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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여호수아8:1-4)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623 추천수:9 220.120.123.244
2020-07-26 08:36:22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

여호수아8:1-4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아이성 전투에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을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근본적으로 삼위 일체 하나님,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처럼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큰 줄거리가 성부 하나님의 구속 계획, 성자 하나님의 구속 성취, 성령 하나님의 구속 적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구속사의 큰 틀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광야를 통과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주었습니다.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너게 하시고 여리고성을 기적적으로 무너뜨려 이스라엘 백성을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승리, 승리, 승리로 이어지는 연전연승의 행군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그마한 성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했습니다. 아이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벌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성 전투에서 참배를 당하였습니다. 이 전쟁으로 36명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리고 성 같은 큰 성도 무너뜨렸는데 인구 12,000명 사는 아이성 전투에서 무장할 수 있는 군인 6십만 1천 7백 30명(민26:1; 민26:51)을 거느리고 패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전쟁과 경기로 비유해 말씀합니다. 가나안 정벌 전쟁을 하는 우리 인생도 신앙생활하던 중 뜻하지 않게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신앙생활에, 대인관계에, 건강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계속 승리하다 어쩌다 한 번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여 계속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실패할 때 어떤 마음이 되었습니까?

여호수아 7장 5을 보십시오. "물같이 녹아 버린 백성의 마음(7:5)"이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마음에는 염려와 걱정과 공포만이 남아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총사령관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7: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여 죽이려고 오게 했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과거를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차라리 결혼을 안 했으면,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차라리 사업을 안 했으면, 차라리 교회에 나오지 않았으면 이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패배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이런 때에 궁극적으로는 승리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해 주십니까?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승리하길 원하십니까?

 

1.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말씀 붙들고 승리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들이 왜 실패했습니까? 7장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겼습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아간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욕심을 내어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 그리고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를 훔쳐 자기 집에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성 전투에 실패해 36명이 전사했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실패와 승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실패하고 에덴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면 승리이고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실패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초대 왕으로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실패하여 자식들과 함께 전쟁터에서 죽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들여야 할 제사를 왕권이 주어졌다고 월권하여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와 성공의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성공이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실패가 아닙니다. 사업이 잘 되는 것이 성공이고 사업이 잘 안되는 것이 실패가 아닙니다. 명문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이고 대학 진학을 못하는 것이 실패가 아닙니다. 살아 남는 것이 성공이고 순교하는 것이 실패가 아닙니다. 그런 기준은 상대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승리는 결과는 어떻게 되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그것은 성공이고 말씀을 어기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비록 야고보처럼 스데반처럼 순교를 하여도 말씀대로 하면 그것은 성공입니다. 베드로나 바울처럼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면서 환난을 당했다면 그것도 성공이고, 말씀대로 살다가 가난해졌다면 그것도 성공이고, 말씀대로 살다 감옥에 갔다면 그것도 성공입니다. 직장 생활도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대기업을 다녀도 말씀대로 살면 성공이고, 중소기업을 다녀도 말씀대로 살면 성공입니다. 교회도 대형 교회만 다녀야 성공인 것이 아닙니다. 대형 교회를 다녀도 말씀대로 신앙생활해야 성공이고, 개척교회를 다녀도 말씀대로 신앙생활하면 성공입니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크고 작음이나, 많고 적음이나 유명이나 무명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하느냐에 있습니다. 믿습니까?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우리의 싸움을 영적 싸움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과 싸움이 아니라 사탄과의 싸움이 우리 인생의 싸움이라고 말씀하면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로라고 말씀합니다. 공격 무기를 성경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엡6:17).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사탄이 유혹을 합니다. 그 때 말씀으로 이겨 승리하였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말씀을 지키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말씀대로 하지 않아 실패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8장 1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전의를 상실한 여호수아에게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실패했다고 자포자기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죄를 범하면 가차 없이 짓밟아 버립니다. 요즈음 연일 언론에 통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십시오.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으로 갈라져 잘못만 드러나면 상대를 가차없이 그것을 빌미로 짓밟아 버립니다. 정치계만 그렇습니가? 언론계도, 검찰도, 경찰도, 재계도, 학계도, 심지어는 종교계도, 전국민이 두 쪽으로 나누어져 싸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살벌한 경쟁 사회, 소용돌이 사회입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은 전쟁터입니다. 상대의 잘못이나 흠만 드러나면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초원에 사는 동물들보다 더합니다. 무자비하게 융단폭격을 가하면 짓밟아 버립니다. 아파트 값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많은 것을 쌓기 위해 언론을 통해 치열한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고 지난 죄악 기억지 않으시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 번 실패했다고 그대로 끝내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죄악의 문제를 청산한 그들을 향해 다시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대로 나가면 결국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로뎀나무 아래 지쳐서 쓰러져 있는 엘리야에게 천사를 시켜서 떡과 물을 주시며 "일어나 먹으라"고 하셨습니다.(왕상19:5절) 혹시 주님의 일을 하다가 영적 기갈과 곤비함으로 힘을 잃은 성도님들이 있습니까?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말씀 붙들고 일어나면 불가능이 가능하게 됩니다.

