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두 마음과 두 마음의 열매(갈5:16-25)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207 추천수:6 112.168.96.218
2018-05-06 04:46:31

 

두 마음과 두 마음의 열매

갈5:16-25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통일 한국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월가 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지난 2007년, 2009년 “한국이 통일되면 2050년엔 국민 소득 8만 7000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인데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남북이 통일이 되어 이런 미래가 우리 자녀들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서울역은 국제역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 북경이나 러시아, 유럽을 가는 기차를 탔는데 남북이 인구 8천만의 경제 공동체가 되면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유럽까지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손기정 선수가 이 열차를 타고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륙에 붙어 있는데도 섬과 같이 사는데 철도를 이용하면 물류비도 1/3 이상 줄어들고 가스비 또한 1/4 수준에서 이용 가능하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유럽까지 배로 운송하면 약 한 달이 걸리지만 기차로 가면 일주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광물 소비 세계 5위권인데 92%를 수입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북한의 금 매장량은 세계 7위, 철광석은 10위, 아연 5위, 흑연 4위, 희토류가 6위로 그것으로 대체하만 45조원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북한이 공산국가가 되기 전만해도 경제적으로 북한이 부유했고,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말할 정도로 교회가 많이 지어졌고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평양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신 백 선행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예전에는 일찍 결혼을 했는데 어린 16살에 과부가 되어 평생을 홀로 사신 분입니다. 신앙이 좋았던 백 집사님은 시부모에게 효도하며 마당에 꽃을 재배하여 팔고, 삯바느질도 하여 푼푼히 돈을 모았답니다. 밤낮 없이 모은 돈이 2백 냥에 이르자 시부모님과 남편의 무덤을 모시고 싶어 친척의 소개로 대동강 변에 있는 산을 선산으로 샀답니다. 산 문서를 받아들고 기쁜 마음으로 산을 찾았으나, 그 산을 본 백 집사님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답니다. 그 산은 나무 하나 살 수 없는 바위산이었답니다. 너무나 큰 실망이었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집사님은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인 것으로 알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렸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땅을 샀더라면 그가 망했을 것인데, 이 아픔과 손실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제게 돌리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신앙이 있다고 하지만 이런 신앙 가지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돈 욕심이 많습니까?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하와이에는 아침에 노인들이 조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답니다. 하와이에서 한 노인이 아침에 조깅을 하다가 그만 야자열매가 머리 위에 떨어져 죽었답니다. 이에 부인이 주 정부에 야자나무 관리를 잘못해서 남편이 죽게 되었다고 배상 청원을 해서 승소해서 상당한 액수를 보상을 받게 되었답니다. 이 내용이 신문에 났답니다. 그 후 아침 마다 부인들이 남편들에게 조깅 좀 하라고 성화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하와이에 가면 지금도 조깅하는 할아버지가 많다고 합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이겠지요. 요즈음 일어나는 사건 만다 맨 밑바닥에는 돈이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을 가졌다고 해도 백집사님처럼 이렇게 하기 쉽지 않습니다.

곧 평양 시내에는 백 과부가 망했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일본인이 대동강에 다리를 놓기 위해 먼저 시멘트 공장을 세울 계획으로 지질 조사를 하던 중, 대동강 변에 있는 석회암 산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이 석회암 산은 바로 백 선행 집사님이 구입했던 그 바위투성이 선산이었답니다. 이 일본인은 소개인을 넣어 3백 냥에 산을 팔라 했더니 거절하므로 값을 더 받으려는 줄 알고 천 냥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다섯 배입니다. 이 때 우리 성도님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두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팔자와 팔지 말자는 마음입니다. 선택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백집사님은 팔지 않았답니다. 그러자 5천냥, 만냥으로 뛰었답니다. 백집사님은 또 거절했답니다. 백 집사님이 그 산이 석회암 산인 것을 알고 배짱을 부리는 줄 알고, 그들은 처음 값의 백배인 2만 냥을 제시했지만 백 집사님은 냉정히 거절하였답니다. 백배가 오른 아파트, 백배가 오른 땅을 팔라고 하면 우리 성도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두 마음을 가지고 갈등할 필요도 없이 팔 분이 많을 것입니다. 너무나 투자한 것보다 수익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순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연봉을 백배나 더 준다고 하면 직장을 옮기지 않을 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의리를 지킨다고 계속 그 직장에 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우리 마음은 이익과 편리, 기쁨 앞에서 무엇이가를 늘 선택하여야 만합니다.

