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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약속(갈3:15-2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457 추천수:1 112.168.96.218
2018-03-04 08:50:46

 

율법과 약속

갈3:15-22

 

신문에 보니까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교주인 정명석씨가 지난 2월 18일 만기 출소했다고 합니다. 정씨는 신도 성폭행 혐의로 2009년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형을 다 살고 출소했는데 신도들이 여전히 숭배한다는 것입니다. 늘 이단들이 그렇지만 자신을 성자분체(聖子分體)로 묘사되며, 예수님과 동급 존재로 가르친다고 합니다. 특히 예수님 자리에 정씨 그림을 그려 넣고 '보낸 자를 통해 주님과 연결돼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단들은 허무맹랑한 교리와 직통 계시에 의한 신비주의로 교주를 우상화합니다. 격월간 잡지인 '섭리역사'에서 정씨가 중국에서 수감되기 전 지인들과 식사한 장면을 '마지막 만찬'으로, 중국 공안에 잡히던 상황을 '온 인류를 위한 십자가의 노정'으로 묘사했다고 합니다. 그를 따르는 자들은 “정씨가 10년 동안 감옥에 있는데도 JMS가 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뜻, 역사가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인간이 얼마나 미련하고 연약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강간치상과 준강제추행으로 10년 형을 받고 감옥에 간 엄연한 사실을 미화시켜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째로 삼키는 신천지의 포교 전략인 "산 옮기기" 동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산이란 신천지에서 '교회'를 뜻하며 정통 교회를 신천지화 시킨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같습니다. 그들은 산 옮기기 대상으로 50명 이하의 소형교회, 목회자가 청빙되어 온 교회를 선정합니다. 위장하여 먼저 들어간 추수꾼이 일꾼이나 재정이 부족한 소형교회의 약점을 노려 철저히 위장하여 신천지 심방 전도사를 끌어들이고 전도를 위장하여 신천지측 신도를 끌어들여 세를 확장한 후 목회자를 쫓아내고 교회를 접수하라는 것입니다.

강사는 강조하여 "확실하게 이리 옷을 입어라" "전도사들 쫓아내고, 마지막에 목사를 쫓아내라" "성도들 마음 다 잡아 버려라" "꼬리가 아닌 머리가 되면 빨리 먹기가 쉽다"는 등 노골적인 용어를 통하여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사람들이 들으면 비이성적이고 불법적 행위를 강요하는데도 그 말을 듣는 신천지 사람들은 "아멘"하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연기와 모략이라는 거짓말로 남의 교회를 탈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배도 멸망 구원 교리를 말하며 교주 이만희 씨가 보혜사, 이긴자, 목자라고 믿고 있고 최종적 구원자로 죽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못 받고 예수의 새 이름을 믿어야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이만희씨는 자신이 이긴 자이며,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계2, 3장,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는 “구원이 선생님께 있네 심판이 선생님께 있네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것처럼 예수님이 그에게 맡기셨네 우리는 믿네 다시 오신 보혜사”라는 노래가 있다고 합니다. 신천지의 12지파의 등록 교인이 144,000명을 채우게 되면 이들이 청계산 아래서 12지파를 통해 이 지구를 영원히 다스리며 천년만년 살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144,000명의 교인을 곡간에 채우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않고 사기를 치는 “산 옮기기”같은 포교 전략을 펼치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교주를 신격화하고, 계시 지향적인 체험신앙을 강조하며, 거짓 예언, 특수한 집단체제, 지나친 종말론, 기독교의 기존 권위와 정통성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이런 것은 다 다른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가 기록될 당시에도 갈라디아 교회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장 8절을 보십시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성경은 저주를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이단에 빠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2장 4절을 보십시오.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입니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1장 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여 갈라디아교인들을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하는 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7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이단에게 열심을 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단의 궁극적 목적은 교주의 탐욕에 있습니다.

