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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지키는 감사절(신명기16:9-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72 추천수:0 220.120.123.244
2020-07-05 16:45:33

감사로 지키는 감사절

신명기16:9-12

 

오늘이 한국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지키는 맥추감사주일인데 어제 맥추 감사 헌금을 준비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깜박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헌금을 하고 봉투에 써써 내려고 오늘 아침 일찍 헌금봉투를 가지러 본당에 올라갔습니다. 날씨가 더워 공기 순환을 위해 본당 문을 열어 놓아야 하겠다고 문을 열어 놓고 봉투 가지러 간 것은 잊어 버리고 그냥 제 방으로 내려왔습니다. 한 참 있다 보니 헌금 봉투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봉투를 가지러 본당으로 올라가 가져왔습니다. 사람은 잘 잊어 버립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남편의 글을 보았습니다. 기억력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혼기념일을 잊었답니다. 점심에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데 아내에게서 오늘 저녁 뭐 먹을꺼냐고 카톡이 왔답니다. 무심코 ‘뭔 갑자기 저녁반찬 타령이지’라고 생각하고 평소 좋아하는 참치캔이라고 답장을 보냈답니다. 아내가 물음표만 두 번 보냈답니다. 그래서 참치 있자나라고 보내니까 “오늘 무슨 날인지 모름?”이라고 카톡이 왔답니다. “알지”라고 말하자 “까먹었지?”라고 카톡이 왔답니다. “아냐 참치회 말한 건데” 하자 아내가 “꺼져라”라고 카톡이 왔답니다. 그래서 남편이 깨닫고 “참치회 예약할라고 했는데 뭔가 오해함”라고 카톡을 보내자 “나 침치회 안좋아하는데?”라고 카톡이 왔답니다. 그러고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마, 참치캔 문앞에 내놓을게”라고 카톡이 왔답니다. 수습을 하기 위해 “참치회집에 연어도 있는데”라고 말하자 아내가 “그거 가지고 나가”라고 카톡이 왔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기념해야 할 날 잊지 말야 할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회사에서 가정에서 “꺼져라” “그것 가지고 나가”라는 말을 듣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반년이 끝나고 반년이 시작되는 7월 첫 주일을 맥추 감사주일로 정해 놓고 지키고 있습니다. 한자어로 맥은 ‘보리 맥(麥)’자이고 추는 ‘가을, 결실 추(추)’자입니다. "보릿가을, 보리가 익는 시절"을 의미합니다. 보리를 거두고 하나님께 감사주일로 지키는 절기입니다.

 

1. 하나님은 왜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까?

1)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보리도 밀도 수확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맥추감사주일을 지켜야 합니까?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신명기 16장에는 유대인의 3대 절기가 나옵니다. 유월절(1-8), 칠칠절(9-12), 초막절(13-17)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 절기를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16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도 없이 광야에서 텐트를 치고 자던 때들 기억하고 그것을 기념하여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라고 말씀합니다. 칠칠절은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이라고 말씀합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보리와 밀을 다 거두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라 맥추절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칠칠절이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이유는 유월절이 끝난 후 7주가 끝난 다음날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칠칠절(七七)은 이때가 보리 수확의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 초실절(初)로부터 시작하여 7주간의 곡물 추수기가 끝난 뒤의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오순절(五旬) 또한 추수기와 관계된 말로, 이 날이 초실절 다음날로부터 계산하여 제 50일째 되는 날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이 맥추절은 한 해의 수확을 끝낸 기쁨 속에서 그 수확을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께 기뻐하며 감사를 드린 축제였습니다. 동시에 인생의 모든 것은 오직 여호와께로만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고백하는 심정으로 일상의 모든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재무장하는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절기는 모세가 율법을 받은 날(제헌절)을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여서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교회의 생일날인 오순절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강림 하셔서 교회가 큰 권능받고 그리스도께서 씨를 뿌려 놓으신 교회의 첫 열매를 거두신 날입니다. 3000명이라는 영적 큰 수확을 거두웠습니다.

