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예수 앞에 나오면(11) 연결자 안드레(요1:35-4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412 추천수:1 112.168.96.218
2018-08-05 13:09:52

 

예수 앞에 나오면(11) 연결자 안드레

요1:35-42

 

우리는 주일 마다 계속해서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 중에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에 대하여 살펴보며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12명 중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께 나와 제자가 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안드레입니다. 4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두 명이 나오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안나오고 안드레만 나옵니다. 안드레라는 이름의 뜻은 “사나이답다.”라는 말입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날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최초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으로 소개된 안드레를 통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내가 만난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영혼의 연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예수님 앞에 나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처음 한 것이 무엇입니까? 4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갑니다. ‘찾다’는 ‘휴리스케이’라는 헬라어 번역입니다. 원문에는 맨 앞에 나와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가장 먼저 우선순위로 베드로를 찾아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안드레는 형 베드로를 찾아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여러 남편을 두고 만신창이가 된 인생을 산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 그리스도를 소개하였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요한복음 1장 45을 보십시오. 나다나엘을 찾아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찾아 가서 무엇을 합니까? 잡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흉보고 험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자신이 만난 메시아 구세주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조상 대대로 그토록 기다렸던 대망의 메시야를 만났다고 그 놀라운 소식을 시몬에게 곧장 전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낸 것이 아닙니다. 42절을 보십시오. 데리고 예수님께 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관계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결혼하여 장모님을 모시고 있었고 가난한 어부였기 때문에 가장으로 아마 먹고 사는 일에 바빴을 것입니다. 그런 그를 말로만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예수님께 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 바로 가장 가까운 형제자매, 부모, 일가친척, 지인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안심하세요. 지옥은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즐기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14:1)"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2:4)"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 또 다른 내세가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말이 22번 나오는데 예수님이 14번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해 주신 말씀의 주제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입니다. 천국은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장소이지만 지옥은 단 한 방울의 물의 자비도 끊어진 고통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절박하게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죄가 용서되고 예수님을 다리로 해서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가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눅 4:43).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사명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왜 제자들을 불렀습니까? 사람 낚는 어부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하였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도 마지막 유언의 말씀으로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비부귀천을 막론하고 참으로 고위합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의 가치에 대하여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한 생명은 고귀하며 한 생명을 죽음에서 살리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내 부모, 내 형제, 내 친척, 내 가족, 내 이웃이 영원한 형벌에 처하는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라고 말하며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문둥이가 된 성자]라는 책을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다미엔 이야기입니다. 문둥이들을 집단 수용한 섬에 들어가 복음을 전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합니까? 자신이 문둥이기 됩니다. 그 때 그들은 감동하여 예수를 믿게 되고 섬 전체가 예수를 믿는 천국으로 변합니다. '악랄한 천재', '더러운 속임수의 달인', '사악한 천재', '더러운 협잡꾼'이라 불리던 찰스 콜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긴 헤트필더, 휴스, 퀴에라는 세 의원은 그를 위해 날마다 기도 시간을 정하여 함께 기도하였고 그를 찾아가서 위로하며 책을 주었답니다. 특히 그 중에 퀴에라는 의원이 찰스 콜슨의 형 집행시간이 7개월가량 남았을 때 평상시처럼 그를 위해 기도하는데 마음에 그를 위해서 대신 옥살이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생겼답니다. 변호사이기도 한 퀴에는 특수 법조문 안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형기를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법원에 제안해 보았답니다. 그러나 거절당했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콜슨은 마침내 감옥에서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였답니다. 