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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백신(11) 맡김(베드로전서5: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74 추천수:1 220.120.123.244
2021-04-18 12:54:49

마음의 백신(11) 맡김

베드로전서5:7

 

오늘은 마음의 백신, 11번째 염려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염려입니다. 코로나 19로 수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며 살고 있습니다. 혹시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을까? 내가 코로나에 감염됨으로 부모님과 자식들, 직장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IMF때보다 경제적 충격이 30%나 더 크다고 하는데 심한 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직장을 잃지 않을까? 사업이 망하지 않을까? 취업은 할 수 있을까?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평생 집은 마련할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기독교 상담학자 게리 콜린스라는 "염려는 우리 시대의 공식적인 감정이다"라고 말합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아니라도 평상시에 미국의 경우 성인 5명 중 한 명 꼴로 염려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돈에 대한 염려, 의식주에 대한 염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에 대한 염려, 질병에 대한 염려, 죽음에 대한 염려, 사고에 대한 염려, 학업에 대한 염려, 대인관계에 대한 염려, 가족에 대한 염려 등 각종 염려들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며 사람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도 하루에 수시로 염려거리가 찾아옵니다. 몸만 조금 아파도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혹시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염려합니다. 언젠가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들어갔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같이 탔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릴 때까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저 사람이 내 집에 따라와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염려가 심해지면 과민반응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불면증, 우울증 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조셉 몬테이그 박사는 "우리가 음식 때문에 위궤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좀 먹는 염려 때문에 위궤양에 걸린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명문 시카고 의과대학의 연구팀에 의하면, 과도한 스트레스와 염려가 많은 사람일수록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두 배나 높다고 경고합니다. 과잉염려의 부작용입니다. 포돌스키(Edward Podolsky)는 염려는 우리 몸의 유익한 인자들을 죽이고 독성 인자들을 높여서 정신질환과 고혈압, 심장병, 위장병 등과 같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염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 인자까지 죽여서 각종 암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게 한다고 말합니다.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실제로 건강 자체의 문제보다 건강을 염려하는 것 때문에 건강에 커다란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장병의 80%가 신경성에서 유발된다고 합니다. 류마티스 관절염도 염려와 걱정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이라고 합니다. 건강염려증 환자가 일반인 가운데 1-5%, 병원을 찾는 환자중에 15%가 된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이 염려와 걱정, 근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라고 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서는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라는 마음의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백신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백신을 맞아야 염려하는 병에서 해방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1. 마음의 질병, 염려의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백신은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맡겨라”에 해당하는 “에피립산테스”는 “...의 위에” 혹은 “위를 향하여”란 뜻의 전치사 “에피”와 “던지다”란 뜻의 동사 “립토”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위에 던져버리다” 혹은 “위를 향하여 던져버리다”라는 의미를 가진답니다. 염려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벗어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염려란 우리말 사전에서는 “앞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함. 또는 그런 걱정.”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는데 성경 원어는 ‘메리므나’라는 말인데 ‘여러 조각으로 나누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메리조’에서 유래했답니다. 염려란 어의적으로 보면 “마음이 나누어지는 것, 상이한 방향들로 분산되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즉 마음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염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5-23절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일상적으로 염려하는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위해, 몸을 위해 염려합니다. 암에 걸렸던 사람은 배에 통증이 오면 대장에 재발되었는가 염려합니다. 기침만 하면 폐에, 다리가 절리면 다리에, 전이되지 않았나 과잉염려증에 시달립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살 것에 지나치게 염려를 합니다. 키가 자라는 것에 대하여 염려합니다. 내일을 위해 염려합니다. 예수님을 이런 염려를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염려함으로 키 한자도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염려로 미래를 바꿀 수 없고, 염려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염려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염려와 부정적인 염려입니다. 창조적 염려와 파괴적 염려입니다. 순기능적 염려와 역기능적 염려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에는 염려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7장 34절서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28절에서는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일을 위한 염려, 교회를 위해 염려는 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2절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딤전 3:7절에서는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염려는 창조적인 염려입니다. 신앙적인 염려입니다. 영적인 염려입니다. 성장을 위한 염려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한 염려입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염려입니다. 염려로 준비하게 하고 위험을 예방하고 만약을 대비하여 조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방어와 준비를 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염려는 잘 하지 않습니다. 죄가 되는 쓸데없는 염려를 많이 합니다.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파괴적인 염려를 많이 합니다. 