 

1. 두 마음-육체의 욕심을 행하는 길과 성령을 좇아 행하는 두길(16-18)

그 때 두 마음이 작동합니다. 오늘 성경 1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두 마음이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쫓는 마음과 성령을 좇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기 자신의 본성인 욕심에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생물은 자기 생존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 원칙을 따릅니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자기애가 있어야 인간은 이 땅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에서 100만 부가 팔리고 유럽 14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요제프 키르쉬너가 지은 "이기주의자로 살아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이기주의자다."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으니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남들을 배려하라? '남을 도와야 너도 도움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미루어라' 등의 격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들을 복종시키려는 사람들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우선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항상 거리낌없이 '그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익이 되는 것, 편리한 것, 기쁨이 되는 것을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되면 거듭나기 때문에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이 생깁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사명이면 그 길을 걸어가 순교하고, 편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병든 부모를 섬기고, 기쁨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면 고통을 감수하면서 사고치는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소원을 좇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도 대부분 양심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이타적으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소원은 알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원하는 마음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늘 이 두 마음이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과 성령의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이 두마음은 서로 충돌합니다(17). 서로 둘은 서로 거슬리고 대적합니다. 원하는 바를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프로이드는 에고와 슈퍼에고로 표현했습니다. 자아와 초자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충동대로 살고자 하는 자아와 충동을 통제하는 초자아가 늘 서로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원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늘 두 마음이 충돌하고 서로 거슬립니다. 이 때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 두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냐 의심이냐 두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백 집사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장 욕심으로 생각하면 그 땅을 팔아 부자가 될 수 있었지만 성령님께서 주신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 업자는 도지사를 동원하여 백 집사님이 다니고 있던 교회의 목사님을 설득했답니다. 백집사님이 교회 목사님의 말에 잘 순종한다는 소문을 듣고 목사님에게 부탁했답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이 백 집사님을 찾아가 산을 팔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답니다. 그때 백 집사님은 "목사님,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2백 냥에 사서 이제 망하게 되었는데, 그런 산을 2만 냥에 사간다면 그 사람 망하는 것을 어떻게 제가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믿는 내 양심으론 나 혼자 망하면 망했지 다른 사람을 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양심을 초월한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소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갈등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서 성령의 소원대로 살겠다고 선택한 것입니다.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한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이 아니라 성령의 소원을 선택한 것입니다.

남 죽이고 나만 잘 살자는 세상에 이런 마음이 어떻게 생기겠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니까 나는 죽더라도 남을 살려야 한다는 성령님을 쫓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늘 두 마음이 충돌합니다. 육체의 욕심대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성령님의 소원에 따라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길은 달라집니다. 인생의 열매는 달라집니다.

 

두 마음의 결과는 어떤 열매로 열리게 될까요?

2. 두 마음의 열매(19-23)

1)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할 때 나타나는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19-21)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육체의 욕심에 따라 행할 때 나타나는 열매를 육체의 일이라고표현하고 있습니다. 힘쓰고 애써나 나타나는 행위의 결과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합니다.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것으로 영원히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눈에 띠게 들어나는 것입니다. 명확 관화하게 감지된다는 것입니다. 물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이 성령의 소원을 이긴 결과입니다. 죄의 본성이 죄악의 열매로 현저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성추문으로 구속된 이재록씨 같이 위장하고 가장하고 몰래 했지만 어느 날 현저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미투 운동에서 나타난 사람들처럼 언젠가 현저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성적 범죄입니다(19). 세 가지입니다. 음행입니다. 더러운 것 호색입니다. 미혼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적 범죄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불법적 성행위를 가리킵니다. 율법에서 규정 짖고 있는 성적인 부도덕입니다. 더러움은 광범위한 성적 죄악으로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적 성적 범죄까지를 말합니다. 비정상적인 성범죄입니다. 호색은 방탕을 말하는 것으로 드러내 놓고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성적 범죄입니다. 성적 범죄를 행하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종교적 범주의 죄입니다.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우상숭배 주술(20)입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명예, 권력, 자녀, 인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술수는 마술이나 술책과 같이 미신적 행위를 말합니다.

셋째는 사회적 범주의 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기적으로 행함으로 발생하는 여덟 가지 죄의 열매입니다.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질투 등으로 생기는 분열, 분파입니다(20.21). 시기와 분쟁이 당 짓는 것과 분열의 원인이라면 이단은 당 짓는 것과 분열의 결과입니다.

넷째는 음주의 범주 속한 죄입니다. 이교도들의 전형적인 방탕한 두 가지 죄인 술취함과 방탕함입니다(21). 방탕함은 술취함으로 나타나는 무절제한 행동을 말합니다.

