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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복을 받는 가정(롬4:16-2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831 추천수:1 220.120.123.244
2019-05-26 04:19:05

 

믿음의 복을 받는 가정

로마서 4:16-22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봄철 대심방을 하였답니다. 하루는 심방 기간에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한 여집사님이 심방 대원으로 참여했답니다. 그날 심방을 받은 집마다 그 여집사님은 심방을 받는 교인 옆자리에 바짝 붙어 앉았답니다. 그런 모습이 몇 번 반복되자 목사님이 그 여집사님에게 물었답니다. "집사님은 매번 심방 받는 교인 옆자리에 앉으시던데 무슨 이유라도 있으세요?" 그러자 "있죠. 축복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 부스러기라도 좀 받으려구요."라고 하더랍니다. 누구나 복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화나 저주나 고난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엘리의 가정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 가정처럼, 아간의 가정처럼 저주를 받기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과 다니엘 가정처럼 복받는 가정이 되길 원합니다. 새해에 가장 많이 하는 인사가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예전에 보면 매일 사용하는 수저에도 복, 이불에도 복, 밥그릇, 국그릇, 베개에도, 요강에도 복 복자를 써놓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허리춤에 복주머니를 차고 다니기도 했고, 집마다 복조리를 달아 놓기도 했습니다. 좋은 인연, 아주 좋은 운수, 큰 행운, 오붓한 행복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도 복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어떤 집에는 복자를 거꾸로 붙여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하늘에게 복을 쏟아달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붙인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받기를 원하는 복이 오복, 즉 다섯 가지 복입니다. 첫째가 장수하는 수(壽)이고, 둘째가 부자가 되는 부(富)이고, 셋째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강녕(康寧)이고, 넷째가 어진 덕을 닦는 유호덕(攸好德), 다섯째가 하늘이 내린 명대로 잘 살다 죽는 고종명(考終命)입니다. 현대적으로 오복은 현대-건강한 몸을 가지는 복, 서로 아끼면서 지내는 배우자를 가지는 복, 자식에게 손을 안 벌려도 될 만큼의 재산을 가지는 복, 생활의 리듬과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적당한 일거리가 있는 복, 나를 알아주는 참된 친구를 가지는 복 등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있어서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복을 받은 가정은 어떤 복을 받은 가정일까요? 복중에 가장 큰 최고의 복은 믿음의 복입니다. 다른 복을 다 받았다고 해도 믿음의 복을 받지 못한다면 참 불행한 사람이고 불행한 가정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으며 천국 시민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장수하고, 부자되고, 학식이 있고, 출세하면 복받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보면 믿음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볼 때는 왕가이 사울 가정이 대단한 가정이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믿음을 가진 다윗 가정이 복받은 가정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세상 권력을 가진 하만의 가정이 큰 복을 받은 것같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믿음있는 에스더 가정이 복받은 가정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님 당시 왕가인 헤롯 가정이 복받은 가정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결혼하지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홀로 60여년가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믿음을 가진 안나의 가정이 복받은 가정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히11:6)”게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롬14:23)”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은 이 땅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이 있는데 믿지 않으면 결국 다 지옥에 가기 때문입니다. 멀리 보면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이 진정한 복이고, 비록 병들어 살아도 건강하게 살다가 믿음 없이 지옥가는 것보다 믿음을 가지고 천국 가는 것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출세를 못 했다 해도 세상 권세 가지고 교만 떨다 지옥 가는 것보다 세상 권세 없어도 겸손하게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만약 우리 성도님들의 자녀가 이 땅에서 조금 가난하게 살아도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믿음이 없어도 좋으니 부자로 사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물론 믿음을 가지고 부자로 산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둘 중의 하나를 택하여 한다면 저는 가장 우선순위가 믿음을 가지고 사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둘째 딸이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만약 언니가 믿음이 없는데 부자 집 아들과 결혼한다면 허락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단호하게 아무리 부자여도 믿음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가장 보배로운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보면,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보배 중에 최고의 보배가 믿음인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돈으로, 권력으로, 건강으로, 지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를 만나든지 믿음으로 능력을 행하며 고난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질병도 치유받고, 믿음으로 가난도 물리치고, 믿음으로 능력도 행하고, 믿음으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고,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도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정 중 믿음으로 복받은 대표적인 가정이 아브라함의 가정입니다. 1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모든 사람은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인류의 조상은 셋이 나옵니다. 아담이 인류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두 번째 인류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믿는 사람들의 조상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단지 유대인의 조상이 아니라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고 말씀합니다. 1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조상을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조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모범이 되는 조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복을 받은 가정이 어떤 가정인가를 알 수 있는 내용빈다. 믿음의 복을 받은 가정은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1. 믿음의 복을 받는 가정이 되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은 그의 행위나 업적, 공로가 아니었습니다.

