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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신앙생활(1) 승리에 대한 확신(요일 5:4-5)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362 추천수:2 112.168.96.218
2019-01-06 09:31:05

 

승리하는 신앙생활(1) 승리에 대한 확신

요일 5:4-5

 

새해 첫 주일 예배입니다. 올 한 해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먼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전쟁에서 지게 되면 참으로 비참해집니다. 우리 민족은 5천 년의 유구한 역사가 있는 나라입니다. 무수히 외세의 침범은 받았으나 속국이 되지 않았는데 일본의 침략을 받고 전쟁에 져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등과 같은 유능한 인재가 희생되었습니다. 조선 밖으로 징용된 사람이 150만명, 조선 내 작업장에 징용된 사람이 약 200만명이었답니다. 종군위안부 2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약 2500만 명이었으니까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희생되었습니까? 전쟁에 지면 이렇게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일본에 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기의 열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동학군은 죽창과 화승총으로 무장하였습니다. 유효사정거리 200m였답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1분에 15발 발사할 수 있는 유효사거리 800m인 무라타 소총으로 무장하였습니다. 이렇게 무기가 달라 동학군은 3만이 전사했는데 일본군은 1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똑같이 서양의 침범을 받았지만 조선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우고 주자학에 집중했고, 일본의 요시다 쇼인은 ‘화혼양재’를 내세우며 서구 문명을 배워 기술을 발전시켰답니다. 당시 대원군은 성균관, 향교, 서원 등 800여 개의 교육기관을 통해 수많은 유학자와 관료를 배출했답니다. 요시다 쇼인은 4평 서당에서 일본의 정신을 지키되 서양의 산업혁명을 가르친 92명의 제자를 배출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 산업혁명을 일으켰답니다. 대원군 역사 젊은이의 교육에 힘을 썼지만, 주자학에 머물렀고 요시다 쇼인은 제자들이 서양문명을 가르쳐 메이지유신을 이룬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 우수한 무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패권의 비밀>을 쓴 김태유 교수의 진단입니다. 그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국가는 지배자(ruler)가 되고, 실패한 국가는 피지배자(colony)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세계의 패권이 스페인- 네덜란드-영국- 미국으로 이동한 것은 결국 산업화의 성공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16세기 농업제국의 영화를 누렸던 스페인 제국이 시대의 흐름에 변화를 꾀하지 못하여 네덜란드에 패권을 넘겨주었다는 것입니다. 세계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 상업혁명을 이루어 17세기를 주도했던 네덜란드도 상업에 치우쳐 산업혁명을 꾀하지 못해 결국 패권을 영국에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영국은 네덜란드의 상업혁명에 과학기술을 접목시켜 산업혁명에 성공해 해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 패권을 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국도 금융소득에 안주하다 기업가 정신과 과학기술, 모험 정신을 가진 미국의 청교들에게 그 패권을 넘겨주고 말았다고 합니다. 김태유 교수는 우리나라 현실을 진단하면서 “21세기 패권은 4차 산업혁명의 성공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면 세계 패권을 쥘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그 방법을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산업혁명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닌데 나라의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공무원을 혁신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관료를 전문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젊은이들을 산업혁명의 전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피부과 성형의를 선호하는데 앞으로 의료분야의 80%는 AI가 당당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뛰어난 젊은이들이 AI나 빅데이터, 로봇, 생명공학 등 산업혁명을 일으킬 분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북방 경제를 선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난화로 북극이 녹고 북극항로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북극항로는 선점하면 새로운 대분기인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네덜란드는 면적이 한반도의 5분의 1이지만 상업혁명으로 세계 패권을 쥐었는데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섬나라 영국이 한때 세계의 패권을 쥐었듯이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기술력을 가지고 산업화를 이룬 나라가 결국, 세계 패권을 쥔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이 기술력을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5G 상용화를 앞두고 지배권 확대를 위해 기술패권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중국이 기술 강국이 되지 못하도록 첨단기술 육성 정책인 ‘중국 제조 2025’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기술을 통한 끊임없는 패권전쟁을 했습니다. 나라나 기업인나 개인이나 앞선 기술을 쥐고 산업화를 이룬 자가 승리합니다. 이기기 위해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들은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윌(Will)박사와 아리엘 듀란트(Ariel Durant) 박사에 의하면 지난 3421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86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지구촌 역사에는 91.6%가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전쟁이든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입니다. 패자는 엄청난 피해를 보게되는 것이 전쟁입니다. 지난 100년, 20세기에만도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서 약 9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살상되었다고 합니다. 예일대학에서 역사와 문명을 가르치는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은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전쟁을 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동기는 "경쟁자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이익추구, 명예추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싸움의 이유를 야고보서 4:1이하에서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약 4:1)"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정욕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욕심, 탐욕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싸움을 영적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쟁은 긍국적으로 사단과의 싸움이고, 그 사단이 지배하는 욕심과의 싸움입니다. 죄와의 싸움입니다. 유혹과의 싸움입니다. 무기력과의 싸움입니다. 무신론과의 싸움입니다. 쾌락주의와 싸움입니다. 황금 만능주의와 싸움입니다. 결국 세상 풍속과 욕심을 가지고 우리를 실패하게 만들려는 사탄과의 전투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것은 요한일서 2:16절에서 세 가지로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일 2: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누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영적 싸움에서 기술력을 통해 산업혁명을 이룬 나라가 이기겠습니까?