파괴적인 염려는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정적인 경험입니다. 둘째는 부정확한 미래입니다. 셋째는 부정적 상상(가정)입니다. 요즈음 건강 염려증 환자가 많이 있습니다. 건강염려증 환자는 신체적 징후에 집착해 심각한 병이 있다는 공포(믿음)를 느끼며, 의사가 문제없다고 해도 공포(믿음)가 계속되고 스트레스가 심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고 합니다. 소화가 안 되고 거북할 때, 위암이라고 생각하고, 머리가 아플 때는 극단적으로 뇌종양을 생각하며, 비합리적인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신체의 특정 부위가 실제로 아픈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아픈 것처럼 인식하고, 통증을 느끼게 되며, 그로 인하여 만성적 피로감과, 두려움으로 죽음을 연상한다고 합니다. 건강 염려증은 '건강기우증' 혹은 '신체 전환증상'이라고도 말하는데 주위의 위로나 위안에 의해서는 결코 도움을 받지 못할 정도로 신체적 감각 반응이 과민해져 있다고 합니다. 비합리적인 질병에 대한 불안 회로가 두뇌를 지배해 버린 것입니다. 비현실적으로 자신이 중병을 가지고 있다는 공포나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과장성, 망상성이 강렬하고 지속적이어서 극단적 상상을 하고 우울증과 불안증을 동반한 심리적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염려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세 가지 "불"을 가지고 오게 되어 있습니다. "불안, 불익, 불신"입니다. 쓸데없는 염려를 하면 만성적으로 신체적 스트레스를 받고, 사고력은 감퇴하고,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성취도도 떨어지고 학습능력을 저해하고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시킨다는 것입니다. 과장성 망상성에 시달립니다. 염려는 영적인 무기력증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염려는 전염성이 강해 주변 사람에게 염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지나치면 초조해지고, 긴장하고 심하면 우울증에 걸리게 합니다. 염려는 평안과 행복을 빼앗아 가는 마음의 독약입니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 약화시킵니다. 소화불량, 신경쇠약, 궤양, 두통, 발진을 일으키게도 합니다. 초조해지고 숨이 가쁘며, 잠을 못 이루고, 쉽게 피곤해하며, 식욕을 잃게 만듭니다. 소심하게 되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됩니다. 쓸데없는 염려는 백해무익합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염려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염려는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염려한다고 염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염려한다고 염려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르고 사는 즐거움>의 저자인 심리학자 어니 제린스키는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며,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고, 22퍼센트는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소하다고 말합니다. 4퍼센트는 걱정해봤자 어쩔 수 없고, 나머지 4퍼센트는 충분히 우리 힘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염려하는 일들의 96%는 과잉걱정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미국에서 목회했던 웰치 목사님은 장수하였는데 101세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답니다. 생일 축하식에서 한 기자가 "목사님, 101세이십니다. 남은 생을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되십니까?"라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는 "나는 30년 전 70대에 은퇴를 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은 중요한 진리가 하나 있다네. 목사로서 부끄럽지만 나는 일평생 살아오면서 매일 염려를 끌어안고 살았어. 날마다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았는데 나중에 은퇴할 때 가만히 보니 내가 평생 끌어안고 씨름한 것 중에 실제로 일이 터진 것은 거의 없었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목욕 땅에 가면 "귀중품은 주인에게 맡기십시오."라는 글을 보았을 것입니다. 100만원 은행에서 찾아 왔는데 맡기지 못하고 걱정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맡겨놓으면 평안하게 목욕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을 할 거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마라.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낫는 병인가? 안 낫는 병인가? 낫는 병이면 걱정하지 마라. 안 낫는 병이면 두 가지 만 걱정해라. 죽는 병인가? 안 죽는 병인가? 안 죽는 병이면 걱정하지 마라. 죽는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 거 같은가? 지옥에 갈 거 같은가? 천국에 갈 거 같으면 걱정하지 마라. 지옥에 갈 거 같으면... 지옥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결국 신앙인은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그것 붙들고 염려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염려하지 말고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 37:5)"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7-8)" 이 말씀을 믿습니까?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2. 마음의 질병, 염려의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백신은 모든 염려를 다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무엇을 맡기라고 합니까? “너희 염려를 다” 맡기라고 합니다. 어떤 염려라도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라는 말입니다. 마음을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회색 지대에 가두어 놓지 말라는 말입니다. 믿지 못하면, 신뢰하지 못하고 맡기지도 못합니다. 어떤 것을 맡기고, 어떤 것은 맡기지 않고 자신이 끌어안고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염려라도 맡기고, 아무리 무거운 짐일지라도 맡기고, 아무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염려 덩어리도 다 맡기라는 말입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간다면 그냥 몸은 맡기면서 무거운 짐을 계속 머리에 이고 있으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맡겨 벌여야 합니다. 여기 컵이 있습니다. 이 컵 물을 먹기 위해 잠깐 드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을 들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루를 들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달을 들고 있으며, 아니 평생을 들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염려라는 것은 아무리 작은 염려일지라도 장기적으로 맡기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마음과 인생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염려를 하나님께 다 맡기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염려거리가 생기며 그 염려거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라고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의 문제를 감사 기도 제목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할 때 염려하며 절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 아이를 얻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염려하며 좌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께 질병을 맡기고 기도하여 질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 5:15)" 이 말씀을 믿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염려하며 포기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여 빌립보 감옥을 나오게 된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11:9)" 믿습니까?