오늘날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매는 결국 이런 것입니다. 고상하게 포장을 하고 있지만 갑질하는 사람들의 열매입니다.

이런 일을 계속하면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계속 즐긴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는 물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합니다.

 

2) 성령을 좇는 생활의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22,23)

육체의 일은 복수, 성령의 열매는 단수로 사용되었습니다. 육체의 일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서 발생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영이 인간들 가운데 생동적으로 사역함으로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육체의 일은 복수형으로 죄악의 복잡성, 반복성을 나타내지만 성령의 열매는 단수형으로 하나로 통일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육체의 일은 노동으로 주어지지만 열매 자체는 어떤 노동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성장의 결과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세 가지 내적 열매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매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며, 하나님 안에서 희락, 하나님과 화평입니다.

둘째, 사람들과 관계에 의해 맺혀지는 세 가지 열매입니다. 오래참음, 자비, 양선의 열매입니다. 사회적 열매(덕목)로 오래참음, 자비, 양선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보다는 인간을 향한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핍박하는 자들에 대하여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자비는 남에 대하여 인자하고 관대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양선은 말과 행동에 있어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셋째, 성도의 일반적인 삶의 태도로서 세 가지 열매입니다.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입니다. 개인의 신실성에 관한 열매로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충성은 그리스도인의 신실성을 말하며, 온유는 겸손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절제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24,25)

우리는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육체의 열매를 맺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승리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두 마음의 갈등 가운데 성령님이 원하는 마음을 가져 성령의 열매를 맺는 비결이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세 가지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육체와 함께 그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24).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방법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내 육체의 정욕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육체란 단지 우리의 생물학적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인간의 욕망을 뜻합니다(13,17, 3:3).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정욕과 탐심 2가지로 요약하여 소개하는데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이미 못 박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타락한 본성은 마음이 선하지 못합니다. 아담 이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 정욕의 산실이며,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여 탐닉에 빠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창6:3절에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라고 말씀하는데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탐욕적인 이기적 유전자가 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0-18)”라고 말씀합니다. 전적으로 부패해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옛 사람, 옛 자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물려받은 죄된 신분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옛 사람이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까 조금만 자존심이 상하면 칼 부림을 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다툼과 분열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누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면 “그래 그 더러운 자존심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어”라고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예쁘고 멋있는 상대가 유혹하면 “그래 내 옛 정욕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어.”라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죽은 것들은 어떤 유혹 앞에서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누가 나쁜 놈이라고 하면 “그래 나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인데 그 인간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어”라고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고 잘난체 하니까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고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열매는 맺지 못하고 육체의 열매만 맺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믿습니까? 정욕과 탐심에 따라 살았던 옛 자아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백선행 집사님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에 욕심을 따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유혹 앞에 무 반응하는 것입니다. 백집사님의 생활신조는 “먹기 싫은 것 먹고, 입기 싫은 옷 입고, 하기 싫은 일 하며 사는 것” 이었답니다. 육신의 욕심이 죽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둘째, 성령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16, 25).

두 번째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비결이 25절에 소개 되어 있습니다.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성령님은 우리를 영적 네비게이션처럼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인도대로 가면 자동적으로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 따라 사니까 육체의 열매들이 맺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할지니(스토이코멘)”라는 말은 좇아 행하다는 말보다 엄격한 의미로 군대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철저하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1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겉모습은 그래도 이지만 속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는 그대로이지만 삶의 주인이 바뀐 사람입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은 제자들을 보십시오. 누가 높은가 싸우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을 받고 성령에 충만해지자 성령의 지시에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재물과 재능의 주인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성령님이 원하시는대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오순절 교회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유무상통합니다. 날마다 모여 찬양하고 말씀을 배우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갑니다. 40년 동안 앉으뱅이로 살았던 사람이 일어납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해방됩니다.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성령의 영적 네비게션에 따라 움직이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사역이 나타납니다. 생명 역사가 일어납니다.