 

그들이 전한 다른 복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11절을 보십시오.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의 반론처럼 다른 복음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3절을 보십시오.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하는 것은”이라는 것을 볼 때 바울이 전한 복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0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삼가 지키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볼 때 그들은 율법의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다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고 할례와 율법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만이 구원에의 필수적인 조건인데 할례와 율법행위도 필수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의 노력과 행위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다른 복음에 대하여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미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1장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믿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지옥가는 것입니다.

2장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다 받으시고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으로 섬기는 아브라함도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까?

3장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할례를 행하여 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입니다.

3장 9절을 보십시오.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를 통해 바울은 노력과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설명했습니다.

 

1. 우리는 언약에 의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15-18).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은 율법을 주시기 전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야 55:1,2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불러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명기 7:6에 “너는 여호와 네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언약은(베리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시는 방법입니다.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모압 땅에서 레위인들과 다윗 언약을 맺고 인도하십니다. 성경은 언약을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약서”(출24:7), “언약의 피”(출24:8), “언약의 말씀”(출34:28), “언약의 두 석판”(신9:15), “언약궤”(민10:33), “언약의 소금”(레2:13), “언약의 사자”(말3:1), “하나님의 언약”(대하34:32), “우리 열조의 언약”(말2:10), “나의 평화의 언약”(민25:12;사54:10), “밤낮으로 나의 언약을”(렘33:20,25) 등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를 때도 하나님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습니다. 언약을 할 때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약속 당자사들, 내용, 어길 때 형벌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땅을 주고 후손을 주고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브라함이 다섯 연합국을 격파하고 포로로 잡혀간 자기 조카 롯과 그리고 빼앗겼던 모든 물건을 찾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에게 근심과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들같이 여겼던 롯이 떠나 버린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찾아 오셔 언약을 해 주십니다. 그 내용이 창세기 15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너의 방패다. 두려워말라 그리고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상속자 씨 자식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이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킬 것을 언약식을 통해 약속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준비했습니다. 암염소와 암소의 배를 갈라놓았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불이 제물 한가운데로 통과합니다.

