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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가정(창35:1-15)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506 추천수:1 220.120.123.244
2019-05-19 04:21:03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가정

창35:1-15

 

지난주 아내에게 들은 어느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와서 피아노는 치지 않고 잠만 잤다고 합니다. 그러자 원장 선생님이 잠만 자지 말고 피아노를 치라고 타일렀답니다. 옛날 같으면 그렇게 말하면 “예”하고 바른 자세로 피아노를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다르답니다. 이 아이는 “됐어요. 선생님은 우리 엄마에게 돈 받았으면 됐잖아요. 저 좀 가만히 놓아두세요.”라고 말하며 계속 학원에서 자더라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학원에 내몰린 아이의 투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오늘날 어린이 같지 않은 아이의 의식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말에는 권위를 부정하는 아이의 의식, 돈이면 다라는 생각의 황금만능주의, 내 인생 간섭하지 말라는 지극한 개인주의가 녹아있습니다. 작은 에피소드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가정의 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말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많은 가정이 크고 작은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겪는 가족위기는 무엇일까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펴낸 보고서 ‘사회환경 다변화에 따른 가족위기 진단과 대응전략’에 의하면(20~64살 일반 국민 1500명에게 전화조사) 46.1%가 경제적 위기(부도, 실직, 가구파산, 하우스푸어 등), 가족관계 위기(가정폭력, 이혼과 별거 등 가족해체 등), 자녀돌봄 및 부모부양 위기(미성년 자녀돌봄 공백, 노인부양 공백 등), 자살 위기(자살과 자살시도), 재난 위기(화재와 폭발사고 등에 따른 피해) 등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힘든 위기는 절반에 이르는 51. 5%가 “경제적 위기”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가족관계 위기(22.4%), 그다음이 자녀 돌봄과 노부모 부양 위기였다고 합니다(20.5%). 이런 위기를 평균 6년 겪는다고 합니다. 위기를 경험한 가족들은 가족관계 멀어진다고 합니다. 신체 및 정신건강이 악화된다고 합니다. 생활 제약과 중독 등 부정적 변화를 심각하게 겪는다고 합니다. 우리 예수 믿고 사는 사람들도 살다 보면 어느 날 위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위기에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사고, 질병, 중독, 장애아의 출산, 불임, 이혼, 자녀의 왕따 등으로 자람터인 가정에서, 믿음터인 교회에서, 배움터인 학교에서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되고, 위기가 보약이 되며, 위기가 디딤돌이 될 수 있지만 잘 못 대처하면 위기가 독약이 되고 위기가 거침돌이 될 수 있습니다. 사울왕의 가정은 위기를 독약으로 만든 사람이지만 다윗왕의 가정은 위기를 보약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가정은 자녀로 인한 가정의 위기를 거침돌이 되게 한 가정이만 한나의 가정은 자녀로 인한 위기를 디딤돌로 만든 가정입니다. 우리들은 어떤 위기를 만나든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나온 야곱의 가정도 위기를 기회로 삼아 위기를 보약과 디딤돌로 만든 가정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야곱이 큰 위기를 당했습니다. 어떤 위기를 당했는지 성경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4장 1-2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당한 위기입니다. 강간하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 집에 감금하고는 결혼을 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위기가 보약이 되고, 위기가 디딤돌이 되어 가정을 더 행복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위기 때 인간적 방법이 아니라 문제의 답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방법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합니까? 34장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복수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더 멀리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거짓말로 결혼을 시켜준다고 하고 세겜 사람 남자들에게 모두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들은 야곱의 재산이 탐나서(34:23)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 받은 지 3일이 되었을 때 디나의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급습하여 모든 남자를 죽여 버리고 동생 디나를 구출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위기를 복수의 힘으로 해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위기를 잘못된 방법으로 해결하면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는 법입니다. 더 큰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무슨 위기입니까? 34장 3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입니다.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가만히 놓아 둘리가 없습니다. 숫자상으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쌓아 놓은 모든 재산을 잃게 되고 가족의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인생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창세기 35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처방전을 네 가지 제시하십니다.

