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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784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0:07:21
하루 하루 겨울이 깊어갑니다. 제가 시집 와 어머님댁 식구가 된 지 아직 채 한 달이 안되었네요.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기 전 어머님 집을 드나든지 이미 삼년이 넘었고 나이가 어리다는 핑계삼아 스스로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고 더러는 알면서도 모르는 채 그냥 지나치기도 하는 철없는 저를 딸처럼 아껴주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저를 대해 주셨던 어머님. 갈 때마다 틀려지는 어머님 얼굴의 주름에서 어머님의 살아오신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외며느리로서 어머님을 모시고 살아야 함이 당연한데 어머님의 배려로 이렇게 둘만의 달콤한 신혼생활을 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나간다는 핑계로 찾아 뵙는 것도 전화 드리는 것도 게을러지고 맙니다. 그래도 어머님은 제가 뭐 이쁘다고 냉장고 반찬 떨어지기가 무섭게 해다 주셨어요. 다리가 불편하신 데도 제 위장병에 좋을 거라며 사골을 우려낸 국을 해다 주시는 어머님을 보고 저를 진정 딸처럼 여겨주시는구나 하고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답니다.

10년 전 암수술 이후 음식을 조절해 드신다는 말을 들었지만 처음엔 어머님께서 해주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어요. 절에 다니시는 어머님께서 서쪽방향은 피해야 하고, 아기는 언제 낳아야 좋고, 복주머니는 안방 귀퉁이마다 한 개씩 걸어야 한다는 현대 사회엔 맞지도 않는 미신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한숨이 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머님의 마음 속에 저희를 아끼는 마음은 읽지 못하고 원망하고 말다툼까지 서슴지 않았던 제 철없음에 용서를 구합니다.

아마 결혼하면 내가 먹을 반찬은 조미료를 넣어서 따로 해야겠구나. 이런 걱정을 했던 것도 지금에 와서는 부끄러워 진답니다. 이젠 어머님의 손맛이 많이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무엇이든 어긋나고 틀려도 자꾸 만나고 부딪치면 그 틈새가 점점 작아짐을 느낍니다. 때로는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빨간색 외투를 사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님 손 나란히 잡고 길을 가다가 친구분 만나시면 "이 멋진 옷, 우리 며느리가 해주었다"고 자랑을 하실 때 저도 어깨 으쓱거리게 되는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깊게 자리잡아 가는 눈가의 주름살을 펴는 화장품을 사드리고 싶습니다. 서울 근교의 유명하고 이쁜 카페에 가서 어머님과 차 한잔도 하고 싶습니다. 또한 어머님께 애교를 부려가며 반짝반짝 빛나는 브로치를 사달라고 조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어머님의 막내딸이 되고 싶은 며느리랍니다. 철부지 같은 저희 둘이 걸어야 할 험난하고 두려운 순간마다 어머님께서 주신 사랑의 이름으로 잘 이겨내어 지혜롭게 살아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어머님, 남들에게 있는 여러 며느리보다 당신의 든든한 단 한 명의 며느리가 되겠습니다.

어머니께/윤남주(국민일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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