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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12)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삼하 12: 7-15; 시 51:1-1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572 추천수:4 112.168.96.218
2018-12-16 19:13:44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12)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

삼하 12: 7-15; 시 51:1-19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직업이 택배기사인 사람이 있었답니다. 온종일 택배 생각만 하고 살았답니다. 모처럼 쉬는 날이 있어 가족들과 함께 처가에 놀러 갔답니다. 딩동~ 하고 처가집의 벨을 누르자 장모님이 "누구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그분은 자신도 모르게 "택배요!"라고 했답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품은 것을 말하고 마음에 품은 대로 살아갑니다. 병을 흔들면 병에 담긴 것이 나오듯 사람도 마음에 담긴 것이 나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따라 걸음걸이, 태도, 말, 옷 입는 맵시, 장래, 직업 등이 달라집니다. 이무석 교수의 <마음>이란 책을 보면 “삶을 이끄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마음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살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합니다. <0.1초 만에 최악을 최고로 만드는 방법(히스이 고타로 저)>라는 책을 보면 저자는 마음먹기에 따라 재미없는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0.1초에 마음만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마음이 삶에 영향을 주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KBS스페셜 특별기획 다큐 '마음'>의 제작팀은 쥐를 실험해 보았습니다. 고 콜레스테롤 먹이를 토끼에게 먹이면서 한 그룹은 애정을 보이고, 한쪽은 맹수 울음소리를 들려주거나 괴롭히는 등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4주 후 스트레스를 받은 8마리의 토끼 중 4마리는 콜레스테롤에 의해 혈관이 막히고 녹내장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정을 받은 토끼 그룹은 동맥에 콜레스테롤이 쌓이기는 했지만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따라 몸의 면역기능 떨어지기도 하고 활성화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심신 상관(心身 相關)"이라는 말처럼 마음과 몸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심리, 신경, 면역, 내분비 등이 서로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의 벤슨(Benson) 교수는 “질병의 60%-90%는 육체적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마음이란 결코 단순한 추상적인 에너지가 아닙니다. 마음은 인생길의 안내자입니다. 마음은 인생의 씨앗이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에너지입니다. 미국의 수필가인 에머슨은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잠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난 11주 동안 마음 문제를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윗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통하여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외모보다는 마음을 보시는데 평생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어떤 일이든지 지혜롭게 행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넷째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매사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인간관계에 있어 타인의 장점을 보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일곱 번째는 시간에 있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여덟 번째는 주어진 삶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아홉 번째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적인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열번째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열한 번째는 하나님의 은총을 베푸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이 되어 다윗처럼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12번째로 오늘날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살려 보려고 합니다.

올해 우리는 미투 운동을 통해 많은 유명인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지사 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유명 연애인이 부담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습니다. 연극계의 황제라는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져 감옥에 갔습니다. 노예 문학상 후보라는 사람이 이제까지 쌓아 놓은 공든 탑이 휘청거렸습니다. 다양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등 어떤 분야에 있어서나 유명인의 불륜이 드러나면 인정사정없이 비판받고 사회적으로 거의 회생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가장 화려한 연예계조차도 불륜한 배우들은 하루아침에 광고가 끊어지고 출연한 기회가 없어져 버립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어느 날 다윗이 미투에 걸려 자신의 죄가 폭로되었습니다. 고발자는 선지자 나단이었습니다. 요압 장군이 암몬 나라를 멸하려고 전쟁터에 나가 싸울 때입니다. 다윗은 잠은 자다 저녁때 침상에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다 목욕하는 아름다운 한 여인을 본 것입니다. 여인을 보는 순간 음욕일 일어나 신하를 보내어 그 여인을 범하였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밧세바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밧세바가 임신해 버린 것입니다. 이 사실이 들통날 것같으니까 전쟁터에 나가 있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러들여 아내와 잠을 자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의협심과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동료들은 전쟁터 천막에서 자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만 편안하게 아내와 함께 자겠냐고 집에 가지 않고 군인들과 함께 병영에서 자는 것입니다.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이고 의협심이 강한 사나이였습니다. 자신의 불륜을 은폐하려는 다윗은 평소와는 달리 완전히 정신이 나갔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한번 마음이 병들면 이렇게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 남편을 전쟁터에서 죽이게 할 계획을 세웁니다.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써 우리아를 전장의 맨 앞에 세웠다 죽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아는 밧세바의 남편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왕이 되어 충성스런 부하를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살인 교사를 한 것입니다. 오늘날 대통령이 이런 짓을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당시는 절대 왕정 시대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잘 못을 지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의로운 사람 나단 선지자가 서슬 퍼런 권력 앞에 과감하게 권력으로 꼭꼭 숨겨놓은 죄를 지적합니다.

