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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신앙생활(2) 승리의 무기, 십자가 사랑(요한일서4:4-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666 추천수:1 112.168.96.218
2019-01-13 09:02:08

 

승리하는 신앙생활(2) 승리의 무기, 십자가 사랑

요한일서4:4-12

 

새해 들어 승리하는 신앙생활에 대하여 말씀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지난주 일제 강점기의 예를 들어 실패한 자는 처절하게 실패에 대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세상인데 그 세상은 사단이 왕 노릇을 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의 대상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사단이고 그 사단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싸움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일5:4-5절 말씀을 근거로 우리는 이 전쟁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이겼고 이기고 있고 앞으로도 이길 것이라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난 자가 세상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한 해를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승리하는 신앙생활 2번째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단에 속한 사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사람과 얼굴을 대하며 살아갑니다.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대인관계는 중요합니다.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불안, 우울, 좌절, 소외, 갈등, 적대감, 원한, 긴장 가운데 살게 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 합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위건(A.E.Wiggan) 박사는 직장, 가정, 사회생활 등 각 분야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조사했답니다. 그런데 인간관계 기술이 직업적 성공을 거두는데 85% 정도이고, 기술적인 지식은 15% 정도였답니다. 직장에서 해고된 대부분의 사람들 중 66% 정도는 대인관계의 실패 때문에 해고되었던 것이고, 단지 34% 정도가 일과 관련된 기술이라든가 지식부족 등의 원인으로 해고었답니다. 미국의 카네기재단에서도 5년 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1만 명을 대상으로 '성공비결'이 무엇이었는지를 질문 했는데, 85%의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골고루 인간관계를 잘했기 때문에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이 버는 돈의 12.5%는 그 사람의 지식에서 나오고, 87.5%는 인간관계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교회생활도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인간관계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시험 들어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보면 인간관계 때문에 가나안 교인이 되고 교회를 배척하는 무신론자가 회의론자가 됩니다. 금요일 의사였다가 불치병을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고 목사가 된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목사이고, 아버지도 목사이고 집안 식구의 남자는 모조리 목사인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났는데 39살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신 의사로 살았답니다. 그 이유가 어릴 때 장로님들이 교회에서 싸우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말로는 번지르르하게 예배시간에 기도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으니까 장로님들이 교회에서 싸운다고 생각하며 교회를 떠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뉴욕 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폴 비츠는 그의 책 <무신론의 심리학(아버지의 부재와 무신론 신앙)>에서 근대 서구 사상계를 주도해온 유명한 무신론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무신론자가 된 것은 '결함 있는 아버지'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부재, 무기력, 죽음, 학대에서 유발된 트라우마와 결핍이 하나님 이미지를 왜곡시켜 하나님에 대한 거부와 불신앙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때는 아이가 세 살에서 다섯 살 사이인데 프리드리히 니체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흄은 두 살 때,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쓴 러셀은 4 살 때, 사르트르는 15개월에 각각 아버지를 떠나보냈고,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그가 17세 때 자살했답니다. 20세기 말 저널리스트인 러셀 베이커는 자서전에서 5살 때 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하나님이 저를 정말 사랑하신다면 왜 아버지를 죽게 하셨나요?"라고 물으며 신앙에서 떠났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살아도 유약하고 학대하는 아버지에 의해 볼테르는 이신론자가 되었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자기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약하고 성도착자였던 아버지를 증오함으로 종교적 믿음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승리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대인관계의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1.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이겨야 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첫째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과 대적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 기독교 신앙인들은 심각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기독교인을 최초로 잔인하게 박해한 로마제국의 왕은 네로입니다. 두 번째로 잔인한 박해자로 이름을 올린 황제는 11대 도미티아누스입니다. 이 사람의 통치 기간이 A.D. 81년부터 96년까지 15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A.D. 85-96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 황제가 도미티아누스라는 말입니다. 그는 서민적이고 소박했던 아버지(베스파시아누스)와 형(티투스)과는 달리 어릴 때부터 황궁에서 자라 사치스러웠고, 형이 일찍 요절한 탓에 30세의 젊은 나이에 얼떨결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황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들은 죽은 후에 신격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신으로 추앙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모든 로마 사람들에게 1년에 한 번씩 황제를 위해 소량을 향을 태우고 “가이사는 주님이시다.”라고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오직 그리스도만 주님으로 섬겼기 때문에 황제숭배를 거절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집과 전토를 잃고 카타콤에 숨어 살아야 했고, 잡히면 화형을 당하고 사자들에게 물려 주어야 했습니다. 황제의 추종자들은 기독교인을 박해하기 위해 가짜 뉴스를 퍼뜨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음란한 밤 집회를 가지며, 자기 자녀들을 죽인다’는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기아나 전염병, 지진이 나면 기독교인들 때문에 로마의 모든 신들이 노했다고 책임을 전가시키고, 재산을 압수하고 추방하거나 불순분자로 몰아 맹수들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네로는 로마에서만 박해를 했지만 그는 소아시아까지 박해를 해 로마의 클레멘트는 순교를 당했고 요한을 밧모섬에 유배당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신앙인들을 노골적으로 박해하는 사람들과 그의 추종자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는 6분에 1명씩 박해로 살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슬람 극단주의로 인해 2017년 사망자가 8만 4천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자들이 정권을 잡은 북한,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수단, 중국 등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신앙 하나로 박해들 당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무신론자들이 권력을 잡고 제도를 통해 전도를 하지 못하게 하고, 소수 인권법을 만들어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자녀들을 신앙으로 기르기 위해 세운 미션 스쿨에서도 기도도, 예배도 드리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아주 기독교에 대하여 적대적인 언론들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비리가 교회에서 발견되면 그것이 모든 교회가 부정한 것처럼 보도합니다.

