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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신앙생활(8) 불가능과 싸움(마가복음9:22-2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678 추천수:1 220.120.123.244
2019-02-24 09:01:40

 

승리하는 신앙생활(8) 불가능과 싸움

마가복음9:22-29

 

어제 어느 신문을 보니까 “30억 개 DNA 뒤져 모든 암세포 '명찰' 찾아내 일망타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3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암에 걸린다고 합니다. 조기에 발견하여 수술만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완치율은 90%라고 합니다. 그러나 암이 재발하여 전이되면 생존율은 10% 이하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새로 개발된 개인 맞춤형 면역항암제 덕분에 완치 불가능이 가능해졌답니다. 내용을 읽어 보니까 94세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이야기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분은 4년 전 흑색종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치료 불가능한 상태였답니다. 이 경우 4~5개월이 평균 생존 기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면역항암제(키트루다, 면역관문억제제, 머크제약) 주사 후 뇌·간 전이암이 사라져 완치되었답니다. 기술의 발달로 DNA 해독 비용이 400만분의 1로 줄어 개인 맞춤형 면역항암제를 투약하면 골수에 사무치는 면역 기능이 생겨 암세포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 약을 투약하면 암세포를 기억했다가 75%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죽인다고 합니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과거에는 치료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해진 것입니다. 불가능도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법칙적 불가능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여러 법칙이 있습니다. 중력의 법칙과 같은 물리의 법칙, 생명은 언제나 생명에서 나온다는 생물속생설과 같은 생물학적 법칙, 물은 수소와 산소를 결합하여 만들어진다는 화학의 법칙, 그리고 수학의 법칙 등 다양한 법칙이 있습니다. 자연법칙은 규칙성과 필연성이 있어 사람이 해를 서쪽에 뜨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롯데월드 123층에 떨어졌는데 제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둘째는 논리적 불가능입니다. 앞뒤가 안 맞아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우리 아들의 아버지인데 우리 아들이 저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동일 시간에 동일 관계 속에서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는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셋째는 경험적 불가능입니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로 인한 불가능입니다. 200년 전에 노예해방은 불가능한 것이었고, 100년 전 여성의 투표권 행사도, 식민지에서 독립운동도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전기나 기차나, 비행기나, 우주선이나 15세기에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달에 가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거나, 다른 도시나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실시간 뉴스로 보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항생제가 발견되기 전에는 많은 질병이 치료 불가능했습니다. 한때 콜레라,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 결핵 등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플레밍, 에디슨, 라이트 형제 등과 같은 불가능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불가능의 벽은 무너지고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이 이런 경험적 불가능과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과거에 할 수 없었다고 과거의 경험에 포로가 되어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단정해버리면 불가능의 장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어제의 불가능이 오늘은 가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경험적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1.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아들이 간질병에 걸린 아버지가 나옵니다. 갑자기 심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땅에 엎드려져 구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이를 갑니다. 때로는 파리하게 질려 죽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반 간질병과 달랐습니다. 귀신이 들려 때로는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아이들 고치기 위해 재산은 허비했을 것이고 가정은 웃을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의학적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지만 치료 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포기해 버리면 불가능과 싸움에서 패전하고 마는 것입니다. “정적 평가의 오류(fallacy of static evalua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벼룩을 유리컵 안에 넣으면, 벼룩은 순식간에 컵을 뛰어넘어 달아나버립니다. 벼룩은 자기 몸길이의 약 400배, 20~30cm를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투명한 유리로 덮어 놓으면 덮개에 머리가 부딪쳐 나중에서 해도 해도 않되니까 스스로 높이를 조절한다고 합니다. 며칠이 지난 후, 유리 덮개를 치우면 벼룩은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뛰어오르던 높이만큼만 뛰어올랐습니다. 더 뛰어오르면 탈출할 수 있는데 스스로 자기 한계를 설정해 놓고 병에 갇혀 사는 것입니다. 큰 어항에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들을 넣어 놓고 중간에 유리벽을 설치합니다.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사는데,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유리벽 쪽을 향해 돌진하지만 유리벽에 부딪쳐 거듭된 좌절을 겪게 되면 나중에 유리벽을 제거해도 작은 물고기를 먹지 못하고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경험상 불가능은 하다고 단정해버리면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공부하는 우리 아이들이 새학년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영어 70점이었는데 올해 어떻게 내가 100점을 맞을 수 있겠냐고 미리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아버지는 불가능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아들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18). 여기에서 포기해버렸다면 불가능과 싸움에서 결국 실패했을 것입니다. 한 번만 더 시도했으면 불가능은 가능하게 되었을 텐데 실패로 끝났을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께 무엇을 요구합니까?