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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티 골목의 아줌마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969 추천수:20 112.168.96.71
2014-11-25 10:17:01
LA 다운타운 자바시장 샌티 골목에 자리잡은 나의 노점은 광야를 거쳐서 다다른 나의 가나안입니다. 이화여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에 결혼하여 살다가 LA로 이민한 때는 74년. 남편이 경영하는 식품점이 잘되어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애들 옷까지 손으로 지어 입히는 알뜰함을 얹어, 집을 장만했습니다. 그러나 숨돌릴 사이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남편의 처지가 너무 딱하여 업종을 바꾸어 샌드위치 가게로 바꾼 것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성질이 불같은 남편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폭음을 일삼았고, 그의 폭음은 알코올 중독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끊임없는 불화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새벽기도, 철야, 부흥회를 사모했습니다. 남편은 그러한 나를 또 미워했습니다. "그래! 너만 혼자 천국 가거라!" 그러면서 남편은 적자가 쌓여가던 샌드위치가게를 그만두고 리커스토어를 물색하던 끝에 어렵게 마련한 중도금까지 치르게 되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왜 하필이면 술 가게인가... 사람에게 해롭기만 한 장사를 해서 되겠는가...' 싶었지만 남편을 거스릴 수가 없어서 중도금을 치르러 함께 나섰습니다.

88년 1월 남편은 차 안에서 쓰러졌습니다. 중풍.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과 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을 앞에 두고 막막해 할 겨를도 없이 나는 구두 가게 점원으로 나섰고 얼마 후에 언니들의 도움으로 다운 타운의 자바시장 샌티 골목 노점을 구했습니다. 새벽에 눈뜨면 새벽기도 하러 교회로 달려가고, 집으로 돌아오면, 퇴원하여 누워있는 반신불수의 남편 대소변 받아내고 야채 쥬스 짜서 떠 먹이고 점심. 약, 소변통까지 가지런하게 챙겨준 뒤에 문도 잠그지 않고 집을 나섭니다. 서투른 운전으로 원 웨이에 잘 못 들어 버스와 충돌할 뻔하는 등 우왕좌왕 경황없는 나에게 유일한 구원은 기도 뿐. 그 때, 눈뜨고도 할 수 있는 기도를 배웠습니다.

워낙 불같은 성격에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서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가지고 노점에도 나오고 교회에도 가고 친구들의 모임에도 다니며 확신시켰지만, 남편은 병세가 호전되는 듯하면 음식이나 술 등을 마구 섭취하여 3번이나 쓰러졌고, 그래도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나를 따라서 노점에 나오는 것이 나았던지 계속해서 따라나오던 어느 여름날 남편은 또 쓰러졌습니다. 그 날, 딸들과 사위는 남편의 양로병원(너싱홈)행을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권할 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던 나도 못이기는 척 했습니다. 그 때까지 교회를 비롯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위로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 돌보기를 더 이상 이어갈 길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보내드려야 해요! 그 곳에 가면 아버지보다 더 어려운 환자들이 많으니 그나마 당신의 상태에 감사를 깨달으실 수도 있을 거예요. 음식이나 약 복용도 어머니보다 훨씬 철저하고 친절하게 돌보아 드릴 겁니다." 입원 전 날, 노점에 함께 나와서 맛있는 점심 시켜서 떠 먹이고 새 바지 사서 입힌 후에 집에 돌아오는데, 가난한 어머니가 아들을 부잣집에 양자로 보내는 심정이 이럴까 싶도록 가슴이 찢어져서 남편의 손을 내 뺨에 대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정말 이 길밖에 없는지요. 이 방법밖에 없는 것인지요."

떠나는 날, 아빠의 짐을 싸던 막내딸이 방문을 닫고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서 가족들은 또 제가끔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입원 첫 날, "노우! 노우!" 외치던 남편이 눈에 밟혀, 다운타운에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터스틴 너싱홈엘 매일 저녁 달려갔습니다. 노점 문을 닫고 달려갔다가, 내가돌아서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이 잠드는 것까지 보고 돌아오면 어느 때는 새벽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남편도 어느 만큼 적응하고 있어, 일 주일에 한번, 비빔밥이나 녹두지짐을 장만하여 들고 가서 공원으로 피크닉을 가곤 합니다.

어느 날, 가게로 미술대학 동창이 찾아 왔습니다. 건물 속도 아닌, 길가에 세워진 바퀴 달린 노점과 노점 아줌마인 나를 바라보며 그 친구는 눈물이 글썽하여 물었습니다. "넌 처량하다는 생각도 안 드니? 억울하지도 않니?" 나는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너 페니 한 푼 없이 다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캄캄한 절벽 앞에 서보았니? 빈손에 배고픈 걸 겪어본 적 있니? 나는 그 벼랑에 서보았어. 이 작은 노점도 내겐 분에 넘쳐.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는 거야."

길 모퉁이의 그 작은 가게는 내 삶의 터전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나안입니다. 8년 동안 매일 일용할 양식을 얻었고 두 딸을 시집보냈고, 병든 남편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땡볕에 기진하기도 했고, 골목 가득한 먼지 바람을 온종일 뒤집어쓰기도 하고 빗속에서 우산을 쓰고 좌판을 지키기도 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서기만 하면 새로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 열심히 살려는 건강함과 싱싱함이 이곳에 늘 넘쳐흐르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뜸할 때면 작은 노트에 일기를 쓰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작은 못 하나 같은 역할이라도 허락하소서."하고 기도하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샌티 골목의 아줌마/윤성희
christianherald.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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