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시대적 인물을 만드는 산실, 가정(출애굽기2:1-1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300 추천수:0 220.120.123.244
2019-05-12 08:47:21

 

시대적 인물을 만드는 산실, 가정

출애굽기2:1-10

 

5월은 가정을 생각하게 하는 달이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가정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며 효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가정이 시대적인 인물,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산실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정의 질서는 해체되고, 아버지의 권위는 추락하고, 청소년의 탈선, 성적인 타락과 가정폭력, 가정주부의 외도와 가출, 미혼모의 급증과 노인문제 등으로 가정은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심각한 가정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콩가루 집안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워 아들이 말렸답니다. 계속 싸우자 아들이 10층에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어머니도 떨어져 버렸고, 아버지도 살아서 뭐하냐고 떨어져 버렸답니다. 안방에서 엉엉 울고 있던 딸이 집안 식구가 다 투신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같이 떨어져 버렸답니다. 그런데 다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새어머니고, 아버지는 제비족이고, 아들은 비행청소년이고, 딸은 날라리 족이어서 그렇답니다. 가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일찍이 영국의 사회 비평가 존 러스킨은 “인류역사는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가정의 역사”라고 갈파한 후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의 가정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고 한 나라의 생존은 가정의 생존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한 것처럼 가정은 참으로 중요한 기관입니다. <로마제국 멸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본은 강대국 로마가 망한 가장 큰 원인은 가정의 타락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데니스 레인은 "오늘날 국가의 핵심 이슈는 범죄가 아니다. 복지, 보건, 교육, 정치, 경제, 대중매체, 환경도 아니다. 오늘의 이슈는 각 가정의 영적, 도덕적 상태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1. 가정은 생명(영육) 살리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1-2).

과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던 우리나라가 이제 자살률 세계 1위입니다. 흡연율 1위입니다. 낙태율 1위입니다. 출산율 최저도 세계 1위라고 합니다. 가정이 생명을 살리는 가정이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가정으로 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전통가족구조는 해체되었고, 핵가족, 탈(脫) 핵가족으로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가정 깊숙이 스며들어 가족 식구도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 개인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는 부모도, 자식도, 부부도 죽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문을 보니까 경찰 대학을 나온 경찰 간부가 자기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어느 어머니는 보험금을 타내려 입양한 딸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13세 중학생은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하자 공부하라는 아버지 잔소리가 듣기 싫어 아파트에 불을 질러 가족 4명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정석국박사)’논문에 의하면 존속살해는 연평균 50에서 60건 정도고 비속살해는 30에서 40건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영국은 1%, 미국은 2% 정도인데 우리는 5% 정도라고 합니다. 2018년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부모 대상 패륜범죄가 5년간 두 배로 뛰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대법원에서는 낙태죄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1.8‰, 독일 7.2‰, 벨기에 9.3‰인데 우리나라는 15.8‰라고 합니다.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낙태는 연간 최대 50만건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군인 수만큼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생명을 살리는 산실이지 생명을 죽이는 공동묘지가 아닙니다. 모세 때는 국가가 제도적으로 생명을 가정에서 죽이게 하였습니다. 1장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산파와 관련 없이 히브리 여인들이 건강하여 아이를 낳자 어떻게 합니까? 1장 22절을 보십시오. 노예 민족인 유대인의 수가 증가되는 것을 두려워한 바로가 사내아이를 낳으면 강물에 던지라고 모든 백성들에게 어명을 내렸습니다. 절대 군주 치하에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 메시아를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전략이었습니다. 유대인 남자들을 다 죽이면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한 여인의 후손에서 태어날 메시아는 이 땅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덴의 가정은 완벽한 조화와 교제, 그리고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간교한 사탄이 하나님과 그 완벽했던 창조물에 대항하여 최초의 가족을 최초로 공격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만 섬기며 행복하게 사는 하와를 유혹하여 아담을 범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아들 가인으로 하여금 동생 아벨을 죽이게 하였습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사탄은 어떻게 하든 가정을 파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생명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숭배자요 오늘날 뉴에이지운동의 기초를 놓은 영국 출신 엘리스 베일리(1880∼1949)는 죽기 전 사회 각분야에서 하나님을 추방하는 <10가지 플랜>이라는 책을 냈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 가치체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노인보다 어린이를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10가지를 요약하면 이렇답니다. 이것은 오늘날 각국 의회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과 아주 유사합니다. 기독교의 전통을 말살하고 가정을 파괴하려는 정책입니다. 첫째,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하나님과 기도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커리큘럼을 변경시켜서 기독교 문화의 속박으로부터 아동들을 해방시키라는 것입니다. 둘째, 아동들에 대한 부모의 권위를 축소시켜라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의사소통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신들이 지키는 기독교적 전통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못하게 함으로써 부모의 전통이라는 속박으로부터 아동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아동권리를 과잉되게 신장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인권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교사가 아이들을 바르게 지도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딸에게만 설거지하라고 하면 차별금지법으로 고발하라는 문화입니다. 체벌도 폐지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셋째, 기독교적 가정 구조를 파괴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문란을 조장하여 젊은층들로 하여금 혼전섹스를 유행시키고 프리섹스 하게하고 섹스를 즐기는 쾌락이 인생 최고의 기쁨이라고 미화시키고 장려하라는 것입니다. 광고 산업, 미디어-TV, 잡지, 영화 산업을 이용하여 섹스하는 쾌락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부추기라는 것입니다.

