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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밝힘(1)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 십니다(요8: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33 추천수:1 220.120.123.244
2020-02-02 13:21:06

빛 밝힘(1)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 십니다

요8:12

 

새해 들어 첫 예배 드릴 때 이사야 60장 1-4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세 가지 기도 제목을 삼았습니다. 첫째가 ‘일어나게 하옵소서’였습니다. 올해는 어떻든 신앙이 일어나고, 건강이 일어나고, 기업이 일어나고, 인격이 일어나고, 교회가, 가정이 일어나자는 것입니다. 일어남에 대하여 1월에 4주 걸쳐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1월 한 달 동안 말씀 듣고 일어나야겠다고 결심하고 일어나고 있습니까? 낙심하고 쓰러지고 있습니까? 1월 시작할 때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로 세계가 긴장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지만,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일이 다가와도 그것이 거침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똑같은 일이라도 내가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보약이 될 수도 있고, 독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것은 독초로 죽을 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님 개인 개인이 각자 증상은 다르지만 한 주간 동안 앓은 여러 질병에서 말씀을 보약으로 먹고 일어나길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의 약초로 보약을 만들어 전하여 주는 것입니다. 똑같이 말씀을 들어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에 따라 그것을 독약으로 마시고 쓰러지는 사람도 있고, 보약으로 마시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올해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독약이 아니라 말씀을 보약으로 드시고 일어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기도 제목은 ‘빛을 발하게 하옵소서’였습니다. 2월 한 달은 이 말씀을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주일에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빛을 발하는 삶이, 빛을 발하는 가정이, 빛을 발하는 부부가, 빛을 발하는 자녀가, 빛을 발하는 부모가, 빛을 발하는 장로님이, 빛을 발하는 안수집사님이, 빛을 발하는 권사님이, 빛을 발하는 집사님이, 빛을 발하는 교사가, 빛을 발하는 성가대원이, 빛을 발하는 목자가, 빛을 발하는 구역장, 권찰이, 빛을 발하는 성도님이, 빛을 발하는 기업이,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 삶의 현장에서 사탄의 자식들처럼 어둠의 공장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의 빛을 발하는 성도님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통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전하는 말씀으로 시험 들어 어둠에 갇히기를 원해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밝히 깨달아 빛을 발하기 원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들을 귀를 열어주시는 성령님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통해 말씀을 밝히 깨닫고, 병든 인생 빛으로 치료받고, 병든 영혼, 병든 마음, 병든 육신 빛으로 치유받으며, 빛을 발하는 삶으로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2월 첫주일, 첫 번째로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다”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스스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빛이 예수님이라는 말이 아니라 문학적 수사법인 은유법을 사용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사용하는 비유법 중에는 직유법과 은유법이 있습니다. `장대 같은 비', `그 여자는 여우처럼 생겼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직유법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에 직접적으로 빗대어 나타내는 표현법입니다. ‘내 마음은 호수다’, ‘죽음은 영원한 잠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은유법이라고 말합니다. 시인들이 잘 쓰는 비유법으로 원뜻은 숨기고 유추(類推)나 공통성의 암시에 따라 다른 사물이나 관념으로 대치하여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표현은 직유법이겠습니까? 은유법이겠습니까? 은유법으로 빛의 속성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겠습니까?

 

1.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메시아로서 세상의 빛이십니다.

우선 형식을 보면 “나는...이다”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고 에이미” 용법은 예수님이 예수님 스스로를 계시할 때 자주 사용하는 용법입니다. 그런데 이 형식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소개할 때 사용하는 형식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 스스로를 계시할 때 사용한 용법입니다(출3:14; 신32:39; 사4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포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를 보낼 때 모세가 백성들이 너를 보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 볼 때 어떻게 말해 주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이 ‘여호와(예흐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에고 에이미’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사용하시는 이 형식을 사용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빛에는 발광체와 반사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인 발광체라는 말씀입니다.

내용적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 세 가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둘째는 하나님은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1:5)"

셋째는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바로 예수님이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는 말입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이 이런 주장으로 하면 얼마나 당시 사람들에게 황당하겠습니까?