첫째는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밀려가면 안 됩니다. 털썩 주저앉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원망하고, 좌절하고, 두려워하며 위기로 행복을 잃고 생명을 잃고 물질을 잃고 건강을 잃고 망하면 안 됩니다. 위기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둘째는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갈 때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라고 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만약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자신을 지켜 주고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게 해 주시면 세 가지를 꼭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는 첫째는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고, 둘째 자신이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셋째 주신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의도적으로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켜 주시고 그를 거부로 만들어 주고 형과도 화해하여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올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그는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세상과 어울려 10년 동안 산 것입니다. 세상에 출세하고 잘 된 것이 자기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처음 예수님 만난 신앙도 잃어버리고 적당히 어울려 산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자 교회는 멀어지고 세상은 가까워진 것입니다. 세상 재미에 취해 하나님은 멀리한 것입니다. 세겜에서 벧엘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벧엘에서 거주하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아주 명료한 처방전입니다. 위기 해결의 전문가 중의 전문가이신 하나님의 명료한 처방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욕심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위기 가운데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만나주었던 벧엘을 상기하며 벧엘로 올라가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위기를 해결하는 길인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위기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경제의 문제도, 인권의 문제도, 제도의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선도적 무신론자들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20세기의 대표적인 무신론 사상가가 안토니 플루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무신론이 더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만들어 주고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신론으로 무장한 가정이 정말 행복합니까? 동성연애를 합법화하고 내 인생 내마음대로 사는데 누가 간섭하느냐고 살아가는 세상이 진정 행복한 세상입니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절대적인 기준이 상실되어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권위가 상실되고, 절대적인 해답이 없어지고, 가정의 목표는 출세와 돈에 있다고 살면 행복합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며 살면 이혼율이 줄고, 자살율이 줄고, 낙태율이 줄고, 청소년 탈선율이 줄고, 성적 타락과 가정 폭력이 줄고 노인문제나 미혼모 문제가 잘 해결되어 정말 행복한 가정이 됩니까? 무신론자 조차도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가 더 부도덕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모든 것을 상대화하면 다 제멋대로 살아 공의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토니 플루는 결국 <신은 존재한다>는 책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인간이 듣는 가청역은 20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 주파수 법위입니다. 듣지 못한다고 그 외의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2만 헤르츠가 넘으면 초음파라고 합니다. 박쥐는 초음파를 듣습니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 스펙타클은 380나모미터에서 780나노미터 범위의 빛입니다. 그렇다고 적외선과 자외선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돌고래는 자외선을 느낍니다.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도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면 볼 수 있습니다. 멀어 볼 수 없는 것도 망원경을 통해 보면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태도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집 떠난 탕자가 위기 앞에 아버지께로 가서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위기가 다가 오면 주님 앞으로 돌아 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2. 위기 때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받은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가족들에게 네 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고 합니다. 둘째는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말합니다. 세속적인 삶의 스타일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지고 합니다. "버리라. 깨끗하게 하라. 바꾸라.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6-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고 하시니 야곱은 3절에서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면서 단어 하나 틀리지 않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 하였고, 6절에는 그대로 실행하였습니다.

가족 식구인 자식들은 어떻게 합니까?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아버지에게 내어놓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 버립니다.

즉각적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잘 알기 때문에 늘 불신앙과 불순종을 조장하여 인간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야곱이 당한 위기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불순종에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처방전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그 단순한 하나님의 처방전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준점이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권위를 너무나 우습게 여기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도, 부모의 권위도, 선생님의 권위도 이미 땅에 떨어졌습니다. 순종의 가치가 퇴색된 시대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을 미개인 취급하는 시대입니다. 창의성과 자율성, 개성을 살리는데 순종은 독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순종하면 위험한 것이고, 순종하면 손해를 보고, 순종하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제 수직적 권력의 시대는 지났고 수평적 권력의 시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너나 나나 똑같은 인격체인데 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순종은 수직적 권력의 시대에 맞는 옷이지 수평적 권력의 시대에는 구시대에 유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직은 질서와 성과와 조화가 필요하고 질서와 성과와 조화를 위해서는 순종은 필수적입니다. 물건은 설명서대로 사용해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설명서 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진정한 복을 잃었습니다. 위기를 당할 때 롯의 처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명령을 불순종하고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노아 홍수 때 구원받지 못하고 심판 받는 자들은 다 순종치 않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3:20).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거꾸러진 것은 불순종 때문입니다(민14:26-39). 사울이 위기를 당할 때 순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해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고 말씀합니다. 순종 교육은 모든 교육의 기본이고, 인성 교육의 근간입니다. J.S. 밀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선은 순종 속에 포함되어 있다."라고 말했고 H. 자일스는 "진정한 순종보다 더 거룩한 것이 없고, 더 고상한 원리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딤전3: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를 세울 때 자격을 말씀하시면서도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딛1:6)"라고 자녀 순종 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라고 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지도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 그 자체가 최고의 성공이고 순종이 최고의 복이며, 순종이 최고의 섬김입니다. 순종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롬6:17)" 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30: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해되고 길이 보여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고 길이 보이지 않아도 위기 앞에서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면 길은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위기가 다가오면 무엇보다 우선 순위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 성공이고, 순종이 형통이고, 순종이 거룩이고, 순종이 회복이며, 순종이 행복입니다.

