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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빌립보서 19, 빌립보서4:6-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114 추천수:0 220.120.123.244
2019-11-10 03:43:30

염려

빌립보서4:6-9

 

신문에서 107세 말레이시아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할머니는 70살 연하인 37세 남편과 22번째 결혼을 했답니다. 그런데 이 남편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바람피울까봐 염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염려는 나이가 든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107살 먹어도 끝없이 따라 다니며 괴롭힙니다. 돈에 대한 염려, 의식주에 대한 염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에 대한 염려, 질병에 대한 염려, 죽음에 대한 염려, 사고에 대한 염려, 학업에 대한 염려, 대인관계에 대한 염려, 가족에 대한 염려 등 죽을 때까지 염려와 싸우며 살아갑니다.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혹시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을까, 혹시 실직하지 않을까, 혹시 시집을 못 가면 어쩌나, 혹시 학교 간 애가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하나." 등 하루에도 수없이 염려 거리가 다가옵니다. 그래서 염려가 심각해지면 과민반응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불면증, 우울증 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조셉 몬테이그 박사는 "우리가 음식 때문에 위궤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좀 먹는 염려 때문에 위궤양에 걸린다."고 주장합니다. 포돌스키(Edward Podolsky)는 염려는 우리 몸의 유익한 인자들을 죽이고 독성 인자들을 높여서 정신질환과 고혈압, 심장병, 위장병 등과 같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염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 인자까지 죽여서 각종 암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게 한다고 말합니다. 미국 속담 가운데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현대인들은 실제로 건강 자체의 문제보다 건강을 염려하는 것 때문에 건강에 커다란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단을 인간을 가지고 놀 때 염려 거지를 주고 논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단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 몇 가지를 경매에 붙이기로 했답니다. 그 물건은 다음과 같았답니다. 증오, 질투, 거짓말, 교만같은 것들이었답니다. 그런데 한쪽에 아주 높은 고가의 물건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사단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염려입니다." 염려가 왜 최고의 가격으로 매겨져 있습니까' 그러자 사탄이 말하기를 "이 염려는 가장 오래도록, 가장 많은 사람을 쓰러뜨린 효과적인 무기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사단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면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염려하도록 만듭니다. 사단은 끈임 없이 염려 거리를 줍니다. 위장에 구멍이 뚫리도록 염려하게 합니다. 염려에 익숙해지고 중독이 되도록 만듭니다. 염려는 마음과 몸을 망가뜨립니다. 신경성이라는 질병들이 다 염려와 관계가 있습니다. 신경성 위궤양, 신경성 관절염, 신경성 심장병 등 심인성 질병들이 염려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사자가 35만명이었는데, 참전한 자식이나 남편 때문에 염려하다 심장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무려 100만명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파괴적인 염려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1. 염려의 노예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려면 염려를 중단해야 합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를 중단하라는 말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죄라는 말입니다. 염려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므로 염려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는데 살인하면 죄가 되는 것처럼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데 염려하면 죄가 됩니다.

빌립보서는 로마의 황제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심각하게 핍박했을 때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기록한 말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자들이 얼마나 염려가 많았겠습니까? 언제 재산을 빼앗길지 모릅니다. 언제 자녀들이 잡혀 죽을지 모릅니다. 언제 화형을 당할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2절에 예수님게서도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염려는 염려의 상황을 결국 만들어 가는 죄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죄이니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쓸데 없는 염려,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파괴적인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평안과 행복을 빼앗아 가고 소화불량, 신경쇠약, 궤양, 두통, 식욕을 잃게 하며 소심하게 만드는 백해무익한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염려는 사탄이 우리 마음에 뿌려주는 것들입니다.