 

1. 누가 이길 수 있습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일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난 자 모두가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난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는 자입니다. 성령님을 모신 자들입니다. 요일 3장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자녀의 권세를 받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탄의 자식, 어둠의 자식, 죄악의 종이 아닙니다. 감히 누구도 범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권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대통령만 되어도 얼마나 막강한 권세를 행합니까? 마음대로 장관을 임명할 수 있고 갈아 치울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믿음으로 아들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나약한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을 부정하고 저주까지 한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나갈 때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전 문 앞에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웁니다. 설교하여 3천명, 5천명을 회개하고 돌아오게 합니다. 이런 승리가 베드로에게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어떤 상황, 어떤 경우든지 떠나지 않으시고 역사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기다(니카오)’는 말은 ‘정복하다’, ‘승리를 쟁취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사는 우리도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환난도 당하고, 시험과 핍박을 당하고, 질병도 걸리고, 실패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승리합니다. 로마서 8장 37절 말씀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한 번 약속한 것은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은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명기 31: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결국 승리하여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도의 견인이라고 합니다. 장로교인들이 믿는 5대 교리가 있습니다. 첫째가 인간의 전적 부패, 둘째 무조건적 선택, 셋째 제한된 속죄, 넷째 불가항력적 은혜, 다섯째 성도의 견인입니다. 한 번 구원해 주셨다면 그 구원은 끝까지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거지가 왕자가 되었는데 왕이 잘못한다고 다시 거지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타락할 때도 있지만 지옥 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배는 광대하여 폭풍이 일어나면 구토도 하고 배에서 뒹굴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는 바다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죄를 짓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고 해서 구원이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 하나님은 우리를 실패하도록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승리하도록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단과 싸움에서, 근심과 걱정의 싸움에서, 불안과 두려움의 싸움에서, 절망과의 싸움에서, 질병과의 싸움에서, 고독과의 싸움에서, 유혹과의 싸움에서, 분노와의 싸움에서, 증오와 미움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올 한해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길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승리는 결코 빼앗길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쓰리라 천지는 변해도 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 두려워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실망치 말라 네 소원 이루는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돌리리 영광의 그날이 속히 오리니 내게 찬양하리라...”

 

2. 우리가 누구를 이깁니까?

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코스모스)은 두 가지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계 또는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합니다.