 

다윗의 죄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정확하게 지적을 합니다.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윗의 죄는 첫째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겼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관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를 이방인 암몬의 칼로 죽였다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다윗의 처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가 근본적으로 어떤 죄입니까? 단순한 살인과 간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사람으로 계명에 의해 통치해야 할 왕이 하나님의 십계명을 다 어긴 죄입니다. 네이웃의 지을 탐한 것이고, 거짓말한 것이도, 도적질한 것이고, 부모의 마음을 찢어 놓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고, 엿새동안 힘써 일하라는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인 것으로 하나님보다 쾌락을 숭배한 우상죄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한 죄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긴 죄라고 말씀합니다.

7-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은혜를 주어 첫째, 다윗을 왕으로 세웠고, 둘째, 사울의 추격에서 막아 주었고, 셋째, 여러 아내를 얻게 했고, 넷째, 유다와 이스라엘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부족할 것 같으면 충분하게 주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다 주었는데 정욕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와 같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반역의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첫째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다고 지성적으로 인정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지성적으로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는 태도가 바로 진정한 회개의 첫걸음입니다. 회개에는 두 종류의 회개가 있습니다. 불신자의 회개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회개입니다(initial repentance). 이 시대는 지식은 폭발적인데 영적 지식에 대하여는 무감각하여 죄를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거추장스럽게 생각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것을 애써 외면하는 것입니다. 죄의 댓가는 결국 죽음이고 지옥가는 것이고 불행인데 그것을 무시합니다. 또 한 종류는 신자의 회개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부패하여 믿은 후에도 죄를 짓고 반복적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repeated). 오늘날 믿는 사람들도 다윗처럼 살만하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단처럼 고의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거짓말 훈련을 시키고 거짓을 밥먹듯히 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엄청난 인생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 죄를 죄로 깨닫고 인정하게 됩니다. 구분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불신자의 최초의 회개를 회개라 하고, 신자의 반복적 회개를 자백이라고 구분하여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의 요소에는 지 정 의가 포함됩니다. 먼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이사야1:3)” 시편 10편 4절에는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않으니까 최초의 회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없으면 그 앞에는 천국도 없습니다. 최초의 회개를 했다고 해도 반복적으로 죄를 짓으면 마음이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서 죄가 죄인줄 알지 못하고, 죄를 지적해도 죄를 인정하기보다는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자 때문이라고 하고 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다른 사람에게 죄를 전가합니다. 솔직하게 인정하기보다는 죄를 합리화합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도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무엘 대신 제사를 드리는 죄를 지고도 사무엘이 늦게 와서 그랬다고 핑계를 댑니다(삼상15:10-23). 전쟁에서 진멸하라는 명령도 어기고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핑계대고 합리화합니다. 결국 사울은 죄를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하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버림 받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가족이 죽임을 당한 아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한 회개를 하지 않은 가룟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라고 회개하는 척만 하는 것입니다. 후회만 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이 때 상황을 기록한 시편 51편 3절과 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 죄가 어떤 죄인 것을 알았습니다. 신명기법은 남자가 남편이 있는 여자와 동침하면 둘 다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신22:22). 다윗은 이 말씀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합법적으로 위장하여 죄를 저질렀는데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 앞에 죄를 인정하고 왕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자기 위신, 자기 체면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고 진지하고 겸손하게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이런 회개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사람은 늘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마음을 가지시길 원하십니다.

 

둘째는 죄를 용서해달라고 감성적으로 하나님께 통회 자복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시편 51편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근거하여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인자,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시편 51편 9절을 보십시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시51:9)” 자신의 죄를 깨끗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로 자기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마치 전과 기록을 완전히 삭제해 버리는 것과 같이 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자신의 죄를 기억하지 마시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사할 수도 없고, 또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죄 사함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적당히 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6편 6절 이하를 보면 ““내가 탄식하므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어두웠나이다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시 6:6-8).”라고 했습니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적셨다고 했습니다. 범죄로 인하여 태어난 자식이 병들었을 때 7일 동안 금식하며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울며 회개하였습니다(삼하12:16,21).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고 언론과 인터뷰하며 태연하게 위선을 떨며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이렇게 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무릎만 꿇어도 얼마나 언론이 날리를 칩니까? 어떤 목사님 글을 보니까 남편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여집사님이 계셨는데 남편이 위암 말기였답니다. 그래서 심방을 가서 죽음을 목전에 둔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며 회개하고 예수 믿기를 권했답니다. 그 때 군인이었던 그 남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목사님, 다 죽어 가는 마당에 이제 와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나약한 짓입니다 군인답게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저를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쓸데 없는 자존심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 가지고 있는 지식, 권력, 돈, 명예 그런 것이 하나님 앞에서 뭐 대단하겠습니까? 비행기 타고 하늘을 올라가면 103층 빌딩도, 66층 빌딩도 3층 빌딩도 점 하나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한평생 많은 참회의 시를 썼습니다(6,32,38). 다윗은 울다가 또 울다가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 다윗은 한평생 자기가 범한 죄 때문에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회개의 눈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겠습니까? 시편 51편 17절을 크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물론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을 때 그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 오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구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2)”.

