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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라(4) 바벨탑을 보라(창11:1-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43 추천수:0 220.120.123.244
2020-03-22 10:53:49

바라보라(4) 바벨탑을 보라

창11:1-9

 

과학기술 발달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유전공학의 발달은 부족한 식량 생산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질병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새로운 치료법을 통해 건강하게 오래 살길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기술의 발달로 자유롭고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편리함이 주어졌습니다. 정보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스마트폰으로 쉽게 정보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항공 우주공학의 발달로 세계 어느 나라나 하루에 갈 수 있는 지구촌이 되었습니다. 원자력 기술의 발달이 어디서나 전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출연으로 4차 산업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가전 기술의 발달로 가정에서 풍요와 편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취득이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은 혜택도 주지만 뜻하지 않은 피해도 주고 있습니다. 산업화로 환경 오염, 환경 파괴되고 있고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온난화와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해수면이 올라가 앞으로 지구 온도 평균 4도만 더 올라가면 지옥문이 열린다고 합니다. 원자력 이용이 많은 유익을 주고 있지만 방사능 오염 및 피폭 가능성, 핵전쟁의 위험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습니다. 생명체 조작 또는 복제를 통해 난치병을 치유하지만 생명 질서에 대한 교란을 가져오고 생명윤리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나노 물질의 독성으로 인체 나 환경은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심각한 인권의 침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 도시화로 말미암아 전염병의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환경파괴, 핵무기, 전염병, 빙하기 화산분화같은 지질학적 재해, 운석 충돌 등과 같은 것으로 인류는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고 학자들은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지구 종말시계는 인류 멸망 100초 전이라는 것입니다.

과학 기술이 만든 가장 심각한 위기는 이 땅과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추방한 것입니다.

이성화→과학화→기술화→산업화→도시화→문화화를 거치면서 인간은 하나님 없는 낙원을 스스로 이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에리히프롬은 19세기 인류 사상의 키워드는 “하나님의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도 하나님의 죽음을 말했고 다윈은 창조자의 부재를 마르크스도 그의 스승인 포이에르바흐와 같이 신은 허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 이성의 폭력과 과학기술의 해악을 보게 되었습니다. 과학 기술이 인간을 무참하게 파괴시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극도로 발전하자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데니얼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같은 21세기 신무신론자들은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필요없는 유해한 망상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실존하지 않으며 지식의 틈을 메워 주는 신(God of the gaps)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지식의 틈은 얼마든지 과학에 메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만들어진 신으로 유통 기한 끝났다는 것입니다. 실체로서 종교는 없으며 종교라 불리는 문화 현상만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 현상은 물리 화학적 작용으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겨라“라는 것입니다. 무신론도 일종의 신앙입니다. 과학주의는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자연주의는 자연이 전부이고 초월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진화론은 모든 것은 진화되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환원주의는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을 물질로 환원시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정신 작용 정서적 느낌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얼굴 붉어지면 다 사랑하는 것입니까?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다만 우연처럼 보일 뿐입니다. 과학은 우주의 시작에 대폭발(빅뱅)이 있었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대폭발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겠는가에 대하여 과학주의자는 “거기에는 우연이 있었다.”라고 답합니다. 신앙인은 "거기에는 하나님이 있었다."라고 답합니다. 어떤 것이 더 합리적입니까? 질양 분변의 법칙, 열역학 제1법칙, 제2법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시계가 우연히 생겼다고 하면 얼마나 사람들이 웃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텔레비전을 보듯 주파수만 맞추면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라고 하셨습니다. 영안이 열리면 하나님은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1)"라고 하셨습니다. 코로나 19도 우연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로 보며 겸손해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수없이 경고했습니다. 이집트 문명, 아시리아 문명, 바벨론 문명, 페르시아 문명, 그리스 문명, 로마 문명 등에 전쟁과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지진 등으로 수없이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영원한 제국은 없습니다.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된 세상에서 우리가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기술 문명으로 하나님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돌 대신 벽돌, 진흙 대신 역청은 기술문명의 발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당시는 첨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바벨탑을 쌓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늘에 닿게하여“ “내가 하늘에 올라 ...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사14:13)사단의 자만심을 가진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하나님 자리를 탐내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피조물로 망각하고 자신이 조물주로 등장하려는 시도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명의 탑은 단순히 탑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이 신이 되려는 모든 정신문명의 시도입니다. 영웅주의, 무신론, 이신론, 전투적 무신론, 비판적 무신론 모두가 그렇습니다. 기술 문명이 발달 되지 않을 때는 그런 것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술 문명이 발달되면 발달될수록 인간이 하나님처럼 만드니까 자신이 하나님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술 문명을 통해 인간이 왕이 되겠다는 시도는 모두 파멸에 이릅니다. 바벨탑을 부수지 않으시고 인간들을 흩어 버렸습니다. 바벨탑이 문제였다면 탑을 부수셨을 것입니다. 심판의 대상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인간의 죄성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28:5)”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127:1)”라고 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되기 전에는 누구나 신을 찾았지만 하나님이 과학 기술을 축복으로 주니 그것으로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한 것입니다. 축복을 저주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술 문명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늘에 닿아 하나님의 지배와 권위를 폐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를 보십시오. 스스로 하늘에 닿으면 노아의 홍수를 피할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고 살 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아무리 과학 문명이 발전해도 인간은 절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하나님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2. 기술 문명으로 내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이름을 만들자’입니다. 교만과 명예욕을 표현한 말입니다. 필로(phillo)에 의하면 실제로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이 자기 이름 세겼답니다. 축복으로 주어진 기술문명을 통해 세상은 저마다 자기들의 이름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소비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기 원하십니다.(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14:1)”