 

심리학에서는 건강염려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 방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때 사용하는 방법이 "그만"이라고 외치는 것보다는 "나는 정상이야!" "나는 질병이 없어! 전문가인 의사가 건강하다고 판정을 했잖아!"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 등의 문장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외치라는 것입니다. 건강에 대해서 지나친 염려가 발생될 때마다 부정적 인지와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서 스스로 거부해야 염려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비 좀머(Bobbe Sommer)는 CRAFT 요법을 주장합니다. 첫째 Cancel(중지: 오래된 부정적 사고의 중지) 둘째는 Replace(대치: 새로운 긍정적 사고로 대치) 셋째는 Affirm(확인: 새로운

자기 상의 확립) 넷째는 Focus(초점: 성공적 자기 상의 초점 수립) 다섯째는 Train(훈련: 새로운 태도와 행동으로 훈련)입니다.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치료방법인데 커다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해야 할 것이 염려를 중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염려하는 것은 영혼과 마음과 유체를 해치는 심각한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염려를 의도적으로 중지해야 합니다.

 

2. 염려의 노예로부터 해방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가 죄라는 사실을 알고 염려를 안 한다고 자동적으로 염려 거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방 안에 있는 오물을 내가 치울 수 있으면 치워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당장 능력의 한계 때문에 내가 치울 수 없는 염려 거리가 있습니다. 딸 아이가 저녁 12시까지 아무 연락도 없이 안들어 옵니다. 전화해도 전화가 끊겨 있고 받지 않습니다. 10번 전화했는데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부정적인 염려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잘못된 일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측하며 염려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일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기도하기는 기도하되 염려 거리를 가지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영국의 스펼젼 목사님은 말하기를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차라리 10분간 기도하는 편이 좋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라는 말은 예배하고 경배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포함합니다.

염려 거리가 생기면 원망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염려거리가 생겼습니다. 기도하면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때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단 6:10)"였습니다. 오히기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도 수만명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는 염려거리 앞에, 사랑했던 나사로가 죽은 염려거리 앞에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염려 거리 때문에 더 큰 사람이 되고, 더 큰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거리 때문에 염려보다 더 크신 하나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는 불임이라는 염려 거리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술취한 여인처럼 기도한 것입니다. 힘없는 다윗이 골리앗이란 염려 거리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병 환자가 나병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이 혈루증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간구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진솔하며 진지하게, 애절하게, 절박하게 나의 염려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하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염려를 가져다 주는 대진표를 바꾸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나대 사탄과의 대진표를 하나님대 사단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염려를 주는 사단과 내가 싸우면 패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싸워주시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다윗 대 골리앗이 아니라 하나님 대 골리앗, 모세 대 바로가 아니라 대진표를 하나님 대 바로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신 대 질병이 아니라 하나님 대 질병으로, 자신 대 가난이 아니라 하나님 대 가난으로 대진표를 바꾸어 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문제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체를 맡기는 것입니다. 문제만 맡겨 놓고 또다른 염려는 하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 전체를 맡겨버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37:5)"신다고 말씀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복잡한 문제가 있으면 복잡할수록 여호와께 맡겨야 합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7-8)" 이 말씀을 믿습니까? 믿고 맡기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3. 염려의 늪에서 탈출하려면 생각을 복음적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이 즉각 응답해주시면 염려의 문제는 끝이 납니다. 그러나 바로 응답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도할 때는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했는데 현실은 염려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생각의 문제입니다. 극도의 부정적 인식과 비합리적 사고구조가 만들어 내는 것이 염려입니다. 학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비합리적 사고의 구조에는 크게 '임의적 추론(arbitrary inference)' 또는 '선택적 추상화(selective abstract)'라고 부르는 것과 '극단적 상상' 또는 '부정적 상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임의적 추론 및 선택적 추상화는 충분하고 적절한 증거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일종의 왜곡된 신념으로서 상황에 대한 비극적이며, 파국적 결말을 상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 보다는 특정한 부분만을 선택하여 임의적으로 추론하여 과잉 일반화를 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누군가 음식을 짜게 먹어 위암에 걸렸다고 하면 많은 원인은 무시하고 자신이 과거 짜게 먹은 것에만 초점을 맞춰 자신의 식습관을 염려하다가 위암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신념을 갖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언론에 매일같이 성폭행범 뉴스가 나오면 딸을 둔 엄마는 딸이 늦게 들어오면 자신의 딸도 성폭행 당하지 않을까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학문적 용어로는 "가용성 편향"이라고 합니다. 우리 뇌는 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극적으로 생각하는데 계속 언론에서 성폭력을 말하면 그 사건이 격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 나에게도 쉽게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병적 염려증 환자는 임의적 추론 및 선택적 추상화, 비약적 단정 또는 허구성 일치로 생각의 회로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염려의 생각 회로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심리학에서 합리적 정서 행동 치료 방법으로 ABCDE 이론이 있습니다. 영어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만든 이론입니다. 건강 염려증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비합리적 신념과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비합리적 신념체계의 형성 과정과 동시에 변화의 방법을 알려주는 이론입니다.