율법을 기준으로 하여 자꾸 육체의 욕심대로 하지 말자고 하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회피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더, 한 잔만 더, 한 번만 더 하면서 그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없는 불신자들은 육체의 욕심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실천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 일을 하면 안 된 줄 알면서도 여전히 죄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음란한 영화를 보지 말자고 계속 해 보십시오. 결국 음란한 영화의 종이 되어버립니다. 그럴 때 금요일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금요 심야기도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극장에 가서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들을 때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본다고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춤추는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봉사를 하는데 시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재능과 물질을 가지고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이 생겨도 그것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백집사님 목사님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그 산을 2만 냥에 팔았답니다. 그리고 그 재산으로 교회를 짓고, 학교를 세우고, 기독교 회관 건물을 짓고, 평양 신학교를 설립하였답니다. 성령의 인도대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선행에 감동되어 그녀의 이름을 '선행'이라고 불렀답니다. 1928년, 81세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에는 시민들이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며 그 분의 죽음을 슬퍼했답니다.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18) “인도하시는” 수동태로 인도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성령께서 이끄시대로 이끌려 간다는 말입니다. “율법 아래”라는 말은 육체의 소욕을 달리 표현한 말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죄인들은 다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사는 존재입니다(롬2:13) 바로 성도는 육체의 욕심에 굴복하는 자들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16,25)

 

셋째는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26).

2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헛된 영광(케노돜소이)이란 “허무한, 속이 빈, 열매없는” 영광입니다. 육체에 매여 육체의 영광을 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스스로 의에 이르고자 하는 교만과 자랑입니다.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으므로 사랑으로 종노릇하지 못합니다. 현저한 육체의 일이 나타납니다. 율법 아래서 죄의 노예 생활을 합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헛된 영광은 썩어질 것들입니다.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신앙에 유익이 없습니다. 세상의 명예, 권력, 재물이 전부인 것처럼 그것을 우상으로 구하고 살면 결국 서로 노엽게 하고 서로 투기하며 사는 것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할 것이나 참된 영광을 구할 것이나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지혜로운 할아버지는 손자들을 앉혀 놓고 이렇게 말한답니다. “얘들아! 우리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짐승이 있단다. 하나는 착한 짐승이고, 하나는 악한 짐승이야.” 그러면 손자들이 묻는답니다. “그러면 착한 짐승하고 악한 짐승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그때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응, 그건 너희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기지.”

우리에게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원 두 마음이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성령의 원대로 살아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히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고 8일은 어버이 날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성령의 소원대로 살아 가정에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체의 욕심대로 사는 식구들이 되어 육체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 한마디 할 때도 육체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말을 해야 합니다.

어제 신문에서 감동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시나요?" 라는 글이었습니다. 고대 학생이랍니다. 사연의 주인공 A씨는 평소 감정 표현이 서툰 아버지 밑에서 자라 아버지께 예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답니다. "살 좀 빼라", "그렇게 못생겨서 누가 너랑 결혼하겠냐" 등의 비수를 꽂는 말을 들었답니다. 참고 있다가 어느 날 아버지의 독설에 결국 화가 폭발하였답니다. "나도 여자라서 그런 말 들으면 상처받고 아파요. 아빠 나 아빠 딸이에요"라며 격분했답니다. 딸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아버지는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듣고만 있었답니다. 다음날 아버지는 출장을 떠나게 되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눈물부터 왈칵 나온 A씨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답니다. 지난날에 아버지께 대들면서 한 말들이 떠오르면서 괜히 말한 거 같다는 자책감이 들었던 A씨는 아버지 옆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버지는 곧 의식을 회복했고, A씨는 아버지에게 뜻밖의 편지를 받게 되었답니다. 병상에서 편지를 주었답니다. 딸의 서러운 마음을 알게 된 아버지가 출장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는지 편지를 작성한 것이랍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자신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딸에게 빨리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출장에서 급하게 돌아오다가 교통사고가 나버렸답니다. "딸아, 내 딸아. 맞아 넌 내 딸이지. 아빠가 그런 말을 딸한테는 많이 해주고 싶은데 그럴 용기가 없어서 항상 빗겨나가는 말로 했나 보다. 그러려던 게 아닌데"라고 적혀있었답니다. "아빠가 미안해.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거 알잖아"라며 "어제 딸이 우는 거 보고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우리 딸 너무 예뻐. 이 쉬운 말을 못해서 우리 딸 힘들게 했네. 미안해 예쁜 딸 사랑해"라는 글도 있었답니다. A씨는 "모든 부모님께서는 표현을 못하시는 거지 전부 예뻐해 주고 있다"며 "모두가 본인 스스로를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글을 마무리했답니다. 이후 매일 하루에도 한 번 예쁘다는 말을 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열린교회 식구들은 한 가족입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도 늘 두 마음이 충돌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면서도, 구역식구와 함께 교제하면서도 이 두 마음은 항상 공존할 것입니다. 이 때 성령의 소원을 가지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말과 행동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히는 신앙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5.6.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