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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신앙생활(3) 자신과 싸움, 자기 통제력(고전9:24-2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148 추천수:1 112.168.96.218
2019-01-20 16:59:37

 

승리하는 신앙생활(3) 자신과 싸움, 자기 통제력

고전9:24-27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인생에는 세 가지의 싸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입니다. 둘째, 인간과 인간과의 싸움입니다. 셋째,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숨 멈추는 순간까지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지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취업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질병과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못하게 하는 불신과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가난과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걱정과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죄와의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분노와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죽음과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유혹의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악한 습관과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게으름과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새해에 신앙인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주에는 중심 주제가 영적 싸움이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단과의 전쟁이고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가져다준 인생의 근본적인 불행인 죽음도, 죄도, 죄의식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그 어떤 처세술이나 노력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주의 중심 주제는 대인관계였습니다.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손자병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사람과의 싸움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는 비결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승리는 사랑함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면 원수도 이길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비법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주제로 자신과 싸움입니다. 자신과 싸움에서 신앙인으로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같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완전하게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이고 죽을 때까지 이 땅에서 인격이 성화되어 가야 합니다. 그럴 때 로마서 7장 15절 이하에 나오는 것처럼 마음속에는 늘 두 마음으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항상 악이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21).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가졌던 육체의 소욕과 예수님을 믿은 후 가지게 된 성령의 소원(갈5:17)이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 같은 예수님 믿기 전에 좋아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예수님을 믿음과 동시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전에 술과 담배 같은 것에 중독되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루아침에 정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초가 되면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니코틴 중독으로 1개월 끊었다가 다시 피우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게으른 습성이 있는 학생들이 예수님 믿은 후 부지런히 공부해야하겠다고 결심은 하지만 여전히 아침의 꿀잠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시험을 망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근심의 노예가 되었던 사람이 예수 믿는 다고 금방 해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울증의 늪에 갖힌 사람이 예수 믿는다고 금방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금요일 교회 심야기도회 나와 올해는 한 시간이라도 나라와 교회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여야 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금요일이 되면 예전부터 좋아하던 금요 드라마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음란물 보기를 좋아하던 청년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것이 하나님이 싫어하고 자신의 건강한 삶에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끊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아주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그 시기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시기심이 많은 분이었는데 3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권사님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교회 생활을 늦게 한 권사님의 남편이 장로님이 되었고 자식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저의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가 받은 축복을 평소 네가 시기하는 김권사와 더불어 함께 누릴 수 있는 넓은 아량이 너에게 있다면 내가 그 소원을 들어줄 것이니라"라고 말씀했답니다. 권사님은 너무 기뻐서 첫 번째 소원을 드렸답니다. “김권사보다 넓고 좋은 집, 한 채를 제게 주십시오.” 그때 하나님이 “그래, 너에겐 좋은 집 한채를... 그리고 김권사에겐 두 채를 주겠노라.”했답니다. “두번 째 소원은 무엇인고?”라고 했답니다. "저에게 100억을 주십시오."