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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을 주신 이유(엡4:11-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032 추천수:0 220.120.123.244
2019-10-13 09:22:28

직분을 주신 이유

엡4:11-12

 

<동그라미 선생님>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영주씨의 글입니다. 어느 날 주부가 된 자매가 길에서 여고 동창생을 만났답니다. 그에게 고교 담임이었던 수학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주 꾸중하고 벌을 주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답니다. 그런데 친구가 "영주야 그 선생님이 담임 시절 교탁에 반 학생들 사진을 유리아래 항상 두고 있었는데 그 중 몇 학생의 얼굴에 동그라미 표가 있었는데 너와 내 얼굴에 동그라미가 있었던 것을 아느냐?"고 물었답니다. "뻔하지 너와 내가 찍혔던 것이겠지"라고 말을 했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어느 날 집안 정리를 하다가 여고 시절 고교 잡지 한 권을 발견했답니다. 거기에는 바로 그 담임 수학 선생님이 기고한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의 제목이 <동그라미 선생님>이었다고 합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답니다. "나는 수학의 모든 기호 중에 동그라미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원만하고 모가 없는 둥금은 나의 학생들에게 내가 기대하는 인격의 목표입니다. 나는 나의 학생들이 공부만 잘하고 수학 문제만 잘 푸는 학생으로 교정을 떠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동그라미처럼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 사회에 나아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거기까지 글을 읽어 내려가던 그녀는 자리에 무너져 대성통곡으로 이런 결단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그래서 저를 꾸중하시고 저를 책망하신 선생님, 그 마음을 이제 알겠습니다. 저 이제부터라도 동그라미 인생, 동그라미 제자가 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동그라미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단지 이 땅에서 구원만 받고 끝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낳아 갓난아이로 죽을 때까지 있기를 원하겠습니까? 목회자의 마음도 늘 성도를 위해 기도하면서 성도가 성숙하고 성장하기를 원하며 훈련을 시킵니다. 훈련시켜 성숙하게 만들어 직분과 직책을 주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합니다.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리더를 세워 일하게 하는 것처럼 교회 역시 때가 되면 리더를 세워 하나님의 일을 맡기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하지 22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세 차례 장로, 안수집사, 권사를 투표를 통해 세웠습니다. 아마 제가 담임목사로서 사역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두 번 정도의 항존직 직분자를 세울 수 있을 것같습니다. 이제 이번 달 마지막 주일에 제 4기 장로, 안수집사, 권사 투표를 하려고 합니다. 교회를 우리가 다니면 거룩한 성도라는 신분이 주어집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신분이 주어집니다. 신분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분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제와 성도의 차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에서는 성도는 스스로 회개하지 못하고 고해성사를 해야 합니다. 성찬식도 포도주는 마시지 못합니다. 직분은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효과적으로 세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똑같은 직분이지만 직책이 주어집니다. 목사라는 직분이 똑같지만 담임목사와 부목사는 직책이 다릅니다. 똑같은 장로이지만 교회에서 어떤 장로님은 교육담당으로 어떤 장로님은 선교담당으로 주어진 직책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10월 말 주일에 투표를 통하여 직분자를 뽑을 것입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직분자는 누가 세우는 것입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가 세웠다고 말씀합니까? 그가 세웠다고 말씀합니다. “카아 아우토스 에도켄”에서 인칭 대명사 아우토스를 한 번 더 사용됨으로써 주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직분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 한 분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집사를 세울 때 성도들이 성령 충만, 믿음 충만, 지혜 충만하여 사람들에게 칭찬받은 사람 7을 선택하였습니다.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사도로 세울 때 제비를 뽑아 세웠습니다. 성도들이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누가 세웠다고 받아들였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장로로서 합당한 사람, 안수집사와 권사로 합당한 사람을 뽑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세우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에 의해 역사는 이루어진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인들은 우리는 어떤 직분이든 하나님이 주신 직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임직 투표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교인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분노하거나 억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임직 투표를 하면 목사가 자신을 뽑아 주지 않았다고 목사를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되어진 일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신본주의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무엇보다 영광스런 직분입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평생 주일학교 교사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그 직분을 수행했습니다. 대통령을 마치고 다시 자신이 섬겼던 조그마한 시골교회로 돌아가 옛날처럼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암투병을 하면서도 주일예배와 매주 주일학교 봉사를 쉬지 않았습니다. 자그마한 교회이지만 그의 소원은 “내가 할수 있을 때까지 이 교회에서 주일학교 봉사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아내와 함께 교회 청소 당번이 되어 청소를 하며 섬겼습니다. 교회의 직분을 무엇보다 영광스럽게 생각한 대통령입니다. 교회의 직분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신 것과 영원한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이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장관으로 세워주면 얼마나 영광스럽게 생각합니까? 회장이 이사로 세워주면 얼마나 영광스럽게 생각합니까? 그런데 이 땅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장로의 직분, 안수집사의 직분, 권사의 직분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하나님이 직분자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3개의 전치가 나옵니다.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구절 앞에는 ‘프로스’라는 전치사가 쓰였습니다. “향하여”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입니다. 직분을 주신 목적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11절에 소개된 모든 직분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데 목적과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온전케(카타르티스몬)’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는 ‘준비, 능력, 자질, 장비, 훈련’ 등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오직 이곳에만 나타납니다. 온전하다는 말은 본래 의학적인 술어로 "뼈를 맞추어 제자리에 있게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외과 의사들이 골절된 수족을 다시 맞추고 어긋난 관절을 다시 제자리에 꿰맞추는 경우에 사용된 말이라고 합니다. 뼈가 위골 되었을 때 그 위골된 뼈가 있는 수족은 온전치 못합니다.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목적한 바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 뼈를 다시 맞추어야 온전해집니다. 여기서 성도는 나까지를 포함하여야 합니다. 직분을 받은 나도 온전해져야 하고, 내 직분을 통하여 직분자들이 제자로 삼은 성도들이 온전해져야 합니다.

