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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받은 가정(2) 효의 산실(창45:7-1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73 추천수:1 220.120.123.244
2020-05-10 08:19:18

은혜받은 가정(2) 효의 산실

창45:7-11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은혜받은 가정 두 번째로 가정은 효의 산실이 되어어야 한다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배풀어 주시는 은혜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물과 공기와 햇볕같이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 주시는 일반은혜입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여자나 남자나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에게 다 베풀어 주십니다. 사람이 철이 들지 않아 이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이것을 거두어 가버리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특별은혜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자에게만 베풀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어느 날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백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구원만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기도 응답을 해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우리는 받았습니다. 지난주 요셉 이야기를 통해 이렇게 은혜받은 가정은 꿈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꿈을 주십니다. 요셉은 아주 좋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탐욕이 강했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버지를 속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넷이나 되었고, 배다른 형제들은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인신매매했습니다. 형이 계모를 간음할 정도로, 며느리를 범할 정도로 아주 도덕적으로 타락한 가정이었습니다. 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 자신을 미워하는 계모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집에서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특별한 은혜를 받은 우리 성도님의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꿈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던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요셉의 삶에서 보았듯이 꿈을 품으면 하나님은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게 하심으로 그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그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주신 재능을 극대화해 주심으로 그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오늘은 은혜 받은 가정 두 번째로 은혜받은 가정은 효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사는 우리 가정은 어떤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살던 가정을 효의 산실로 바꾸어야 합니다. 가정은 효도를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여 효도를 통해 복받는 장소여야 합니다. 효도를 배우는 곳이 가정이어야 합니다. 가정이 효도의 장례식장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 효도가 죽어 버리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효도하는 자녀가 복을 받습니다. 효도하는 자녀가 행복합니다. 자녀를 복받게 하는 지름길이 효도입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6장 1-3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잘되고 땅에서 장수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삶의 질이 높아집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삶의 양의 복을 받습니다. 효도하는 자녀가 복을 받습니다. 효도를 안 하거나 못하게 하면 복 받는 길을 막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효도하면 승리하는 인생, 보람 있는 인생, 건강한 인생, 성공하는 인생, 행복한 인생, 영광스런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요셉의 효도를 통해 우리 가정이 어떤 효도의 산실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교훈받기를 원합니다. 가정은 어떤 효도의 산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1. 은혜받은 가정은 어릴 때부터 보모에게 순종하는 순종의 효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효도의 기본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은혜받은 가정에서 배우고 가르쳐야 할 효도의 첫걸음입니다. 은혜받은 가정은 순종의 효를 배우고 가르치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이 살았던 가정을 보십시오. 도무지 요셉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는 가정 형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요셉 같은 순종하는 아들이 나옵니다. 어느 날 17살 먹은 요셉에게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킵니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었는데 형들과 양띠가 잘 있는지 살펴보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세겜은 가까운 것이 아니라 먼 곳입니다. 약 90KM 되는 거리라고 합니다. 당시 양을 방목하고 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말이 세겜이지 어느 골짜기에서 양을 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지난주에 우리가 보았는데 창세기 37장 1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 하겠나이다(창37:13)” 이유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시시비비를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전혀 원망과 불평없이 “예”라고 순종합니다.

얼마나 요셉이 순종의 사람이었는지 아버지 야곱이 돌아 가실 때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130세에 애굽에 내려갔고 요셉과 함께 17년을 더 살다가 147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으면서 요셉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저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다가 우리 조상들과 함께 장사 지내다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창세기 50장 12절을 보십시오. 그대로 행합니다. 야곱의 아들 중 이 일을 순종하여 행한 주인공은 누구겠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요셉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00리, 약 40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영구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도 총리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 배운 순종의 효를 그대로 실천합니다. 순종의 효는 마땅한 것입니다. 옳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경우를 따지고 시비를 가리면서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있으면 그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의 효도에 핑계는 없습니다. 인류의 구속사를 이루시는 예수님도 육신의 부모에게도 순종으로 효를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며 "아니요" 하시지 않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예" 하고 순종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님에게도 순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51절에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보이셨습니다.

