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승리하는 신앙생활(5) 불행한 과거 상처와 싸움(창50:15-2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454 추천수:0 112.168.96.218
2019-02-03 17:25:34

 

승리하는 신앙생활(5) 불행한 과거 상처와 싸움

창50:15-21

 

이번 주는 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날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즐거운 명절입니다. 설이면 고유의 풍습인 세배가 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일가친척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드립니다. 아이들의 관심은 세뱃돈에 있습니다. 세뱃돈 많이 받는 꿀팁을 서로 인터넷을 통해 공유한다고 합니다. 세뱃돈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첫째 최대한 화려한 옷을 입고, 둘째, 세배가 끝나는 순간 손을 내밀며, 셋째, 세뱃돈 주기 전까지 일어나지 않으며, 넷째, 잔돈이 없는 분을 위해 거스름돈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어른은 세뱃돈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덕담을 최대한 길게 하고, 둘째, 빈티나는 복장을 하고, 셋째, 아이들과 당당히 맞절을 하며, 넷째, 일단 생색을 내며 세뱃돈을 준 다음 윷놀이로 내기해 회수하라고 합니다. 세뱃돈은 아이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관심이 있습니다. 만담가 장광팔씨가 설명절이 되어 그리운 금강산을 지으신 최영섭 선생님에게 세배를 가려고 전화를 드렸답니다. 그러자 “장 선생, 나도 선생님께 세배를 가는 길이야”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니, 선생님께서 여든이 넘으셨는데 누구한테 세배를 가세요?”라고 하니 “응, 김동진선생님(가고파 작곡가)께서 올해 아흔 여섯이셔”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다음 날 세배를 가니 세뱃돈으로 2만 5천원을 주셨답니다. “선생님, 왜 2만 5천원을 세뱃돈으로 주세요?” 여쭈니 “어제 선생님께서 세뱃돈으로 5만원을 받았거든”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설날이 즐거운 명절이지만 마냥 즐겁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 형제를 만나는 것이 지옥같이 싫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제자훈련을 시켰던 형제가 있는데 그 형제는 아버지 만나기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두 형제가 있었는데 어릴 때 아버지가 공부 못한다고 혁대로 자신에게 폭행했답니다. 형은 공부를 잘하여 서울대를 갔는데 자신은 공부를 못한다고 무지막지하게 때렸답니다. 결혼을 하여 40대가 되었는데도 과거의 아픈 상처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만나기 싫어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과거의 상처가 쓴 뿌리가 되어 참 힘겹게 사는 형제였습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부모나 가까운 일가친척 또는 지인들로부터 어느날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됩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심각하게 당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는 성폭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첫사랑과 이별의 상처, 이혼의 상처, 사별의 상처, 실패의 상처, 학대의 상처 등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치 문신처럼 그 아픈 기억이 마음에 각인되어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떠올릴 뿐 아니라 현재의 나를 지배합니다. 마음 속에 있는 나쁜 기억, 아픈 기억들은 나의 생각과 말, 감정과 행동을 지배합니다. 문신처럼 뇌에 새겨져 불쑥불쑥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정신적 외상이라고 하는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치유되지 않습니다. 10년이 지나도 마치 10분 전에 겪은 고통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마음에 박힌 감정적 상처로 남아 괴롭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은 이 과거의 상처와 싸움에서 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이 말씀을 믿습니까? 과거의 상처와 싸움에서 실패하면 안 됩니다. 이것에 지면 성장과 진보와 행복이 없습니다.