온전해 지는 것을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성도들의 ‘온전함’이라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함의 모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 온전한 모델이 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 첩을 두었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모세도 혈기를 불여 살인하였고 바위를 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살인하고 간음하였습니다. 바울도 마가의 문제로 자신의 지도자였던 바나바와 다투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인격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온전한 신앙인이 되기 위한 모델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입니다. 담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입니다.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13).

신앙적인 것, 지식적인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다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한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성숙한 신앙인,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15).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는 것으로 믿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인격의 분량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소극적으로 피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어린 신앙인으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빻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정도 온전해져야 합니까?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직분자를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으라고 말씀합니까?

디모데 전서 3장 1절 이하를 읽어 보겠습니다. 개인적인 성품이나 가정적인 면, 사회적인 면, 경제적인 면, 신앙적인 면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세워지는 직분자를 통해 열린교회에서 예수님을 닮은 제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모든 직분은 예수님을 닮을 제자로 훈련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교회에 권력을 가지고 지배력을 확장하고, 자신 마음대로 교회 일을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자랑하고 교만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둘째,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앞에는 전치사 ‘에이스’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목적이 결국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온전함을 가진 결과 직분자들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여러 직분과 직책을 두신 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만족과 자기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계급이 아닙니다. 권력을 휘두르는 도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신도 위에 권찰 위에 서리집사, 서리집사 위에 안수집사, 안수집사 위에 장로, 장로 위에 목사 이런 식으로 계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직분은 결코 계급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섬김의 도구로 주신 것입니다.

'봉사'라는 단어에서 집사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디아(dia)와 코니아(konia)두 단어의 결합인데 '코니아'의 뜻은 '먼지'란 말로 합하여 '먼지를 턴다'는 뜻입니다. 집사는 먼지를 터는 사람, 청소하는 종입니다. 계급이 아닙니다.