다니엘이 총리직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염려하며 방구석에 앉아 걱정 근심으로 한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여 능력 받고 승리한 것입니다.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34:6)” 이 말씀을 믿습니까?

 

이런 역사는 성경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된 오늘날도 믿음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우리나라 유명 식품회사 사장님의 아들 이야기입니다. 아주 잘 생기고 똑똑한 아들이 명문 대학을 다니다가 군에 입대했답니다. 첫 휴가를 나와서 아버지 차를 몰고 나갔는데,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답니다. 아들이 식물인간이 되어 갑자기 염려의 늪에 빠져버렸는데 담임 목사님이 오셔서 요한복음 5장 25절 말씀을 주고 기도해 주었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신앙이 좋은 사장님은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답니다. '죽은 나사로도 주님의 음성 들으니 살아났는데, 아직 죽지 않고 식물인간으로 있는 내 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나지 않겠는가?' 의학과 과학으로는 맡기고 기도하기 어려운 문제였지만 매일 기도하며 아들의 귀에 대고 이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주었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60일, 80일, 85일, 86일이 되어도 아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87일 째 되는 날, 아버지가 큰소리로 그 말씀을 읽으니 아들이 "아멘!"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일어났답니다. 불가능한 것같은 엄청난 염려의 문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맡기고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염려의 문제가 감사로 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사야 45장 22절에 말씀하십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한 의사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자신이 치료하는 한 환자가 얼마나 존경스럽던지 머리를 숙여 존경했답니다. 죽을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인데,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환자인데 늘 그 마음에 평안이 넘치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더랍니다. 그분이 자신의 병을 몰라서 그렇게 평안한 줄 알고 물었답니다. "부인, 부인의 병이 무슨 병인지 아세요?" "알고 말고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평안하세요?" 부인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랍니다. "의사 선생님, 내 병은 나보다 내 주님께서 더 잘 알고 계세요. 그리고 내 사명이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를 우리 주님께서 알고 계세요. 내 사명이 끝났으면 나는 죽습니다. 그러나 내 사명이 끝나지 않았으면 나는 죽지 않습니다. 내 주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인데 내가 왜 걱정을 합니까?" 얼마 후, 그 의사 선생님이 다른 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답니다. 바쁜 생활을 하느라 그 부인을 잊고 있었는데, 하루는 조용한 시간에 그 부인이 생각나더랍니다. 그래서 그 병동에 가 보았답니다. 그 부인이 보이지 않아서 돌아가셨느냐고 물으니 신비롭게 건강을 회복해서 퇴원했다고 하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직도 인생의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고 염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날 염려의 늪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3. 마음의 질병, 염려의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백신은 하나님을 돌보심을 믿고 염려를 다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왜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합니까?

