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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신앙생활(11) 염려와 싸움(빌립보서4:6-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865 추천수:3 220.120.123.244
2019-03-17 13:34:50

 

승리하는 신앙생활(11) 염려와 싸움

빌립보서4:6-9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사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답니다. 매일 혈압과 혈당을 점검하며 소화가 안 되고 거북해지면 혹시 위암이 아닌가 생각하고, 머리가 아프면 혹시 뇌종양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몸 사랑에 집착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텔레비전에 나오는 건강 프로그램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소파에 앉아 시청했답니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보면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너무 심각한 상태가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하여 며느리가 주방에 있다가 시아버지에게 가서 물었답니다. "아버님 왜 그러세요?" "얘야 저기서 얘기하는 게 나하고 증세가 너무 똑같다. 아무래도 내가 저 병에 걸린 게 틀림없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며느리도 '무슨 병인가?'하여 같이 TV를 보게 되었답니다. 방송이 끝나면서 아나운서가 "지금까지 자궁암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늘 염려를 하면서 삽니다. 기독교 상담학자 게리 콜린스라는 “염려는 우리 시대의 공식적인 감정이다”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경우 성인 5명 중 한 명 꼴로 염려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돈에 대한 염려, 의식주에 대한 염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에 대한 염려, 질병에 대한 염려, 죽음에 대한 염려, 사고에 대한 염려, 학업에 대한 염려, 대인관계에 대한 염려, 가족에 대한 염려, 대기 오염에 대한 염려 등 죽을 때까지 염려와 싸우며 살아갑니다.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혹시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을까, 혹시 실직하지 않을까, 혹시 시집을 못 가면 어쩌나, 혹시 학교 간 애가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하나.” 안절부절 못합니다. 쉽게 피로해집니다. 정신 집중이 안됩니다.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근육이 긴장합니다.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끝없이 염려와 싸움을 하고 삽니다. 아마 그중 가장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염려가 건강에 대한 염려일 것입니다. 미국 속담 가운데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현대인들은 실제적으로 건강 자체의 문제보다 건강을 염려하는 것 때문에 건강에 커다란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셉 몬테이그 박사는 “우리가 음식 때문에 위궤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좀 먹는 염려 때문에 위궤양에 걸린다.”고 주장합니다. 포돌스키(Edward Podolsky)는 염려는 우리 몸의 유익한 인자들을 죽이고 독성 인자들을 높여서 정신질환과 고혈압, 심장병, 위장병 등과 같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염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 인자까지 죽여서 각종 암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게 한다고 말합니다. 미리 걱정해 두면 위험하지 않은 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걱정이 많을수록 잘못된 길로 빠지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신앙인이지만 염려와 평생 싸우며 삽니다. 어떻게 하면 염려와 싸움에서 승리하고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염려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비법을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1. 염려와 싸워 승리하려면 염려는 심각한 죄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라는 것 하지 않고 하지 말라하는 것을 하면 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과 같은 명령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기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염려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염려와 부정적인 염려입니다. 창조적 염려와 파괴적 염려입니다. 순기능적 염려와 역기능적 염려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에는 염려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7장 34절서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28절에서는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일을 위한 염려, 교회를 위해 염려는 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2절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딤전 3:7절에서는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염려는 창조적인 염려입니다. 신앙적인 염려입니다. 영적인 염려입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염려입니다. 염려로 준비하게 하고 위험을 예방하고 만약을 대비하여 조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방어와 준비를 하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염려는 잘 하지 않습니다. 죄가 되는 쓸데없는 염려를 많이 합니다.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파괴적인 염려를 많이 합니다. 파괴적인 염려는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정적인 경험입니다. 둘째는 부정확한 미래입니다. 셋째는 부정적 상상(가정)입니다. 염려는 반드시 세 가지 "불"을 가지고 오게 되어 있습니다. "불안, 불익, 불신"입니다. 쓸데없는 염려를 하면 만성적으로 신체적 스트레스를 받고, 사고력은 감퇴하고,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성취도도 떨어지고 학습능력을 저해하고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시킨다는 것입니다. 과장성 망상성에 시달립니다. 염려는 영적인 무기력증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염려는 전염성이 강해 주변 사람에게 염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지나치면 초조해지고, 긴장하고 심하면 우울증에 걸리게 합니다. 염려는 평안과 행복을 빼앗아 가는 마음의 독약입니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 약화시킵니다. 소화불량, 신경쇠약, 궤양, 두통, 발진을 일으키게도 합니다. 초조해지고 숨이 가쁘며, 잠을 못 이루고, 쉽게 피곤해하며, 식욕을 잃게 만듭니다. 소심하게 되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됩니다. 쓸데없는 염려는 백해무익합니다. 위장병의 80%가 신경성에서 유발된다고 합니다. 류마티스 관절염도 염려와 걱정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이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라고 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서는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골다공증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염려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염려는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염려라는 낚싯줄을 사용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사단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 몇 가지를 경매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 물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증오, 질투, 거짓말, 교만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 아주 높은 고가의 물건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사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염려입니다.” 염려가 왜 최고의 가격으로 매겨져 있습니까‘ 그러자 사탄이 말하기를 "이 염려는 가장 오래도록, 가장 많은 사람을 쓰러뜨린 효과적인 무기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단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염려하도록 만듭니다. 위장에 구멍이 뚫리도록 염려하게 합니다. 염려에 익숙해지고 중독이 되도록 만듭니다. 파괴적인 염려는 사단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대적 사단은 성도의 염려를 먹고 삽니다. 범사에 염려하면 사단은 승리의 춤을 춥니다. 우리는 염려는 불신앙의 죄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뮬러는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종말이며, 참된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종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갈 때 폭풍으로 배에 물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염려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염려하는 그들을 향하여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누가복음 8:25)”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염려의 근본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염려는 마음에 질병을 가져다 주는 죄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하다(μεριμνάω)’는 말을 성경원어에서 보면 ‘쪼갠다, 갈라낸다(μρίζω)’는 말과 ‘마음(νοῦς)’이란 말이 합쳐서 된 말입니다. “나누다. 목을 조르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염려는 우리 마음을 나누어 번민하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갈등하게 합니다. 염려는 보이지 않는 줄로 신앙인의 생명줄을 서서히 조이는 것입니다. 염려는 염려의 상황을 결국 만들어 가는 죄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 3:25)”