서울 종암동서 일어난 일입니다. 딸을 목졸라 죽인 어머니가 구속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딸이 집을 나가 남자친구와 밤을 보내고 돌아 온 것입니다. 사흘간 가출했다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딸에게 "어디서 무얼 했느냐"며 따졌답니다. 그러자 딸이 그동안 남자친구와 밤을 지냈다고 하자 순간적으로 흥분해 넥타이로 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고 합니다. 경찰에서 왜 그렇게 했냐고 하자 "지금 남편을 만날 때 순결하지 못한 몸으로 만나 항상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오면서 딸만큼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키웠는데 말을 듣지 않아 순간적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순결치 못한 고통스런 자신의 과거의 상처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녀를 노예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고통스런 과거의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과거의 아픈 기억이 있다고 해도 그것과 싸워 이겨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과거의 상처가 어떤 상처일지라도 그 아픈 기억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일어나야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두 번이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이방 왕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 사건이 얼마나 상처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과거의 상처를 품고 나쁜 기억으로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살인한 과거의 아픈 상처가 있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쁜 기억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모세의 인생이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자기 부하의 아내를 간음하였습니다. 그리고 충성스런 부하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아픈 상처였겠습니까? 양심이 있기 때문에 밧세바와 살면서 평생 밧세바의 본 남편이 생각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의 노예가 되어 인생 끝장내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과거의 상처입니까? 얼마나 지우고 싶은 나쁜 기억입니까? 그러나 바울을 그 수치스러운 과거의 아픈 기억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같이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과거의 아픈 상처가 있을지라도 그것과의 전쟁에서 실패자가 되지 말고 꼭 승리하여 하나님의 맡겨주신 사명, 부모로서 사명, 교회의 직분자로서 사명, 직장인으로 사명 등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한 평생 다 이루어 드리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불행과 과거와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불행한 과거의 상처와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1. 과거의 아픈 상처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11번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요셉은 17살에 형들에게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기 위해 구덩이에 집어 던졌습니다.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에 인신매매를 해 버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형제들에게 이런 꼴을 당하면 얼마나 심각한 상처가 되겠습니까? 형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입니다. 권력자의 마나님 때문에 감옥에 갖히기고 했습니다. 그 상처의 종이 되었다면 여성혐오증으로 결혼도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과거의 상처의 종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원한을 품고 복수의 칼을 갈지 않았습니다. 그 상처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싸움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전쟁에서 어떻게 이깁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과거 자신들이 행한 일로 요셉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가장 강한 국가인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그 막강한 권력을 자신들에게 보복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때 요셉을 어떻게 합니까? 19절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사는 요셉의 진심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처음 만났을 때도 무슨 말을 하는가 성경을 찾아 보십시오. 창세기 45장 5절 말씀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자신의 아픈 과거의 상처를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7절 8절을 보십시오.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애굽에 온 것이 형들이 인신매매해서 그 결과로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보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분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의 상처와 싸움에서 승리하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일어난 과거의 사건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혼을 한 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자식이 나보다 먼저 떠난 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성폭행을 당한 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첫 사랑과 해어진 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부모에게 폭력을 당한 것도 과거의 일입니다. 남편이 죽고 아내가 죽은 것은 과거일입니다. 실패한 것도 과거의 일입니다. 실수한 것도 과거의 일입니다. 그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중요한 것을 그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입니다. 잘 해석하면 그 과거는 보약이 되지만 잘 못 해석하면 그 과거는 독약이 됩니다. 잘 해석하면 디딤돌이 되지만 잘 못 해석하면 걸림돌이 됩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의 사실보다는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된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여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우리에게 나쁜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사건이 왜 나에게 일어나야 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어난 사건이라면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숨은 섭리가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알코올 중독이 된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숨은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그렇게도 구타했던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기 때문에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더 훈련시키고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족한 삶을 살라고 훈련시키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쁜 기억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삶의 재해석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바꿀 수 있습니다. 높은 하늘을 오르는 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그런 과정을 통과하게 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픈 상처에 집착하지 말고 관점을 바꾸어 보고 큰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마음아, 넌 누구니>를 펴낸 더공감마음학교 대표인 박상미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1970년대 산아제한 정책 때 셋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6개월이 된 뒤에 임신한 줄 알고 낙태를 하기 위해 어머니가 산부인과에 여러 번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묘하게 의사 선생님이 없어 결국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태아시절 무의식 중에 받은 충격은 마흔이 넘도록 따라다녔답니다. 어린시절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신경정신과를 무수히 다뎠답니다. 24살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지난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상처 때문에 상담심리학을 공부했고 36세 때 박사 과정을 밟았고 독일 학술교류처의 장학생으로 뽑혀 독일에서 연구하였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입양인을 만났고 90%는 너무 힘들게 산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한국에 돌아와 미혼모를 도왔답니다. 교도소에 가 있는 미혼모의 남편을 돕기 위해 재소자 6만명을 대상으로 치유방송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과거의 아픈 기억을 해석하면 아픈 상처도 보약이 될 수 있습니다. 아픈 기억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통증은 남습니다. 