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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인생으로 살기(2) 하나님께 복을 빌기(민6:22-2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25 추천수:0 220.120.123.244
2021-01-10 14:10:14

존귀한 인생으로 살기(2) 하나님께 복을 빌기

민6:22-27

 

2021년 새해 둘째 주일 예배입니다. 올해 첫 예배 때 “존귀한 자로 살게 하옵소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 올해는 존귀한 자로 살자는 목표를 세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열린교회 성도님들, 갓난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존귀한 자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존귀한 삶의 반대는 비천한 삶입니다. 비천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존귀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사람이면 그 누구 하나 비천하게 인생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존귀한 자로 살 수 있겠습니까?

지난 첫 주에 사무엘상 2장 30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존귀한 자로 살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동성연애도 하고 동성결혼도 하고, 죄를 즐기고 사는 것이 인간답게 존귀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가장 인간이 존귀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말씀의 근거가 무엇이었습니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인생을 살면서 어떤 처지 어떤 환경에 처해도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다니엘이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니까 결국 평생 존귀한 자로 살았습니다. 조국을 멸망시킨 침략자들의 땅에서 살았지만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니까 하나님이 그를 존귀한 자로 살게 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다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에스더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니까 하나님께서 에스더의 삶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했습니까? 지난주 엘리 제사장과 엘리 아들들의 이야기를 통해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둘째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경배)하는 것,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존중하고, 잘못된 예배로 하나님을 우롱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림으로 존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거나 무시함으로 경멸하지 않고 순종함으로 존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존귀한 자로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의 원리도 단순합니다. 대단한 지혜나 지식이 필요한 말씀이 아닙니다. 전혀 학교에 다니지 않는 사람도 알 수 있는 단순한 원리이고 영적 법칙입니다. 제사장의 축복이라고 불리우는 말씀입니다. 축복이라는 말은 "빌 축" 자를 사용하여 "복을 빌다"는 것입니다. 축복이라는 말 자체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복 자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지만 하나님의 뜻을 대리하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복을 빈다고 해서 “제사장의 축복”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오늘날 말하면 목사의 축도와 같은 것입니다.

본문(24-26)은 원문으로 보며 15개 단어가 나오고 세 열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삼위일체를 금방 생각하게 합니다. 15에서 3을 빼면 12인데 열두 지파를 생각하게 합니다. ‘너’라는 말이 세 번 나오는데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복을 받아야 선택받은 공동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이듯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원한다’는 말도 세 번 나옵니다. 모두가 진행 중인 것을 의미하는 미완료로 되어 있습니다. 계속 원한다는 말입니다. ‘여호와’도 세 번 나옵니다. 복의 근원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축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4절은 세 단어, 25절은 다섯 단어, 26절은 일곱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점층법입니다. 삼위 일체 우리 하나님이 축복의 근원이시고 우리는 그 복을 받기 위해 축복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축복을 기복주의라고 배격하거나 비웃지 말고 복을 비는 기도를 해야 존귀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오늘 우리가 읽은 27절 말씀을 다시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7)”

존귀한 자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복을 빌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대면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는 시간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어떻게 생겼느냐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 얼마나 재미있게 하느냐 얼마나 빨리 끝내주냐 등과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무슨 말씀을 내게 해 주시느냐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 내 이름은 바로 그 당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하나님께서 제사장인 아론과 그 아들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후손, 그들이 축복한 사람들에게 복을 주리라 약속하신 것처럼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왕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구한 것을 받게 될 것이고 기쁨이 충만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는 존귀한 자로 살려면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존귀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복도, 육신적인 복도, 정신적인 복도, 경제적인 복도, 관계적인 복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아야 이 땅에서 우리가 존귀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세상적이 복과는 달리 나만 잘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이웃이 잘사는 사회성에 차이가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지면서도 자신만 잘 살면된다는 세상 복과 달리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윤리성에 차이가 있습니다. 불법과 불의를 통해서라도 자신만 존귀하게 살려고 하는 세상 복과는 달리 정당한 방법으로 존귀해지는 과정성의 차이가 있습니다. 풀의 꽃처럼 쉽게 시들어 버리는 세상 복과 달리 천국으로 이어지는 지속성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야 존귀한 인생을 살다 천국에서도 잘했다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누구에게 하나님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라고 명백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축복이란 복을 빈다는 말입니다.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제사장의 축도라고 말합니다. 왕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는 아들 딸에게 하나님께서 복주시길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내”는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그들은” 복받기를 원했던 자손들을 말합니다. 그 자손은 우리 성도님의 아들 딸 손자 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식들이 존귀한 자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손자들이 존귀한 자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부모가, 일가친척이, 친구들이, 이 민족이, 열방이 존귀한 자로 살기를 원하십시까? 촉복 기도를 하십시오. 어떤 환경에서도 저주를 퍼붓지 말고 축복기도를 하십시오. 계속 축복기도를 하십시오. 닥치고 무조건 축복기도를 하십시오.