세상을 향하여 말씀을 전하다 지쳐 있는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일어나 빛을 발하라" 고 말씀하십니다.(이사야 60:1절)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요한복음 5:8) 질병으로 일어나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말씀 붙들고 일어나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습니다.(사도행전 3:6절)

예수님께서 잡히시던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자는 제자들을 향해 "일어나라 함께 가자" 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6:46절)

결국 인생의 승리는 무엇을 성취하기 보다는 말씀대로 싸우느냐 말씀과는 상관없이 싸우느냐의 문제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삶의 현장에서 평생 동안 말씀대로 싸워 승리하시길 원하십니다. 평생의 삶이 영적 전쟁터인데 말씀으로 싸워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어떤 아이성이 앞에 있습니까? 사업입니까? 진학입니까? 취업입니까? 결혼입니까? 신앙의 성숙입니까? 인간관계입니까? 한 번 실패했다고 전의를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는 하나님 말씀 붙들고 일어나 인생에 주어진 아이성을 점령하시길 바랍니다.

 

2.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승리하기 원하십니다.

왜 그들은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했습니까? 일차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주원인은 말씀대로 따르지 않은 아간의 범죄(7:1)입니다. 둘째 원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믿음 없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교만하고 안일한 태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여리고성의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들의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난공불락 같은 여리고 성은 어떻게 무너뜨렸습니까? 6장에 보십시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하나님이 넘겨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고 엿새 동안 그렇게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넘겨 준 것을 믿고 돌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여리고 성 사람들을 그들을 보며 오랜 세월 광야 생활하더니 미쳤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닉 스켈론이 지은 <기업들의 전쟁>에 보면 역사적으로 어떤 군대나 지휘관이든지 적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세 가지 주요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승리할 수 있는 세가지 중요한 이유는 첫째가 SWAT(우세한 무기와 전략체계; Superior Weapons and Tactics System)였고 둘째가 높은 힘 대 공간 비율이었으며 셋째가 강력한 방어위치였다고 합니다. 어떤 전쟁이든지 상대방보다 강한 무기와 전술을 가지고 있으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높은 힘대 공간 비율이라 함은 수가 많은 사람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강한 방어 위치라 함은 어느 한쪽이 수적으로 유리하지 않고 무기나 장비가 비슷한 상대끼리 전투가 벌어질 경우 대부분 방어를 하는 쪽이 승리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성을 도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짜야 합니다. 무기를 개발해야 합니다. 토성을 쌓아야 합니다. 병사들을 정예병으로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법궤를 메고 돌고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전술의 기본에도 맞지 않는 데고 그들은 말씀대로 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이 코치의 지시대로 따르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아도 따르는 것은 코치를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생을 전쟁과 경기로 비유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인생의 경기를 승리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 경기의 승리의 비결은 한결같이 믿음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이 예배에 승리했고, 믿음으로 에녹이 승리했고, 믿음으로 노아가 승리했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승리했고, 믿음으로 요셉이 승리했고, 믿음으로 모세가 승리했다고 여러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0절에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리고성 전쟁도 믿음으로 승리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이성 전투에서는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첫 번 아이성 전쟁을 어떻게 하는가 여호수아 7장 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습니다. 정탐꾼을 보내어 정탐하게 합니다. 물론 정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선 순위가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전쟁은 인본주의가 아닙니다. 신본주의입니다. 정탐꾼이 어떤 보고를 합니까? 3절을 보세요. 이삼천 군인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을 소수라는 것입니다.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만만합니다. 인간적으로 지혜로운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상의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지도 않고, 하나님이 그들을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도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전쟁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하는 전쟁입니다. 결국, 믿음 없이 하는 전쟁에 실패합니다. 그들의 선조들은 과거에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가데스 바냐에서 정탐꾼을 보내어 놓고 하나님을 믿지 실패하여 두 사람만 제외하고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보호하고 함께 하고 인도해 준다고 했는데도 믿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1장 32절에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분명하게 기록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천국에 들어가는 승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결국 천국에 못들어 갑니다.