 

오늘 말씀의 원리에 근거하여 한국 교회는 보리, 밀 등을 수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 맥추 감사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절기를 출애굽기 23장 18절을 보면 너희의 절기가 아니라 내 절기라고 말씀하는 것을 봅니다. “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내 절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하나님의 절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하신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도 아니고 그것은 구약의 의식법인데 왜 지키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7대 절기를 안지키면서 유독 왜 맥추절만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지금 한국교회에서 지키는 맥추감사절이 구약의 맥추 감사절과 같으냐고 맥추감사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맥추절로 번역된 원문은 "하그 하카치르"라는 말인데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수확의 절기", "수확절"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4장 22절의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라는 말은 맥추가 아니라 밀의 초실절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말하며 한국의 맥추감사절을 구약의 맥추절의 맥추절에 근거하여 지키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폐지한 의식법을 왜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월절도 지키고 초막절도 지켜야지 왜 맥추절만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한국교회는 오순절과 칠칠절, 맥추절이 같은 절기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성령강림절과 맥추절을 한 한 달 차이가 나게 다른 날로 지키고 있고, 맥추감사절은 7월 첫주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적으로 유대인들처럼 실제적으로 성경에 나온 날을 그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 부활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날짜를 정확히 알고 그날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날짜를 정확히 모르지만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기억하고 기념하며 함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의 절기를 율법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절기 헌금을 바치게 만들기 위해 지키는 절기도 아닙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대속, 무교절은 예수님의 무덤 사건,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 칠칠절은 성령 강림 등 구약의 절기는 예수님의 대속적 은혜를 모형으로 보여주고 신약에 실체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해 율법적으로는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미적으로 한국 교회는 7월 첫주를 맥추 감사주일로 정하고 맥추 감사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고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다는 여호와 제일주의 신앙으로 새로이 감사로 다짐하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처럼 율법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감사함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맥추절은 밀 농사를 잘하여 추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라면 신약시대의 맥추절은 오순절날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하고 성도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짐에 대한 감사이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매년 살면서 하나님께서 배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이나 보모님 돌아가신 날과 같이 특별히 기념할 날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가정적으로 지킵니다. 나라도 해방된 날이나 독립운동을 일으킨 날이나 헌법을 제정한 날 등 특별히 잊지 말고 기념하는 날을 매년 민족적으로 지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기 위해 감사절을 만들어 놓고 지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맥추감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난 반년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반년 동안도 잘 지켜주시기를 믿고 감사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칠칠절(맥추절)의 원리를 받아들여 반년을 보내고 반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사로 시작하는 맥추감사절은 우리가 지켜야 할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2) 우리를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십니까?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애굽의 종살이 했던 과거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은 자신의 집도, 법적권리도, 자유도, 땅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돼지우리의 돼지처럼, 밭의 소처럼 산 시절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마음대로 말을 못하고 자신의 의지를 자신의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짐승처럼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도, 원하는 곳으로 이사할 자유도 없었습니다. 자녀를 마음대로 교육시킬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주어 농사짓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에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너를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9절에 “셀지니”라는 말은 “티쓰파르 라크”라는 말을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역성경에서는 ‘라크’라는 말을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라크’라는 말은 ‘-을 위하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날을 기억하고 날짜를 계수하여 지키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지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절기가 언제인지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고 때를 따라 내리시는 축복의 의미를 기억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절기를 지키는 것은 우리를 위한 절기입니다. 작년에 우리가 “감사존”행사를 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매일 문자를 보내기 운동을 해 제주도 여행권을 주었는데 성경에 “감사존”하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성경의 원리에 따라 감사생활을 해 보니까 어떻습니까? 관계가 좋아집니다. 가정이 좋아집니다. 행복해 집니다. 건강해 집니다. 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편 49편 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도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한다고하였습니다(시69:30,31). 감사하면 하나님을 기쁘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면 더 풍요와 행복, 건강을 누리게 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는 길은 열립니다. 감사하면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태도는 정신건강에 직결된다고 합니다. 보노 박사가 학생들을 통해 실험해 본 결과 감사하면 "음주나 약물 사용, 시험 부정행위, 결석, 징계 등의 사례가 더 적었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면 우리 심장이나 몸 그리고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혈압이 떨어지고, 소화 작용을 촉진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스트레스가 감소되며, 면역계의 활동도 증가된다고 합니다. 감사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사회적인 성공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감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하고 변화나 위기에 대한 대처할 능력을 높여줍니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며,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향상시켜 줍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소시켜 주고, 직업 환경을 향상시켜줍니다. 행복은 감사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존 자웨트 박사는 감사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3가지 장수 물질이 나와 건강해 진다고 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면 감사한 만큼 더 인생은 행복해 지고, 감사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합니다. 우리가 감사절을 정해 놓고 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성경은 감사 못하는 생활을 죄라고 하였습니다(롬1:21).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했습니다. 감사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입니다. 감사 불감증이 걸린 세대이지만 우리 신앙인은 모든 생활에 감사가 넘치는 풍성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이 절기를 어떻게 지키라고 말씀합니까?

