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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도 감사하시는 그리스도(눅22:17-2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65 추천수:0 220.120.123.244
2020-11-08 13:38:04

어떤 경우도 감사하시는 그리스도

눅22:17-20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트럼프가 집권을 못 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미국은 건국 이래 230년간 미국 대통령 44명 중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10명뿐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것이 성경에 손을 올리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패자의 승복 연설입니다. 이 전통은 6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북전쟁 이후 이어져 온 전통이라고 합니다.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의 대결에서 닉슨 측근들은 상대 부정선거 의혹에 재검표를 요구했으나 닉슨은 “불복은 헌법적 위기와 국가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며 깨끗하게 승복 선언을 했습니다. 2000년 부시와 고어의 대결에서도 고어는 전국 득표에 54만 표나 앞섰지만 플로리다서 537표로 져 패배했습니다. 불복하고 이의를 제기할 만했는데 고어는 “국민의 단합과 민주주의를 위해 승복하겠다”고 깨끗하게 승복 선언을 했습니다.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와 경쟁에서도 힐러리가 전국 득표율서 앞섰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하고 힐러리는 “우리 민주주의는 평화로운 정권 교체에 달려 있다”며 승복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우편투표는 신뢰성이 없는 부정투표라며 불복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현장투표에서는 승리했는데 우편투표로 결과가 바뀌었으니 연방대법원에까지 가서 옳고 그름을 판단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트럼프는 대선 관련 소송에 나설 변호인단 1천명을 꾸미는데 약 340억 원을 지출했다고 합니다. 트럼프의 무차별 소송전으로 신문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악몽이 시작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신문을 보니까 “트럼프는 왜 퇴임을 두려워하나”라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내용을 읽어 보니 트럼프 재단의 불법 회계 혐의와 트럼프의 성범죄 등 청구된 영장만 30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현직 대통령’이란 방어막 때문에 그 수사들이 멈춰 섰을 뿐인데 대통령에 지면 거액의 빚을 지고 백악관에서 나오는 순간 감옥 가거나 빈털터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권력욕이 강한 사람들은 좀 더 높은 수준의 지배력과 지위를 얻는 데 필요하다면 도덕이나 윤리, 예의, 상식마저 무시한 채 물불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하려고 합니다. 책임을 다른 이에게 뒤집어씌울 방도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고 자신이 불이익을 받으면 맹목적이고 사나우며 포악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대상은 누구든 무엇이든 무자비하게 제거해버리기도 합니다.

로버트슨은 그의 저서 <승자의 뇌>에서는 권력을 잡으면 사람이 변한다고 말합니다. 승자의 뇌 속에는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되어 장기적으로 뇌의 구조를 바꿔놓는다는 것입니다. 목표 달성이나 자기만족에 집중하면서, 공감 능력은 허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중독성이 있어 독재자는 계속해서 자기가 권력을 잡아야 하고, 자기만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약물은 시야가 좁은 뇌를 만들고, 항상 자신감을 보이며, 주변의 경고를 무시하게 하고 오만에 빠져 실패를 걱정하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지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 지배욕, 권력에 대한 의지, 우월감에 대한 열망은 인간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런데 지배욕에 중독되면 대표적인 인간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감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조건이, 주어지든 무엇을 하든 감사하지 않습니다. 4년을 통치하든 8년을 통치하던, 종신토록 통치하든 감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뜻 이루어지면 감사하고 자기 뜻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항상 감사하며 사셨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죄를 용서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사시는 동안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 감사하였습니까?

 