A(activating experience or event)는 촉발적 경험이나 사건 또는 선행 사건(antecedent)을 의미합니다. 어머니가 위암이었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면 B(belief system)라는 신념체계입니다. 어미니가 위암이라는 선행 사건을 통해 “나도 위암일 것야”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체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C(consequence emotion)라는 감정의 결과가 생깁니다. 소화가 잘 안된다는 사건을 해석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정서적 결과를 말합니다. 이 때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지나친 불안, 원망, 비판, 좌절감, 염려, 걱정, 초조, 분노 등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 건강 염려증이라는 늪에서 벗어날려면 중요한 것 D(dispute)라는 것입니다. 논쟁하고, 논의 하며, 논박하는 것입니다. 사리에 맞지 않은 비합리적인 신념과 사고 또는 상상에 대하여 합리적인 생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고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려면 E(effect) 즉 결과는 자기 파괴적인 건강 염려증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염려의 치료에 중요한 것은 D라는 것입니다. 비합리적인 신념을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 합리적인 신념으로 재구성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보다 정신의학자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염려의 노예로부터 탈출하는 세 번째 처방전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까? 6가지 나와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참됨, 경건, 옳음, 정결, 사랑받을 만함, 칭찬받을 만함"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컵에 검은 물을 넣고 아무리 흔들어도 물은 맑아지지 않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지금 빌립보 교회에는 시기심 많고 권력욕이 강한 유오디아와 순두게 같은 사람이 있어 하나되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는 염려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교회가 잘못될 것이라고 염려하고 막 문제를 삼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손가락에 가시가 찔리면 그것에만 온통 신경을 쓰면 인생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염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염려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안 됩니다. 시궁창 물은 깨끗하게 한다고 계속 젓는다고 깨끗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물을 넘치도록 계속 부어야 나중에 맑아집니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파괴적인 염려 거리가 생기면 이 여섯가지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적 생각입니다. 신앙적 생각입니다. 어둠은 결코 어둠으로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작은 빛이지만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섯 가지는 단순합니다. 내가 염려하고 있는 것이 참된 것인가를 물어보고 참되지 않으면 참된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경건한가를 물러보고 경건하지 않으면 경건한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옳은가 확인해 보고 옳지 않으면 옳은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정결한가 확인해 보고 정결한 생각이 아니면 정결한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만한가 확인해보고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칭찬받을 만한 생각인가 확인해 보고 칭찬받지 못한 생각은 바꾸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 절망적인 생각, 두려운 생각, 걱정거리를 복음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좋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니 젤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염려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 바꿀 수 있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을 할 거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마라.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낫는 병인가? 안 낫는 병인가? 낫는 병이면 걱정하지 마라. 안 낫는 병이면 두 가지 만 걱정해라. 죽는 병인가? 안 죽는 병인가? 안 죽는 병이면 걱정하지 마라. 죽는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 거 같은가? 지옥에 갈 거 같은가? 천국에 갈 거 같으면 걱정하지 마라. 지옥에 갈 거 같으면... 지옥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신앙인은 죽음 후의 천국까지 인생 전체를 보는 사고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천국에 갑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이 말씀을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면 우리 성도님의 사업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고, 우리 성도님의 가정도, 자녀도, 우리 교회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4. 염려의 노예로부터 해방되려면 예수님으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여야 합니다.