라고 하자 “그래 너에겐 100억을... 김권사에겐 200억을 주겠노라” 권사님은 자신보다 배를 받는 김 권사님을 보고 너무나 시기가 났답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었답니다. “하나님, 저의 신장 한쪽을 기증했으면 합니다!”예수님을 믿지만, 시기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고백하며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9)”라고 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실패하는 자신을 향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라고 정직하게 고백을 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죽음 앞에서도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사도 바울이었지만 자신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옛사람의 악한 성품을 이기는 싸움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참으로 강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A. 캠피스는 “자신을 완벽하게 이길 수 있으면 다른 어떤 것도 쉽게 통달할 수 있다.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완벽한 승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잠언 16장 32절에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 25:28)”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들은 공통으로 자신과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산악인 엄홍길 씨는 한국인으로서는 2007년 5월 31일에는 8400미터의 로체샤르도 완등하면서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나 자신과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산소탱크' 박지성는 "주전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2007년 2월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 세계최고기록을 세우고 우승한 김연아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제가 추구하는 피겨는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거예요.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 지금은 그게 가장 중요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셰프 이연복씨는 요리에서 중요하는 것은 기술이나 레시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과 싸움이라고 합니다. 무모하게 도전했다 자신과 싸움에서 지고 요리에서 포기한 사람은 90프로가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평생 싸워야 하는 자신과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선수가 절제를 하지 못하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절제라는 말은 “엥크라튜오마이”의 번역으로 이 말은 본래 ‘자기 자신을 정복하다’라는 말입니다. 절제라는 말을 우리 말 사전에 찾아보면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한자어로 마디 “절”과 마를 “제”입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self-control”로 번역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알맞게 잘 조절한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통제력을 말합니다. 자기조절 능력을 말합니다. 즉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감정을 나타내거나 행동할 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예측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잡으면서 이 절제를 좀 더 포괄적이고 학문적인 용어로 “자기 통제력”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기 통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통제이란 더 좋은 결과나 만족을 얻기 위해 일시적인 충동이나 만족을 억제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인지을 통제하고, 정서를 통제하고, 행동을 통제하여 자기 스스로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자기통제력 속에는 유혹에 저항하는 능력, 만족을 지연하는 능력,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포함됩니다. 자기통제력이 있는 사람은 충동 조절능력이 뛰어나고 행동 관리 능력이나 관계 관리 능력, 감정 관리 능력이 뛰어 납니다. 지적 능력보다 자기통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자기통제력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미셸 박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시멜로 실험'을 했습니다. "마시멜로"는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부드러운 사탕이랍니다. 실험에 참가한 653명의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달콤한 마시멜로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15분 간 마시멜로 과자를 먹지 않고 참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 중 3분의 1은 15분을 참지 못한 채 마시멜로를 먹어치웠고, 3분의 2는 끝까지 기다림으로써 상을 받았습니다. 15년 후 당시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낸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아는 정신력과 함께 사회성이 뛰어난 청소년들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성적도 우수했고, 비만,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눈앞에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곧잘 싸움에 말려들었습니다. 두 그룹은 학업 성적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시멜로를 먼저 먹어 치운 그룹보다 끝까지 참았던 그룹이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평균 210점이나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답니다. 자기통제력, 만족 지연능력, 자신의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지능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통제력이 높은 사람이 자존감도 높고, 참을성도 강하며, 유혹에 쉽게 넘어지지도 않고, 끈기도 있으며, 대인관계도 좋고, 대처능력도 뛰어나며 일의 성취도도 높다는 것입니다.