특히 로마의 압제하에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구약에서는 빛을 장차 오실 메시아를 상징적으로 예언해 주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9:2)”

특히 그 메시아가 이방의 빛이 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사42:6)”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라고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해 놓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의 메시아로 올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빛은 빛인데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투 모스무)는 인류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대인만 위한 유대인의 빛이 온 인류를 위해 성육신하여 오신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어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빛에는 태양처럼 발광체가 있고 달처럼 반사체가 있는데 예수님은 빛의 근원이요 빛 자체라로 어둠을 물리지키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빛 중에는 아침 빛도 있고 저녁 빛도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을 아침 빛으로 예언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 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 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4:2)" 고 예언했습니다. 또 이사야는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사33 :2)"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아침 빛은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과 소망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시49:14; 130:6). 사단이 만들어 놓은 죄와 사망 권세로 인해 세상은 밤같은 흑암 속에 있는데, 예수님은 사단의 권세인 죄와 사망의 흑암을 거두고 은혜와 생명과 소망을 주는 아침 빛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황혼 빛이 아닙니다. 황혼빛은 어두움에 쫓겨가고, 어두움을 이기지 못하는 빛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간이 만든 종교나 철학이나 사상은 황혼빛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종교나 철학이나 사상으로는 사단의 어두운 죄악과 사망 권세를 이기지 못합니다. 어두움에 쫓겨가고 어두움에 삼킴을 당합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사단의 흑암 권세에 삼킴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침 빛은 어두움이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의 어둠이 이기지 못합니다. 영원한 암흑인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쳐 요한복음 1장 4절에서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인 죽음의 권세, 죄의 권세를 이기는 것은 오직 빛이신 예수님에게만 있습니다. 예수님이 발광체, 빛 자체라는 것입니다. 자꾸 다른 곳에서 메시아를 찾으면 안 됩니다. 어떤 인간에게도, 어떤 종교에게도, 어떤 사상에게도, 어떤 기관에게도 인간은 참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자신이 메시아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이단에 불과합니다. 신앙의 열심히 있는 사람들이 참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자꾸 보이는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수님을 떠나 어디에 가도 메시아는 없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다른데 빛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특정한 교단에, 어느 특정한 교회에 메시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빛, 내 인생의 메시아로 모셔야 합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자꾸 다른 데서 빛을 찾으면 이단에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2)”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땐 나는 만족하였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 참 하나님, 우리의 구세주 메시아로 믿고 그 빛으로 영적 질병인 죄와 죽음의 병에서 깨끗하게 치유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12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빛을 따르는 자들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빛은 파장이지만 열에너지가 있어 생명을 살리게 하고 성장시킵니다. 빛의 속성은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생물은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이 땅에 전달하시고자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5까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와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믿으면 영생을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어떻게 할 때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까?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르다(아콜루돈)’는 말은 함께 길에 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함께 길을 걷는 삶의 동반자가 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말은 보통 세 가지 경우로 쓰입니다. 첫째가 군인들이 지휘관을 따르는 경우, 둘째는 노예가 주인의 뒤를 따르는 경우, 셋째는 국가의 법이나 현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빛을 얻기 위해 개개인이 결단을 내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함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군사로서 종으로서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가지 경우 공통적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당신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이방 민족들과 구별된 선민이라 생각하고 유대 민족이란 사실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얻은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3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 만으로 구언을 얻을 것으로 편견,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5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느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우리 성도님들은 예수님이 생명의 빛이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성경에 능통한 바리새인들은 믿었습니까? 당시 최고로 신앙생활 잘한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는 그들이었지만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믿지 않았습니다. 왜 믿지 않았습니까?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때는 반드시 두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는데(신 19:15)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니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선적 주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비합리적, 비논리적, 비과학적, 비이성적 주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제넘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이 빛인데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니 신성 모독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증거가 없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으려고 하니까 믿지 않는 것입니다. 흠을 잡아 넘어뜨리려고 하니까 믿지 않는 것입니다. 정치 싸움하는 여당과 야당을 보십시오. 무엇을 하든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믿지 않으며, 무엇을 하든 흠만 잡아 비난합니다. 상대가 잘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진영논리의 노예가 되면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믿으면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자신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게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도 나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자유가 억압되고,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으로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합니까?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고 증언해도 그것은 참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하게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고그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누구에게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예수님의 기원과 운명을 다 알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갈리리 나사렛 출신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4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요 1: 1), 하나님과 함께 영광 가운데 교제하셨고(요 17:5), 하나님께서 보내심으로 세상에 오셨지만(요 3: 16)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갈릴리 촌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 희생 사역을 감당하시고(요 10:15)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늘 보좌에 가신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귀신들린 자, 정신병자로 취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거짓말쟁이도 정신병자도 아닙니다.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닙니다.