믿는 자들이 값없이 베푼 사랑 앞에 교만하기 그지없던 그의 자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답니다. 남아있는 형기동안 죄수들의 빨래를 해 주었답니다. 그들과 더불어 기도 모임을 시작했답니다. 일평생 죄수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Born Again>이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교도소 선교회’를 만들어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았습니다. 목회자가 되어 미국 교정 선교의 아버지로 80세까지 평생 감옥의 재소자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보드라운 홑이불 같은 경건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의 인생이 천국으로 변하고, 그의 가정이, 그의 가문이, 그가 거하는 세상이 천국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여 그들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만남을 가지게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 연결시키는 영혼의 연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 12:3)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을 전한 사람이 위대하게 쓰임받게 하는 사역의 연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자신의 형님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 베드로를 보는 즉시 완전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는 것입니다. 변화되기 전의 시몬은 과격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견고함을 상징하는 게바(반석)로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안드레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만났을 때는 “무엇을 구하느냐? 와 보라”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런데 형을 보자 반석처럼 사용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주도권을 빼앗긴 것입니다. 전도했는데 그 사람이 교회 장로님이 되어 쓰임 받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안드레가 전한 예수님을 만나자 그는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학문이 높지 않은 무식한 사람이었지만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니까 하루 3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부였던 그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솔로몬 행랑에서 전도할 때 하루에 남자만 5천 명의 성도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3:11-25, 4:4), 룻다에서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쳤습니다(행9:34) 욥바에서 죽은 자인 다비다를 살렸습니다(행 9:36-43) 가이사랴에 있는 백부장 고넬료에게 전도함으로 이방 선교의 첫 문을 열었습니다. 안드레는 성경을 기록하지 못했는데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하고 소아시아에 가서 전도하고,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연결시켜 주면 그가 예수님과 함께 내가 하지 못하는 놀라운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내가 시간이 없고 내가 재능이 없으며 내가 물질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 모세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이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가나안 정복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없다고 성전을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완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능력 부족하다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면서 사역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연결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연결자가 되면 예수님께 나온 그 사람이 예수님의 손에 쓰임 받으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그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연결자 안드레를 통하여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요한복음 6장 8-9절을 찾아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남자 장정만 5천명이 됩니다. 아이들과 여성들과 합하면 아마 2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안드레가 무엇을 합니까? 안드레는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어린 아이를 예수님께 소개합니다. 그가 소개한 한 어린 아이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하고 남은 조각을 12바구니나 거두었습니다. 도시락 하나 가지고 있는 어린 아이 하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드레가 그 아이를 예수님게 연결하고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도시락 하나가 예수님 손에 의해 축사되니까 2만 여명을 충분히 먹이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말이암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4절 같이 읽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못한다고 사역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못한다고 자녀교육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못한다고 사명을 접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디엔가 준비된 영혼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사역의 연결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봉사하지 못한다고 헌금하지 못하다고 선교하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사람들 앞에서 커다란 각광을 받지 못하는 두 목사님이 앉아서 자신의 피곤한 목회 생활을 이야기했답니다. 