1. 내 뜻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오늘 17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잔을 받으시고 무엇을 했습니까?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이 잔은 무엇이겠습니까? 2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잔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니라”예수님께서 인류의 죽음과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면서 물과 피를 다 쏟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 피를 상징하여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릴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유월절 만찬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잔을 그들에게 주시면서 그 잔이 너희를 위한 내 피라고 말씀하시면서 감사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떡을 가져 감사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 떡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와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고문을 당하고 창을 맞고 가시 면류관을 쓰실 몸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십자가입니다. 고통의 십자가입니다. 모멸의 십자가입니다. 수치의 십자가입니다. 조롱의 십자가입니다. 배신당하는 십자가입니다. 불이익의 십자가입니다. 자존심을 다 내려놓는 십자가입니다. 불편의 십자가, 불쾌의 십자가입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고통 앞에서, 모멸 앞에서, 수치 앞에서, 조롱 앞에서, 배신 앞에서, 불이익 앞에서, 자존심 앞에서, 불편과 불쾌 앞에서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하면서 감사합니다. 유다의 배신을 다 알고 계시면서, 베드로가 배신할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오늘 본문 42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도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면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의 고통을 통해, 모멸을 통해, 수치를 통해, 조롱을 통해, 배신 당하는 것을 통해, 불이익을 통해, 자존심 상함을 통해, 불편과 불쾌를 통해,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질병에 걸려 기도하여 치유되어도 감사하지만 치유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고통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체험받을 수 있어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한다하여도 그 실패를 통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고 이해할 수 있어 감사하는 것입니다.

 

2. 내 뜻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여 3년 동안 훈련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떻 상태가 되었습니까? 유다는 예수님을 인신매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수제자로 불린 베드로는 배반합니다. 다른 제자들도 다 배신합니다.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3년 훈련한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책망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지막 만찬을 하며 감사합니다. 내 뜻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유다만 제외하고 제자들 모두 실패를 통해 나중에 변화되어 주님의 복을 전하다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감사하는 내용이 복음서에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어떤 경우에도 감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감사에 대하여 4번 기록이 되어 있는데 예수님이 어떤 경우에 감사했는가 마태복음 11장 26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어떤 경우입니까? 실패했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면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마을이 있었습니다(20). 고라신과 벳세다(21), 가버나움(23)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애를 쓰시면서 이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였습니다. 전도 여행에서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초라함만 남았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수모와 멸시뿐이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세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 11:21)” 예수님이 탄식하였습니다. 실패의 쓴 맛을 본 것입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수모와 멸시, 실패의 쓴 잔이었습니다. 수고에 비해 열매가 너무 초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감사합니다. 무엇을 감사합니까?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하는 자들은 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했지만 순순한 어린아이들을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은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많이 배운 자들입니다. 많이 가진 자들입니다. 여론 주도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을 옳다고 하고 자신들의 견해로 예수님을 판단하며 믿지 않는 것입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어린아이들을 믿는데 기대했던 여론 지도층들은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그런 결과를 보며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감사한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서 이해가 되지 않아도, 실패했어도, 만족스럽지 못해도, 내 뜻이 관철되지 않았어도, 손해 보았어도, 억울해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26절을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모든 결과에 대하여는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살이 지나온 내 인생의 발자취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도 귀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열린교회를 개척하여 세우면서 1만 명의 아이들, 이 땅에 3개의 교회, 해외에 100개의 교회가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열린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보며 감사합니다. 이 교회에서 잘 쓰임받기를 원했던 장로님이, 권사님, 안수집사님이, 집사님이 떠난 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결과가 실패일지라도, 인정받는 일이 아닐지라도, 볼품없고 초라한 성적일지라도, 질병일지라도, 죄악과 수치일지라도, 우울함과 두려움일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되어진 일, 지나온 과거 내가 원한다고 된 것도 아니고 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도 아닙니다. 어떤 결과가 이루어졌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의 결과를 보고 자꾸 불평하고 원망하며 좌절하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일어난 결과는 감사 거리를 찾아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결과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과거를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가정법 감사입니다. “만일 ~하다면 ~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되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 미래적이고 조건적입니다.