심리학에서는 건강염려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 방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때 사용하는 방법이 "그만"이라고 외치는 것보다는 "나는 정상이야!" "나는 질병이 없어! 전문가인 의사가 건강하다고 판정을 했잖아!"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 등의 문장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외치라는 것입니다. 건강에 대해서 지나친 염려가 발생될 때마다 부정적 인지와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서 스스로 거부해야 염려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비 좀머(Bobbe Sommer)는 CRAFT 요법을 주장합니다. 첫째 Cancel(중지: 오래된 부정적 사고의 중지) 둘째는 Replace(대치: 새로운 긍정적 사고로 대치) 셋째는 Affirm(확인: 새로운

자기 상의 확립) 넷째는 Focus(초점: 성공적 자기 상의 초점 수립) 다섯째는 Train(훈련: 새로운 태도와 행동으로 훈련)입니다.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치료방법인데 커다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해야 할 것이 염려를 중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2. 염려와 싸워 승리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가 죄라는 사실을 알고 염려를 않한다고 자동적으로 염려 거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염려 거리는 존재합니다. 방 안에 있는 오물을 내가 치울 수 있으면 치워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당장 능력의 한계 때문에 내가 치울 수 없는 염려 거리가 있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염려와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오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단지 "염려하지 말라"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염려 거리를 가지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영국의 스펼젼 목사님은 말하기를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차라리 10분간 기도하는 편이 좋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라는 말은 예배하고 경배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포함합니다. 염려 거리가 생기면 염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염려로 오히려 하나님께 나올 때 염려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나는 불임이라는 염려 거리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술취한 여인처럼 기도한 것입니다. 힘없는 다윗이 골리앗이란 염려 거리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병 환자가 나병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이 혈루증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간구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진솔하며 진지하게, 애절하게, 절박하게 나의 염려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하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 행복하다>라는 책을 쓰신 유정옥 사모님은 경기에 임할 때 대진표를 바꾸면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소년 다윗 대 골리앗 장군으로 하면 누가 보아도 다윗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대 골리앗 장군으로 대진표를 바꾸면 누가 보아도 골리앗이 진다는 것입니다. 양치기 모세 대애굽의 바로 왕으로 하면 누가 보아도 모세가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대 애굽의 바로 왕으로 대진표를 바꾸면 누가 보아도 바로 왕이 진다는 것입니다. 사모님은 자신의 이름을 빼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정옥 대 말기 암하면 누가 봐도 유정옥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대 말기 암으로 대진표를 바꾸면 누가 봐도 말기 암이 진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염려의 코드를 기도의 코드로 바꾸는 것입니다. 피할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하여 염려의 방법보다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의 먹구름를 통과하면 찬란한 태양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염려 거리가 생기면 원망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 염려 거리 때문에 더 큰 사람 만들고, 더 큰 믿음 주고, 더 큰 하나님 체험 간증하게 그 문제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염려의 오물을 기도로 날려 버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를 죽이려는 음모를 다니엘이 알고 있습니다. 염려거리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단 6:10)"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문제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체를 맡기는 것입니다. 문제만 맡겨 놓고 또다른 염려는 하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 전체를 맡겨버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37:5)"신다고 말씀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복잡한 문제가 있으면 복잡할수록 여호와께 맡겨야 합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 17:7-8)"