국제 연구팀이 1,000명의 뉴질랜드 어린이를 태어나서 32세까지 계속 연구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하였답니다. 연구 결과 자기통제력이 튀어난 아이들은 더욱 건강하였답니다. 비만율과 성관계 질병에 대한 감염율이 낮았고, 안정된 결혼생활,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였답니다. 유죄 판결 비율은 12%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통제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알코올과 마약에 빠지기 쉬웠고, 재정적으로 가난했으며 상대적으로 보수가 낮은 직장에 다녔다고 합니다. 저축률도 낮았고 편모, 편부로서 자녀를 양육한 비율이 높았으며 40% 이상이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갔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기와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기통제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통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26)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향방없는’의 향방은 ‘아델로스’의 번역으로 ‘불확실하게, 목적 없이’라는 뜻으로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승선의 반대편을 달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허공’은 권투 선수의 대상을 말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분명한 목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상을 받기 위해 달리는 것입니다. 자기통제력의 첫 번째 요소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분명한 목표의 설정입니다. 아이들을 음식점에 데리고 가면 자기통제력을 잃고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때 엄마가 “너 오늘 음식점에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얌전히 밥을 먹으면 네가 좋아하는 운동화를 사 줄게”라고 말하면 아이들의 자기통제력이 작동하게 됩니다. 사전의사결정이 자기 안에 생깁니다. “운동화 선물받기 위해 얌전이 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자기통제능력이 강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가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라고 백성들 앞에서 사전의사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삶의 초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상급 운동화를 받기 위해 자기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속에서 자기통제력을 가지고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목표설정이 분명했다는 사실입니다. 경영학 용어에 목표경영(Management by objectives)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충동경영'이라는 개념과 비교하는 용어입니다. 기업도 마구잡이식 경영이 아니라 목표경영을 해야 효율성 있는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표의 위력은 상상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선명한 목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정력과 노력을 한 푯대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자기통제력은 강하고 자기와 싸움에서 승리할 확률은 높아 집니다.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판, 에서는 멀리 보지 못하고 지금의 욕구에 충실하여 자기통제력을 갖지 못하고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대부분 자기통제력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 욕구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주어질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생각한 것입니다. 충동 시스템이 현재에 지나치게 치중하니까 자기통제력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담배 피우는 분들이 '지금'에 초점을 맞춰서 "기분이 정말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면 자기통제를 못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초점을 맞추면 달라집니다. "폐암에 걸릴 수도 있어" 자신의 암세포가 있는 폐의 X선 사진을 의사가 보여주는 것을 생각하면 자기를 통제합니다. 자신 때문에 고통당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자기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한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성주를 찾아가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답니다. 성주는 대답 대신 컵에 포도주를 가득 채워 청년에게 건네주더니 옆에 있던 군인을 불러 세워 갑자기 무서운 명령을 내렸답니다. 청년이 포도주잔을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뒤를 따르다가 청년이 포도주를 엎지르면 그의 목을 베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짝 긴장을 한 채 한 방울의 포도주도 흘리지 않은 청년은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성주 앞에 섰답니다. 성주는 마을을 도는 동안 청년이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그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말했답니다. 성주는 거리에 있는 거지와 장사꾼도 못 보고 술집에서 여자들이 노래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느냐고 엄하게 물었답니다. 청년이 솔직하게 "예"라고 대답했답니다. 성주는 그제야 빙긋이 웃으며 "그래 그것이 바로 너에게 말하고 싶은 인생의 교훈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도 정한 푯대를 바라보고 그렇게 정신을 집중시키고 한눈을 팔지 않는다면 너를 둘러싼 어떤 유혹의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필경 너는 성공적인 삶을 보장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를 가야겠다고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면 친구들이 영화보러 가자고 해도 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면에서 유흥을 즐기려는 마음을 이기고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는 뜻을 분명하게 정하였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순간을 짧고 인생은 긴데,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하는데 뭐 너희들이라고 대단하다고 그러느냐는 마음의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뜻을 정하고” 이방 나라의 우상 제사음식을 먹는 것과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죽인다고 해도 분명한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에 그냥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유지하고 살기 위해 타협하라는 마음 속의 악마의 유혹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통제력이 약한 아이들은 미래의 목표보가 즉흥적인 욕구에 충동적으로 반응해 버립니다. 목표를 성취함으로 주어질 큰 만족보다는 즉각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다가 중독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좀 더 먼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비행을 저지르고, 흡연, 음주, 약물을 오남용하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더 좋은 것을 위해 만족 지연 능력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25절을 보십시오. 불과 며칠이면 시들어 없어질 나뭇잎 월계관을 얻기 위해 사람은 경기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썩지 않고 시들지 않는 종말의 상급,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경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 썩지 않은 면류관(고전9:25), 의의 면류관(딤후4:8), 생명의 면류관(약1:12,계2:10), 영광의 면류관(벧전5:4), 기쁨의 면류관(살전2:19) 면류관을 천국에서 받게 된다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어야 보이지 않는 자신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땅이 이 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끝이 날 날이 있습니다. 모든 생성된 것은 다 소멸될 날이 있습니다. 인생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약 4:14)" 이 땅에 잠시 사는 것입니다. 너무나 세상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영원히 승리의 찬가를 부를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저 천국 없으면 나 어떻게 하나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야 " 이런 신앙을 가지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히12:2) 목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자기 나름으로는 열심히 인생의 경주를 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정작 예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되겠습니까?(27)