둘째는 악한 영에 의해 지배되는 영역으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대적하며 거부하는 모습을총체적으로 표현하는 세상입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처했다고 말씀합니다. 사탄의 무대가 된 세상을 말합니다. 당시 교회를 박해하는 로마 황제가 지배하는 세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탄을 ‘세상 임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즉, 사단이 지배하는 불신적인 집단, 하나님에게 분리된 사람들의 모든 무리, 죄로 파멸된 하나님과 적대된 체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체제와 사상 배후에는 사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사단과 싸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사로잡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각 분야에서 영적 전쟁을 통해 하나님이 통치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단의 지배를 받는 이 세상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2장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래서 그 세상에는 죄가 가득하고(로마서 5:12), 화가 미치게 되며(마태복음 18:7),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며(요한복음 3:19), 악하며(갈라디아서1:4), 거짓 선지자가 많이 머물고 있으며(요한일서 4:1), 미혹하는 자들로 득실거리고(요한이서 1:7),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요한복음 3:18-21) 큰 성 바벨론은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마는 불행한 곳입니다(베드로후서 3:10).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성공자가 되려고 평생 수고하다 모든 것 다 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단과 그 추종자들과 똑같이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이 땅의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평생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고 조롱하며 유혹하는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을 이기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는 핍박을 받을 때였습니다. 로마제국은 300년 동안 황제숭배를 강요하며 기독교인을 잔인하게 박해합니다. 존 폭스의 <순교자 열전>을 보면 얼마나 모진 박해를 받았는지 입에 올리기도 싫을 정도입니다. 제국 군대에 의해 화형이나 십자가 형은 물론 손가락과 발가락 위로 날카로운 바퀴 굴리기, 목구멍에 오물을 밀어 넣어 질식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입속에 화약을 넣은 뒤에 불을 붙여 머리 박살 내기도 하였고, 철사로 코와 귀와 입술 관통시키기, 매달기, 질식시키기, 불에 익히기, 칼로 찌르기, 튀기기, 난도질하기, 강간하기, 몸 쪼개기, 뼈 부수기, 살 갈아내기, 야생말로 몸 찢기, 익사시키기, 십자가에 못 박기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잔인한 짓으로 기독교인을 박해하였습니다. 지금도 인권이 보장되고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공중권세 잡은 사단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치체계와 사람들을 통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마찬가지입니다. 다 물질이 신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를 어리석다고 조롱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는 6분에 1명씩 박해로 살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권이 발달되었다는 지금도 세계 기독교인 가운데 5억~6억 명은 자신의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고, 북한,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수단, 중국 등 많은 나라의 독재 정부에 의해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로 인해 2017년 사망자가 8만 4천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수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네로 황제 다음으로 잔인하게 기독교인을 박해한 도미티아누스가 요한을 밧모섬에 유배시켰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갑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로마의 집정관 앞에 압송되어 로마의 황제 가이사를 주로 고백하기를 강요당하였지만 거절했습니다. 집정관은 최종적으로 네가 만약에 한 번만 굴복하면 석방시켜 주겠다고 제안하였답니다. 그때 폴리갑은 “내가 86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겨 왔으나, 그분은 나에게 어떤 잘 못도 행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해 준 나의 왕을 욕할 수가 있겠소. 당신은 한 시간 동안 타는 불로 나를 위협하나, 그 불은 이내 꺼질 것이요, 그러나 당신은 장차 올 심판의 불과 영원한 징벌의 불은 모르고 있소, 당신 마음대로 처결하시오.”라며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신앙인들을 이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이런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하지 않고, 이런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이런 세상을 이기었습니다. 우리도 동성애를 합법화하여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을 말도 못하게 입을 막고, 미션스쿨에서도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를 못하게 하는 세력에 굴복하지 말고 이겨야 합니다. 소수인권이라는 명목으로 교묘하게 신앙인을 깎아내리고,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세력 앞에 굴복하지 말고 이겨야 합니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에 불과하다며 하나님은 만들어 진 신에 불과하다며 지옥도 천국도 없으니 즐기면 살자며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려는 세력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사업을 승리를 위해 나아갈 때 집요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일으키려고 하는데 집요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목회는 건강하게 하려고 하는데 집요하게 방해하는 외적 세력과 내적 세력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이겨버려야 합니다.

세계 선교를 감당했던 안디옥 교회의 감독으로 40년 동안 섬겼던 이그나티우스가 있었습니다. 트라얀 황제는 자기가 신이라고 자기를 숭배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트리얀은 이그나티우스를 보고 “여기 사악한 마귀, 사람들을 속이는 자가 있구나!”라고 말합니다. 그 때 이그나티우스는 “나는 마귀가 아니라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신 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트리얀은 “네 속에 그리스도가 있다고? 본디오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리스도가 너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인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그나티우스는 “그렇습니다. 그 분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황제는 자신을 숭배하지 않는 이그나티우스를 로마의 국립경기장인 콜로세움에서 약 45000명의 관중 앞에서 처형했답니다. 맹수가 달려듭니다. 이때 이그나티우스는 “나는 맹수의 이빨 사이에 낀 하나님의 곡식으로 빻아져서 주님을 위한 거룩한 빵이 되고자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장열하게 순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진 것 같이 보였습니다. 세상이 이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남색을 좋아던 그는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말살하려 했던 기독교는 승리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신앙의 용장들을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11장 33절에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자의 입과, 칼날과 조롱과 채찍과 결박과 시련과 시험과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지만, 세상에 진 것이 아니라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네로가 그렇게 기독교인을 말살하려고 했지만, 그는 31살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10명의 황제들은 자신들이 승리할 것같았지만, 그들은 죽었고 신앙인은 승리하여 결국,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 교회를 보십시오. 세상과 타협하며 성공하는 교회를 하나님이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공통된 것은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사단 마귀에게 승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에게 “이기는 그에게는 (계2:7)”, 서머나교회에게는 “이기는 자는 (계2:11)”, 버가모교회에게는 “이기는 그에게는(계2:17)”, 두아디라교회에게는 “이기는 자와 (계2:26)”, 사데교회에게는 “이기는 자는 (계3:5)”, 빌라델비아교회에게는 “이기는 자는 (계3:12)” 라오디게아교회에게는 “이기는 그에게는(계3:2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기 보다는 이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정생활에서 직장생활에서 교회생활에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한 해 우리는 어떤 일이 다가 와도 이겨야 합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마귀의 활동무대인 이 세상은 우리가 단순히 성공하여 잘 먹고, 잘 살려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고 우리 주님께서 약속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초점과 관심은 이기기데 두어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그의를 위해 승리하는데 두어야 합니다. 롯의 아내처럼 너무 세상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비유로 말씀하신 부자처럼 너무 창고를 더 지어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밤 영혼을 거두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예수님이 반문합니다.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야고보서 4: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의 사람들, 자연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과 타협하거나 악에 속해 성공하고 출세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더러운 세상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빌3:8).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사단에 의해 잘못된 영향을 받아 악으로 물든 이 지상의 모든 것, 그런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데마는 바울과 같이 전도하다가 바울 곁을 떠났는데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것은 세상을 이긴 것이 아니라 세상에 진 것입니다. 사단을 두 날개를 통하여 우리를 세상에서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는 사자같은 날개를 달고 우리를 핍박합니다. 광명의 천사같은 날개를 달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 핍박과 유혹의 날개를 날고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세상을 꼭 이기시길 바랍니다.