어차피 상처를 지울 수 없다면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불행에도 의미를 부여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시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높이 올라가 있는 새처럼 전체적으로 삶을 조망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넘어지면서 걷기를 배웁니다. 고통도 말없이 품으면 보석이 됩니다. 재목이 되는 나무는 하루아침에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봉우리는 작은 봉우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추운 겨울을 버티고 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2.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는 그 사실보다 우리의 해석과 우리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해석은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응은 용서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심각한 상처로부터 승리하는 핵심적인 기술은 용서입니다. 용서도 인간적인 용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용서입니다. 용서가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삶 전체를 뒤흔드는 아픈 상처가 있다고 해도 용서하면 정상적인 삶으로 회복이 됩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준 상처, 믿었던 누군가의 배신, 과거 연인이 준 상처 등 어떤 상처도 용서하면 과거 상처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형들로 인하여 요셉의 꿈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졌고 막장 인생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고난, 아픔, 실망, 배신, 억울함, 절망, 가난, 슬픔이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과거 상처의 종으로 분노하고 절망하며 죽지 않았습니다. 용서하고 회복되었습니다. 그에게는 기쁨과 영광, 명예와 축복, 부요와 존귀가 주어졌습니다. 내려간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요셉의 용서는 어떤 용서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용서처럼 절대 강자로서 자발적인 용서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라는 복수할 막강한 권력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형들에게 정당하게 형벌을 가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힘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훼퍼는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랑 할 수 없는 그와 나 사이 그 중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이라"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자신이 온 것이 형들의 인신매매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창15:13)”라고 하신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입니다. 형들 때문에 애굽에 팔려왔다고 생각에 집중하면 절대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하고 원한만 쌓이고 복수할 것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애굽에 온 것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생각에 집중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된 용서와 감사 및 평안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창세기 45장에 나온 것처럼 처음 만날 때부터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울며 다 용서해 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요셉은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모형으로 구약에 기록되어 하나님의 용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저주하고 침을 뱉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를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형제라고 부르게 하시고(히2:11), 친구라고(요15:14)도 불러 주시며 용서의 능력과 은택을 주셨습니다. 요셉도 자신과는 신분이 전혀 다르지만, 형제들을 용서해 주시고 그렇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요셉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무엇을 요구합니까? 16,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버지를 빙자하여 또 다시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위험해 처해 있다고 생각하며 값싼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정면으로 대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가를 모면하려고 한 것입니다. 진정한 요셉의 용서를 몰라서 그렇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중국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들이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 동안 30만 명을 학살하였다고 합니다. 그 기념관엔 캄캄한 벽에서 물이 7초 마다 떨어지게 해 놓고 사진이 하나씩 하나씩 비칩게 해 놓았답니다. 7초에 한 명씩 사람을 6주 동안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 말자." 인간의 용서는 아무리 해도 이런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용서는 기억치도 않는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될 것이며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처럼 될 것이다(사1:18).”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감옥에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었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 믿습니까? 우리의 의사에 반하는 구타, 성폭행, 학대 등의 행위로 끔찍한 상처를 입었을 때, 그에 대한 죄의식, 공포심, 우울증, 죄책감, 자기혐오, 자긍심 파괴, 정상적 인간관계의 단절 등 과거 상처의 감옥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학대로 인한 상처가 남을 수는 있지만, 그 흉터를 영원히 남겨 둘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신데 왜 자신이 기억하며 나쁜 기억의 감옥 속에서 살아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니 남을 용서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미 용서했으니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은 자신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성교육 전문가이자 상담가인 구성애씨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으로 불행의 늪에서 살아왔답니다. 분노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을 죽이려는 범행 계획까지 세우는 등 극단적인 심리 변화를 경험했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용서하면서 비로소 아픈 상처에서 벗어났고, 삶을 짓눌러온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용서는 내가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490번까지 용서하라고 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을 때 감정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영원한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복수의 칼을 갈면서, 자신의 삶을 불행의 감옥에 가두는 것입니다. 자신의 불행한 삶을 구제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용서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용서로 일상 속에서 겪는 자잘한 불쾌감은 물론이고, 평생 품어온 오랜 분노까지도 용서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적 겪은 가정폭력, 끔찍하게 당한 범죄나 테러까지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조차도 십자가에서 용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용서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그것이 병이 됩니다. 미움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마음이 병들어가고, 이 마음의 병 때문에 결국은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리치료사>들은 환자 스스로 <용서를 선택>하도록 유도한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심료내과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심료내과를 찾아(나츠키 시즈코)>라는 책에는 3년간 원인도 없이 병원 치료로 낫지 않은 요통, 양쪽 귀를 드릴로 뚫는 듯한 통증, 경련과 함께 일어나는 발작성 딸꾹질, 6년 이상 낫지 않는 궤양성 대장염으로 수시로 나오는 혈변과 설사 등 기존 치료도 듣지 않는 불치병과 난치병과 괴병으로 치료받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심료내과에서는 먼저 환자들의 병의 심리적 원인을 찾는데 환자 배후에 숨어 있는 과거의 상처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암전문의 칼 사이먼튼 박사는 말기 암 환자 엘렌을 치유했는데 그녀는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준 어머니를 평생 원망하면서 살았답니다. 그녀의 분노의 감정은 몸의 병을 키웠답니다. 어머니를 용서하니까 거의 감정 표현을 하지 않고, 극심한 우울증을 겼었던 그녀는 차츰 밝은 모습으로 바뀌었답니다.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삶의 활력을 얻었고, 당연히 건강도 빠르게 호전되어 1년이 지난 후 그녀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답니다.