이 언약은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약속은 불평등 약속입니다. 둘째는 무조건적 약속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것입니다. 셋째는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쌍무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서로 합의한 것이 아닙니다. 혼자 일방적으로 선언한 약속입니다. 넷째는 이 약속은 약속 파기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당한 약속입니다. 사람의 구원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고 이렇게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취소 될 수 있게느냐는 것입니다.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은 법률관습의 의미를 이용하여 설명합니다.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보통 사람도 서로 약속을 하여 그것을 문서를 만들어 서명하면 나중에 가서 어떤 것을 집어넣으며 변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과 그 후손과 약속을 맺은 것입니다. 여기서 후손은 후손들이 아닙니다. 후손(스페르마)는 씨를 말하는데 유대인들은 오직 이삭의 후손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수가 아니라 단수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방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성취자입니다.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누구에게 속한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고 이 언약은 불변하여 폐기하거나 수정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셨는데 그 자손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에 속한 모든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 안에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할례를 받지 않아도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율법이 언약을 폐기할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한다고 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폐기하는 것과 같은데 율법이 하나님의 언약을 폐기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보다 430년 후에 주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하면서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행위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이미 15절에서 사람의 예대로 언약을 폐하거나 더할 수 없다는 설명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폐하여지거나 더해질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제 15-16절에 대한 결론으로서 언약이 율법보다 시기적으로 빠르므로 뒤에 주어진 율법이 먼저 주어진 언약을 폐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유업은 아브라함의 복, 하늘나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방법과 다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도 약속의 자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되며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약속된 유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를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율법조항에 매여 의롭게 되기 위해 율법을 행해야 한다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100세 되고 이미 기능이 끝나버린 이 늙은 두 사람을 향해서 자식을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면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약속을 지키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약속대로 자녀들이 이집트에서 많아졌습니다. 이집트의 종노릇하였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때가 되니까 노예에서 풀어 주었습니다. 어린 소년 다윗에게 왕을 삼겠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를 통해 통일 왕국을 이루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큰 약속은 메시아를 보낸다는 약속입니다. 너희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를 보낸다는 약속을 결국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드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했습니다. 이 놀라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임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에 근거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선택받고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자손인 우리는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 충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 그대로 믿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약속하시면 그 약속 믿고 믿음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며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어떤 길이라도 가는 것입니다. 신문에서 한글도 못 쓰던 까막눈이 85세에 대졸 학사모 쓴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일장신대 85세 졸업하는 '오점녀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온갖 역경을 겪었답니다. 오빠들은 강제노역에 끌려가고 아버지는 전쟁통에 병을 얻어 돌아가셨답니다. 떨어진 거 주워 먹고 구멍 난 옷 기우기 바빠 공부는 못하고 직조공장서 일하다가 결혼하고 나선 두 딸과 남편 뒷바라지 하였답니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어 노인복지회관에서 한글과 컴퓨터를 배우며 60여년 만에 학교 문을 두드렸답니다. 학교 예배를 드릴 때는 옆에 앉은 학생에게 늘 사탕을 주고 기초생활 수급자인데도 수당으로 받는 돈을 모아 "4년 동안 장학금 받으며 학교 다니게 해 줘 감사하다"며 발전기금 200만원을 냈답니다. 할머니는 대학 졸업 후 한일장신대 NGO정책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사의 꿈을 펼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질병 걸렸다고 낙심하지 말고,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하다고 절망하지 말고 약속 붙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늙었다고 숨만 쉬지 말고 약속 붙들고 기도하여 민족을 살리고 가문을 살려야 합니다. 마지막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약속 붙들고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모세도 80세에 다시 일어났고 갈렙은 85세에 약속의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역사적 업적의 약 64%가 60세 이상의 사람들에 의하여 성취되었답니다. 미켈란젤로는 60대 이후에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세상에 내 놓았고, 89세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도 걸작을 만들었답니다. 괴테가 유명한 희곡 파우스트를 완성한 시기는 세상을 떠나기 꼭 9개월 전인 82세 때였습니다. 피카소는 92세까지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루빈스타인은 89세에 카네기홀에서 연주하였습니다. 어느 교회에 가니 목사님이 성가대를 자랑하였습니다. 60여명 되는 성가대원들이 거의 6, 70대로 구성이 되어 있고 80대도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교회에서 성가대로 봉사하며 산다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연령에는 4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자연연령, 건강연령, 정신연령, 영혼연령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님께 인도하며 우리를 성화시키는 것입니다(갈 3:19-25)

그러면 율법은 필요없습니까? 율법은 무엇 때문에 주었습니까?

율법은 좁은 의미로 모세의 율법(규례)(갈 3:13)을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구약성경(롬 3:19)을 말합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첫째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제 1기능이라고 말합니다.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약속을 받은 자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범법함”으로라는 말은 “완악하게 된 인간에게 죄에 대한 지각을 야기하기”위해서라는 말입니다. 범죄를 깨닫고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발생한 범죄를 책망하고 비판하기 위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어긴 후에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죄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미투 운동을 보니까 괴물이라는 말을 쓰던데 인간이 괴물인 것을 율법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기 교만, 자기 잘란 체 하는 것, 자기 신뢰, 자기 선행이 죄인지 알지 못합니다. 자기 자존심으로 자기가 왕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죄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1)

로마서 4장 15절에서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3절에서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20절에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부여 경로는 천사를 통하여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졌고(행7:53) 모세는 그것을 백성에게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역할은 약속하신 자손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임시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나누어 설명하면 제사법 의식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실 때는 누구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주었다는 것입니다(20) 율법과 약속의 전달 방법에 있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서 복음은 직접적이고 일방적이어 율법보다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지극히 타락한 것을 막아주게 됩니다.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일시적인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오신 후 율법의 역할과 기능은 마쳐졌다는 것입니다. 율법 중에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사 제물을 통해 용서받는 제사법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제물이 되심으로 이루어 버렸습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이 되신 것입니다.