한 목사님이 말했답니다. "나는 지나간 3년 동안 사역을 했지만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거듭난 성도는 로버트 마펫이라는 청년 한 사람 밖에는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목사님이 말했답니다. "나는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한 주간 동안 부흥회를 가졌는데 커다란 기대를 걸고 이 집회를 인도했지만 한 사람 밖에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수 년 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이 한 목사님을 통해서 3년 만에 얻었던 한 명의 결신자 로버트 마펫은 아프리카 선교의 기초를 놓았던 선교사가 되었고, 일주일간의 부흥 집회를 통해서 얻었던 유일한 결신자인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대륙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불을 지피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위대한 부흥 운동을 일으킨 무디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디가 4 살 되던 해에 아내와 7남매, 그리고 빚을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무디는 삼촌의 구두 가게에서 구두 수선을 했습니다. 삼촌은 교회의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무디의 꿈은 빨리 돈을 벌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의무적으로 교회는 나갔지만 예수님에 대하서도 천국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회에 나간 지 1년이 지난 때 그에게 그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에드워드 킴볼이 그를 찾아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구주로 영접하고 그는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기뻐해 주세요. 1837년 2월 5일은 제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생일이지요? 18년이 지난 오늘 4월 21일은 성령으로 제 영혼이 거듭난 생일입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되어 16명에 불과하던 주일학교를 1,000여 명이 모이는 주일학교로 부흥을 시켰습니다. 킴볼이 평생동안 하지 못한 일을 무디는 몇 년 만에 해 버린 것입니다. 100만여 명에게 복음을 전하며 한 시대 하나님의 종으로 위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디는 메이어에게, 메이어는 채프먼에게, 채프먼은 야구선수 빌리 선데이(Billy Sunday)에게, 선데이는 빌리 그래함을 변화시켰고 빌리 그래함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연결 고리는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까지 계속 이러질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우리는 안드레처럼 내가 예수님을 전한 사람이 위대하게 쓰임받게 하는 사역의 연결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연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의 연결자, 사역의 연결자로 쓰임 받을 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연결하는 내 인격이 상대방에게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중매쟁이가 거짓말만 한다면 그의 말을 듣고 선을 보러 가겠습니까? 예수님께 중매시키는 중매쟁이로 우리가 살 때 우리를 볼 때 믿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우리 말과 행동을 보고 누가 예수님께 오겠습니까? 어떤 남편은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 절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자신의 부인 때문에 나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천사 같을지 몰라도 집에서는 마녀 같다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베드로 형에게 예수님을 전했을 때 집안에서 안드레가 신뢰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베드로가 따라갔겠습니까?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고 가룟 유다를 빼고는 다 예수님을 닮으려고 무척 노력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기록으로만 보면 아마 안드레가 가장 예수님을 닮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안드레에 대한 기록이 요한복음 12장에 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0-2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 사람 몇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 보기를 원했습니다. 빌립이 헬라 계 유대인이기 때문에 말이 통하여 빌립에게 가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도 헬라인들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나 요한이나 야고보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안드레에게 말합니다. 왜 빌립은 안드레에게 헬라인을 소개했겠습니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서로 높은 사람되기 위해 싸운 사람들입니다. 오순절 성령 받기 전까지는 편협한 민족주의 자들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자신들의 출세욕에 사로잡힌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제자들도 안드레가 첫 번째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인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3명의 친위 그룹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변화산에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만 데리고 올라갑니다. 자신이 전도한 베드로는 데리고 올라가고 자신보다 늦게 예수님께 온 사람들은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갑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할 때도 세명만 특별대우를 합니다. 그는 늘 베드로의 형제 야고보로 소개되었습니다.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마가복음 3장 16절 이하에서 제자의 이름을 기록할 때도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을 기록하고 그 다름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문 안의 그룹이고 안드레 이하는 문 밖의 그룹입니다.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이 사실을 빌립이 몰랐을까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한 번도 서운한 기색을 보이지도 않고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묵묵히 연결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는 폭넓은 사람이었습니다. 편협한 민족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안드레가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인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드레에게 소개하면 화내거나 야단치면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분명히 소개해 줄 것으로 빌립은 믿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제자들에게 안드레의 인격이 인정받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빌립은 헬라인들을 안드레에게 소개했고 예상대도 연결자 안드레는 이들을 예수님께 소개했습니다.