자기 이름 내는 인생 결국 사라집니다. 사울과 압살롬(삼상15:12; 삼하18:18)도 헤롯(행12:22,23)도 사라졌습니다.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잠10:7)”라고 했습니다. 자기 이름 내는 바벨론 망했습니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17:3-5)”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사는 자들의 몸체를 보니 그게 바벨론이더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름은 내기 위해 인생을 허비할 필요 없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위해 살다가 결국 바벨론처럼 멸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야할 존재입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43:7)” 이사야43:21에 “이백성은 내가 나를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에게 있어 증거하고 나타내야 할 이름은 우리의 생명이며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고후 4:5).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높이신 이름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빌 2:9-11).

 

3. 주어진 기술 문명으로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수행행야 합니다.

제1 인류조상 아담에게, 제2 인류 조상 노아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9:1)”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흩터짐을 면하자“라고 합니다. 계속 널리 퍼지지 말자라는 미완료형입니다. 10장 25절에 보면 노아의 5대손, 셈의 4대손인 벨렉(나눔의 뜻)입니다.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지만 노아 701, 셈 199세 생존할 때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면으로 문화명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두려워 그랬을 것입니다. 자기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온 땅에 거하게 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정하신 이유(행17:26-27)가 무엇이겠습니까?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발달된 과학 기술로 신본주의 문화인가 인본주의 문화를 만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제가되 된 많은 과학자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곤충학자 파브르, 세균학의 아버지 파스퇴르, 만유 인력을 발견한 뉴턴, 마취를할 수 있도록 한 심프슨, 정보 통신 사업의 시작을 알린 모르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 파스칼, 하나님을 찬양한 천문학자 케플러, 유전법칙을 발견한 식물학자 멘델, 외과수술의 선구자 리스터,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로켓 과학자 폰 브라운 등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 제사가 되어 과학 분야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드러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저버리고 스스로를 최고의 기준으로 내세우며 불신앙과 반항심으로 뭉친 사람들의 패역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문명을 통해 인간의 이상적 나라 실현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지개 약속(9:15,16), 하나님의 말씀 언약을 불신하고 관심을 끊고 합리적 이성의 탑을 올리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엄청난 문명 앞에서 말씀은 초라하고, 귀찮고 신화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모이는 것은 미신같고 힘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만이 행복과 평안과 안전을 줄 것같은 것입니다. 인생의 연합은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위한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시 34:3;고전 10:31).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할 때 인간의 악한 계획은 무산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바로 인식해야만 합니다(삼상12:15;스9:14).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 땅에는 두 왕국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 아니라 인간의 나라 건설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국주의 경쟁을 했습니다. 세계 왕국의 건설을 위해 피흘렸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1920년 국제 연맹을 만듭니다. 인간 끼리 연합해서 행복한 세상 지상낙원 평화의 세상을 만들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납니다. 국익을 위해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이 탐욕의 전쟁을 일으킵니다. 세계 평화와 세계 정의를 구현해 보자고 UN을 만듭니다. 여전히 패권전쟁은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연합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고 행복을 꿈꾸는 바벨탑을 쌓습니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러시아는 패권주의 대국주의를 꿈꾸며 자원 통제력, 자본 통제력, 시장 통제력을 통해 바벨탑을 쌓습니다. 근본적으로 문화명령은 어떻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과학 문명은 축복이 됩니다. 문화 명령은 이루어집니다. 참된 평화, 번영, 행복, 안전은 이루어집니다.

언젠가 문명의 바벨탑은 무너집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18:2)”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계 6:14)”

과학기술 앞에 무능력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과학 기술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과학기술도 하나님의 통치권 속에 있는 일반은총입니다. 과학 기술이 저주의 도구가 축복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대 마다 경고합니다. 꼭 재앙이나 질병이 하나님의 징계의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하면 알아듯지 못하니까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지진 등을 통해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역대하20장 9절에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란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하였습니다. 시편 91:3에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3-25)”라고 했습니다.

 

기술 문명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이 땅에서 승리하려면

1. 기술문명으로 하나님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기술문명으로 내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야 합니다.

3. 주어진 기술문명으로 흩어져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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