행위로 된 것이 아닙니다(1-2)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할례로 된 것도 아닙니다.(9-12) 율법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13-15).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율법이 있기 훨씬 이전이고 할례가 있기 전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19번이나 강조합니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히나카타 카린’은 ‘은혜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라는 말은 후사가 되는 약속이 행위나 할례나 율법으로 얻는 당연한 보상이 아니라 거저 주어지는 은혜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그 근거가 믿음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주어지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명문가의 자식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수24:2)" 아버지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셈의 후예였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 사람입니다. 외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우상 장사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어 선택함으로 믿음의 조상 가문이 된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려고 택하신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빌고, 정성을 다해 발버둥 쳐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것이 아닙니다. 남보다 의롭고, 똑똑해서, 특별한 재능과 조건이 있어 선택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과거 문제로 불행한 가정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죄 문제 때문에 불행한 가정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도 두 번이나 자신의 부인을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첩을 두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특별해서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실수, 잘못, 죄, 시행착오, 실패가 많았습니다. 우리 가정도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부족하다고 불행한 가정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물질이 없다고 지식이 없다고 건강이 없다고 불행한 가정을 만들면 안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는 분명하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믿음의 복을 받은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확신하고 순종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엇 바라고 믿었다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에게 후손에 대하여 바다의 모래 같고 하늘의 별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창15:7; 창22:16-18) 19절을 보십시오. 100세가 되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절망적 상황, 희망이 없는 자신의 몸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라는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해여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에 순종하고 결단하고 모험적 신앙을 가지고 말씀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부름받을 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11:8)”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란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 명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가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스스로 자랑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한 자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가정은 하나님의 진정한 믿음의 복을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아들을 바치라고 하니까 무식한 것같고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인격적인 것 같지만 그냥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 믿음입니다. 말씀에 따라 순종하지 못하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고 가짜 믿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순종이 없으면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순종하는 만큼 축복받는 그릇은 커지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어서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신28:1-14). 예수님을 믿어도 적당히 믿고, 순종하지 않고, 말씀 따라 살지 않고, 제멋대로 살면서도 복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헛수고가 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떠나라고 말씀하시면, “예”라고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동으로 가라고 하시든, 서로 가라고 하시든, 아들을 바치라하시는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진정 자녀들이 복받는 가정을 만들기 원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을 만들도록 어릴 때부터 순종 교육을 시키시길 바랍니다. <자녀의 미래를 사라>의 저자 존 S. C. 애보트는 "아이를 양육하는데 있어서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 가장 우선돼야 할 과제이다. 다스림의 원리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부모의 모든 명령에 아이들이 순종하도록 하고 절대 부모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게 원칙을 세우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순종하는 믿음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순종하는 믿음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입니다. 심장이 뇌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허파가 뇌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면 호흡이 멈춥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아담의 가정은 진정한 복을 잃었습니다. 롯의 가정의 롯의 부인은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명령을 불순종하고 소금기둥이 되어 불행한 가정이 되었습니(창 9:26). 노아 홍수 때 순종치 않은 가정들은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벧전3:20).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거꾸러진 것도 불순종 때문입니다(민14:26-39). 자녀들이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면 가정에서 복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들이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가정도 복을 받고, 교회도 복을 받고 회사도 복을 받고, 국가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수도사가 되겠다는 두 사람이 수도원을 찾아왔답니다. 그때 프란체스코가 마침 배추 모종을 심고 있었답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배추를 거꾸로 심어라” 한 사람은 프란체스코의 말대로 순종했답니다. 또 한 사람은 “말도 안 된다.”라며 제대로 심었답니다.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사로 입문하게 되었고, 제대로 심은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냈답니다. 