 

3. 우리가 무엇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4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무엇으로 우리가 이깁니까? 돈으로, 힘으로, 무력으로, 세상 지혜로 이깁니까?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죄악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죄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죄의 삯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영적 죽음을 무엇으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을 무엇으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믿음밖에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안목의 정욕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생의 자랑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핍박과 유혹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무엇을 믿는 믿음입니까?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신학적 이론이 아닙니다. 변증학적 지혜가 아닙니다. 단순하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고 예수를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 간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속 주이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인 것을 단순하게 믿습니다. 생명의 주인이 아니면서 가짜로 세상에서 왕노릇하려고 하는 사탄이 부어 주는 죽음의 공포 지옥의 공포를 믿음으로 이겨버려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행16:31)"라고 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40)”

5절 보십시오.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단지 성인이 아닙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죽었지만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고 장차 재림하실 메시아이십니다. 이 믿음으로 환난도 이기고 핍박도 이기도, 오해도 이기도, 죽음도 이기도, 가난도 이기도, 질병도 이기고 걱정도 이기는 것입니다.

일본강점기 때, 그 모진 고난과 유혹 속에서도 신사 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은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이겼습니다. 일본 순사들은 목사님을 고문하며 의미 없는 죽음을 당하지 말라로 회유합니다. 목사직을 파면케 하고 모진 고문과 유혹을 했습니다. 주목사님은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이런 설교를 하였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을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맙시다. 풀과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그 아니 두렵습니까? 한번 죽어 영원한 천국 복락 그 아니 즐겁습니까? 이 주목사가 죽는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나는 결단코 하나님 외에 무릎 꿇고 절할 수 없습니다. 더럽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죽어 없어져 주님 향한 정절을 깨끗이 지키려 합니다. 주님 따르는 죽음은 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나에게는 일사각오(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재림하신다는 믿음, 믿는 자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어도 살아 영원한 천국 잔치에 참여한다는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을 돈으로 이기겠습니까? 명예로 이기겠습니까? 권력과 지식으로, 건강으로 이기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그 믿음으로 얼마든지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고백 교회를 창설했던 마틴 니묄러 목사님이 계십니다. 히틀러의 나치정권하에서 목사님들로 긴급동맹을 결성하고 조직적으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교회 일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고한 유대인들의 학살에 대해 항거하다 체포당해 8년 동안 감옥에서 옥고를 치었습니다. 그가 갇혀있던 방에는 조그마한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이 창문만이 유일하게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구멍이었답니다. 그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는 바깥은 죄인의 목을 매는 밧줄과 교수대가 전부였습니다. 어떤 날에는 죄인이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답니다. "만약 내가 저 교수대의 밧줄에 목을 맨 채 딛고 서 있던 의자를 병사가 차 버린다면 나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기도하며 죽음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살인자를 저주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나도 예수님처럼 죽어 예수님과 같이 천국에 살아야지."라는 믿음이 생겼답니다. 그때부터 그 믿음으로 인하여 마음에 있던 두려움이 사라졌답니다. 놀라운 평안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 천사가 수종을 들었던 것처럼 마치 천사가 곁에서 자기를 도와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답니다. 독방은 이제 주님과 교제하는 기도실이 되었답니다.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후에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연합군에 의해서 가까스로 구출되었습니다. 그때 니묄러 목사님은 깊은 산 속이나 수도원에서 수도를 하고 세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를 괴롭혔던 히틀러를 용서하고 나중에는 그는 히틀러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믿음으로 용서 못할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원수도 이길 수 있습니다. 환란도, 가난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야 합니다. 일부 언론을 보면 마치 우리나라가 최저 임금 정책으로 망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을 봅니다. 연초인데 정치인들은 검찰에 맡겨 해결할 지극히 사소한 일로 국가와 국민의 미래보다는 정략적 이익을 위해 국정조사와 특검을 운운하며 소모적인 정쟁을 하고 있습니다. 뉴스 위크지를 보니까 비즈니스 전망 조사 결과, 미국 기업 최고재무책임자 82%가 10년에 걸친 성장세가 멈추고 올해부터 경기가 나빠져 2020년에 침체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홍해도 다가오고 요단강도, 여리고성도, 애굽도 블레셋도 다가 옵니다. 믿음으로 홍해를 가르고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 말씀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믿음만 가지면 어떤 영적 전투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세상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천국에 가면 길바닥이 금덩이라고 성경을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조금 어려움이 온다고 두려워하며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것입니다. 경제 공황 같은 불경기에 부자도 태어나고 역전의 용사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7절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이 승리하게 합니다. 믿음이 이기게 합니다.