1)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감사로 지켜야 합니다.

12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맥추절 때 애굽의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기념하여 민족적인 감사 의식의 행하라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감사절을 지킵니다. 기념이라는 말은 뜻깊은 일을 잊지 않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던 과거를 기억하고 그 날을 기념하여 지키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여 지키라는 것이고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도 없이 광야에서 텐트를 치고 자던 때들 기억하고 그것을 기념하여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맥추감사절은 애굽에서 종되었던 때를 기억하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종으로 살 때 어떻했습니까?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는 소유가 없었습니다. 생명도, 시간도, 재능도, 가족도 다 주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와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복지의 기름진 땅을 지파별로 공짜로 거져 주셨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 거둔 곡식을 전부 그들의 소유가 되게 하였습니다. 과거 종 되었던 가난한 때를 기억하므로 오늘날 부유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하기 위한 절기 입니다. 그때 종 되었던 우리를 지금은 계속 자유를 누리게 하신 것을 기억하고 계속하여 감사 생활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원리로 말하면 지나온 시절을 뒤돌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며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망각하고 살면 안 됩니다. 자전거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좋은 자가용 타지 못한다고, 월세로 전전했는데 아파트에 살면서 화장실 하나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직장일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이력서 들고 이회사 저 회사 찾아다녔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불평과 원망하지 말고 애절하게 사랑을 구했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코로나 19로 예배드리는 것 원망하지 말고 죄의 종으로 멸망 길을 걸어갔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지금의 상태를 감사로 해석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지금의 상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과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어떤 상태에 있던지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과 죄로부터 해방된 우리는 감사로 해석하며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준점을 어디에 놓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과거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과 원망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절대 감사로 해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과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불확실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은혜로 해석하는 감사입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로 베이스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법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감옥에 가도 병이 들어도 매를 맞아도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미래가 불확실 합니다. 기도하면 죽인다고 합니다. 그런대도 감사합니다. 하박국의 감사가 바로 그런 감사인 것입니다. 앞으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불의가 판을 칩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감사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끝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것입니다. 천국을 보는 것입니다. 고통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시는 것입니다.

감사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감사생활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6장 11절 이하를 보면 사람들이 장정만 5천명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여자까지 합하면 적어도 2만 명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겨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입니다. 그런데 없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 없는 것 보면서 불가능하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큰 것과 비교하여 불평하지 않습니다. 주신 작을 것으로 감사합니다. 현재의 조건에 근거해 미래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 현재의 것으로 헌신함으로 감사합니다. 축사합니다.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서도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감사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도 감사합니다(마 11:20-26). 고라신과 벳세다야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믿지 않았을 때 절망하고 좌절하며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삶의 모습니다. 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볼 때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 주신 직분, 성가대, 교사, 사업, 자녀 그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죄용서 받은 것 감사하고 천국 가게 된 것 감사하고, 은혜 주어서 이렇게 하나님 아들 딸 되어 신앙 생활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먹을 수 있는 입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별로 실력은 좋지 않을 지라도 자식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고, 넉넉히 효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낳아 주신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고, 대형 교회는 아니지만 이렇게 화단에 과일 나무가 있고 자유롭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자유스럽게 모여 예배드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고,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살 수 있는 재물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고 분단된 국가가 늘 긴장이 있지만 그래도 아름다움 강산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목회자, 성도 만난 것 감사한 일입니다. 아내, 남편, 부모, 자식, 옆에 있는 성도님 만난 것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습니까? 옆에 있는 분을 보고 한 번 인사해 보십시오. "성도님을 만나 참으로 감사합니다." 매일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 보십시오. "나는 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한단다" 감사는 인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때 인생은 행복해 지고 삶은 풍요로워 질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인생 메마른 인생입니다. 파리한 인생입니다. 마치 노예 생활처럼 활기가 없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과거 예수 믿지 않고 지옥갈 인생을 살았을 때를 기억하며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신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 하신 것 감사 해처럼 베푸신 은혜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한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