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탁했지만 고쳐주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라고 말씀합니다. 100%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첫 번째가 예수님의 능력을 100%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아버지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이 마음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돈이 없어서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없어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불리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했습니다. 자연법칙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필연적으로 적용되지만 경험의 법칙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법칙에는 자연법칙과 인문학적 경험법칙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영적법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자꾸 자연법칙으로 오해하여 왜 나에게는 성경에 나온 사건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느냐고 실망하며 회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인문학적 성공의 법칙도 보세요. 그것이 누구에게나 다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믿고 실행하는 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영적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으면 누구나 다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네 믿음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나 홍해를 가르고 누구나 요단강을 건너고 누구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100% 믿고 실행하는 자에게 은혜로 주시는 기적입니다. 홍해는 모세에게 불가능의 벽이었습니다. 그 불가능과 무엇으로 싸워 이깁니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르치라는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그렇게 함으로 홍해를 갈랐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은 불가능의 벽입니다. 그 싸움에서 여호수아는 어떻게 이겼습니까? 요단강을 건널 때 법궤를 메고 가라고 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100% 믿고 나아갈 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성 점령은 불가능의 벽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성을 돌라고 했습니다. 당시 전쟁 방법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잡고 6일간 성 주위를 돌며 언약궤 앞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양각 나팔과 언약궤, 그리고 제사장들이 전쟁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100% 믿고 하루 돌로 이틀 돌고, 6일을 돕니다. 여리고성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일곱째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돕니다. 제사장들은 양각 나팔을 불었고 백성들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왜 제자들이 불가능과 싸움에서 실패했습니까? 왜 그 아이를 고쳐주지 못했습니까?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그 원인을 명확하게 지적해 주시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물어 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마17:19)" 그 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마태복음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하시길 원하시면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100%의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믿음에는 세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받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는 믿음입니다. 둘째는 능력을 행하는 믿음입니다. 이 아버지처럼 예수님께서 치료시켜 주면 어떤 불가능한 질병도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내가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불가능에 도전하여 백화점 왕이 된 존 워너 메이커는 “이런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믿고 시작한 일을 결과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수단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단정해버리면 불가능의 장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셋째는 지식적인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역사 속에 태어나셨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지식적으로 아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귀신도 믿고 떠는 믿음입니다. 단지 예수님을 역사적으로 아는 믿음입니다. 이론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구원도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불가능과 싸워 승리하려면 구원 얻는 믿음, 능력을 행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절대 회복력(캐런 레이비치, 앤드류 샤테 지음)"의 저자는 15년 가까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회복력에 대하여 연구해 보니까 회복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유전도, 아동기의 경험도, 기회 부족도, 경제적 문제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차적인 장애물은 인지 양식(Cognitive style)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고 양식(Thinking style)입니다. 불가능하다고 단정해 버리는 사고양식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고방식을 바꾸어라. 인생이 영원히 바뀐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맙니다. 권수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라고 불가능에 도전하여 세계 참피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불가능,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가능, 그것은 사람들을 용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의 딸 라이라 알리도 '여자는 권투를 할 수 없다' 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그녀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링 위에서 “'싸워라, 내 딸. 넌 할 수 있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아버지 알리의 말을 믿고 싸웠다고 합니다. 불가능과 싸움은 무엇을 믿고 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알리나 정주영회장과 같이 인간의 신념을 믿는 사람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냅니다.