 

믿지 않아 실패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다시 8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두려워 할 것은 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이 너희들만 하는 전쟁이 아니라 내가 함께 하는 전쟁인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지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힘을 믿고 자기 방식대로 전투하다 실패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싸워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주었노니”라는 말씀은 정복에 관한 모든 것이 이미 하나님의 작정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수1:2,3; 2:24; 여호수아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은 누가 원한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더 원한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가는 길입니다(신8:15-16). 오늘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천국에 다 들어가 승리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5장 4절에는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습니까?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라고 말씀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께 물어 보며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면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전쟁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인생 전쟁도, 인생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하면 이기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병든 자식을 둔 아버지가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침 그곳에 계시지 않고 제자들만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오시니까 병든 아들을 둔 아버지가 하실 수 있거든 고쳐달라고 예수님게 부탁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했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어떤 아이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그 아이성을 무너질 것입니다. 구원얻는 믿음에서 그치지 말고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우리의 싸움은 결국 믿음의 싸움입니다. 진화론과 창조론 사상의 싸움도 믿음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믿는냐 진화론을 믿는냐. 무신론과 유신론의 싸움도 믿음의 싸움입니다. 인간을 믿느냐 하나님을 믿는냐의 싸움입니다. 타락한 자본주의와 싸움도 하나님이 왕이냐 자본이 왕이냐 믿음의 싸움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기는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의 승리와 실패는 믿음으로 하냐 믿음으로 하지 않느냐에 따라 다라집니다. 나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다고, 미스 코리아처럼 생겼지 않았다고, 배경이 좋지 않다고, 학력이 모자라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외면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승리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사사 에훗는 왼손잡이였습니다. 장애인이라는 말입니다. 드보라는 당시 물건처럼 취급당하는 여자였습니다. 에스더는 고아였습니다. 다니엘은 포로였습니다. 야곱은 사기꾼이었습니다. 다윗은 목동에 불과했고 간음자, 살인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믿음을 사용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태산을 옮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홍해를 건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넌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이성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승패의 기준이 믿음입니다. 예배도 믿음으로 드려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봉사도 믿음으로 해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전도도 믿음으로 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도, 사업도 믿음으로 하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환난과 고통 어려움을 만났으나 믿음으로 평생을 승리하였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도 했고, 세 번이나 파선되기도 했고,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적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거짓 형제들의 위험, 주리고, 목마르고 굶주렸지만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들같은 디모데에게 유언적인 서신을 쓰면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만나든지 평생 믿음으로 주어진 인생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런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앞에 놓여 있는 여리고가 무엇입니까? 가난입니까? 질병입니까? 사업입니까? 환난입니까? 취업입니까? 직장입니까? 결혼입니까? 잉태입니까? 죽음입니까?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3.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최선을 다해 승리하시길 원하십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그들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7장 3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다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과소평가하고 자신들을 과대평가하면서 적당히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성 인구가 12000명(수8:25)밖에 되지 않자 그들은 이 삼천이면 될 줄로 알고 삼천으로 싸웠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36명이 죽고 패전하였습니다.