 

3. 염려와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생각을 복음적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이 즉각 응답해주시면 염려의 문제는 끝이 납니다. 그러나 바로 응답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도할 때는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했는데 현실은 염려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또 염려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생각의 문제입니다. 극도의 부정적 인식과 비합리적 사고구조가 만들어 내는 것이 염려입니다. 학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비합리적 사고의 구조에는 크게 '임의적 추론(arbitrary inference)' 또는 '선택적 추상화(selective abstract)'라고 부르는 것과 '극단적 상상' 또는 '부정적 상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임의적 추론 및 선택적 추상화는 충분하고 적절한 증거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일종의 왜곡된 신념으로서 상황에 대한 비극적이며, 파국적 결말을 상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 보다는 특정한 부분만을 선택하여 임의적으로 추론하여 과잉 일반화를 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누군가 음식을 짜게 먹어 위암에 걸렸다고 하면 많은 원인은 무시하고 자신이 과거 짜게 먹은 것에만 초점을 맞춰 자신의 식습관을 염려하다가 위암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신념을 갖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언론에 매일같이 성폭행범 뉴스가 나오면 딸을 둔 엄마는 딸이 늦게 들어오면 자신의 딸도 성폭행 당하지 않을까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학문적 용어로는 "가용성 편향"이라고 합니다. 우리 뇌는 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극적으로 생각하는데 계속 언론에서 성폭력을 말하면 그 사건이 격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 나에게도 쉽게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병적 염려증 환자는 임의적 추론 및 선택적 추상화, 비약적 단정 또는 허구성 일치로 생각의 회로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염려의 생각 회로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어니 젤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염려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 바꿀 수 있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까? 6가지 나와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참됨, 경건, 옳음, 정결, 사랑받을 만함, 칭창받을 만함"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컵에 검은 물을 넣고 아무리 흔들어도 물은 맑아지지 않습니다. 맑은 물을 컵에 넘치도록 부어야 맑아집니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파괴적인 염려 거리가 생기면 이 여섯가지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적 생각입니다. 신앙적 생각입니다. 어둠은 결코 어둠으로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작은 빛이지만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합리적 정서 행동 치료 방법에 ABCDE 이론이 있습니다. 건강 염려증 환자들은 비합리적 신념과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 이론은 비합리적 신념체계의 형성 과정과 동시에 변화의 방법을 알려주는 이론입니다.

A(activating experience or event)는 촉발적 경험이나 사건 또는 선행 사건(antecedent)을 의미합니다.

B(belief system)는 신념체계입니다. 신념체계나 사고방식은 선행 사건을 통해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증 환자는 비합리적인 신념체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C(consequence emotion)는 감정의 결과입니다. 선행 사건에 접했을 때 다분히 비합리적인 태도 내지 사고방식으로 그 사건을 해석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정서적 결과를 말합니다. 이 때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지나친 불안, 원망, 비판, 좌절감, 염려, 걱정, 초조, 분노 등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D(dispute)는 논박을 의미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합리적인 신념이나 사고 또는 상념에 대해서 도전해 보고 과연 그 신념이 사리에 맞고 합리적인가를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사고의 재구성 과정입니다.

E(effect)는 심리적 효과로서 합리적인 결론을 의미합니다. E는 자기 파괴적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철학을 획득하는 것, 자신과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일상생활에 필연적인 불만족을 수용하게 되는 결과를 뜻합니다.