 

둘째는 목표성취를 위한 계획을 세워 부단히 자기통제 강화 훈련해야 합니다(24,27)

버릴 것은 버리고 훈련해야 할 것을 더욱 강력하게 훈련해야 합니다. 미국 피츠버그 유명 야구 선수로 활동했던 선수가 음주 뺑소니를 했다가 징역형을 받고 미국 비자 발급이 거부된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분야에 자기통제를 하지 못하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연애인이, 유명 운동선수가, 교수가, 유명 정치인이, 목회자가 자기통제 훈련이 되지 못해 성추행으로 한순간 무너지는 것입니다.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금메달을 걸기 위한 선명한 목표를 설정한 운동선수가 적당히 달리지 않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연습 도중에 버스 뒤를 쫓아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버스 바퀴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먹고 싶고, 자고 싶고, 즐기고 싶은 모든 것을 오직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줄이고, 억제하고, 끊고 훈련할 때 금메달의 영광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뿐 아니라 건강도, 사업도, 공부도, 가정생활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켰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기 전 옛사람으로 돌아가려는 옛 품성을 쳐 복종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롬6:13절에서는 너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복종하게라는 말은 “노예로 만들다”라는 뜻으로 혹독할 정도로 엄격하고 단호하게 훈련시켰다는 말입니다. 헬라어 문법으로 현재형으로 바울이 계속, 반복해서 엄격하게 자기통제를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엄격하게 자신의 몸이 의의 병기가 되도록 절제하는 생활을 멈추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은 어떻게 사용하는냐에 따라 의의 병기도 될 수 있고 죄의 병기도 될 수 있습니다. 몸은 자기통제력을 잃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금방 죄의 병기가 되어 버립니다. 신앙인이 성숙하게 되는 것은 한 차례의 세례나 신앙 고백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목표만 세웠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선명한 목표만 세웠다고 자기통제력이 저절로 강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월계관을 쓰기 위해 부단히 자기를 훈련하여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통제력 훈련을 시켰습니다. 자기통제력 훈련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이 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전형적으로 항상 식사 후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3개월 후에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 하겠다고 선명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 습관을 없애고 저녁을 먹은 후에 담배를 피우지 않으려면 자기통제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목표를 세웠다면 먼저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목록으로 작성하여 기록하는 것입니다. 담배를 아침밥 먹고, 점심밥 먹고, 저녁밥 먹고 피고 있으면 그것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것으로 끝내면 안 됩니다.