“이는 그가 너를 돌보심이라” 접속사 이는(호티)이라는 말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이유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이유는 하나님 너희를 돌아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돌보다(멜레이)”라는 말은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염려를 다 맡겨야 할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서신을 쓰고 있는 베드로는 실제 섬세하게 돌봐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갈릴리 호수 한복판에서 한밤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당하고 침몰하는 위기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는 물에 빠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마가복음 6:45~52).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밤중에 풍랑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모든 염려로부터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안심하라. 내가 여기 지켜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베드로가 교회를 핍박하던 헤롯왕에게 체포되어 수감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처형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한밤중에 찾아와서 감옥 문을 열어주고 석방시켜주었습니다(사도행전 12:6).

그런 체험을 한 베드로는 네로 치하에서 고난받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인 줄을 믿습니까? 우리를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인 줄을 믿습니까? 잠깐 고난을 당하나 우리를 그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습니까? 염려거리가 생기면 자꾸 그것을 생각하지 말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지금도 우리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하고 굳건하게 하고, 강하게 하고 터를 견고하게 할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염려보다 크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염려를 생각하며 염려의 늪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염려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생각의 문제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으로 기억이라는 생각 속에 남은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상상 속에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현제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염려란 실제하는 것보다 극도의 부정적 인식과 비합리적 사고구조가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학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비합리적 사고의 구조에는 크게 '임의적 추론(arbitrary inference)' 또는 '선택적 추상화(selective abstract)'라고 부르는 것과 '극단적 상상' 또는 '부정적 상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임의적 추론 및 선택적 추상화는 충분하고 적절한 증거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일종의 왜곡된 신념으로서 상황에 대한 비극적이며, 파국적 결말을 상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보다는 특정한 부분만을 선택하여 임의적으로 추론하여 과잉 일반화를 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누군가 음식을 짜게 먹어 위암에 걸렸다고 하면 많은 원인은 무시하고 자신이 과거 짜게 먹은 것에만 초점을 맞춰 자신의 식습관을 염려하다가 위암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신념을 갖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언론에 매일같이 성폭행범 뉴스가 나오면 딸을 둔 엄마는 딸이 늦게 들어오면 자신의 딸도 성폭행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학문적 용어로는 "가용성 편향"이라고 합니다. 우리 뇌는 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극적으로 생각하는데 계속 언론에서 성폭력을 말하면 그 사건이 격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 나에게도 쉽게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병적 염려증 환자는 임의적 추론 및 선택적 추상화, 비약적 단정 또는 허구성 일치로 생각의 회로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염려의 생각 회로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심리학에서 합리적 정서 행동 치료 방법으로 ABCDE 이론이 있습니다. 영어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만든 이론입니다. 건강 염려증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비합리적 신념과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비합리적 신념체계의 형성 과정과 동시에 변화의 방법을 알려주는 이론입니다.