넷째, 프리섹스 사회를 만들라. 낙태를 합법화하고 낙태하기 쉽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학교 안에도 진료소를 만들고 한 여성이 임신을 원치 않는다면 그녀는 고통 없이 가능한 용이하게 그 임신을 지워버릴 자유를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다섯째, 이혼을 쉽게 만들고 합법화하라. 평생결혼의 개념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동성애를 대체 생활방식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일곱째, 예술의 품격을 떨어뜨려라. ‘미친 예술’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덟째, 미디어를 활용하여 반기독교적 가치를 선전하고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꿔라는 것입니다. 아홉째, 종교통합운동을 일으키라. 종교다원주의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열째, 각국 정부가 이러한 내용을 법제화하고 교회가 이런 변화를 추인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슬금슬금 이런 것들이 법제화되어 가도 있고, 가정과 교회는 서서히 끓는 그릇에 놓인 개구리처럼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생명을 살리는 산실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악마적 영향권에서 자녀들의 영적 생명을 지켜 신앙적 생명을 살리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죽이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해야 합니다. 자식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죽이고, 세상 출세만 위해 사탄의 손아귀에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취할 수 있도록 영적 생명을 살리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자식을 죽이려는 세력 앞에서 어떻게 모세를 지켜냅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모세를 숨겼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원어로는 “토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연과 인간을 창조하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단순히 아들이 잘 생겨서 숨기었겠습니까?