자기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간의 비교과정입니다. 수정할 행동의 목록 만들기를 하는 것입니다. 1개월까지 아침밥 먹고 담배 끊기, 2개월까지 점심 먹고 담배 끊기, 3개월까지 저녁 먹고 담배 끊기 등과 같이 세밀하게 그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담배의 대체물을 무엇으로 할까를 계획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식당에 가면서 밥먹을 때 얌전히 있으면 운동화를 사 준다고 약속할 때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지켰을 때 운동화를 사 준다고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냥 해주면 자기통제력이 발달되지 않습니다. 아이의 자기통제력을 강화시켜 주기 위해 아침에 일어날 때 이불을 개면 1000원씩 줄 터이니까 그 돈을 모아 사자고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된 실행으로 자기통제 강화단계를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성공하게 되면 긍정적 감정을 스스로 불러일으킵니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고통을 참고 즐기는 능력이 생깁니다. 고통의 과정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생깁니다. 계속적인 연습을 통해 근육을 단련하고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영적 근육, 마음의 근육, 감정의 근육을 어떤 바이러스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사울 왕은 다윗과 달리 쉽게 왕이 되어 자기를 이기는 훈련을 받지 않아 쉽게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아간이 가룟 유다, 롯의 부인이 눈앞의 이익만 보다 결국 무너진 것입니다. 자기통제력이 뛰어난 사람을 만들려면 학습했으면 강화시키고, 그것을 유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가 첫날 스스로 아침 일찍 일어나 이불을 갰습니다. 첫 번재 성공 경험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스스로 성취했다는 것으로 자기 만족감이 높아집니다. 두 번째 날, 세 번째 날 성공하면 자기통제력은 점점 더 강화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작심삼일이라고 네 번째 날 자기와의 싸움에서 실패하고 맙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자기통제력 이론에 따르면 자기통제력은 생의 초기 정서발달이 시작하면서 초기 형성이 시작되고 주로 부모의 자녀 양육 방법과 노력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인생 초기단계에 성립된 자기통제력의 개인차는 그 이후 생의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충동적 반응에 대해 신중하고 일관성 있게 양육할 때 아이의 자기통제력은 견고해진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바로 해주면 자기통제력은 높아지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도 자기 스스로 통제하며 홀로 못하기 고된 훈련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코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때로는 훈계하고, 격려하고, 모범을 보이며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래서 구역장이 필요하고, 목자와 신앙 지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 모임도 하고, 예배도 드리며 말씀을 들으면서 계속 넘어졌다 일어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하루 평균 20번씩 넘어졌다 일어난다고 합니다. 보통 2-3천번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배운다고 합니다. 안된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한 가지를 끝까지 해서 자기와 싸움에서 승리를 하면 그 성공경험은 자기 만족감을 높여주고, 만족 지연능력도 높여주며, 사회적 성공률을 높여주게 됩니다. 올해 성경읽기, 기도, 전도, 예배 참여, 건강관리, 공부 등 다양한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벌써 자기와 싸움에서 실패하고 포기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된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부단한 자기를 이기는 훈련을 통해 자기통제력을 높이시길 바랍니다. 자동차를 만들어낸 헨리 포드는 농촌에서 태어나 16세에 오늘의 미국의 디트로이트로 갔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는 가솔린이 기계를 돌릴 수 있다는 힘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동차 엔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 3년이 지났지만 실패했습니다. 5년 6년 7년 8년이 지나도계속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13년 만에 엔진을 만드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셋째, 성령님의 통제를 받아야 자기통제력은 완성됩니다(27).

이렇게 선명한 목표와 통제력 향상을 위한 부단한 훈련으로 자기통제력이 완벽해지겠습니까? 우리는 실제의 삶 속에서 나이가 들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자기통제력에 늘 실패하는 나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라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나를 발견합니다. 신호등을 잘 지켜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없는 새벽에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립니다. 한 번은 제가 교인들이 많이 나오는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를 하고 있을 때 동료 목사가 방문하여 지하철 역에 가서 모시고 사거리에서 좌회전 2차선이 있는 곳에서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 차가 계속 비켜달라고 경고음을 울렸습니다. 아직 신호가 떨어지지 않아 계속 서 있었습니다. 비켜주지 않자 우측으로 나와 문을 열고 욕하는 것이었습니다. 옆을 보니까 그 욕하는 사람이 그 당시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급하면 자기통제력을 쉽게 잃어버립니다.

삼손같은 용사도 사람도 자기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여인에게 미혹되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비극적으로 죽었습니다. 다윗같이 자기통제력이 강했던 다윗도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간음하고 살인까지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같은 사람도 자기통제력을 잃고 첩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미국에 설교 잘하시기로 유명한 찰스 스윈돌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한 번은 주일날 설교 중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교통신호도 정확하게 지키십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예배가 다 끝나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만 딴생각을 하다가 빨간 불인데도 모르고 지나갔답니다. 아마 비판하기 좋아하는 성도들 같으면 시험 들어 교회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는 의롭다 하며 남의 허물을 보고 원수 삼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찍어 목사 추방 운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교인들이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목사님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설교해 놓고 어겨 너무나 창피했답니다. 그래도 교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차를 몰아서 얼른 집으로 와 버렸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아까 어디에 차 가지고 지나가셨죠? 내일 우리 교인들이 목사님 만나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이튿날 점심시간에 목에다 무얼 걸고 약속 장소에 나갔답니다. 거기에는 '나는 죄인이다'(I am guilty)라고 쓰여 있었답니다. 교인들은 막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손뼉 치고 환영했답니다. 교인들의 반응에 목사님은 갑자기 뒤를 돌아섰는데 뒤에는 또 다른 글이 걸려있었답니다. 거기에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쓰여 있었답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 때까지 자기통제력이 완벽하지 못합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의 마음을 완벽한 것처럼 포장하며,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라고 말씀합니다.