두 번째 대상은 교회에 다녔다가 이단에 넘어간 사람들입니다.

당시 교회 내에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거짓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는 자들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성도들을 유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지 요일 2장 19절을 보십시오. 교회에 속했다 분리되어 나갔습니다(요일2:19) 이들을 적그리스도라 불렀습니다(요일2:22).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자들입니다(요일2:18,22,4:3; 요이1:1:7). 예수님의 성육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3).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고백하지도 않습니다. 영지주의 자들입니다. 가현설을 주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실체가 아니라 단순한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이입니다. 실제 인간이 아니라 인간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영은 선하고 거룩하며 육은 악하고 더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인간 구속사건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이단이 있습니까? 교회를 떠나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특히 요즈음 기승을 부리는 신천지 이단들이 간첩처럼 위장하여 교회에 침투하여 할 수만 있으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인들을 유혹하려고 합니다.

셋째는 같은 신앙 생활하는 교인들입니다. 3장 15절을 보십시오.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2:11). 3장 18절을 보십시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2:15). 20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성화되지 못한 신앙인들입니다. 세상의 비난거리가 된 신앙인들입니다.

 

2. 우리가 어떻게 대인관계에서 이런 대상자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입니다(6). 여기서 안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이고 관계적으로 안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하와와 동침했다는 표현에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기쁘게 순종하고, 인격적으로 교제를 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영 즉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대인관계에 있어 이미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적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자들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기었나니’ 로 번역된 ‘네니케카테’ 의 원형 ‘니카오’는 선이 악을 이긴다는 관점에서 역사의 종국에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가 심판자로 오셔서 모든 악한 세력을 파하시고 승리할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계 17 :14). 문법적으로 완료 시제입니다. 성도들의 승리가 이미(already)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 사건임과 동시에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이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 곧 사단에 대한 승리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왜 우리가 이미 이겼고 지금도 이기고 앞으로도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이기신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있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보다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 공동체가 결국 적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무리를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크다는 ‘메이존’은 보다 월등히 크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사단보다 훨씬 막강하고 위대합니다. 사단은 결코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으며,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결코 성도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이겼습니다. 모르더개와 에스더가 하만을 이겼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이겼습니다. 엘리야가 850명의 이방 선지자를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우리가 힘없고 무능력하고 연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신앙인들이 핍박하는 자, 비난하는 자, 힘이 있는 자를 이겼습니다. 네로가 이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자살하였고 역사 속에서 살아졌습니다. 도미티아누스는 영원할 것같았지만 겨우 15년 통치하고 노예 스테파누스에게 비참하게 암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원로원은 그를 '기록말살형'에 처해 역사 기록에서 해당 황제의 모든 통치 기록을 지워버렸습니다.