“내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하는 장사가 잘되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조건적 감사입니다. ‘무엇 때문에 감사하다’, 과거적입니다. <이러하니 감사하고, 저러하니 감사합니다> 상대적입니다. 이런 감사는 건강하니 감사했다가 병들면, 성공하니 감사했다 실패하면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절대적 감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감사 체질이 된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는 말씀이 체질화된 감사입니다. 환경변화와 관계없습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감사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절대적인 감사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이지선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술에 취한 운전자가 이지선 자매가 타고 있는 차를 박았았습니다. 차는 곧 커다란 불길에 휩싸이고 차에 타고 있던 이지선 자매는 정신을 잃고 온 몸에 화상을 입었답니다. 7개월 동안 12번의 수술을 하고 생명은 건졌지만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흉측했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괴물같아 사람처럼 보이게 해 달라고 울며 기도했답니다. 그 때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세상 가운데 빛으로 세우리라 아프고 병든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리라”라는 감동을 주었답니다. 그때부터 모든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답니다. 점점 몸의 상태가 안 좋아져서 손가락 8개를 절단해야 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눈물을 흘리는 엄마에게 이지선 자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두 개의 손가락이나 남겨주셨잖아요!”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 “고난은 축복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하며 감사며 유학가서 공부하고 한동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과거를 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불평과 원망을 하지 말고 남아 있는 것을 보며, 주님 주신 은혜를 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3. 내 뜻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제자들의 행위를 통해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감사하며 성찬식을 하는데 유다가 예수님을 인신매매하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원망하거나 책망하거나 제외시키지 않고 감사하며 떡과 잔을 주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유다가 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신 것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왜 감사합니까?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그 불의한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배신이 감사하지 못할 행동이지만 그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성취될 것을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는 제자의 배신과 십자가의 수치를 통과해야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예수님이 감사했는지 성경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1절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예수님께 그 사실을 마리아가 알렸습니다. 예수님을 마리아 집에 갔지만 이미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끝이 났다고 했습니다.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미래는 절망적이었습니다. 육신의 병의 결과인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 상태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돌문을 옮겨 놓게 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환경이나, 땅이나, 무덤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초상집에서 금기되는 언어인 감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100살 먹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상식과는 맞지 않는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슬픔의 자리, 절망의 자리, 비극의 자리에서 감사한 것입니다. 위협을 느끼고, 사업이 다 망쳤는데, 일자리가 없는데, 자금줄이 바닥이 났는데도, 의사가 사형 선고를 내렸는데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감사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묶인 나사로의 수족이 풀리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사슬과 족쇄가 풀리는 것입니다. 스스로 풀지 못한 인생의 사슬이 풀리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살아납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무덤 앞에서 감사했습니까? 4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믿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4절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미래를 보면서 미리 예측하고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감사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 명을 먹이신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굶주린 백성들은 많고 먹을 음식은 어린아이의 도시락 5병 2어 밖에 없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 요한복음 6장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 어린아이 도시락을 가지고 축사하십니다. 축사했다는 내용은 감사기도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난처한 상황입니다. 먹을 사람은 많고 먹을 것은 적은 상태입니다. 어린아이 도시락 1인분으로 장정 5천 명이 먹는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감사기도를 하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라고 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12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있는 것으로 감사하면 미래는 감사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게 됩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캘커타에 대규모 고아원을 건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답니다. 그러자 어떤 기자가 물었답니다. “수녀님, 준비된 건축 자금이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자기 주머니에서 동전 세 닢, 3실링(20센트/300원)을 꺼내 보이면서 “가진 돈은 이것이 전부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모였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답니다. 그러자 데레사 수녀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답니다. “이 3실링과 내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 3실링이 합해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믿고 감사하는 자녀를 하늘 아버지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3실링과 하나님의 도움으로 세운 이 고아원은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후원하고 방문하는 아름다운 고아원이 되었고, 이곳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는 지금도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미래의 세계는 우리 마음대로 되어지는 세계가 아닙니다. 작은 것으로 감사할 때 미래는 넘치는 감사로 채워졌습니다. 지금 있는 조건, 지금 벌어진 상황으로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로서 삶의 표준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성찬 예식을 가리켜서 ‘유카리스트’라고 부릅니다. ‘감사드린다’라는 뜻입니다. 은혜와 감사는 어원이 같습니다. 최후의 만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감사’였기 때문에, 이렇게 성찬 예식을 ‘감사드림’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 것을 보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신앙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복음적 가치를 실현한다고 미국 기독교인 70% 이상이 그를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대통령 재선에 실패했다 해도 언론 앞에서 전 세계를 향해, 지금까지 지내 온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일이라 감사하고, 지금 되어지고 있는 일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감사하고 앞으로 되어질 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일이라 감사하다고 앞으로 미국과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워지기를 원한다고 승복 선언을 하면 얼마나 멋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마지막 밤 만찬이 감사의 만찬으로 끝이 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마지막 만찬, 마지막 매듭이 감사로 끝이 나면 얼마나 멋진 인생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지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감사했고, 지금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감사했고,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질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사는 신앙인입니다. 우리도 어떤 경우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보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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