몸의 지체들인 우리가 서로 서로 봉사할 수 있도록 모든 직분을 주셨습니다. 교회에 참여하는 것은 아무개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가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적절한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시간과 물질 재능을 통해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섬기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내 직분으로 내 형제에게 봉사하여야 합니다. 내 가진 것으로 형제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내 지식으로 형제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내 미모로, 내 건강으로, 내 지위로 형제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병자를 위로하는 자는 위로함으로, 가르치는 자는 가르침으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전도함으로, 설교하는 자는 설교함으로, 찬양하는 자는 찬양함으로, 헌금드리는 자는 헌금함으로 봉사하여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은 특권의식을 가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봉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궁극적으로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직분을 주신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도 전치사 에이스가 앞에 나옵니다. 직분을 주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건물의 개념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직분을 주신 것은 결국 개인의 유익보다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분을 받음으로 자기를 세우기에 올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교회를 만든다고 주장하며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세운다고 늘 교회를 부정적으로 말하며 교회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도의 문을 막아 버리는 직분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소외되었다고,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교회를 흔드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대신에 내 몸을 세워서도 안 됩니다. 내 명예, 내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입이 입의 유익만을 위하여 음식을 먹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손이 손만의 유익을 위해 물건을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체는 궁극적으로 몸을 세우기 위해 봉사하고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였던 니골라 집사처럼 직분을 받아 이단이 되어 교회를 파괴하는 데 쓰임받으면 안됩니다. 가룟 유다처럼 스승을 인신매매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 으뜨임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처럼 악안 말로 사역자를 비방하고 봉사하는 자들을 쫓아내는 직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간이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사탄의 도구가 되어 공동체를 파괴하는데 쓰임받으면 안됩니다. 나의 조그마한 일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섬기는 분들의 태도나 방식이 그릇되었을 때 교회가 한 사람의 부덕한 일꾼 때문에 온 교회가 흔들리고 몸살을 앓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남겨 놓은 위대한 표적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입니다. 교회는 생명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산돌로서 기초가 되어(벧전 2:4, 엡 2:20)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는 곳입니다(마 16:18).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딤전 3:15).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딤전 3:15). 또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 1:23, 고전 12:27). 성령의 전입니다.(엡 2:21, 고전 3:16, 고후 6:16, 벧전2:5).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어 이 집의 일꾼들로 세우십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남겨 놓은 세상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직분자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성도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다 지체가 되어 교회를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직분자들 스스로가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까? 예수님께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인체의 각 부분이 마디로 머리에 연결되어 있듯이 성도는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몸의 전체의 신진대사는 머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네트워킹이 잘 되어 다양성과 통일성을 이루며 직분자는 하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직분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는 말 앞에는 전치가 ‘에이스’가 있는데 위와 같은 모든 조건이 충족되면 교회는 사랑 안에서 스스로 잘 세워져 간다는 것입니다. 선교지에 가면 두 가지 유형의 선교사가 있습니다. 생활 선교사와 사역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로 나갔지만 자기 먹고 살고 제 자식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는 선교사입니다. 그러나 사역 선교사는 주님 주신 사역에 열정적으로 헌신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인생도 생존인생과 기여인생이 있습니다. 기여인생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라고 합니다. 창조적 소수에 의해 인류는 문화와 정신, 예술의 꽃을 피우고 과학과 환경을 발전시켜 보다 나은 삶의 공간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존재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직분자들에 의해 교회는 성숙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교회마다 교회를 세우는 직분자를 선택하여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모세나 사무엘이나 다윗이나 다니엘이나 에스더나 엘리야나 느헤미야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한 시대 부름받아 교회를 세우는데 위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직분자들은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직분자를 뽑을 때는 교회를 세우는 직분자를 뽑아야 하고 직분자들은 교회를 세우는데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왜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직분자로 뽑아야 합니까?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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