 

3. 우리가 무엇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지기 위해 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이기기 위해 싸웁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당신의 무기는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우리의 인생은 모든 순간이 전쟁이다’라고 말합니다. 생존경쟁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12가지 무기를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강력한 무기 없이는 살아남을 수도 결코 승리할 수도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그 무기를 “명확한 목표, 대담한 공격, 핵심을 향한 집중, 유연한 전략, 완벽한 정보, 긴밀한 팀워크, 강력한 리더십, 확실한 단순화, 신중한 안전, 효율적인 경제성, 예상 밖의 기습, 끝까지 해내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이 정도의 승리의 무기는 아주 건설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승리하기 위해 이 정도의 무기를 사용합니까? 실제로는 권무술수가 판을 칩니다. 승리를 위해 힘과 교활함으로 중상모략합니다. 진짜보다 더 진짜인 체 위장하고 포장합니다. 눈속임하는 연기를 하며 연막전술을 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연기에 능하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속이지 못하면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뒤통수를 치고 중상모략으로 상대를 꺾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끼를 던지고 편가르기를 하고 상대를 함정에 빠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승부를 다투는 게임은 권모(權謀)와 술수(術數), 중상과 모략의 세계이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상대의 허점을 빨리 파악하여 공격하여 승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대중이란 머리를 쓰다듬거나 없애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에 덜 주저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팽개쳐 버리지만 두려움은 항상 효과적인 처벌에 대한 공포를 유지함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을 이기는 무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이기기 위해 불량한 무기를 사용합니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조작게임을 합니다. 미움과 증오는 기본입니다. 때로는 거짓과 술수를 사용합니다. 언론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싸움을 보십시오. 국민의 행복과 평안보다는 국민을 이용하여 차기 정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싸웁니다. 상대방을 저주하듯 약점을 잡아 비난하고 비판합니다. 불량한 사람들은 폭력과 폭언도 서슴지 않고 욕과 저주도 사용합니다. 서로 이기겠다고 사나워지고, 거칠어집니다. 때로는 무력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 신앙인의 무기가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의 속성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이겠습니까? 7-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확실한 증거는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말씀은 곧 사랑하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사랑입니다.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9-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고 호언장담하였던 나폴레옹은 세상을 힘으로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에서 파란 만장한 생애를 마치면서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나와 시저는 칼로 세상을 정복했다. 그러나 그 제국은 영원히 멸망해버렸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병졸 하나 없이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다. 그리고 그의 제국은 아직도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부하는 온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로마의 황제도, 빌라도의 명령을 추종하는 군병도,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도, 무능하다고 비웃은 무리도, 침을 뺏으며 모욕을 주는 무리들도 다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남편을 이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내를 이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시어머니, 며느리를 이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자식을 이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원수를 이기고, 경쟁자를 이고, 비난하는 자를 이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약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비굴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무능력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죽음이 십자가의 사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랑은 죄보다 강합니다. 사랑은 칼보다 창보다 강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천사를 동원하여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으로 당하셨고, 사랑으로 맞으셨고, 사랑으로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결국,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정죄가 십자가의 사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싸워서 이기고 진 사람은 많지만, 사랑해서 이기면 진 사람이 없습니다. 핍박자와 원수를 이기는 최대의 무기는 사랑입니다. 유혹자를 이기는 최대의 무기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원수가 없어지고, 사랑하면 유혹자도 없어지고, 사랑하면 대적자도 없어집니다. 원수가 친구가 되고, 유혹자가 동지가 되고, 적이 협력자가 되어버립니다.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 명령을 실천하는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21).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7절).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안다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7).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16). 12-16절에서 네 번이나 강조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믿는 사람들끼리도 이기기 위해 얼마나 고소 고발이 남발되고 있습니까? 장로님이 목사님을 목사님이 장로님을, 집사님이 집사님을 서로 고소 고발합니다. 한해에 70만여 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전체 소송건수의 약 18%에 이른다고 합니다. 고소 고발하여 승소한다고 그것이 이기는 것이겠습니까? 대법원까지 3여년 다투다 보면 증오와 원망만 남고 신앙은 다 없어져 버립니다. 후손들과 주변 사람들은 신앙을 가지겠습니까? 사랑의 사도 요한은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맹수들에게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밤이면 십자가에 매달려 화형을 당합니다. 때로는 끓는 물속에 들어야가야 만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사랑 때문에 자기의 목숨도 내어 놓은 사람들도 있는데 작은 이해관계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고소 고발하는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 결국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이겼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마를 사랑으로 자신의 양자로 삼아 이겼습니다.