A(activating experience or event)는 촉발적 경험이나 사건 또는 선행 사건(antecedent)을 의미합니다. 어머니가 위암이었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면 B(belief system)라는 신념체계입니다. 어머니가 위암이라는 선행 사건을 통해 "나도 위암일 거야"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체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C(consequence emotion)라는 감정의 결과가 생깁니다.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사건을 해석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정서적 결과를 말합니다. 이때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지나친 불안, 원망, 비판, 좌절감, 염려, 걱정, 초조, 분노 등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 건강 염려증이라는 늪에서 벗어날려면 중요한 것 D(dispute)라는 것입니다. 논쟁하고, 논의 하며, 논박하는 것입니다. 사리에 맞지 않은 비합리적인 신념과 사고 또는 상상에 대하여 합리적인 생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고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려면 E(effect) 즉, 결과는 자기 파괴적인 건강 염려증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염려의 치료에 중요한 것은 D라는 것입니다. 비합리적인 신념을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 합리적인 신념으로 재구성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건강염려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 방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때 사용하는 방법이 "그만"이라고 외치는 것보다는 "나는 정상이야!" "나는 질병이 없어! 전문가인 의사가 건강하다고 판정을 했잖아!"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 등의 문장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외치라는 것입니다. 건강에 대해서 지나친 염려가 발생될 때마다 부정적 인지와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서 스스로 거부해야 염려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비 좀머(Bobbe Sommer)는 CRAFT요법을 주장합니다. 첫째 Cancel(중지: 오래된 부정적 사고의 중지) 둘째는 Replace(대치: 새로운 긍정적 사고로 대치) 셋째는 Affirm(확인: 새로운 자기상의 확립) 넷째는 Focus(초점: 성공적 자기 상의 초점 수립) 다섯째는 Train(훈련: 새로운 태도와 행동으로 훈련)입니다.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치료방법인데 커다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보다 정신의학자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해 주시고 천국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은 염려를 이기는 처방전을 선경을 통해 분명하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염려가 있을 때 염려를 생각하지 말고 그 염려를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고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0절에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자꾸 쓰레기통을 뒤지지 말고 6가지 "참됨, 경건, 옳음, 정결, 사랑받을 만함, 칭찬받을 만함"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시궁창 물은 깨끗하게 한다고 계속 젓는다고 깨끗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물을 넘치도록 계속 부어야 나중에 맑아집니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파괴적인 염려거리가 생기면 이 여섯가지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적 생각입니다. 신앙적 생각입니다. 어둠은 결코 어둠으로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작은 빛이지만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내가 염려하고 있는 것이 참된 것인가를 물어보고 참되지 않으면 참된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경건한가를 물어보고 경건하지 않으면 경건한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옳은가 확인해 보고 옳지 않으면 옳은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정결한가 확인해 보고 정결한 생각이 아니면 정결한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만한가 확인해 보고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칭찬받을 만한 생각인가 확인해 보고 칭찬받지 못한 생각은 바꾸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 절망적인 생각, 두려운 생각, 걱정거리를 복음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좋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었다면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실제 행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돌보시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9절은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생각만 하고 실제 행하지 않으면 염려의 늪에서 완전히 탈출할 수가 없습니다. 환경은 생각만 한다고 바꾸어 지지 않습니다. 내가 치울 수 있는 염려의 오물이 있다면 내가 치워버려야 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주방에 아무리 소금이 많이 있어도 소금을 뿌려야 간이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산이 10억 이사 있는데도 늘 염려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산이 천만원도 없는데도 염려하지 않고 감사하며 평안히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고 실제로 사느냐 살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말이나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행함이 문제입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에 대한 이론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식습관을 바꾸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오늘 주보 글에 건강과 식습관이라는 글을 써 올려 놓았습니다. 