 

3. 위기 때 전화위복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야곱의 가정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야곱의 가정은 네 가지 면에서 전화위복의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야곱가정의 위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첫째 아버지 야곱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뒤꿈치를 잡다, 빼앗다' 혹은 '약탈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탐욕의 노예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얍복강 가에서 바꾸어 주었습니다. 창32:28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8)"라고 말씀합니다. 그 삶과 신분과 인격에 극적인 변화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우세하다', '싸우다', '왕비'라는 뜻의 '사라'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의미하는 '엘'이 결합된 형태로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벧엘 언약(28:10-15)에 근거하여 야곱이 실질적 언약의 후계로서 하나님에 의해 정식 비준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실제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명목적 신앙에 머물렀습니다. 이름과 걸맞은 자리가 가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세겜에서 세상 사람과 비슷하게 살았습니다. 아니 더 악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한 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살인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목사가 목사답게 살지 않으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아버지가 아버지 자리에, 어머니가 어머니 자리에, 자식이 자식 자리에 있지 않으면 얼마나 콩가루 집안이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 다시 야곱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위기를 통과한 후 하나님은 야곱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9절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마엘이라고 부르시면서 축복을 해 주십니다. 야곱 자신이 복을 받았습니다(9). 그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11-12). 많은 국민이 그에게서 나되 종 될 사람들이 나는 것이 아니라 왕될 사람들이 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해 주시는 분은 힘이 없은 인간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11).

 

둘째 영적 리더십이 제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아버지에게 내어 놓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 버립니다. 위기가 왜 찾아 왔습니까? 아들들이 아버지의 영적 리더십을 무시합니다. 딸 디나가 겁탈 당했을 때 아버지에게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습니다. 아들들이 아버지 역할을 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살육하고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철부지 아들들이 일만 벌여놓고 수습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이 위기를 아버지가 신앙적으로 해결합니다. 아버지의 영적 권위, 영적 리더십이 회복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있을 때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하나님 자리에 서 있게 되신 것입니다.

5절에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면 고을을 두렵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보호자, 하나님이 가정을 지켜 주시는 자로 서 계신 것입니다. 아무도 추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야곱은 철저히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으려는 자여였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자권을 탈취하였습니다(창25:27-34). 자기가 좋아 하는 아내를 얻기 위하여 7년 동안 무료 봉사할 정도로 집념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갖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계산적인 사람입니다. 형을 만날 때 형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세 편으로 나누어 사람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를 통하여 완전히 변했습니다.

욕심의 노예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창세기 43장 1-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큰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식을 조금 사오라고 합니다. 자기만 위하는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물질에 대한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남 생각하면서 탐심이 없었졌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창세기 43장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므온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다 하나님께 맡겨 버립니다.

세상의 소망 보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소중히 알고 현재의 일보다 미래의 일에 더 깊이 생각하며 살았습니다(창49:18). 야곱은 죽음 앞에 자식들을 축복하며 유언을 합니다. 그 때 “여호아의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넷째는 예배가 제자리에 온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벧엘에 이르러 거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난주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만에 만난 몇 분의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청빙을 받아 설교를 했는데 한 교수님이 진짜 목사님이 오셨다고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답니다. “왜 내가 진짜 목사님이냐”고. 그러니까 대답하시기를 12시 정각에 끝내 주어 진짜 목사님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께서 지금 한국 교회에 가장 시급한 것이 예배 회복이라고 계속 강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고문으로 생각합니다. 기도를 고문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야곱의 가정에서 예배는 고문이 아니었습니다.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예배가 지루함이 아닙니다. 6절을 보십시오. 루스가 벧엘이 됩니다. 루스는 떵 빈 땅입니다. 공허한 곳입니다. 사막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예배들 드리면서 엘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제단 중심의 생활을 합니다(창45:28-46:1)

어떤 위기일지라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위기의 가정을 회복해 주심을 통해 하나님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신분에 걸맞는 왕자 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왕되신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 삶의 가장 중요한 핵심의 행위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구원받은 교리를 말씀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가장 먼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예수님은 요한복음 4:23에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배드릴 수 있도록 구원해 주셨습니다. 욕망을 발산하고 바알을 숭배하라고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라고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토저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삶의 가장 우선순위는 예배라는 것입니다.가정의 위기는 예배의 위기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자는 돈 있는 자, 권력있는 자, 아름다운 자, 실력 있는 자보다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우리는 예배를 통해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1)" 우리는 예배를 통해 새 힘을 받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 8:17)" 우리는 예배를 통해 존귀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7)" 우리는 예배를 통해 진정한 용서를 받고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 55:2-3)" 우리는 예배를 통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고 영혼이 소생함을 누립니다. 사사기 6장24절에는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았을 때 3백 명으로서 모래알 같은 미디안 군사와의 싸움에서 승리 할 수 있었습니다.

대상21:22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니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쳤습니다.

대상21: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픈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34:18)"

예배시간에 나와 삶에 지친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으면 우리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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