 

2) 우리는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예물로 감사하며 지켜야 합니다.

10절을 같이 읽어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출 23:19절에 보면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첫 것을 드리는 행위는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와 더불어서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라는 신앙 고백의 표현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과 하나님 우선주의 신앙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되 어떻게 지키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께 감사 예물을 드리는 감사 절기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드림의 세 가지 원리를 말씀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네게 복을 주신대로”입니다. 개별성의 문제입니다. 각자 받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해 주신 방법으로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받은 복을 헤아려 감사하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 감사와 불평은 어떻게 생각하는에 따라 달라집니다. 생각하나 차이입니다.

둘째, 네 힘을 헤아려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충분하게, 여유있는, 가득한 분량으로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억지가 아니라 진정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자발성의 문제입니다. 강제 사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발로 감사를 한 것입니다. 입술로 찬양한 것입니다. 손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왜 첫 열매를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중심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1)" 첫 열매는 으뜸도 되지만 수확하는 모든 소산물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하나님 앞에 바침은 곧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모든 수확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신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감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교회 다니다 시험에 들어 교회 옮기더지 다니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은 헌금 때문에 그만 둔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신학교를 졸업하고 막 목사 안수를 받은 한 젊은 목사님께서 개척을 하기 전에 사회경험을 쌓을 생각으로 방범대원으로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관이 응급상황에서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알기 위해 목사님께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당신 혼자 순찰을 돌다가 깡패들이 떼거리로 몰려온다면 어떻게 해산시키겠소." 그러자 목사님이 자신 만만하게 "네, 간단합니다. 헌금바구니를 돌리면 다 도망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금 드릴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헌금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는 표현입니다. 강제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복주신 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 힘을 헤아려서 하는 드리는 것입니다. 신약은 우리 주님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은혜에 감격하여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맥추감사절 헌금을 합니다. 이 헌금을 하여 국교가 회교권인 나라에서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우는 중고등학교 건축 완공을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이일에 동참한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똑같은 건물일지라도 쓰이는 용도에 따라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 건물이 있지만 죽이는 건물과 살리는 건물이 있습니다. 살리는 건물이 가치있는 건물입니다. 살리는 건물 중 중요한 셋가지는 병원과 학교, 교회입니다. 병원은 육신의 건강을 위해 아주 중요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학교는 마음의 건강을 위해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는 영적 건강을 위해 중요한 곳입니다. 학교와 교회를 지어놓으면 그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됩니다. 양육을 받습니다. 새사람이 됩니다. 가족이 변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됩니다. 우리의 작은 헌금을 통해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이 변화되고 마약 환자가 알콜 중독자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는데 얼마나 고귀한 일에 우리의 물질이 쓰임 받습니까?