맹종이 아닙니다. 부모님을 지옥가게 만드는데, 부모님을 범죄자로 만드는데, 부모님을 위태하게 만드는데, 부모님을 불안하게 만드는데, 부모님을 위험에 빠뜨리는데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감리교위 창시자 요한 웨슬리 어머니 수산나는 19명의 자녀를 출산하였습니다. 가난한 가운데 이 많은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이들을 훌륭하게 양육하였습니다. 그녀는 순종 교육을 철저히 시켰답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배우면 부모에게도, 선생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순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가르치는 길이 그 자녀가 영원히 효를 행하며 살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 되길 원하시면 은혜받은 가정은 순종의 효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순종의 효가 무시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말이라면 자녀 잘못될 까바 벌벌 떠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 선택도 자녀가 정합니다. 여행지 선택도 자녀가 정합니다. 밥먹는 시간도 자녀에게 맞춰야 합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성경은 말세 징조를 말하면서 사람들이 부모를 거역할 것(딤후 3:2)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개성과 창의력이 발달되어 자녀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을 방치하면 자녀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삼손을 보십시오. 나실인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 눈을 빼임당합니다. 짐승이 돌리는 맷돌을 돌리다 죽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을 보십시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성전에서 방탕합니다. 고기를 도둑질해 갑니다. 간음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방치합니다. 겨우 권면하는 것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이 정도 수준에서 머물게 됩니다. 성경은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22:15)"라고 말씀합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라 했습니다. 신21:18-21에서는 성 밖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부모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순종하게 해야 아이들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 가정에서 순종의 효를 배우지 못하니까 아들들이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아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잘 되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삭을 보십시오(창22:9-10) 결혼할 배우자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는데도 순종합니다. 결국 이삭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2-14)" 잘 되었습니다. 잘 되었을 뿐 아니라 장수하였습니다. 아브라함 175세, 야곱 147세에 비해 이삭은 1백 80살까지 장수합니다.

은혜받은 우리들은 가정을 순종의 효를 배우고 가르치는 산실로 만들어 우리 성도님들도, 자녀들도 진정 복받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2. 은혜받은 가정은 어릴 때부터 보모를 공경하는 공경의 효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45장 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무엇보다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창세기 43장 7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곡식을 구하러 온 형제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물어봅니까?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느냐”고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세 번이나 만날 때마다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다른 것보다 아버지를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19:3)”라고 말씀합니다. 공경이나 경외는 하나님께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요 공경하라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공경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베드"라는 단어로 "무겁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무겁게 여기라는 말은 부모를 하나님처럼 높여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함부로 대하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고,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하나님처럼 존중하고, 어렵게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무겁게 모시라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 없이 사람답게 잘 사는 사회 될 수 없습니다. 특별 은혜받은 가정은 하나님을 모신 가정입니다. 그래서 특별 은혜를 받은 가정은 세상 가정과 다릅니다. 특별 은혜를 받은 가정은 공경 효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공경의 효를 배우고 가르침 받는 공경의 효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공경할만한 조건이 있어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사기꾼이었습니다. 4명의 아내를 가진 사람입니다. 나이 늙어 양식을 구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분이었습니다. 직업이 당시 애굽 나라에서 천대하는 목축업이었습니다. 자신은 수많은 백성을 호령하는 총리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에 대하여 어떻게 대합니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합니다. 47장 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왕 앞에 가서 축복하게 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46장 34절을 보세요.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겼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목축업자였습니다. 애굽인들은 목축하는 사람들을 천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로왕 앞에서 야곱은 ‘조상 대대로 목축업을 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못났다고, 촌스럽다고, 잔소리가 많다고, 늘 강요만 하고 칭찬 한 번 해주지 않았다고, 부모 때문에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고, 해준 것이 없다고 원망하며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짐 덩어리가 아니라 복덩어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공경의 효를 하면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효도야말로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복받을 기회입니다.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치매 걸린 부모님 있으면 짐 덩어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대대손손 복을 받을 수 있는 복의 통로로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다고 효도하면 하나님이 약속한 약속의 복을 대대손손 누리는 것입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을 효도를 통해 복덩어리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는 어떤 상황에 있는지 우리에게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비교할 것이 없습니다.