사람은 의식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으면 축복보다 저주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16세까지 자신에 관해 17만 3천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메시지는 1만 6천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29.6개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겨우 2.7개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는 셈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대로 방치해 두면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말을 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의 통로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다.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를 쓴 롤프 가복은 "자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의 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축복은 깨어진 관계를 치유하고 그 속에서 전인성을 회복시키는 장(場)이 될 뿐만 아니라 이 땅에 행복을 창조하는 고귀한 사역이다. 하나님은 그 축복권을 부모에게 허락하셨다. 축복은 실로 부모의 특권이요, 거룩한 임무다."라고 말합니다. 축복받는 자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자기 스스로 복을 받으며 존귀한 삶,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존귀한 삶을 사는데 오히려 방해된다고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어릴 때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도 조금 배우면 교만해져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하고 인생을 고상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짐승에게서 진화되었다고 믿으며 존귀한 삶이 아니라 짐승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이 주어진데는 원인이 있습니다.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원인을 계속 추적하여 올라가면 마지막 근원적 원인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세상에 무언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최고의 설명은 하나님이십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과학적입니까? 오히려 비과학적입니다. 우주의 시작에 대한 최고의 설명은 하나님입니다. 과학자들도 우주의 시작에 대하여 빅뱅설을 주장합니다. 우주가 스스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시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시작하게 한 것입니다. 지적인 생명체를 위해 미세하게 조정된 우주에 대한 최고의 설명은 하나님입니다. 우주가 스스로 진화하면서 이런 오묘한 법칙으로 존재하게 하고 신비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지구와 태양이 1억 5천만 km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던지 더 가까이 있으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상수가 너무커도 너무 작아도 인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위치, 크기, 구성, 구조, 대기, 온도, 내부역학, 그리고 생명에 필수적인 많은 복잡한 순환들(탄소 순환, 산소 순환, 질소 순환, 인 순환, 황 순환, 칼슘 순환, 나트륨 순환등)은 지구가 얼마나 절묘하고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객관적 도덕 가치와 의무에 대한 최고의 설명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적 가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역사속에 실제 살아계셨고 십자가를 지셨으면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예수님의 말씀을 거짓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 복을 구했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복을 받고 한평생 존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존귀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축복기도를 하라고 하나님을 말씀합니까?

 