미국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무수한 고난 끝에 백화점 왕이 되고, 재무부 장관이 되고, 미국의 10대 재벌에 든 사람이 되고, Y.M.C.A. 창설자가 된 죤 위너 메이커는 100만달라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시절, 애들이 줄서서 감사 예물을 바치는데 집이 너무 가난했던 나는 빈손으로 온 것이 너무 괴로와 주일학교 끝나고 오후에는 벽돌 굽는 아버지 공장으로 찾아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벽돌이라도 한 수레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관을 찾았습니다. 목사님는 내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오늘 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단독으로 100만 달러 예배당을 짓게 되니 이 큰 은혜를 말로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록펠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백만평이 넘는 12개 대학을 건립하였습니다. 일평생 4,928개의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 정도 쓰임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는 3천 개의 도서관을 설립했고 8천대의 오르간을 기증했습니다. 줄리어스 로즌월드는 일생동안 흑인교육을 위해 5,357개의 공립학교 설립을 지원했답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해져 이렇게 쓰임을 받은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 되겠습니까? 물질을 통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가지시며 하나님께서 복주신대로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는 감사생활이 평생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도 말씀합니다.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렘 30:19)"라고 말씀합니다.

 

3) 우리는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는 감사절로 지켜야 합니다(11).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함께 즐거워함으로 감사절을 지내라는 것입니다. 누구와 함께 입니까? 너, 네 자녀, 노비, 레위인, 객, 고아, 과부입니다. 하나님은 홀로만 즐거워하는 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온 가족식구가 함께 감사하는 절기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내 가족만 즐거워하는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노비, 농토가 없는 레위인, 가난한 객과 고아와 과부입니다. 보리를 거두는 추수철이 되어도 구조적으로 거둘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감사절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굶주린 자들와 함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병자들과 함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외로운 자들과 함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유를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속박당한 자들과 함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서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나눔의 삶을 통한 감사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생활화된 감사입니다. 나눔의 감사는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우리가 대신하는 것입니다. 소외된 사람과 함께 즐겁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6장 14,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복 주심을 믿고 이웃을 섬기면 감사함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7장 13절에 보면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8장 7절 이하를 읽어 보십시오.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의무이고 그렇게 살면 결코 손해 보지 않습니다. 우리 때문에 지금보다 세상이 조금 더 좋아져야 합니다. 작은 나눔을 갖는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은혜받은 우리는 그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 절기를 맞이할 때면 우리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부의 불균형입니다. 부자의 나라라고 하는 미국도 2천 5백만 명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의 약 15억명이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허덕이고 있으며 이 중 1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집 없는 노숙자들이라고 유엔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제사회학자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은 "세계화"가 결국은 "20대 80"의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울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자본가를 포함한 20%만이 국경을 넘나들며 진보와 자기실현을 할 수 있을 뿐 나머지 80%는 실업이나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20%가 생산하는 부에 종속되어 살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갑부 3인의 재산이 개도국 43개국 GNP보다 많고 세계 최부국 5개국의 평균소득이 최빈국 5개국 소득의 74배나 된다는 것입니다. 선진국 부유층 20%가 전세계 소득의 86%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빈부의 격차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런 세상이 좋은 세상이겠습니까? 우리는 함께 즐거워하는 감사절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함께 행복하게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난한 자의 자손에게는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출22:25) 안식년에는 가난한 자로 땅의 곡식을 추수케 하였습니다.(출23:11) 추수때마다 가난한 자를 위해 곡식을 조금 남겨 두게 하였습니다.(레19:9-10) 땅을 팔았을 경우 50년후에 도로 찾게하였습니다. (레25:25) 가난한 자의 전집물을 밤이 지나도록 취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신24:12) 하나님은 지금 사람들이 지켜지 않지만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위해 제도를 만들어 지키라고 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구조적으로 불평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함께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내 삶의 풍성 뿐 아니라 불평으로 빈곤한 사람들에게도 삶의 풍성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료가 되고 인생의 풍요로운 삶의 재료가 됩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고 감사의 문으로 들어가면 행복이 다가 옵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잘 아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기억력입니다. 인간은 오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기를 정해 놓고 매년 지키라고 했습니다. 감사 절기에 인생을 집중하고 살도록 했습니다. 반복하도록 했습니다. 대대로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맥추 감사절에 감사를 회복하고, 감사가 넘치고 감사로 남은 세월도 하나님의 큰 복을 기대하며 즐거워하는 감사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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