링컨은 구두 만드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귀족들은 당황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통령이 구둣방 아들이라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링컨이 상원에서 대통령 취임연설을 하는 첫날, 단상에 서자, 늙은 귀족이 링컨에게 모욕을 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답니다. "미스터 링컨, 어쩌다 당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예전에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와 함께 우리 식구들의 구두를 만들기 위해 우리 집을 드나들곤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기 바라오." 이때 링컨은 모든 사람의 기억에 남을 만한 대답을 하였답니다. "내가 상원에서 첫 연설을 하기 직전에 나에게 아버지를 생각하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매우 멋진 창조적인 예술가였습니다. 아버지보다 더 아름다운 구두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든, 내 아버지가 위대한 예술가였듯이 그런 위대한 대통령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나는 결코 나의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들 귀족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만들어 드린 구두가 여러분의 발에 잘 맞지 않거든, 나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기술이 조금 있으니 나에게 말씀하십시오. 나는 훌륭한 제화공은 아니지만, 최소한 여러분의 구두는 수선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연락만 주십시오. 그러면 언제라도 여러분의 집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상원의원들은 쥐죽은 듯이 잠잠해졌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효자는 부모님의 직업이 어떠하든, 외모가 어떠하든 상관치 않고 낳아주신 것으로 인해 감사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복받은 기회인 것을 알고 자식된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나이 드시고 병들었다고 함부로 말하고 박대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경력, 부모의 직업, 부모의 성격, 부모의 조건, 부모로부터 받은 혜택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생명을 있게 하신 분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도 공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로 영적인 생명을 주었듯이 우리 부모님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어 이 땅에 살게 한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준 은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신 은혜와 같으므로 부모라는 한 가지 이유로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그쳐야 합니다. 부모를 하대하고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가정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부모님께 인사하고, 따뜻한 대화를 하는 것을 배우고 가르침 받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받은 가정은 부모님이 부르면 큰 소리로 대답 달려가 뵙고, 출입할 때 문밖에까지 나가 배웅하며, 식사 때 부모보다 먼저 시작하지 않고, 밥을 다 잡술 때까지 식사 자리를 뜨지 않는 부모님 공경을 배우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받은 가정은 외출하면 행선지를 알려 주고, 귀가 예정시간을 말씀드리고, 귀가 시간 늦으면 부모에게 연락하며, 돌아와서 인사하는 것을 배우는 공경의 효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받은 가정은 작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부모님의 일을 거들어 주는 부모공경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이 잘 살고 행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부모공경은 부모가 무슨 덕을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리라 (마 15:4)” “부모를 경솔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신 27:16)”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듯이 죽을 지니라(출21:17).”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공경하지 못하다 왕자로 태어났지만 복을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부모공경을 실천하면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효도의 계명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노아의 수치를 가렸던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창 9:26). 그러나 부모를 경멸히 여긴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룻 역시 모압 여인으로 유대인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심으로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룻은 흉년이란 재난에, 남편까지 잃은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 룻은 지극 정성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경했습니다. 밭에 나가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머니를 봉양하였습니다. 그 결과 보아스라는 덕망 있는 남자와 재혼하게 되었고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개처럼 취급받던 이방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고 메시아의 조상이 된 겁니다(마1:5). 사람은 철이 들어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지난 후 부모님 돌아가신 후 아무리 공경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도 철이 들어야 깨닫습니다. 철들 때까지 가정에서 공경의 효를 억지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합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믿습니까?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은 자녀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나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 은혜받은 가정은 보모를 봉양하는 봉양의 효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모시고 무엇이라고 그의 다짐을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다(창 45:11)”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가 47장 1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 하였더라”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창 47:27).”라고 말씀합니다. 십 칠년 동안 노년에 총리의 아버지로 축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창 47:28).

봉양이란 말은, ‘돌봐드린다’ 또는 ‘공급하다’란 뜻입니다. 아버지가 생활하시는데 불편함 없도록 공급해드리고, 돌봐드린 것입니다. 무작정 가까운 곳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고센 땅으로 모셔온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이 생업으로 하던 목축업을 계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해서 모셔 온 것입니다. 은혜받은 가정은 공양의 효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이 어렸을 때,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어 주었으니 부모가 늙으면 자식들이 부모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황새나 까마귀 같은 날짐승도 어미 새가 늙어 날 수가 없게 되면 제 둥지에 데려다놓고 죽을 때까지 모이를 물어다 먹인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를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즈음 세대는 부모가 죽을 때까지 돌보아야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결혼하면 끝이 아니라 결혼하면 시작입니다. 진이 빠지도록 손자 손녀 돌보아 주어야 진짜 부모라고 생각하는 아들 딸이 있습니다. 그렇게 돌보아 주어도 늙고 병들면 부모를 봉양하는 효도가 이익이 없다고 짐으로 생각합니다. 며느리가 5년 효도 잘하면 승용차 갈아 주어 보십시오. 대부분 효도합니다. 효도해 보았자 손해만 되고 힘만 든다고 생각하니까 효도하는 체만 하는 것입니다. 늘 잔소리를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가 있었답니다. 어느 날 인질범이 시어머니를 납치해 간 것입니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답니다. "너희 시어머니, 내가 데리고 있다. 1000만원을 가져오면 풀어주마." 그 때 며느리가 "어림없는 소리, 니 맘대로 해." 그러자 인질범이 다시 말했답니다. "좋다. 그럼 너희 시어머니 도로 데려다 놓겠다." 그러자 당황한 며느리는 황급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은행 계좌 번호가 어떻게 되죠?" 라고 물어보더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세태를 풍자한 유머입니다. 그 시어머니가 성지순례를 갔답니다. 그런데 그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무덤을 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비용을 다 대고 장례를 치루어 준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극구 반대하며 한국에 모셔 오겠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스라엘에 묻으면 예수님처럼 다시 부활할까 봐서 였답니다.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입니다. 인권을 무시하는 계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이 인간답게 복받고 살게 만들기 위한 계명입니다.