1. 보호의 복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4)"입니다.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의 '지키다'의 히브리어 '솨마르'는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라는 뜻입니다. 즉 세심하고도 철저하게, 주의 깊게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고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세력으로부터의 보호뿐 아니라 가난과 재앙과 각종 질병 및 전쟁으로부터의 보호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영적 육적 보호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들은 광야 길을 가야하고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외부적인 세력과 내부적 기근과 질병과 싸워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낮에는 타는 듯 한 사막의 열기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밤에는 심한 일교차로 추위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들은 모든 악한 세력으로 부터의 보호(시37:8) 받아야 합니다. 가난과 재앙과 각종 질병과 바이러스, 위험과 전쟁으로부터 보호(시33:19; 76:3)받아야 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보호해 주시겠습니까?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지켜달라는 축복기도를 계속 드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광야같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갖가지 좋은 것으로 달콤한 것으로 광명의 천사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전세계가 백신과 치료약에 목메달고 있습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는데 무능력한 분이라고 추방하지 말고 하나님께 지켜달라고 기도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백신도 죽음에서 완전히 해방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백신과 치료제도 결국 잠깐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죽습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시키는 백신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음의 공포, 죄의 늪에서 해방시켜 진정 존귀한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믿고 코로나19로 어려운 때일수록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3-14)” 히스기야 왕은 왕으로 존귀한 삶을 살지 못하고 질병으로 비천한 인생으로 추락하였습니다. 그 때 기도하여 존귀한 인생으로 회복됩니다. 그러나 아사왕은 심한 중병 가운데 있는데도 하나님께 기도하지는 않고 의사들의 도움만 구하다 결국 하나님의 지켜주시는 복을 누리지 못하고 존귀한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백신도 중요하고 치료약도 중요합니다. 과학도 의학도 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만 절대시하며 주신 축복으로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하나님을 배격한다면 인간은 결국 존귀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이런 때 전염병으로 비천한 삶에서 벗어나 존귀한 삶을 살려면 지켜 주시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때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보호해 주셔야 하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우리 자녀를 보호해 주셔야 합니다. 핵으로부터, 환경 재앙으로부터, 바이러스로부터, 사고와 환란으로부터 하나님이 보호애 주셔야 합니다. 지구상에는 이미 3만 7천 여기의 핵탄두가 있고 만약 핵전쟁이 일어나면 미국과 소련이 가진 핵탄두만으로도 지구를 41회나 파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의 원자 폭탄으로 서울의 모든 80~90%의 건물이 파괴되고 서울인구 천만명중 약 200만 명은 즉사, 약 2백만 명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사망하고, 약 300만 명은 2주내지 6개월 안에 사망하게 되며 결국 우리나라 인구 중 천만에서 천 이백만명 정도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순식간에 비천한 자가 되어 버립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저커버그가 2013년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일절 받지 않고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약 660억달러 규모의 페이스북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그의 경호비용으로 1년 경호비용은 284억원을 지출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광야같이 험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존귀한 자로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니까 다니엘이 사자굴에서도 살아나 존귀한 총리로써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였습니다(단6:16-23). 하나님이 보호하니까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지만 풀려나 복음을 전하며 존귀한 자로 살았습니다(행12:7). 하나님이 지켜 주시니까 애굽 백성들의 장자가 죽임을 당할 때 문설주와 문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사람의 집 아이들은 보호가 됩니다. 노아의 홍수 때 역청을 바른 방주에 들어가니까 홍수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어린양의 피나 역청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설 때 예수님의 보혈 때문에 우리가 심판으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121:4-8)" 이 복이 우리에게 임하여야 합니다. 존귀한 자로 살기 위해 하나님의 보호의 복을 구하여야 합니다.

 

2. 은혜의 복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5)” 은혜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호의입니다. 우리의 공로나 노력 대가 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어떻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입니다. 네는 우리의 아들 딸, 손자 손녀, 우리의 일가 친척, 우리 민족 열방 우리의 기도 대상자들입니다. 복받고 존귀하게 살기를 원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것은 인간 편에서는 절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욥13:24).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의지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얼굴 방향은 인간 생존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이 외면하면 인간은 끝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개인이나 단체를 향할 때에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과 기쁨을 충만히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죽은 영혼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반석에서 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쓴물이 단물로 변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요단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고 지옥갈 인생입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존귀한 자가 되고 존귀한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가정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 가문이 존귀한 가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교회도 국가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존귀한 교회가 되고 존귀한 국가가 됩니다.