사도행전 7장 20절에서는 그 이유를 조금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행 7:20)” 하나님 시각으로 자식을 바란 본 것입니다. 자식을 단지 물건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선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이 고귀하게 여기는 생명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비록 죽는다하여도 모세를 살리려고 했습니다. 심히 두려운 일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히11:23)”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가 믿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사탄의 손에 놀아나는 세상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모세를 살린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믿음에 있고, 믿음으로 키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겨 준 귀중한 선물인 것을 알고 바로를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모세의 생명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험악한 세상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낸 자녀이므로 비록 장애를 가졌다고 해도, 비록 다른 아이에 비해 아이큐가 둔하고, 비록 외모가 부족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가장 고귀한 생명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영적 생명을 잘 지키는 산실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이미 하나님께서는 창15:13-14절에서 400년이 지난 후 해방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 사명을 성취하는데 모세와 그 가정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민족을 해방하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아무리 나쁜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어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독특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신묘막측함으로 태어났습니다. 모세는 살려고 태어난 사람이고 백성을 살리려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민족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이미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만약 부모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면 결코 모세는 새 시대의 위대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기를 때 나쁜 환경이라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환경의 제물로 아이들을 바쳐서는 안 됩니다. 도저히 기를 수 없는 환경이라고 자식을 미리부터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와 몸통 그리고 발가락이 두 개뿐 닉 부이치치를 보십시오. 그는 지금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 세계를 다니며 행복을 전하는 행복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 내에서 죽였다면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그는 이 땅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를 보십시오. 장애인으로 정상인도 어렵다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합니다. 강연장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손을 번쩍 들어 주먹을 꽉 주라고 주문하면서 "You can do it" 선창하면서 따라 하게 합니다. 내 가정 환경이 나쁘다고 아이들까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노예의 아들이지만 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 노예를 해방시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시련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 오경을 기록하였습니다. 루터 아버지 광산 노동자였습니다. 김활란 박사의 어머니는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양잿물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려고 한 사람입니다. 링컨은 너무 가난하여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꼭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야만 시대의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망치게 하는 것은 내게 주신 아이들을 죽이는 일입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아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새생명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가정은 사람을 죽이는 곳이 아니라 살리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가정을 자녀가 영적 새 생명을 가지게 하는 산실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새 시대의 주역으로 우리 아이들이 가정에서 살아나기를 원하십니다.

 

2. 가정은 한계 앞에서 생명(영육)을 하나님께 맡기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3-10).

모세의 부모는 모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아와 여아의 울음소리를 구별하기 힘든 석 달까지는 어떻게든 집안에서 모세의 생명을 보호했습니다. 매일 매일 초조와 긴장, 두려움이 감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집 안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거룩한 은익에 한계를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이것인 우리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부모이지만 자녀들을 기른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일강에 아이를 띄울 것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방치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은 너무나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자식만은 내 계획과 내 뜻대로 꼭 해야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자식과 건강은 내 마음대로 되는 영역이 아닌 것을 우리가 살면서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나의 경제, 나의 능력, 나의 지혜가 부족하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가정은 믿음으로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긴 결과 모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때 마침 바로의 공주가 목욕을 하러 나왔습니다. 바로의 무남독녀 외딸입니다. 법적으로 왕위 계승자입니다. 그런데 바로의 공주가 그곳에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입니다. 새 시대의 지도자 모세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애굽 왕실의 화려한 왕실의 목욕탕을 놓아 두고 그 시간에 처녀인 공주가 모세가 있는 나일강으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맡길 때 이루어지는 맡기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로의 딸이 목욕도 하기 전에 모세를 발견합니다. 목적이 지금 모욕하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발견한 것입니다. 열어 보니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히브리인의 아이는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인 아이인 줄 알면서도 죽일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살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맡긴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세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때 미리암이 뛰어 갔습니다.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해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공주는 허락했습니다. 그러자 미리암은 자기 어머니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삯을 받고 아이에게 젓을 먹였습니다(9). 자기 아들을 돈받고 젓먹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맡기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한나를 보십시오. 사무엘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민족지도라도 성장하였습니다. 아이들의 사고는 부모 앞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맡긴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가? 아이가 자라기까지 어머니는 모세를 길렀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머니가 믿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 어머니 품에서 자라게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맡기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프뢰벨은 “아이는 다섯 살까지 일생동안 배우는 전부를 배운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과장되기는 하였지만 그만큼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때 모세가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지 않고 애굽 왕실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소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민족의식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유아들은 생후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낯을 가리기 시작합니다. 낯선 사람들을 보았을 때 느끼는 불안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유아들은 믿을 만한 친숙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안정이 됩니다. 맼아담스(D. P. McAdams)는 유아들이 애착되는 이 시기에 애착이 안정적으로 되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에 따라서 삶의 기본적인 이야기 음조(narrative tone)가 달라진다고 주장합니다. ‘이야기 음조’란 생후 2년까지의 아동의 삶 속에 만들어진 인생관이 성인기의 삶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그때 한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인생의 이야기로 써 내려가고 어떤 사람은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이야기를 그려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때 자기(self), 타자(other),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신뢰 대(對) 불신, 전진 대(對) 철회 가운데 하나의 기본적 입장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릭슨(E. H. Erikson)은 ‘기본적 신뢰 대(對) 기본적 불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모세의 어머니의 영향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기르기 위한,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를 당시 최고의 교육인 애굽의 궁중 교육, 세속 교육을 시키기 전에 어머니 밑에서 신앙 교육을 받게 한 것입니다.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모세가 민족의식을 갖고 일생을 좌우할 신앙 교육을 받은 때는 바로 이때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맡겨야 합니다.