 

셋째 의지적으로 결단하여 다시는 그 죄를 반복적으로 짓지 않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는 반복적으로 그와같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시편 51편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윗은, 다시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변화를 받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죄를 완전히 끊어 버리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끊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시를 지어 드러내 놓고 자신의 죄를 공포합니다. 동일한 범죄를 짓지 안기 위해 제어장치를 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홀로 참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앞에서, 신하들 앞에서,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온천하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수치스럽겠습니까? 그러나 스스로 죄를 스스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합니까?

시편 51편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죄악을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한 의지를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용서받은대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서 살았습니다. 자신이 죄를 용서받은 대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회개의 열매입니다. 다윗은 압살롬 반란 때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주하는 다윗을 욕하고 저주한 시므이의 죄를 용서하였습니다(삼하 19:21-23). 므비보셋의 죄를 용서하였습니다(삼하 19:26-30). 회개에는 항상 합당한 열매가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전에는 더러운 것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싫어집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싫어한 것을 사랑했는데 진정 회개하고 나면 싫어지는 것입니다. 정죄하고 비판하기 좋아 하는 입술이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보였는데 진정 회개하고 나면 그런 입술이 보기 싫어지게 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눅19:8)”라고 회개했던 삭개오처럼 삶에 변화가 실제적으로 일어납니다. 캐나다에서 조선으로 와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했던 머레이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함흥에서 북쪽 100km 가면 삼호라는 자그만 동네가 있는데, 그 동네의 김씨 성을 가진 부자가 최초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답니다. 그가 예수를 믿은 후 가족을 모아놓고 선언했답니다. "오늘부터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그리스도인 답게 행동하라" 그리고 그는 함흥까지 사람을 보내어 성경과 찬송가를 사와서 식구들에게 나눠주고 예수 믿었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배우다보니 '그리스도인은 아내를 한 사람 이상 가지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부자였던 그는 세 명의 아내를 데리고 있었답니다.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내어 보내기가 어렵지만 2명은 내어보내야 하는데, 결단하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굳게 결심하고 목사님에게 말했답니다.