건강에 대하여 염려만 하지 않는 다고 저절로 건강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 글에 <지방이 범인>이라는 책을 짧게 소개해 놓았습니다. 사망 직전의 환자 18명을 음식으로 살려낸 어느 양심의사의 고백이라는 부재로 쓰여져 있습니다. 저자는 의학박사 콜드웰 에셀스틴입니다.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어 미국 내분비외과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벤자민 스포크 어워드 최초 수상자되었답니다. 의사가 된 후 15년 동안 각종 수술을 시행하며 미국에서 일반외과분야 최고의 수입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의사인 아버지는 42세에, 역시 의사인 장인어른은 52세에 심장마비에 걸리는 것을 목격했답니다. 여러 번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 젊은 나이에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자, 그는 돈 버는 의사를 포기하고 ‘환자를 살리는’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답니다. 약물과 수술로는 병을 고칠 수 없고 병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음식으로만으로 병을 치료하는 양심 의사의 길로 들어섰답니다. 1985년부터 세계 최고의 심장센터인 클리브랜드 클리닉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답니다. 먹는 것을 바꾸는 것이 난치병의 해결책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과감한 실험을 시작했답니다. 전문가들이 손을 놓은 말기 심장혈관병 환자들을 순식물성식품만 가지고, 막힌 심장혈관을 뚫는 도전을 했답니다. 죽음에 임박한 관상동맥질환 말기환자 18명을 설득해서 지방이 없는 채식 프로그램을 12년 동안 진행했고, 끝까지 참여한 환자 모두를 죽음에서 부활시켰답니다. 음식 이외의 아무런 도구도, 약도 쓰지 않았지만 혈관은 말끔히 청소가 되었답니다. 그 이후로도 이들에게 단 한 건의 관상동맥질환도 발생하지 않았답니다. 12년은 이 분야 최장기 실험으로 의학 역사에 기록되었답니다. 12년의 긴 기간에 동료 의사들로부터 많은 비난과 조롱과 무시를 당하면서도 꿋꿋이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에 햄버거 광으로 유명한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설득, 채식을 실시하게 하여 체중 15kg을 감량시켰답니다. 또한 심장에 문제가 생겨 여러 번의 스텐트시술과 바이패스시술을 받은 클린턴을 심장병으로부터 완전히 회복시켜, 뉴욕타임스에 대대적인 기사가 실리면서 전세계인을 놀라게 했답니다. 혈관을 좁아지게 하는 식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물리적으로 혈관을 청소해 놓았다고 해도 다시 좁아진다고 합니다. 고기와 지방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말로는 처참하다고 합니다. 고기와 지방과 채소를 많이 먹고 탄수화물(현미, 감자, 고구마 등)을 제한하는 황제 다이어트를 주장한 사람은 로버트 엣킨스 박사라고 합니다. 그는 <다이어트 혁명>, <새로운 다이어트 혁명> 등의 책을 통해 미국인들은 그의 식사법을 따랐지만, 그는 고혈압을 앓았고,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탄수화물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고 지방을 먹어야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버터, 크림, 계란, 고기, 유제품 등의 식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스티븐 번스 박사도 42살에 갑자기 뇌졸중으로 죽었답니다.〈탄수화물이 당신을 죽인다>라는 책을 썼던 로버트 수 박사도 통풍으로 고통을 당하다 동맥경화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고지방 다이어트의 옹호자였던 세스 로버츠 박사도 매일 66g의 버터를 1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먹기도 했는데 61세로 폐쇄 관상 동맥질환, 심장 비대증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중에 사망한 미군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20대의 젊은이들에게서 동맥이 심하게 막혀있는 동맥경화 증세가 만연해 있음을 발견했답니다. 한국군과 베트남군의 혈관은 상대적으로 매우 깨끗했으며 혈관의 지방침착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원인은 서구식 식습관이라고 합니다. 한국인은 고봉밥에 채소만 먹었는데 심장병분만 아니라 배나온 사람도,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건강식으로 ‘저지방 자연식물식’을 말합니다. 고기, 유제품, 식용류 보다 현미, 채속, 과일 식을 하라고 함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8:1:1(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입에 좋은 음식을 먹다 철이 들어서야 몸에 건강한 음식을 먹는데 하나님은 어릴 때부터 사람이 몸에 건강한 음식을 먹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1:2)”라고 말씀합니다. 건강 염려증에서 벗어나려면 염려가 나쁘다는 것을 생각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생각을 바꾸며 실제 삶에서 염려의 쓰레기를 치워버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국의 W. S. Martin이라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는 중에 사모님이 중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지냈답니다. 늘 성도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설교하고 기도도 했답니다. 어느 주일 저녁에 이웃교회로부터 설교 초청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아파서 누워있는 사모님을 돌봐야 할 것 같아 염려하고 있었답니다. 그때 어린 아들이 뜻밖의 말을 해주었답니다.

'오늘 밤 아빠가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엄마를 지켜주실 거여요.'

그날 마틴 부부는 아들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아, 아버지 목사님은 설교하러 갔고, 엄마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시를 썼답니다. 그 찬송가가 “너 근심 걱정 말아라”라고 합니다.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어려워 낙심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코로나19로 인하여 염려거리는 더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염려를 맡기되 모든 것을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다 맡기시길 바랍니다.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되 하나님이 확실하게 돌보아주실 것을 믿고 맡기시길 바랍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해 주신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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