 

2) 율법의 두 번째 기능은 예수님께 인도하는 기능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율법과 약속은 서로 대립하는 것일까요?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른 길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죄성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율법을 완전히 다 지킬 수 없으니 죄를 짓고 죄의 결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9-10절에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3절에는 율법 가운데 노예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문맥상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체로서 부분을 말하는 제유법입니다. 율법은 좁은 의미로 모세에게 주신 성문 율법을 말하지만 넓게는 율법서 구약 성경 전체를 말합니다. 율법이 모든 사람을 죄의 속박 아래 굴레를 씌웠다는 것입니다. 죄의 권세 아래 놓여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의롭게 되는 약속을 믿는 자에게 주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죄 아래 가두지만 약속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합니다. 율법의 역할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함입니다.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 해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로부터 해결받을 수 있도록 제사법을 주십니다. 제물을 자신의 죄 대신 드림으로 속죄하게 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끝이 없습니다. 계속 드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단번에 속죄 제물이 되어 드림으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죄와 그 죄의 결과로 오는 사망에서 풀려날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율법의 목적에 대해서 "죄를 깨우쳐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함"인데 율법 스스로는 못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죄의 포로가 되어 있어 거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율법의 첫째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기능을 24절에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서는 결국 오호라 나은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에서 누가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를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3) 율법은 그러면 필요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율법의 제 3 기능이 있습니다. 성화의 기능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 12절에서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도 약속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므로 선하고 거룩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나누면 도덕법과 제사법과 의식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사를 드림으로 죄 용서를 받는 제사법은 예수님께서 이미 폐해 버렸습니다.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엡2:15)”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장 9-10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 5장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3장 31절에서는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율법을 오히려 더 굳게 세운다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서 바울은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에서는 “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9,10).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무엇을 말합니까? 사랑의 법으로써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한 계속적으로 자신의 양심과 삶을 율법을 통하여 비추어 봄으로써 죄악을 회개하고 더욱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받게 하거나 의롭다함을 받게 할 수 없지만 자신의 양심과 삶을 율법이라는 거울을 통해 성화하라는 말씀입니다.

“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28, 31).

 

사탄은 우리를 계속 정죄합니다. 예수님을 정죄하여 십자가에 처형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사탄은 인간을 고발하고 정죄하기 위해 그 율법으로 무장하여 덤벼들고 있습니다. 참소하고 고발하고 고소합니다. 양심에 고소합니다. 율법으로 자신을 정죄하고 남을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정죄하는 것을 인생의 사명으로 사는 어떤 집사님이 있었답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보고 목사님을 폄하하고 비판하고 정죄하였답니다. 교회개혁을 부르짖으며 장로님을 목사님을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힘쓰고 애쓰며 그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교회에 다녔답니다. 그런데 이분이 죽어 천국에 갔답니다. 천국 입구에 엄청나게 많은 시계가 걸려 있고 그 시계 밑에는 사람들의 명패가 일일이 붙어 있었답니다. 베드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하는 말 "여기에 걸려있는 시계는 자신이 세상에서 살 때 나쁜 일을 한 만큼 시계 바늘이 빠르게 돌고 있느니라." 그 말을 들은 집사님은 통쾌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비판했던 권사님 시계를 보았답니다. 빨리 돌고 있었답니다.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했답니다. 장로님 시계를 보니 더 빨리 돌고 있고, 목사님 시계를 보니 더 빨리 돌고 있었답니다. “위선자들 그러면 그렇지”라고 통쾌하게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자기 시계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아한 마음으로 베드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답니다. "전 나쁜 일을 하나도 안해서 내 시계가 없나보죠?" 그러자 베드로가 "당신의 시계는 너무 빨리 돌고 있어서 모세 할아버지가 지금 선풍기로 쓰고 있소!"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정적인 인간 세계에 집중하지 말고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용서하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 구원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고 그 예수님을 믿고 말씀 따라 나아갈 때 성숙한 인격자로 성화될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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