세상 권세를 잡은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질병도 이겨야 합니다. 욥은 사단이 주는 그 모든 시련을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은 구원을 받게 하는 믿음도 있지만 능력을 행하게 하는 믿음도 있습니다. 믿음 가운데는 귀신도 믿고 떠는 이론으로만 아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1절을 보십시오. 믿은 자는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3절을 보세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능력을 행하는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가르칠 때 믿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 법궤를 메고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돌라고 할 때 믿음으로 도는 것입니다. 그 때 믿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질병에 거릴 사람들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믿음을 가지고 얼마든지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KBS에서 방송된 미국 교포인 이승복 씨의 이야기를 아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8살 때 이승복은 부모를 따라 미국에 갔답니다. 11세에 기계 체조 선수가 되기 위해 운동을 했는데 18세에 연습 중 목뼈가 부러져 사지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게 되었답니다.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었답니다. 뉴욕대에 입학하여 어머니가 그의 손과 발이 되어 휠체어를 타고 대학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시며, 그의 지금 이 삶이 주님이 계획하신 삶이라고 믿게 되었답니다. 의대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하버드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답니다. 그리고 자신처럼 사고나 질병으로 마비되어 절망에 처한 환자에게 희망을 주며 치료해주는 의사의 길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환자들에게 말합니다. ‘계속 믿음으로 힘차게 나가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거야!’ 그의 어머니도 중풍으로 쓰러져 휠체어를 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답니다. 이 정도로 삶의 고난이 밀려오면 넘어지고 쓰러질 법도 하지만, 그는 믿음으로 자신의 휠체어와 어머니의 휠체어를 함께 밀면서도 주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신다고 신앙 고백하며,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간다고 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우리는 자신의 가지, 부족함, 곤고함, 고통을 없애달라고 애걸복걸하기보다는 당당하게 믿음으로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꾸 없애는 달라는 신앙이 아니라 이미 주신 믿음으로 이기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실 때 처음에는 이 잔을 없애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고 당당하게 이기셨습니다. 믿음으로 이기면 고통은 없어집니다. 믿음으로 이기면 질병은 없어집니다. 믿음으로 이기면 미움도 증오도 없어집니다. 믿음으로 이기면 근심도 걱정도 없어집니다. 믿음으로 이기면 두려움도 불안도 없어집니다. 믿음으로 이기면 질병도 무릎을 꿇습니다. ‘승리는 내 것일세 승리는 내 것일세 구세주의 보혈로써 승리는 내 것일세 내 것일세 내 것일세 승리만은 구세주의 보혈로서 항상 이기네 할렐루야!’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악한 중독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끊을 것 끊어 버리고 버릴 것 버려버리고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악한 습관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습관, 시기하는 습관, 남 흉보는 습관, 게으른 습관, 사치하는 습관, 불순종하는 습관, 외모 지상주의 습관 등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를 통해 이기는 자에게 상급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요한계시록 2:26)”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요한계시록 3:2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요한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요한계시록 2:17)”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기게 만들어 주십니다. “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 해 세상에서 반드시 이길 것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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