이 때 승리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절을 보십시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성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합니다. 3만 명을 뽑아 성 뒤에 복병하여라.(2-3)라고 합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슨 말씀입니까?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각자 삶의 현장에서 최선이 있습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열정을 가지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음주 운전하고 한강에 뛰어 드는 것과 같은 쓸데 없는 열정이 아니라 방향이 바른 열정,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열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적당히 해서는 평균 이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물이 수증기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100c까지 가열되어야 합니다. 끓지 않는 물, 80도, 70도의 물은 기계를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미지근하고 불확실하며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결코 세상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 믿는다고 적당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어떻게 합니까? 10절에 보십시오.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장로들과 함께 자신이 아이성으로 올라갑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군인들이 뒤따라 다 올라갑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매복을 시킵니다. 유인합니다(16, 13-17). 협공합니다(18-27).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2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인생 경주에서, 인생 전쟁에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해 승리하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 열정이 없으면 승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절반의 생>이란 시가 있습니다.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 절반만 친구인 사람과 벗하지 말라...절반의 물은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하고, 절반의 식사는 배고픔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절반만 간 길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며 절반의 생각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한다.” 어떤 것을 이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열정의 사람들입니다. 파브르는 곤충에 미쳤고, 포드는 자동차에, 에디슨은 전기에 미쳤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열정 포트폴리오>라는 책은 지속적으로 성공한 전 세계 200여 명의 성공 비결의 공통점은 '열정'이라고 말합니다. 물 한 방울도 꾸준히 떨어지면 돌을 뚫게 됩니다. 무쇠도 계속 갈면 바늘이 됩니다. 열정이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적당히 하지 말고 열정적으로 하여야 무엇인가 이룰 수 있습니다. 여성으로 창군 이래 처음으로 장군이 된 양승숙 집사님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장군이 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열정적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장로님이고 어머님은 권사님이었습니다. 한 교회에서 88년 설립할 때부터 여섯 자매 중 다섯이 몸담으며 직분을 가지고 봉사하였답니다. 새벽 4시 반이면 온 가족이 일어나 가족 예배를 드린 것이 몸에 익어, 어른이 된 지금도 어김없이 그 시간이면 기상하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만큼 되어진 것도 열정적인 성도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척하자마자 IMF 경제 위기라는 아이성을 만났습니다. 열정적인 성도님들로 인하여 교회가 종교부지를 선물로 받고 건축을 하려고 하는데 다시 세계적인 금융위기라는 아이성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는 일부의 열정적인 성도님들에 의해 기적처럼 교회가 건축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깨끗하게 보존되는 것도 열정적으로 매주 나와 이 무더위와 전염병 속에서도 청소하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빈국 아이들을 기독교 인재로 기르고, 해외에 교회와 학사, 학교를 건축하며 선교하는 것도 열정적으로 헌금하는 성도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평안하고 성도님들이 잘 되는 것도 작은 무리지만 새벽 일찍 나와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머슨은 "열정 없이 성취된 위대함은 없다"고 했습니다. 정열소진(情熱燒盡)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욕에 불타 충실감을 가지고 일에 열중하던 자가, 어느날 갑자기 마치 정열이 소진된 것처럼 의기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신앙 생활하면서 열정 소진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질지 몰라도 살아 있는 동안 열정적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아이성을 점령하고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류가 해택을 누리는 명작은 열정의 산물입니다. <티핑 포인트>라는 책을 보면 열정을 가진 150명 만 있으면 기업을 대단한 기업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열정을 가진 예수님의 제자 12명이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가정이 안 된다고, 직장이 안 된다고, 기업이 안 된다고, 자녀가 안 된다고, 교회가 안 된다고, 나라가 안 된다고 원망과 불평으로 열정이 식은 인생으로 살지 말고 열정을 가지고 아이성을 점령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신명기 6장 4절-9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지성 계발에 있어서 힘을 다하라고 합니다. 감성 계발에 있어서 마음을 다하라고 합니다. 의지 계발에 있어서 목숨을 다하라고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쓰임 받아 인생 전쟁터에서 승리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그 시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적당히 산 사람이 있습니까? 모세를 보십시오.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았습니까? 요셉, 야곱, 바울, 선지자들 사도들 얼마나 인생을 열정적으로 불태우며 살았습니까? 열정을 가지고 아이성을 점령하는 데는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고 다시 일어났고 100세에 약속을 성취받았습니다. 모세는 80세에 다시 일어나 부름에 응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킨 인생 경주에서 승리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토마스 에디슨은 청각장애인이 되어서도 축음기를 만들었습니다. 존 밀턴은 완전히 실명된 상태에서 '실낙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뿌리>를 쓴 알렉스 헤일리는 8년 동안 1백 번이 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일어나 55세가 되던 해에 세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영국 작가 서머셋 몸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말더듬이였습니다. 베토벤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열정으로 승리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인생의 아이성 앞에서 열정이 식어 버린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실패했다고 열정 소진 증후군에 걸려 가정생활도, 신앙생활도, 직장생활도, 인간관계도 열정을 잃어버린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도 우리를 각자의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말씀합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땅을 다 네 손에 넘겨주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점령하여 스스로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하지 말고 스스로 준비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를 땅속에 묻어 놓고 썩히지 말고 최선을 다해 개발하여 각자 주어진 아이성을 점령하여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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