요셉을 새 시대의 인물로 만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십시요. 형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유다가 도와줍니다.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 누명을 쓰고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그를 죽여야 할 그의 남편 보디발이 그를 도와줍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가서 죽지 않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를 도와줍니다. 결국, 사명을 이루어 냅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은 라합이라는 여인을 가나안 땅에 세워 두셨습니다. 바울과 276명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보블리오를 세워 놓았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방인들과 이방 임금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도들이 그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담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사람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나바를 통해 그를 세워줍니다. 가는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와 사명을 이루도록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사람은 생명까지라도 바쳐 그를 도우려고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성장하는 데는 여러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가정은 하나님께 맡기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3. 가정은 최악의 상태에서 최선을 만드는 생명(영육) 훈련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성장한 모습을 히브리서11장 24-25절에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이런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민족 지도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포로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가정에서 어머니의 교육에 있었습니다. 모세의 가정 교육은 40년 세련된 왕궁 교육 보다 더 큰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최악의 상태에서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식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3절을 보십시오. 강대 상자를 가져다가 물이 들어가 죽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합니다. 떠내려가지 않도록 갈대 사이에 둡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만약을 대비하여 누이를 통해 멀리는 감시하게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딸을 통해 바로 유모를 찾게 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여 모세를 어릴 때 기르게 합니다. 자랄 때까지 어머니가 기른 것입니다. 최악의 상태에서 최선의 믿음의 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라고 하나님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맡긴다고 해서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에는 지혜가 따라야 합니다. 지혜 없는 믿음은 맹신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지혜입니까? 최악을 최선으로 바꾸는 지혜입니다. 구체적으로 자식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모세 어머니의 이런 지혜로운 믿음의 행위가 없었다면 모세는 이 땅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방신을 섬기는 애굽 문화에서 절대 배울 수 없는 것을 품 안에 있을 때 조기 신앙 교육을 시켰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강구한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반기독교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이라고 해도 우리는 가정을 자녀 신앙 훈련의 산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길버트 비어스(아장아장 성경의 저자)는 말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3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태어나서 세 돌(3세)까지'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첫 3년 동안 인생의 기초가 되는 모든 것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카고 대학의 벤자민 부른(Benjam.S.Bloon)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지능은 4세까지 50% 그리고 8세까지 80%가 발달하고 지능의 이러한 발달에는 환경의 적응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엘릭슨(E.Erkson)같은 학자도 "아동기의 경험이 성인기까지 확장된다"고 말합니다. 뇌의 90%는 3세 전에 형성된다고 합니다. 성격의 85%는 6세가 되면 이미 형성된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세상에 자녀를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뇌는 생후 3년 동안 뇌세포 간에 연결망을 구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는 태어날 때 1천억 개의 신경 세포와 50조 가량의 시냅스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 시냅스가 뇌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생후 3년 동안 천억의 만승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시냅스는 자극이나 경험이 들어오면 늘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생후 3년 동안 어떤 자극을 받고 어떤 경험을 받느냐에 따라 뇌의 기본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3년 동안 뇌에 저장된 것이 무의식이고 우리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성격과 기질이 되고 3년 동안 애착이 형성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안정된 삶의 기반을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가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뇌의 감정을 지배하는 변연계라는 부분이 형성되는 시기는 1세부터 3세까지라고 합니다. 생후 3년까지는 고도의 정신 활동을 담당하는 대뇌가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전인적 성숙과 성장, 학습에 있어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지적, 생물학적, 사회 정서적 발달이 잘 될 수 있도록 때를 놓치지 않는 적기 조기 교육이 중요합니다.