 

4. 우리가 어떤 사랑으로 승리하여야 하겠습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였은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다는 말씀입니까?

9,10절 보십시오. 독생자를 보내시는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한 그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배반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우리가 사탄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조건을 보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였습니다. 이 사랑은 자기로 시작하는 사랑입니다. 자기 욕망에서 시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 사랑은 철저히 이기적인 사랑이요, 에로스적인 사랑입니다. 이용가치가 있으면 사랑하고 이용 가치가 없으면 버립니다. 지극히 감정적이고 말초적인 사랑이 되기 쉽습니다. 보상적인 요구가 거절당하면 증오로 변하여 버리는 것이요, 그 사랑 뒤에는 미움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상대방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랑은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조건이 달라지면 금방 배신하고 증오하고 이용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고, 사랑해도 그 보상을 기대할 수 없음에도 먼저 사랑하여 주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주님께서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사랑하면 이기지 못할 대인관계는 없습니다.

스티브 세인트가 쓴 '창끝(End of Spear)'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창끝'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었습니다. 휘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의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남미 에콰도르의 와오다니(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선교사로 갔다 모두 아우카족의 창에 찔려 살해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들이 남편들의 뒤를 따라 아우카족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의 남편을 죽인 사람들은 정성껏 섬겼습니다. 추장을 비롯한 모든 아우카족들이 이들의 헌신에 감동했습니다. 부인들이 본국으로 떠날 때에 아우카족 추장이 물었답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이 고생을 하십니까?"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벳이 말했습니다. "남편들은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이 그들을 죽여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우리는 남편들이 그렇게도 당신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들려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말이 무엇이냐고요?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엘리엇 등을 창으로 찔렀던 5명의 아우카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답니다. 그 가운데 4명은 목사가, 한 명은 전도자가 되었답니다. 아우카족 전체가 복음을 받아들였답니다. 5명의 아우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푼 사람이 살해된 5명 선교사 가운데 한 명인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 스티브 세인트 선교사였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결국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생존의 전쟁터에서 상대를 이기려고 하지 말고 십자가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자가 결국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아공 빈민촌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빵을 만들어 빈민촌 홈리스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마마 제인'으로 불리며 선교하시는 남지연 선교사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답니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삶을 추구했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든 운동이든 1등이었답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티칭프로 자격도 얻었답니다. 95년 세계적 자동차 회사인 GM의 한국지사장이 되었답니다. 삶의 전쟁터에서 남부럽지 않게 승리하였고, 전 세계 명문 골프장을 돌며 골프를 치면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답니다. 그러나 2004년 위암 진단을 받고 건강하다고 장담했던 자신이 불쌍하고 가소로워졌답니다.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기도하였답니다. 위의 75%를 잘라냈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았답니다. 전에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현철 전 삼미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답니다. 몸도 불편한 상태에서 재벌 회장을 지낸 사람이 선교에 투신한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자신도 여행 가방 두 개 분량의 소지품만 빼고 자신의 소유 모두를 하나님께 내놓고 선교지로 갔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선교지에 뼈를 묻겠다고 자녀에게 말하고 67살 나이에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세상에서 승리할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사랑으로 이기는 싸움이 영원한 승리입니다. 힘겨운 세상입니다. 고단한 인생길입니다. “고단한 인생길 힘겨운 오늘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 지나간 아픔도 마주할 세상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보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어진 내 삶의 시간 속에 주의 뜻 알게 하소서 하루를 살아도 기쁨으로 가리 후회도 염려도 온전히 맡기리 예수 늘 함께 하시네” 우리가 싸우고 있는 삶의 전쟁터를 우리 예수님이 다 아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랑으로 결국, 승리하였듯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미 이긴 싸움을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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