우리는 단지 인간의 신념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면 불가능과 싸움에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과 싸움에서 매사 시도도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두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들이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하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믿어버리니까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합니다. 사고 구조가 다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 14:8)"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들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불가능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악조건과 나이, 장애, 어려움, 능력의 한계 앞에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는 순간 불가능과 전쟁에서 이미 실패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의 저자 젠 브리커는 두 다리 없이 태어났습니다. 심장도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산부인과 간호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의사는 아기가 곧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친부모는 미국 일리노이주 세일럼(Salem)의 작은 병실에 누운 아기를 보고 충격에 빠져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적 평가의 오류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죽지 않았습니다. 강인한 두 팔로 공중에 매달려 공연을 펼치는 공중곡예사가 됐고 파워텀블링(power tumbling) 주(州)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BBC 등 TV 뉴스쇼에 출연하는 유명인이 됐고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선사하는 강연가가 되었습니다. 젠은 자신을 '불구자'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었기 때문에 오히려 날마다 자신의 몸에 대해 감사했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만약 내가 다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이렇게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기회를 갖지 못했겠지. 내가 못 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믿음입니다. 불가능과 싸움에서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라는 말씀을 믿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불가능과 싸움에서 실패했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집에 들어가 예수님께 조용히 왜 자신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

귀신들리고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만나자 제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지 않고 남아 있는 9명의 제자들입니다. 서기관들과 변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가능의 벽이 다가오면 변론하기를 좋아합니다. 사업이 어려우면 기도하기보다는 직원들끼리 누구 책임이냐고 변론합니다. 사장님 책임이냐 부장님 책임이냐 업무 담당자 책임이냐 따지며 책임추궁을 합니다. 자식의 불가능한 문제를 놓고 부부가 기도하기보다는 변론하다 싸우고 원수가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교회에서도 기도하기보다는 방법 문제를 놓고 서로 변론하다 원수가 됩니다. 아이가 장애인으로 태어나면 부부가 서로 누구 책임이냐고 변론을 합니다. 대부분 심각한 문제는 변론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귀신을 내어 쫓고 불치의 병을 고치는데 논쟁한다고 해결되겠습니까?

"귀신들려 걸린 병이냐? 아니면 자연적으로 생긴 병이냐?"라고 논쟁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부모의 죄 때문에 걸린 병이냐? 자신 죄 때문에 걸린 병이냐?"라고 논쟁한다고 기적이 일어나겠습니까? "예수님은 고쳤는데 왜 목사님은 고치지 못합니까?"라고 논쟁한다고 불가능이 가능해지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 아이를 괴롭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변론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제자들에게 이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을 보십시오.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라고 말씀합니다.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이미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막 3:15).

이 권세를 제자들은 사용해 본 사람들입니다. 6장 13절을 보십시오. "많은 귀신을 쫓아 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기도를 통하여 이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합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교회 모임 중에도 모이면 맨날 토론과 논쟁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변론할 시간이 있으면, 비난할 시간이 있으면, 논쟁할 시간이 있으면, 회의할 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기도해야 불가능이 가능해집니다. 기도는 단지 자기최면이나 정신 수양이나 위약 효과나 심리적 현상이 아닙니다.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모세가 기도할 때 수많은 불가능이 가능해졌습니다. 한나는 기도를 통해 불임이라는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기도를 통해 포악한 권력이라는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를 통해 불치의 병이라는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를 통해 성벽재건이라는 불가능과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를 통해 모든 백성이 죽을 수밖에 없는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뭐 성경에 나오는 인물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실제는 기적은 없다고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법칙(우가야 마사히로)>에 “리틀우드의 법칙”이 나옵니다. 캠임브리지 대학의 저명한 수학자 존 이든저 리틀우드가 주장한 법칙입니다. 그는 ‘기적’이 수학적으로는 1백만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은 누구에게나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였는데 증명과정은 간단합니다. 그는 사람이 어떤 소리를 듣거나 신문을 읽는 등 보통 사람이 행동하거나 경험하는 사건이 매 1초 마다 하나씩 일어난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 8시간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전제했습니다. 이런 전제들로부터 한 사람이 매일 경험하는 사건의 수는 약 3만 건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결국,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경험하는 사건은 약 100만 건이 됩니다. 기적이 백만 건의 사건 당, 한 번씩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앞의 전제에 대입하면 결국 사람은 매달 한 번씩 기적을 경험하는 셈이 됩니다. 따라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기적은 뜻밖에도 일상적인 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 앞에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경험법칙은 자연법칙처럼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엔가는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내가 될 수 있습니다. 응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즉각 응답해 줄 수도 있고, 무응답으로 응답해 줄 수도 있고, 더 좋고 많은 것으로 응답해 줄수도 있고, 기다렸다 응답해 줄 수 있습니다.