프란체스코는 농사꾼을 뽑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순종을 시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즈음 권위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인간 세상은 사탄이 좋아하는 지옥 같은 세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니까 아들 이삭도 그대로 아버지를 따라 순종하는 가정으로 복을 받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이 진정한 믿음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삭이 그저 순종함으로 농사를 지어 백배의 수확을 하고 이방 사람이 우물을 빼앗아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중에는 이방 사람들도 다 인정해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스쳐 지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의 가정부터 시작하여 성경에 나오는 불행한 가정은 다 불순종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니까 사울 가정이 믿음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고, 순종하지 않으니까 엘리 가정이 믿음의 복을 계속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의 가정은 복을 누리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복을 받은 믿음의 가정은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함으로 복을 누리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3. 믿음의 복을 받은 가정은 결국,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개하면서 마침내 그 믿음이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18절). 믿고 있는 사실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19절). 90세 할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은 상식적으로 100%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오히려 더 강해지는 믿음이었습니다(20절).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불가능이란 시간이 약간 더 걸리는 일뿐이다."라고 말하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음의 복을 받는 백화점의 창시자 워너 메이커는 "이런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믿고 시작한 일을 결과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수단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구원얻는 믿음에서 능력을 행하는 믿음으로 나가면 불가능은 가능의 세계로 바뀌어 버립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구원얻는 믿음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17절 보십시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적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시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끝까지 믿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각자 그 테스트의 기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모세는 40년입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이었습니다. 다윗도 17여년의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끝까지 의심하지 않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보시기 위함입니다. 중간에 의심하고 약해지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믿음의 능력을 실제 삶 가운데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물 위에서 예수님 볼 때 안빠졌습니다. 그러나 물 바라볼 때 빠졌습니다. 베드로 의심합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마14: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마21:21)" 현실적으로 답답하고 25년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징조도 변화도 없다고 포기하거나 세상적 방법을 동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도 세상적 방법을 동원하다 이스마엘을 낳았다가 고비용을 치우어야만 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6)"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마침내 어떻게 되었습니까? 20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22) 이것은 아브라함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에 대하여 요한복음 11장 40절에서 “네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 폭풍 속에서 의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35-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에 견고히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 나옵니다. 얼마나 불행한 가정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받는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을 때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 9:22)"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린 불행한 가나안 여인의 가정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존이여 나를 불쌍이 여기소서" 예수님 대답치 아니합니다. 제자들이 청합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이라고 천대합니다. 예수님께 절하며 간구합니다. 개 취급합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8)”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복받는 가정은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가정이 믿음으로 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를 예수 믿고 변화시키는 JAMA를 설립한 김춘근 교수님이 있습니다.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최우수 교수상도 받아 아메리컨 드림을 실현한 분입니다. 37살의 젊은 나이에 악성 간 경화로 사형선고를 받았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절대 불가능하여 일 년 안에 죽는다는 절망적 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들의 진단에 의하면 간이 완전히 상하여 수술할 수도 없고, 치료가 절대 불가능하니 집에 돌아가서 잘 쉬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2004년 척수 암에 걸렸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질병을 극복하고 37년을 국제경영학 교수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이제는 교수직을 내려놓고 미국을 신앙으로 위대하게 하라는 비전을 품고 전적으로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믿음의 능력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수학적 확률도 자기 암시도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확신하고 요단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확신하고 뱀을 잡는 것입니다. 확신하고 나아만처럼 요단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를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능력입니다. 세계적인 선교단체 YWAM의 총재 로렌 커닝함은 믿음의 본질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이란 아무것도 없지만 필요한 것을 얻게 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믿음이란 어떤 일이 얼어나기 전에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는 것이다. 믿음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기회를 드리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 말고는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문제의 크기도, 돈의 액수도, 어떤 상황도 결코 문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믿음은 벼랑 끝에 서보는 거룩한 도박이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17:20)”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5월 가정의 달 마지막 주일입니다. 5월 가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믿음의 복을 받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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