바울도 자신을 “죄인”이라고,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죄인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신학계의 거목이며 66권 성경주석을 처음으로 완성한 박윤선 목사님이 80세 생일 잔치에서 "나는 80년 묵은 죄인입니다. 저하고 조금만 다니면 죄의 냄새가 납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 온 세상 위에 넘칩니다 가릴 수 없는 주 영광 온 땅위에 충만합니다 주님만이 길이오니 우린 그길 따라갑니다 그날에 우릴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좀 더 나은 자기통제력을 가지고 성화된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신과 싸움에서 늘 실패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고 하면서 아아 나는 참으로 비참한 사람이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는 다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고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은 결국 승리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울은 절제를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용하는 헬라어가 “엥크라테이아”입니다. ‘무엇 아래 머물다’라는 ‘엥’과 ‘권능, 지배’라는 ‘크라토스’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성령의 권능 아래서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주체가 자신이 아닙니다. 주체가 성령님입니다. 성령의 통치 영역 안에 있을 때 맺혀지는 성품의 열매입니다. 풀어 설명하면 ‘성령의 지배를 받아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자신을 제어하는 힘’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덕적 의미의 절제는 주체가 자신이지만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단순한 인격적 훈련을 통해 맺혀지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통해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갈 때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절제의 반대말은 무절제입니다. 윤리적으로 무절제하다고 말할 때는 절제의 훈련이 덜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무절제는 하나님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무절제한 상태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자기통제력의 궁극적인 완성은 성령의 통제를 받을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자기통제력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궁극적으로 “self-control”이 아니라 “Holy Spirit-control”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통제를 받고 열리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절제를 맨 마지막에 소개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복수가 아닙니다. 모양만 달리할 뿐이지 단수입니다. 이 절제는 그림의 낙관과 같은 것입니다. 다른 열매들을 담는 바구니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열매에 맛을 내게 하는 양념과 같은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여도 절제 없는 사랑은 익애게 되어 버릇없는 아이를 만들어 망치게 합니다. 기쁨의 열매도 절제가 빠지면 초상집에서도 기뻐함으로 다른 사람을 시험들게 하고 아무데나 웃어 미친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화평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태만이 될 수가 있고 인내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무감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습니다. 자비의 열매도 양선도 절제가 있어야 도움받는 사람에게 거지 근성을 길러주지 않습니다. 충성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과로로 쓰러질 수 있고, 온유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싸가지 없는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절제가 있어야 신앙인으로 성숙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철저히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이유를 자신의 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주님 앞에 갈 때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절제하며 살았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신전의식입니다. 홀로 있을 때도 하나님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계속 자신을 지배하면 홀로 있을 때도 자기통제력은 성령님에 의해 강화됩니다. 성령님께서 마음에 계신 사람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 힘으로 능으로 하지 못하는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신전의식도 충만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보십시오. 열기 왕성한 청년이지만 돈 많고 권력 있는 여인이 하룻밤 자자고 유혹할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39:9)”라고 단호하게 거절해 버립니다. 얼마나 자기통제력이 강합니까? 성령 충만한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라고 고백합니다. 해도 해도 안 된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얼마든지 자기통제력을 가지고 시험에 들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어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인격을 갖출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힘으로 수고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로새서 1:29)”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서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말과,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 3 ‘S’의 시대에 “그냥하세요(just do it)”라고 자꾸 악한 길로 유혹하는 세상에서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행동을 다스려 주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오순절날 기도하다 성령충만을 받고 제자들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올해는 우리 성도님들이 심야 기도회에 자녀들과 함께 참여하여 성령 충만을 받고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인생 내가 주인이니 내 맘대로 살겠다고 하지만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세상에 얼마나 됩니까? 내 몸에 지니고 있는 심장 하나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내 생각 하나 내 마음대로 통제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성경충만을 받습니다. 올해는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성령 충만을 받아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회개할 때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올해는 예배에 나와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성령 충만을 받고 자신과 싸움에서 꼭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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