줄여 준다고 합니다. 조지타운 대학의 생물 물리학 교수인 캐더스 퍼트(Candace Pert)박사는 이것을 '감정의 분자'라고 설명합니다. 생각과 감정과 신체 기관 사이의 밀접한 교류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감사하는 사람들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강력한 힘을 가진 백신입니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먹어 치우고, 삶의 균형을 찾아주고, 안정된 심방 박동을 유지해 주며, 각 기관의 세포를 춤추게 합니다. 감사 백신은 분노를 잠재워주고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며, 자존감을 강화시켜주고, 부정적 정서를 머물지 못하게 합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을 통해 들어 옵니다. 감사하면 수많은 축복이 주어집니다. 성경은 감사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대하20:20-26). 다니엘이 죽음의 위기에서도 감사하니까 기적이 일어나 죽지 않았습니다(단6:10). 감사하면 더 받아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진다고 말씀합니다(눅17:11-19). 감사한 사마리아인은 고침을 받을 뿐 아니라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감사하고 떡을 떼니까 장정만 5천 명이 배불리 먹고 12 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죽은 나사로 앞에 감사하니까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라고 말씀하십니다.

 

3. 감사의 이유

다윗이 왜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평생을 살았겠습니까?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 이렇게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자신은 청직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추상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실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생명을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천국을 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고,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을 말하는 것입니다. 18절에 보십시오. “우리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만들어낸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요청한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약과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자체가 야곱에게 주신 언약의 이름입니다(창32:28)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백성들이 예물드리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약속들이 성취되는 증거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언약하시고 언약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다윗은 자신의 삶을 통해 실제적으로 믿은 것입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믿음이 아닙니다. 어머어마한 물질을 성전을 건축하도록 감사로 표현하는 것도 그 하나님을 다윗이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3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입니다.

 

다윗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11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을 이런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작은 지식으로 그 광대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에 보이는 것만 존재합니까? 수많은 생각들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많은 방송국의 전파가 존재합니다. 수많은 세균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위대하심 권능을 어떻게 인간이 다 알 수 있겠습니다. 내가 모른다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얼마나 무식하고 어리석은 말입니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편 14:1)”

말세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디모데후서 3장 2절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부와 귀(명예)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모든 것의 주인의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소유권과 지배권이 다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주권(통치권)도(11), 부와 귀와 권세와 능력도(12) 다 하나님의 것인데 자신에게 잠깐 맡긴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이런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었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인 것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평생을 살았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이 한평생 복받고 산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았습니다.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그 말씀에 밑줄을 그어 보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주어진 것이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제로(zero)인생으로 생각하면 전천후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 죄인으로 태어났는데 의인이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 벌거숭이로 태어났는데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걸치고 있습니까? 16절을 보세요.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다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님이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교회가, 직장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없는 것보면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것 보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잘해서 잘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이 복잡한 음식점에서 식사하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옆에 앉아도 되겠냐고 했답니다. 그렇게 하라고 답변한 아이언사이드는 머리를 숙여 식사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질문했답니다. “머리가 아프십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식사하기 전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사람은 “아, 그런 사람 중의 한 분이시군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이마에 땀을 흘려 돈을 벌고 그것으로 음식을 사서 먹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 바로 식사합니다.” 아이언사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손님은 저의 집 강아지와 똑같습니다. 저의 집 강아지도 기도하지 않고 바로 먹습니다.”

감사기도 하고 밥을 먹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식사할 때 감사 기도는 암세포를 줄인다고 합니다. 미국 존 자웨트 박사는 감사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3가지 장수 물질이 형성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첫 번째 물질은 항독성 앤티타신(Antitoxin)라는 물질입니다. 이것은 항체 역할을 담당하여 각종 질병의 진행을 억제시켜주고, 병균의 침입을 막으며, 살균을 해주기 때문에 질병의 예방과 아울러 치료에까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두 번째 물질은 안티셉틴(Antiseptin)이라는 물질인데. 이것은 방부제 구실을 한다고 합니다. 이 방부제는 위장 내에서 음식물이 이상 발효하거나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고, 소화 흡수를 도와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세 번째 물질은 연구자인 존 박사도 완전히 규명할 수 없는 일종의 신비한 백신(Vaccine)인데, 이 기도백신은 모든 질병을 예방해 주고 인간의 면역기능을 향상시켜 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평생 전천후 감사를 하며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6)”.

자신은 어떤 존재라는 것입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나그네와 거류민”인 것을 알았습니다. '나그네'는 '외국인' 또는 '외인'을 뜻합니다. '우거한 자'는 '이국 거주자'를 뜻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11). 세상은 그림자 같은 것이고 진정한 희망이 있는 곳이 아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고 부와 명예를 누린다고 해도 자신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거주할 자존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보냄받는 피조물이고 유한자라는 말입니다.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비천한 집안의 일개 목동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른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밧세바를 범한 간음과 그 남편을 죽인, 살인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것만 20번 이상입니다. 아버지 이새는 구권력자도 부자도 아닙니다. 왕족이나 귀족도 아닙니다. 그저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며 살고 있던 평범한 촌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붙들고 사용하였습니다. 다윗도 자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라고 했습니다. 시편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2, 14)”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끊임없이 받는 은혜를 기억하며 주신 은혜에 보답할 것을 생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황송해서 성전도 지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 1:17)”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농사를 짓기 위해 노력해도 태양빛 거두어가면 다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그 어떤 조건을 준다고 해도 풍년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공기가 없다면 수백억을 드려 지은 호화 주택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몰라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 사역에서 큰 성과를 이룬 바울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10)”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애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 시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평생 사시겠습니까?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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