염려의 치료에 중요한 것은 D라는 것입니다. 비합리적인 신념을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 합리적인 신념으로 재구성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스는 염려증을 극복하려면 (1) 변화는 부지런한 실천과 연습의 산물임을 인정하기 (2) 변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으면서 수용하기 (3)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현실을 수용하기 (4)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비난하지 않기 (5) 단기적인 편안함보다는 장기적인 즐거움을 택하기 등을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건강 염려증을 극복할 수 있음은 물론 대개의 신경증으로부터도 회복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학자들의 견해도 참고해야 하지만 말씀을 더욱 처방전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섯 가지는 단순합니다. 내가 염려하고 있는 것이 참된 것인가를 물어보고 참되지 않으면 참된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경건한가를 물러보고 경건하지 않으면 경건한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옳은가 확인해 보고 옳지 않으면 옳은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정결한가 확인해 보고 정결한 생각이 아니면 정결한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만한가 확인해보고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칭찬받을 만한 생각인가 확인해 보고 칭찬 받지 못한 생각은 바꾸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 절망적인 생각, 두려운 생각, 걱정 거리를 복음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좋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을 할 거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마라.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낫는 병인가? 안 낫는 병인가? 낫는 병이면 걱정하지 마라. 안 낫는 병이면 두 가지 만 걱정해라. 죽는 병인가? 안 죽는 병인가? 안 죽는 병이면 걱정하지 마라. 죽는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 거 같은가? 지옥에 갈 거 같은가? 천국에 갈 거 같으면 걱정하지 마라. 지옥에 갈 거 같으면... 지옥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신앙인은 죽음 후의 천국까지 인생 전체를 보는 사고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천국에 갑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염려와 싸움에서 이기려면 부정보다 긍정, 비관보다는 낙관, 소극보다는 적극적 사고구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비합리적 사고구조를 신앙적인 사고구조로 바꾸어 버려야 합니다.

 

4. 염려와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예수님으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여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면 염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됩니까? 여전히 오염물질을 방에서 치우기 전까지는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 더 우리에게 염려와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라는 것입니다. 염려의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고 마음만 바꾸고 방에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그 방에서 떠나던지 오물을 치우던지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문제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문제와 그에 따르는 위험이나 한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선택 사항과 대안 마련을 하는 것입니다. 해결책을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해결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행입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염려만 하고 있으면 홍해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모험적 행동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 앞에서 염려만 하고 여리고 성 앞에서 염려만 하고 있었다면 요단강을 건널 수 없었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번 돌아 안되면 두 번 돌고, 두 번 돌아 안되면 세 번 돌고, 세 번 돌아 안되면 네 번 돌고, 염려의 장벽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일곱 번 도는 것입니다. 질병에 걸리면 염려만 할 것이 아니라 1차 치료받아 안되면 2차, 3차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재발 되면 낙심하고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시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1%로 가능성만 있어도 말씀 붙들고 달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무조건적이지만 우리에게 오는 삶의 축복은 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저주에 대하여(신11:13)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 8복을 보십시오. 조건적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복있습니다. 아무나 복이 있는 것 아니고 심령 가난 그리고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지식에 만족하고 교리에 만족하는 위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부뚜막에 아무리 소금이 많아도 솥에 넣어야 국은 싱겁지 않은 것입니다. 좋은 음식도 먹어야 보약이 됩니다.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됩니다. 굴러온 떡도 먹을 수 있어야 배부릅니다. 기도에 대한 이론을 아무리 알고 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염려와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합니다. 사랑에 대하여 성경 지식을 아무리 배워도 사랑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용서에 대하여 설교를 듣고 주차장을 나가면서 조금 접촉 사고 났다고 멱살잡고 싸운다면 용서에 대한 이론을 아무리 알고 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한 청년백수가 있었답니다. 그는 일하기도 싫어하고 집에서 오직 게임만 하고 만화책만 빌려다 보았답니다. 그의 엄마는 너무도 속이 상하고 자식의 앞 길이 염려가 되어 그 청년을 데리고 교회에 갔답니다. 목사님는 웃으면서 청년백수한테 이렇게 말했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소원하면 응답해 주실 겁니다." 청년백수는 하나님께 이렇게 매일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일하는 것도 싫습니다. 그냥 로또 당첨만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답니다. 청년은 화가 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며 순전히 뻥이야."라고 했답니다. 이 때 장엄한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왔답니다. "복권부터 사거라. 복권도 사지 않고 어떻게 당첨되기를 바라느냐?"

성경을 많이 배우는 것 중요합니다. 많이 아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올해 들어 계속 승리하는 신앙생활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 염려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만 듣고 끝나면 실제 염려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것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5)"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7)" 실행하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순종이 없다면 우리는 성령의 축복을 기대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복음에 의해 지배된다고 해서 모든 걱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기도해 놓고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을 복음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끝내면 안됩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열매가 없습니다. 위대한 사상도 작품도 한 줄 글의 표현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실제 말씀을 붙들고 행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십니까?

9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지키신다는 말은 "수비하다. 경계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삶의 성벽과 망대 주위를 돌아가면서 지켜 주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에 있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활동들은 외부로부터 불안과 근심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가출하여 시궁창으로 돌아다니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 쓰레기통을 돌아다니며 잡다한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그 모든 것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완전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입니다. 이 평강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수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염려가 있습니까? 염려는 죄입니다. 염려가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염려가 있을 때 기도하십시오. 그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기도함으로 끝내지 말고 염려하는 마음을 복음적인 마음으로 바꾸십시오. 그리고 복음적인 삶을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염려는 사라지고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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