이때 어머니의 역할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젖떼기 전까지 품에 안고 신앙 교육을 시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듭니다. 모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3세 전까지 어머니 품에서 신앙 교육이 중요합니다. 유아 때부터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 아이를 맡기지 말고 어머니가 진실한 신앙으로 신앙을 계승해 주어야 합니다. 같이 예배에 참석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찬양 부르고, 같이 말씀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기 3년이 앞으로 40-50년의 중요한 인생 방향과 삶의 질을 결정해 줍니다. 조기 신앙 교육은 아이들에게 신앙 계승을 시키는 비결입니다.

 

조기 교육의 원조인 칼 비테 목사의 아들 주니어 칼 비테가 <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조기 교육 이론서로서 지난 200년 동안 영재교육의 "경전"으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책입니다. 칼비데 목사의 소신 중 하나는 아버지로서의 첫 번째 임무는 자녀를 위해 좋은 엄마를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중요시 한것은 태교였습니다. 시골 목사님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52세에 Jr. 칼 비테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9개월 만에 태어난 조산아로 목에 탯줄을 감고 나와 발육 부진에, 잦은 병치레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 판정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저능아가 어떻게 천재가 될 수 있느냐며 쑥덕거렸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사람들 말에 휩쓸려 자신의 의지를 굽힌 적이 없었답니다. 조기 신앙 교육을 시켰습니다. 9세 무렵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답니다. 9세 때 프로이센의 괴팅겐 대학에 입학했고 13세에 기젠 대학으로부터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6세 때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 후 많은 업적을 남겼고 1883년 83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국왕의 뜻에 따라 독일의 각 대학에서 법학 강의를 계속했습니다. 칼 비테 목사의 조기 교육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이 조기 신앙 교육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과 세 친구는 조기 신앙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부모와 떨어진 채 이교도의 나라에서도 세속 문화에 세뇌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는 '가능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주 이상적으로 성장해서 100이라는 수치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이 아이는 100의 가능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100의 가능 능력을 갖고 태어난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방치해두면 20이나 30 정도의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밖에 자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교육을 잘 시키면 60이나 70%, 때로는 80내지 90%의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도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가능 능력에는 '체감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0 정도의 가능 능력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태어났을 때부터 이상적으로 교육시키면 아이는 100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지만 다섯 살 때부터 교육을 시키면 이상적으로 잘 교육시켜도 80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밖에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열 살 때부터 교육을 하면 아무리 이상적으로 교육을 시킨다 해도 60 정도의 능력밖에는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교육을 시작하는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어린아이가 갖고 태어난 가능 능력의 실현 비율은 낮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피아노는 다섯 살, 바이올린은 세 살 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로 심오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그 발달 시기에 발달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씩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4차 혁명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 시대 새 인물로 쓰임받은 모세처럼 우리 자녀들을 새 시대에 씀임받는 신앙의 인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녀를 최선을 다해 교육시키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유학도 보내어야 합니다. 넓은 세계에서 공부하게 하여 새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옆으로는 사람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아이들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녀를 새 시대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가 편안함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픔을 감내하고 아픔 앞에 주저 앉아서는 안 됩니다. 아픔의 상자를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아픔은 인생의 길이보다 길지 않습니다. 세속의 물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억척을 부려야 합니다. 모험심이 있어야 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모험심도 용기가 생깁니다. 최선을 다하는 지혜를 동반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전략이 없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면 안 됩니다. 신앙과 지혜는 충돌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의 틀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자녀에게 지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지식의 도구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시각을 넓혀 내 아이만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을 교회 공동체의 아이들을 모세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 세속적인 물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민족을 구원시키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도록 열정을 가지고 보호하고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가정은 믿음으로 최악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산실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5.12.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