 

또 그들은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합니까?

1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육체적 조건을 보고 그런 것입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속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릇된 판단을 합니다. 그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을 심판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지금은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심판자가 아니라 구원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예수님이 생명의 빛, 세상의 빛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까?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판단이 곧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신뢰하고 있는 그들의 율법의 논리로 두 사람의 증인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예수님만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증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직접 음성을 통해 세 번이나 증언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 변화산에서도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17:5)”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높고 기도하실 때 요한복음 12장 28절 세 번째로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라고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언젠가는 메시아가 와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리라는 소망 속에 살고 있었지만 하나 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목수의 아들로 비천하게 오시리란 것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메시아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증언해 주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와서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 진정한 생명이 있습니다.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기도 열심히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남을 위해 봉사한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이라고 믿어야 생명을 받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은 그렇게 은혜를 주어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로 하나님의 자녀처럼 사는 것입니다. 행위가 조건이 되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열매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14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주장을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 “내 증거가 참되니”라고 반박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의 주장이 바른가를 보려면 그 사람의 생활의 열매, 삶의 열매를 보면 압니다. 그 사람이 남겨 놓은 영향력을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고 끝은 전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마지막 남기고 간 흔적으로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조각을 남겼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조각가입니다. 어떤 위대한 글을 남겼다면 그는 틀림없이 작가입니다. 어떤 사람이 삶에 전과만 남겼다면 그 사람은 도둑이거나 강도이거나 사기꾼 또는 깡패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사해 주는 일을 하셨습니다(마9:1-8). 인간의 죄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해 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셨고 바다를 잔잔케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것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병자를 말씀으로 치료해 주었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병든 자를 치유해 주신다고 했는데 이런 것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증거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영적 지식을 가르치셨습니다. 죄에 대하여, 천국에 대하여, 지옥에 대하여, 영생과 부활에 대하여, 종말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회개시키고 마음과 영혼을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는 것만큼 힘든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하고, 불의와 악을 좋아하던 마음이 진리를 추구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희생의 죽임을 당하는 것은 메시아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죽음을 이긴 자는 없습니다. 메시아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삶의 열매를 통해 예수님이 참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해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1절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하면서 왜 사람들이 이렇게 달라지지 않을까? 왜 나는 이렇게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거의 40여 년을 목회자로 살면서 사람 참 안 변한다는 것이 저의 목회적 고민입니다. 어렵게 살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정보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때는 목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려고 하고 설득하면 따르고, 문제가 있으면 상담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조언을 받아들였던 것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옥토가 아니라 길가 밭, 가시밭, 돌밭처럼 변해서 그런지 어느 때부터는 아무리 설교를 하고, 교육을 하며, 제자훈련을 시켜도 참, 사람 잘 변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다 나라는 우상을 가지고 다 내가 복음을 가지고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도 힘으로도, 능으로도, 교훈으로도, 모범으로도 못하지만 성령받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고 성령 충만하면 변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이라는 사실을 진실하게 믿는다면 인생의 질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천국 간다는 사실을 진짜 믿는다면 인생은 옥토가 됩니다. 교회를 다녀도 바리새인들처럼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는 체만 하는 사람이 있고, 죽어 보아야 안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회의주의에 빠져 의심하며 다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올해 믿음을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언제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서 끝날지 모르지만, 그날에 예수 믿고 천국 가야 합니다. 어차피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한 번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밝히 알게 하는 빛이 되십니다.