<치매 어머니와 행복 만들기>라는 책을 쓰신 김달근 목사님은 "치매어머니는 주님 주신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장모님은 30여년 동안 신경안정제를 복용해 2년전부터 치매가 급속도로 빨리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첫째 딸아이의 교육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치매에 걸린 장모를 자진해서 모셔왔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어머니 앞에서 사모님은 자신의 어머니이지만 감당키 어려운 짜증과 분노와 싸워야 했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것이 선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장모님의 치매로 내 속에 어떤 문제가 숨어있는지를 보여주셨어요. 또 하나님은 그 문제를 내게 보여주셨을 뿐아니라 그 문제를 건드리려고 작정하고 계셨죠" `하나님의 치매작전'은 위장된 분노와 미움을 감춘 채 그럴듯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거듭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날 장모를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와 미움을 삭이지 못한 채 손찌검을하는 우를 저지르고 말았답니다. 김목사는 그때 통회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정신을 수습한 후 장모의 손을 잡고 용서를 구했답니다. 그때 "괜찮아. 그때뿐이야"라고 장모님이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해맑은 웃음을 짓는 장모 앞에서 엉엉 울었답니다. 그 후 장모님이 측은하게 보였고 보기 싫던 장모의 얼굴이 예쁘게 보였답니다.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답니다. "어머니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팔아서라도 기어이 파헤치고 캐내야만 하는 보화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봉양한다는 것은 꼭 물질로 보답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잘 되는 것이 봉양의 효도입니다. 치매에 걸려 수발해야 할 부모님을 모신다고 모든 것을 접고 가정에서 봉양하는 것 만이 봉양의 효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문가들이 보살피는 요양원에 모시면서 자신의 주어진 일에 성공하는 것을 부모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관심을 가지는 것,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에 대하여 성실한 것, 사업에 성공하는 것,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하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한 태도를 가지는 것, 자신의 신앙 관리, 마음 관리, 건강관리 철저히 하는 것,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소질을 최대한 개발하는 것,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입신양명하는 것 등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 모두가 봉양의 효도입니다.

요셉처럼 주어진 일을 잘 성취하여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봉양입니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고 하십니다. 불효자식은 늘 부모의 마음에 근심과 고통을 안겨드리지만, 효도하는 자식은 늘 부모님의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드리는 것입니다. 맹자는 다섯 가지의 불효를 말했습니다. 첫째, 게을러서 부모님을 돌보지 아니함이요. 둘째, 도박과 술 때문에 부모님 받드는 일에 게을리 함이요. 셋째, 돈과 처자만 알고 부모님을 받드는 일에 게을리 함이요. 넷째, 눈과 귀의 만족에 급급하여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요. 다섯째, 싸움질 잘하고 성질이 사나와서 부모님을 근심되게 하는 일이 바로 불효라고 했습니다.

요셉처럼 자신을 죽이려하다가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22년 만에 만났지만, 보복하지 않고 다 용서하여 형제끼리 화목하게 사는 것도 봉양의 효입니다.(창45:15; 창 50:19~21).

부모의 소박한 기대에 어긋나지않도록 노력하는 것, 부모에게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는 것

부모가 기뻐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 어버이 날이나 생신 기억 축하 선물을 하는 것,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부모와 같이 시간 보내는 것, 부모님이 병환이 났을 때 즉시 최선을 다해 보살피는 것, 가능한 부모가 원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해 드리는 것 등 다 공양의 효입니다. 은혜받은 가정은 이런 공양의 효를 배우고 가르치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봉양의 효는 어릴 때부터 흉내를 내어서라도 가정에서 배우고 생활화되고 체질화되게 해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받은 가정은 봉양의 효를 배우고 가르치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효도는 자녀의 본분이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창조질서의 근원입니다. 신앙인이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딤전5:4) 인간 중심의 효도가 아니라 하나님 경외의 효입니다. 주 안에서 효입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복음을 전하여 같이 천국에 가야 합니다. 지옥의 형벌을 받도록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성도님의 가정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가정입니다. 우리 성도님과 자녀가 잘되길 바란다면 가정을 효도의 산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순종의 효, 공경의 효, 봉양의 효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여 참으로 질적으로 양적으로 복을 받은 가정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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