 

<카르마 경영>이라는 책을 쓴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27세에 3,000만 원으로 교세라를 창업하여 세계 100대 기업으로 일궈낸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도덕 경영, 정도경영의 원조로 가장 존경받은 경영자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소원성취의 공식, 즉 성공의 공식을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일)의 결과 = 사고방식 × 열의 ×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이나 일의 결과가 이 세 가지 요소를 곱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공식이 삶의 현장에서 꼭 통합니까?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는 "비전 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이룩한 최고의 업적들이 상세한 전략적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이것저것 하던 중에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기업 전략은 '기회주의적인 실험'과 '우연한 발견'의 산물이었다고 합니다. 존슨&존슨에서 회사 전체 매출액의 44%를 차지하게 된 베이비 파우더 사업은 계획에 의해 된 것이 아니고 의약용 석고를 팔았는데 한 내과 의사의 의약용 석고가 일으키는 피부 질환에 대한 항의를 받고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끼워주는데서 출발했답니다. 학자들은 “세렌디피티(우연히 발견한 앵운)”란 말을 사용합니다. '우연히 운 좋게 예상 밖의 발견을 하는 재능' 이라는 말입니다. 백신을 이용한 예방 주사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히 발견된 것입니다. 매직테이프, 페니실링, X선, 테플론, 다이나마이트, 사해문서 등도 우연한 발견이었습니다. 천연두에서 인류를 해방시킨 왁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의 아들인 젠너는 "우유를 짜던 여인에게서 자신은 우두에 걸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결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견하였습니다. 옥외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도 우리는 우연이나 세렌디피티라는 말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포함시킵니다. 룻이라는 여인이 보아스를 만나 존귀하게 산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상 장사 아들인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존귀히 산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고, 살인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로 존귀히 산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다윗이 성군으로 존귀한 삶을 산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태양이 위치를 바꾸면 음지도 양지가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불치의 병에서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개같은 성격도 천사처럼 변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지긋지긋한 중독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지옥같는 가정이 천국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존귀한 자로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비천한 삶이 존귀한 삶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구원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건강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우리의 직장도, 우리의 가족도, 우리의 교회도, 우리의 나라도 번영과 안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존귀한 자로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구하여야 합니다.

 

3. 평강의 복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6)" 평강의 복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평강의 복을 받습니까?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점령이라는 전쟁을 앞둔 상황입니다. 거친 광야 길을 걸어야 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광야길입니다. 여기에서 평강을 갖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든지 평강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리프맨의 소설, <마음의 평안>에서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젊은 청년이 어느 노인을 찾아가 자기 소원을 부탁하였답니다. 노인은 무엇을 갖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답니다. 청년은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재물이며, 셋째는 미모이고, 넷째는 재능이며, 다섯째는 권력이고, 여섯째는 명예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은 말했답니다. "여보게 젊은이, 그러나 평안이 없이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네." 이 모든 것이 있다하여도 평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도 평안이 있을 때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평안이 없으면 쌓여진 명예도, 재물도, 건강도, 권력도, 성공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평안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조건적 평안이 아닙니다. 조건적 평안은 그 조건 사라지면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워서 이루어지는 평안이 아닙니다. 이 평안도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면 없어지는 평안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평안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우리에게 향함으로 오는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위로의 비소로 늘 다가오심으로 누리는 평안입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바울과 실라는 이 평안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죄사함 가운데 주시는 구원의 평안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미래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하여도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감정의 문제로부터 오는 불안을 성령 충만으로 누리게 만듭니다. 마음의 평안이란 단순이 감정 조절이나 적극적인 사고 훈련이나 명상, 마인드 컨트롤, 요가, 최면요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은 육체의 문제나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령의 문제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속에 있는 불안과 공포를 쫓아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바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요한복음 20:22). 우리의 내면세계의 평정은 성령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기 전에는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지 감옥에서도 평안하게 단잠을 잘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님이 함께 하신 것을 체험하기 때문에 참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두운 밤에 아버지와만 함께 걸으면 두렵지 않듯이 하나님과 함께하면 평안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이런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존귀한 자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의 복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존귀하게 살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호의 축복(샤마르) 은혜의 축복(하난), 평강의 축복(솰롬)을 위해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존귀한 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올 한 해 이런 축복기도 매일 매일 하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존귀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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