 

경제적 불가능이 있습니까? 기도로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조지 뮬러는 ‘5만 번’이나 기도를 통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종근당 창업주 이종근 회장의 어머니는 서대문 영천 시장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함으로 아들을 제약회사의 사장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호텔 왕, 콘래드 힐튼은 80여 개국, 2600여 개의 호텔을 기도로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그의 경영의 첫 번째 원칙은 기도와 믿음의 경영이었답니다. 날마다 교회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후에야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고 기도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마음과 육신의 장애라는 불가능이 있습니까? 기도로 장애의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KBS 장애인 앵커로 선발된 지체장애 1급 임세은씨 이야기입니다. 대학 4학년 때 필리핀에 갔다 교통사고로 가슴 밑으로 신경이 마비되는 ‘경수 손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관절에 뼈가 자라고 근육에 석회가 끼는 합병증까지 생겼답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좌절하고 두려워했답니다. 그러나 교인들과 가족이 자신을 위해 정성껏 병간호하며 기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답니다. 빨리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다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답니다. 기도로 장애라는 불가능과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그는 “장애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며 “하나님께 의지해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정환경이라는 불가능 앞에 좌절하고 있습니까? 기도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의 대가 하워드 헨드릭슨 교수는 필라델피아의 결손가정에서 외롭게 자란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5학년 담임선생은 ‘교도소에 갈 확률이 아주 높은 아이’ 라며 악담까지 했답니다. 그랬던 그가 2013년 2월 20일에 88세로 생을 마감했을 때는 세계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과 가르침에 깊이 감사하며 조의를 표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변한 것은 주일학교의 월트(Walt) 선생님 때문이었답니다. 그 선생님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던 13명의 아이들을 주일학교로 인도했는데 그 중에 9명은 결손 가정 출신이었답니다. 월트 선생님은 이 소년들을 위해 기도했고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돌보았답니다. 그 결과 13명의 아이들 중에 11명이 하나님을 위한 사역자가 되었답니다.

질병의 불가능 앞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SBS-TV의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와 MBC-TV의 '특종 놀라운 세상'에 소개된 청계산을 맨발로 등산하는 '맨발맨' 이주선씨가 있습니다. 이분은 간암, 폐암, 인파선 암을 앓았답니다. 간암 말기에 혈관에까지 전이가 돼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답니다. 의사에 의해 살아날 확률이 1/1000도 안 되는 6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맨발로 청계산에 올랐답니다. 진통제도 못 맞아서 통증이 엄청났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조금씩 올라갔답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기도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운 마음도 없었답니다. 영하 10~15도의 추운 겨울 날씨에 계곡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이를 악물고 냉수마찰을 했답니다. 낮에는 맨발로 하루 8시간씩 산에서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교회에 가서 기도했답니다. 그렇게 생활하기를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본인이 느끼기에 몸이 상당히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에 병원(국립의료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았답니다. 결과는 암세포 덩어리가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살았구나"를 외치면서 병원을 나왔답니다. 자신의 몸에서 1년 6개월 만에 암세포 없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어떤 불가능이 있습니까? 포기하거나 원망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문에 95개조항의 "개혁선언문"을 붙이고 절대권력과 맞서 불가능했던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 힘은 기도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루터는 아침, 저녁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으며 매일 세 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오라토리오「천지창조」를 작곡하여 명성을 얻은 하이든의 예술성과 열정은 기도에서 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어느날 하이든은 한 평론가로부터 "그렇게 초인적인 열정으로 창작을 하고 금방 회복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할 때 그는 "제가 살고 있는 집에 골방이 있는데 저는 작곡하다가 지칠 때 혹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그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샘솟는 열정과 영감을 주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백화점왕 이라고 불리는 워너메이커를 부도에서 일어나게 한 것도 기도였다고 합니다.

영국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많이 죽인 ‘피의 여왕 메리’(Mary the Blood)는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만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녀는 “존 낙스의 기도는 100만 명의 군대보다 더 두렵다.”라고 했습니다.

불가능이 앞에 있습니까? 29절 예수님의 말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여 불가능과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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