염려를 죄로 알고 중단하고, 염려거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좋은 생각으로 바꾸면 염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됩니까? 여전히 오염물질을 방에서 치우기 전까지는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 더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라는 것입니다. 염려의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고 마음만 바꾸고 방에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그 방에서 떠나던지 오물을 치우던지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세 단계가 있습니다. 염려만 하고, 불평만 하고, 뒤담화만 하고, 원망하며 문제만 지적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문제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문제와 그에 따르는 위험이나 한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선택 사항과 대안 마련을 하는 것입니다. 해결책을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해결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행입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염려만 하고 있으면 홍해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모험적 행동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 앞에서 염려만 하고 여리고 성 앞에서 염려만 하고 있었다면 요단강을 건널 수 없었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번 돌아 안되면 두 번 돌고, 두 번 돌아 안되면 세 번 돌고, 세 번 돌아 안되면 네 번 돌고, 염려의 장벽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일곱 번 도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죽은 병에 걸려 기도하면 된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그 병에서 치료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생결단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한나가 불임의 염려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만하고 있었다면 그는 사무엘을 낳지 못했을 것입니다. 술취한 여인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혼절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한센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이 물에 들어가면 나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그 질병에서 해방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에 일곱 번 들어가는 것입니다. 질병에 걸리면 염려만 할 것이 아니라 1차 치료받아 안되면 2차, 3차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재발 되면 낙심하고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시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1%로 가능성만 있어도 말씀 붙들고 달리는 것입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건강프로그램을 날마다 보면서 이변 저병에 걸리지 않을까 건강 때문에 염려만 하지 마시고 교회에 나와 청소도 해보고 밖에 나가 전도도 해 보고, 봉사도 해 보십시오. 어느새 건강 염려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돈 때문에 날마다 염려하지 마시고 작은 돈으로 이웃을 섬겨보고 구제도 해보고 헌금도 해 보십시오. 예수님 말씀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살다보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축복을 주리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무조건적이지만 우리에게 오는 삶의 축복은 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저주에 대하여(신11:13)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 8복을 보십시오. 조건적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복있습니다. 아무나 복이 있는 것 아니고 심령 가난 그리고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지식에 만족하고 교리에 만족하는 위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부뚜막에 아무리 소금이 많아도 솥에 넣어야 국은 싱겁지 않은 것입니다. 좋은 음식도 먹어야 보약이 됩니다.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됩니다. 굴러온 떡도 먹을 수 있어야 배부릅니다. 기도에 대한 이론을 아무리 알고 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염려와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만 듣고 끝나면 실제 염려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5)"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7)" 이 말씀을 믿습니까? 염려만 하지 마시고 말씀 붙들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실천해 보십시오.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복음에 의해 지배된다고 해서 모든 염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기도해 놓고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을 복음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을 복음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끝내면 안됩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열매가 없습니다. 실제 말씀을 붙들고 행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십니까?

9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지키신다는 말은 "수비하다. 경계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삶의 성벽과 망대 주위를 돌아가면서 지켜 주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에 있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활동들은 외부로부터 불안과 근심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가출하여 시궁창으로 돌아다니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 쓰레기통을 돌아다니며 잡다한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그 모든 것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완전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입니다. 이 평강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수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지금 염려가 있습니까? 염려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목사님도 염려를 합니다. 미국에서 목회했던 웰치 목사께서 장수하여 101세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답니다. 생일 축하식에서 한 기자가 "목사님, 101세이십니다. 남은 생을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되십니까?"라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는 "나는 30년 전 70대에 은퇴를 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은 중요한 진리가 하나 있다네. 목사로서 부끄럽지만 나는 일평생 살아오면서 매일 염려를 끌어안고 살았어. 날마다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았는데 나중에 은퇴할 때 가만히 보니 내가 평생 끌어안고 씨름한 것 중에 실제로 일이 터진 것은 거의 없었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신경을 쓰고 안달하며 속을 썩이는 염려가 있습니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고 골똘이 생각하며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까?

어찌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염려의 늪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염려는 죄입니다. 염려의 근본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뮬러는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종말이며, 참된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종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염려가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염려가 있을 때 기도하십시오. 그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기도함으로 끝내지 말고 염려하는 마음을 복음적인 마음으로 바꾸십시오. 그리고 복음적인 삶을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염려는 사라지고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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