"세째 마누라가 제일 어리고 예쁘니 셋째 마누라를 데리고 살겠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말했답니다. "'첫번째 부인이 정식으로 합법적인 부인이고 다른 사람들은 측실 아닙니까? 첫째부인을 택하셔야죠." 예수 믿고 집안이 깨질 판이 되었답니다. 결국 그는 고민 끝에 목사님 말대로 첫째 부인을 택하고, 다른 부인들은 먹고 살만한 충분한 재산을 내어주고 다 내어 보냈었답니다. 결국 그는 나중에 장로가 되어 교회에 많은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짜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짝퉁 회개를 원하지 않습니다. 진품 회개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많은 이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진짜 회개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세례 요한도 이 땅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도 최초의 공식적인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라고 외쳤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받는 베드로도 첫 번째 메시지 역시 "회개하라(행2:38)"였습니다. 회개없이는 죄사함도 없습니다. 회개 없이는 천국도 가지 못합니다. 회개 없이는 이 땅에서 참된 행복도 평안도 누리지 못합니다. 회개없는 신앙인은 엔진 없는 자동차나 불꺼진 연탄과 같은 것입니다. 회개를 거부하면 천국도 가기 싫은 곳이 되어 버립니다. 회개가 없으면 자아에 집착하고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지국한 이기심과 쓰레기같은 자랑거리, 헌된 자존심, 잠깐이면 살아질 쾌락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은 탐욕이 판치는 인간 다윗이 왕이 되는 세상 나라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회개를 통한 하나님이 왕이 되는 하나님 나라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회개는 빨리 해야 합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서는 안됩니다. 작은 구멍 하나 막아 버리면 큰 둑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작은 병든 세포 하나 조기에 없애버리면 온 몸을 죽이는 암세포로 번지지 않습니다. 계속 싸인이 주어지고 경고가 주어지는데도 회개하지 못하면 그만큰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다윗의 범죄와 회개 사이는 최고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경과했습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 11:27)는 말씀과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삼하 12:14)는 말씀 사이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미투 사건을 보지않습니까? 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해결했다면 그렇게까지 자살하고 감옥에 갔겠습니까? 때늦은 회개는 그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회개할 때 사무엘하 7장에서 약속한대로 다윗을 죽게하거나 그 왕위를 빼앗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12장 6절에서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라고 말한 것처럼 그대로 그의 삶에 이루어졌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시편 11편에서 “내 뼈가 녹아 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밧세바를 취할 때 순간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육체적으로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적 쾌락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마음에 후회와 두려움이 얼마 있으면 다가오고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된 그 기간 얼마나 지옥같은 생활을 했겠습니까? 아이를 갖게 되고 자신의 죄를 숨기며 하나님께 기도도 못한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실제적으로 자식이 죽는 것같은 피해를 보는 것입니다. 아이가 1주일 동안 아프다가 죽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자신이 죽는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다윗은 아이를 위해 회개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 차라리 내 영혼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나님, 차라리 내 생명을 취해 주세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상실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학개서 1장 2절을 보시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의 일보다는 너희 일에 빨랐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의 하는 일을 불어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불어 버리면 끝입니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 하나님이 훅 하고 불어 버리시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무서운 말씀입니다. 10절을 보세요. 다윗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업신여기겠다는 것입니다. 칼이 네 집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성폭행과 살인, 패륜과 분열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네 처들을 빼앗아 다른 사람(아들 압살롬) 에게 주며, 그 사람이 백주에 사람들 앞에서 성폭행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무서운 말씀을 듣기 전에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이 무서운 징계는 다윗 가정에 그대로 임하였습니다. 죄의 댓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원수들의 비방거리가 되고 아이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죄의 용서를 받고 나서야 다윗의 군사들이 비로소 암몬 자손의 랍바를 쳐서 점령하게 됩니다(삼하 12:26). 다윗의 간음죄는 단순한 간음죄가 아닙니다. 다윗과 밧세바가 반드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입니다. 말씀을 수호하고 하나님의 통치의 본을 보여야 할 대표 선수로 뽑힌 사람이 지은 죄입니다.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사무엘하 12장 5절)”라고 말한 것처럼 자신이 죽어야 할 죄입니다. 재수 없게 걸린 죄가 아닙니다. 나단 선지자는 반드시 죽어야 할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회개해서 당신은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자신이 죽지 않는 용서는 받지만 그 죄로 인해 발생된 삶의 불행을 자신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무서운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은 용서받아 마땅이 간음과 살인의 댓가로 자신이 죽어야 할 형벌은 면했지만 그 죄의 징계로 혹독한 댓가를 치루어야 만 했습니다.

다윗으로부터 낳은 배다른 아들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근친 성폭행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삼하 13:28∼29). 다말의 오빠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했습니다.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다윗은 궁에서 쫒겨났습니다. 아들 압살롬은 다윗의 처들 즉 계모(후궁)들을 백주의 대낮에 성전 꼭대기에서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자행합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에 다윗의 군사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삼하 18:14∼15). 넷째 아들 아도니아가 왕권을 탐하다가 죽임 당했습니다(왕상 2:25). 다윗은 이 모든 것이 왜 일어났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18:33)”라고 했습니다.

어떤 죄를 졌다고 해도 회개하면 우리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고 영적 생명을 살려 주어 지옥에 가지 않게 하십니다.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뿌린 죄의 씨앗의 파괴력은 무섭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죄를 반복적으로 짓지 않도록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간음하다가 잡혀 온 여인 앞에 돌을 들고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여인에게 말씀합니다.“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음죄로 반드시 죽어야 할 여인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생명을 건져주시면서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여인이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간음행위로 인하여 상처받은 남편과 부모형제들의 고통까지 다 제거된 것은 아닙니다. “간음한 여인”이라는 딱지까지 완전히 사람의 머리에서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간음한 여인이 살아가면서 당할 수많은 사회적으로 고통과 고초까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앙금이 오래 남지 않도록 빨리 회개하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죄의 무서운 결과를 가볍게 받아들이며 알면서도 스스로 짓는 고법죄의 노예가 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죄를 지으면 무감각하지 말고 은폐하거나 핑계대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늦게 회개하지 말고 말씀을 듣고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때마다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데 주일 예배 짧은 회개의 시간 때라도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폭로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3:25)”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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