20여 년간 용서를 연구한 위스콘신대학 심리학과 로버트 엔라이트 교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 암환자, 심장질환자 등 다양한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용서를 실천한 이들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병세가 호전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극적인 변화를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마약중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용서법을 배우고 실천한 이들이 기존 치료만 받은 이들보다 분노, 우울증, 걱정이 줄고 자부심이 높아져 재활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영혼과 마음과 몸이 건강하기를 원하면 과거의 상처에 분노를 품고 살지 말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와 전쟁에서 아픈 기억을 끝까지 붙들고 실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생각해 보면 상황 속에서 다 피해자이고 다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용서로 바라보면 악한 영의 노예가 되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불쌍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서 3:13-14).” 과거의 아픈 상처의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앞에서 다 놓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둘째는 관계를 회복하여 과거의 상처가 문제가 되지 않는 정상적 관계를 유지하는 용서입니다.

요셉이 이미 용서했는데 자신의 진의를 의심하며 다시 용서를 청하는 형들의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자신이 심판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잘못을 했다해도 자신이 하나님 대신 심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밀양의 여 주인공인 신애는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보다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럴 권한은 주님에게도 없어요.”라고 오열하지만 진정 용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진정한 용서를 안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요셉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습니다.

21절을 읽어 보십시오. 형들과 형들의 자녀까지 기르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용서의 마감입니다. 과거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 관계를 가지며 오히려 더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가야 진정한 용서가 될 수 있습니다.

<죽으면 살리라>라는 안이숙 여사의 책에 보면, 어느 한 미국교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가정주부인데, 어느날 한국에서 그녀의 한 친구가 그녀를 찾아왔답니다. 우선 당장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임시로 그녀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이 친구가 그녀의 남편을 가로채 버렸습니다. 평범했던 그녀가 어느 날 잊을 수 없는 아픈 과거의 상처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남편을 빼앗기고 무작정 집을 나와 갈 곳이 없었는데, 어느 친절한 미국 남자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거하게 되었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백만장자의 부인이 되었답니다. 그 후 그녀의 전남편과 그녀의 남편을 가로챘든 그녀의 친구는 어느 날 자동차 사고를 당하여, 둘 다 전신 마비의 불구자가 되어버렸답니다. 그녀의 전남편은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 한국의 친지들이 데려갔는데, 그녀는 버려진 채 였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가 이 친구를 데려다가 돌보아주었답니다. 그녀의 전남편과 그녀의 친구는 마땅히 받을 벌을 받았지만, 그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과거의 상처을 극복하고 그 두 사람을 용서하고 품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 관계로 회복해 그를 돌보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12:19-21).”

2015년 6월 17일 미국의 한 교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수요일 저녁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데 딜런 루프라고 하는 21세의 낯선 백인 청년이 들어와 권총을 난사해 아홉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교인들은 한순간에 남편을, 아내를, 딸을, 부모를, 그리고 목사님을 잃었습니다. 범인은 구치소에 감금된 채 화상으로 재판을 받으며 관행에 따라 법정에서 폐쇄화면으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발언하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딸 네이든 코이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게서 가장 귀한 것을 빼앗아갔다. 나는 다시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다시는 엄마 손을 잡지도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을 용서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신다면, 나도 당신을 용서한다." 할아버지를 잃은 손녀 엘레나 시몬스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와 다른 희생자들이 증오의 손에 의해 돌아가셨지만, 모두가 당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사랑으로 살았으며, 이번 사건도 사랑을 유산으로 남길 것이며, 증오는 결코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유가족들이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모아 발표했습니다. "경건한 크리스천으로서 증오범죄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죄를 용서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 순간 일어난 과거의 상처와 싸움에서 신앙인들은 승리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 교회 교인들은 더 단단하게 십자가의 사랑으로 결속하여 찬양과 감사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용서가 과거의 상처를 이기는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분노의 화염병을 품고 불행하게 살기 보다는 과거를 인정하며, 용서하고, 자신을 위해 타인을 용서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준 상처, 믿었던 누군가의 배신, 과거 연인이 준 상처 등으로 과거의 상처를 되새김질 하며 영혼과 몸과 마음이 병들어 살기를 하나님은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2.3.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