빛의 속성은 어두움을 밝혀서 사물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해도 빛이 없으면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밝히 밝혀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겠습니까? 1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알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에는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가 있습니다. 자연을 잘 관찰하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창조주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앉아 있는 의자를 보면 우리는 의자가 우연히 존재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든 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이 우주를 볼 때, 자연을 볼 때, 인간을 볼 때 누군가 만든 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종교입니다. 막연하지만 신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연 계시로는 하나님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정확히 알려 주시기 위해 특별계시를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유일하게 유대 민족에게 율법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많이 알고 있던 바리새인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보여 주기 위해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1-2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율법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희생시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밝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라는 사실을 밝히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곧 하나님의 성품이고,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곧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버림받은 자들을 사랑하신 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의 대속을 치르신 것이 곧 하나님의 큰 구속 계획인 것을 예수님을 통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저에 대하여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소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며 저의 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저와 친한 사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부분적으로 알고 왜곡되게 알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저와 인격 대 인격으로 교제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살아보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인격적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에게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은 빛이 있어야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만 있다고 다 사물을 밝히 보는 것은 아닙니다. 눈이 있어야 합니다. 이 눈은 육안이 있고, 심안이 있으며, 영안이 있습니다. 육안이 아무리 밝아도 마음의 눈이 없으면 깊은 정신세계는 볼 수가 없습니다. 초등학생을 앉혀 놓고 플라톤 철학을 가르쳐 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가독성이 없습니다. 아무리 심안이 열렸다고 해도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영적인 세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죄로 영적 소경이 된 사람들을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밝히 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그 계획을 온전히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영안이 멀었기 때문에 주님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이는 아버지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언하신다는 말을 조롱하기 위해 하는 말입니다. 이미 죽은 “네 아버지 요셉이 어디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주님은 하나이고 주님을 통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을 보십시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요14:6.7)”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로 오염된 인간이 볼 수 없습니다. 만일 죄인이 하나님을 본다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출 33:20).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으로 볼 수 있고 교제할 수 있도록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지식만으로 아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교제한다는 것은 그분께 진실한 자세로 대하고, 작은 일이라도 상의하며 서로 간에 비밀이 없는 것입니다. 또 한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죄가 있으면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빌며,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대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생활이요 이런 생활을 하면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빛이 찬란해도 창문을 열고 커튼을 활짝 여는 사람만이 그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암흑 같은 죄와 사망 세력으로 뒤덮인 세상에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빛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종교적 고정관념과 편견과 아집, 교만, 허영과 탐심, 위선의 커튼을 활짝 열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시길 바랍니다.

 

2월 첫 주일입니다. 다른 곳에서 빛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메시아로서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밝히 알게 하는 빛이 되십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믿을 죄와 사망의 권세가 주관하는 인생의 어두움을 물러갑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안에 영적 생명이 살아나고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빛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밝히 알고 사명을 발견하고, 인격이 성숙하고, 능력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여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어둠이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죽음의 어두움, 죄의 어두움, 근심의 어두움, 시기와 질투의 어두움, 전쟁과 기근의 어두움, 두려움과 불안의 어두움, 질병과 고통의 어두움을 몰아내시길 바랍니다. 이 빛을 받으면 어두움의 사상, 어두움의 지식, 어두움의 도덕, 어두움의 문화가, 음란한 밤의 문화가 달아납니다. 이 빛을 받으면 가정이 밝아집니다. 영혼이 밝아집니다. 마음이 밝아집니다. 세상이 밝아집니다. 이성이 살아납니다. 지성이 새로워집니다. 양심이 살아납니다. 이성이 제구실하게 됩니다. 정확하고 바르게 세상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세계관이 가치관이 바르게 정립이 됩니다. 지성과 도덕적인 분별력이 정상적으로 됩니다. 참지식, 참 거룩, 참 행복을 알게 됩니다. 이 빛을 받으면 아름다워집니다. 가정이 아름답고 교회가 아름답고 자녀가 아름답고 아내가 아름답고 남편이 아름다워집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 빛을 받으면 생명이 살아납니다. 아직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마음 문을 열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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