우리가 안드레 같은 인격을 가진 연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너무나 옹졸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다 악수를 하면서 나 하고만 악수를 안해도 서운하며 교회를 떠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듯이 교회 다니면서도 구역식구들이, 다른 성도의 자녀들이, 다른 성도의 사업이, 다른 교회가 달 되는 꼴을 못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인간의 속성입니다. 정치인들을 보십시오. 상대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든 성공한 정부가 되지 못하게 만들어 다음 선거 때 자신들이 집권하려고 합니다. 신문을 보십시오. 보수신문과 진보 신문이 나뉘어 어떻게든 상대의 허물만 드러내어 보도를 해서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합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시기심이 많은 사람은 어떻게든 목사와 장로, 교회의 단점만 보고 비난하려고 합니다. 교인 중에 가장 힘들게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목사의 사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같이 고독,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시어머니를 사방에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모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두 명이 강대상 꽃꽂이를 하는데 부활절 때 당번이 아닌 분이 꽃꽂이를 하고 있어 오늘 다른 집사님이 당번이 아니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것을 물어 보았다고 교회를 안 나와 속상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떤 사모는 교회에 해외여행 한 번 안 가본 분이 있어 그 분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갔다왔더니 유력 권사님이 자신과 같이 안갔다고 삐져 교회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훈 목사님의 '사모의 길 살모의 길' 중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방정하면 건방 떤다 하고, 정숙하면 내숭 떤다 하고, 청빈하면 궁상떤다 하고, 많이 배우면 목사 앞서 간다 하고, 적게 배우면 무식하다 하고, 눈물 흘리면 질질 짠다 하고, 웃고 있으면 무게 없다 하고, 절약하면 인색하다 하고, 넉넉하면 헤프다 하고, 심방 동행하면 설친다 하고, 동행 안 하면 주의 일 무관심하다 하고, 자녀를 잘 키우면 자기 자식밖에 모른다 하고, 잘못 키우면 모범되지 못한다 하고, 교회 성장하면 교만한 사모라 하고, 교회 성장 안 하면 내조 잘못한 자라 하고, 병들면 목사 가시라고 하고, 건강하면 제 몸만 챙기는 사모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전도자로 조금 성숙해야 합니다. 안드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쓰임 받는 것에 대하여 서운해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전도한 사람은 주목받고 자신은 주목받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전도한 사람이 장로되는 것을 서운해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다리로서 목적지가 아니라 통로인 것을 안 사람입니다. 축복의 통로로서 만족해하였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고, 은혜 받아 남 주는 것을 거북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된 것을 시기하지 않고 일평생 여호수아를 섬기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갈렙의 마음을 안 사람입니다. 마땅히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다윗에게 왕의 자리를 양보하는 요나단의 마음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이 주님께 쓰임받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는 소외 되었어도 섭섭한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불평 없이 뒤로 물러나 자신의 자리에서 겸손하게 주님을 섬김으로 만족하며 끝까지 충성되고 맡겨진 일에 성실하였습니다. 잊히고 뒷전에 처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하는데 인색하거나 어색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부자가 되고, 이름이 나고, 출세하는 것을 기뻐한 사람입니다. 감독은 감독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선수로 뛰며 환호를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바나바도 자신이 인도한 바울이 앞서 쓰임받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협력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앞서가는 것을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되지 않고 으뜸이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안드레는 공동체에서 인격적으로 인정받는 사람, 참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자리, 셋째 자리, 아니 말째 자리일지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워주는 사람으로 만족해했습니다. 그것이 불만족 했다면 아이를 예수님께 연결하고 헬라인을 예수님께 연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연결자로, 다리로서 역할을 끝까지 감당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처럼 권력 다툼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아마 자신의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으로부터 모범을 보았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그 예수님을 모범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드레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유대의 역사가인 유세비우스의 책 “역사”와 위경인 “안드레 행전”을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해외 전도에 힘을 쏟아, 비두니아와 본도와 스구데야와 드라고닛과 헬라의 아가야 지방에까지 복음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병을 고치는 은사를 받아 아가야 지방 파트라에서 전도할 때 총독 에게아스의 아내 막시밀라의 중병을 고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열성적인 기독교인이 되었고 총독의 형제 스트라토클레스의 온 가족이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빈다. 총독이 자기의 아내와 형제가 예수를 믿게 되자 분통을 터뜨려 안드레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명령하여 '×자'형 십자가에서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는 네로 황제 재위 60년 11월 30일에 순교하였는데 그의 순교 이후 '×자'모양의 십자가를 가리켜 '성 안드레의 십자가'라 일컫는다고 합니다. 그는 순교하면서 "그리스도이신 에수님! 내가 뵈었고, 내가 사랑하고, 그 안에 있는 나를 받으소서. 당신의 영원한 나라에 내 영혼을 받으소서 아멘"하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예수님께 사람을 연결시킬 연결자들입니다. 안드레처럼 불신자를 내가 만난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영혼의 연결자로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예수님을 전한 사람이 위대하게 쓰임 받게 하는 사역의 연결자가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한평생 연결자로 쓰임받은 때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연결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8.8.5.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