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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아래에서 축복으로(갈3:10-14)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747 추천수:1 112.168.96.218
2018-02-25 07:36:57

 

저주 아래에서 축복으로

갈3:10-14

 

지난 주 한 집사님 댁을 심방하였는데 집사님께서 친하신 지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사님이 인도하여 우리 교회에도 한 번 와 보신 분입니다. 참 마음이 좋으시답니다. 그런데 그분이 사주를 보기를 좋아한답니다. 자기 사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집사님의 사진을 가지고 가서 집사님 사주까지 보아 준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집사님이 왜 남의 사진을 가지고 가서 사주를 보아 주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점집에 가서 점을 봤는데, 점술가가 이르기를 “올해 당신에게는 액운(厄運)이 끼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몸에 부적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 잘 때도 붙이고 잡니다. 조상의 죄로 인해 후손에게 저주가 흘러 질병과 재앙, 가난, 사고 등을 당하니까 그 저주를 부적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설날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토정비결을 보면서 한 해의 행운과 액운을 살펴보았습니다. 몇 월 달에 물을 가까지 하지 말라고 하면 물을 피했고, 몇 월에 액운이 끼었다는 말을 들으면 불안해하며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산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사업에 실패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질병과 사고가 그 사람과 가정을 따라 다니면 가정에 대대로 흐르는 저주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도 축복을 받으려면 조상대대로부터 흐르고 있는 가계의 저주를 끊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죤 F케네디가의 네 아들 중 셋이 50을 못 넘기고 비명에 죽었습니다. 케네디 가의 2세들도 젊은 나이에 추풍낙엽처럼 죽었습니다. 불과 40년 사이에 아홉 명을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술장사한 죄 값을 치르는 것이고 공립학교의 기도를 금지했기 때문에 받은 저주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메릴린 히키)>라는 책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 속에 저주가 역사할 수 있다"(p.39)라고 말을 합니다. 그녀는 “모든 질병, 정신질환, 문제들이 실제로 가계를 통해 내려온 저주들이라 얘기하고 이런 저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의 후손들에게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p.53)

예수님을 믿는대로 정신적 혹은 감정적인 장애, 되풀이되거나 만성적인 질병, 불임과 유산, 결혼의 붕괴와 가족 불화, 계속되는 가난, 자살, 요절, 사고 등이 발생하는 것이 가계의 흐르는 저주 때문일까요? 그래서 푸닥거리하는 것처럼 영역 있는 목사로 흐르는 가계의 저주를 끊어야 가문이 복을 받을까요?

성경은 이런 주장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 저주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10)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율법으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신명기 27장 26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27:26)" 신명기 27장에서는 부모를 경홀히 여기지 말 것, 근친상간의 일을 하지 말 것, 변태적인 욕망을 충족하지 말 것, 무고한 자를 억울케 하거나 죽이는 일을 하지 말 것 등 여러 가지 율법을 말씀하는 데 이것을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28장에 그 저주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해도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떡반죽 그릇, 자녀, 토지 소산, 우양의 새끼에까지 저주가 임하고 염병, 폐병, 열병, 학질, 풍재, 썩는 재앙 등 각종 질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재연재해가 임하고, 전쟁에서 패전하고, 왕이 포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형벌로서의 고난을 말합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저주라고 신명기 27장 26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데 저주(κατάρα)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9절에 나오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진 자”가 받을 복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진 자”에게 임할 가장 큰 축복이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가 되는 것인데, 저주를 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어느 하나 어기면 저주를 받아 죽어야 했습니다. 돌로 맞아 죽었습니다.

지난 2월 23일 신문을 보니까 중국에서 자신이 받은 세뱃돈 다 돌려주라고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딸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설 명절에 세뱃돈 받은 것을 다 부모님이 가져갔는데 대학에 합격했는데 이혼한 양친 어느 쪽도 등록금을 내주지 않자 세뱃돈 약 990만 원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입니다.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 것같습니까? 재판부가 “부모는 아이들의 돈을 보호·관리할 책임은 있지만 취할 자격은 없다”라고 졸업할 때까지 부모가 매달 약 25만 원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답니다. 구약 같으면 이렇게 부모에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명기 21:18-21에서는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질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문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여 술에 잠긴지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 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어느 하나 중 어긴 자에게는 저주를 선언하고, 죄짓는 자는 형벌을 받고 불순종은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켜 의롭다고 인정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143:2)”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소요리 문답서 제 84문은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범한 죄마다 마땅히 받을 보응은 무엇인가?” 답은 “범한 죄마다 마땅히 받을 보응은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받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이다.”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금생과 내세에서 벌을 받고(마 25:41; 롬 6:23; 갈 3:10) 둘째,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다(신 28:15; 롬 1:18; 약 1:1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10, 23)”라고 말씀합니다. 전적으로 인간은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보십시오. 죄로 인하여 벌어지는 거짓과 위선, 탐욕과 미움, 살인과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계 올림픽,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미투 운동, 미국과 무역 전쟁, GM 공장 폐쇄, 적패 청산 등을 보십시오. 입으로는 평화이고, 입으로는 동맹이고, 입으로는 같은 민족이라고 외치지만 속에는 탐욕과 미움과 이기적 계산이 가득합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사고가 있는 삶이 있다고 저주 아래 있는 삶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삶이 저주 아래 있는 삶입니다. 예수 믿어도 가난할 수 있고 예수 믿어도 병들 수 있으며 예수 안 믿어도 부할 수 있고 예수 안 믿어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부하다고 축복이고 가난하고 병들었다고 저주가 아닙니다. 예수님 잘 믿어도 스데반이나 제자들처럼 일찍 순교당하여 죽을 수 있고, 바울과 디모데처럼 고질적인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저주로 당하는 고난과 은혜로 겪는 고난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은혜로 겪는 고난 가운데는 믿는 사람에게 징계로 주는 고난이 있고, 훈련을 위해 주는 고난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는 고난 등이 있습니다. 바울은 저주 때문에 당한 고난이 아니라 더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 그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요셉나 욥은 더 훌륭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주신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고난은 형벌로서의 고난이 아닙니다. 은혜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삶을 살든 예수님이 없는 삶은 죽어 지옥가는 저주 아래 있는 삶입니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되고 풍요를 누린다고 해도 예수님이 없는 삶은 진정 축복된 삶이 아니라 저주 아래 있는 삶입니다.

 

2. 어떻게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11,12)

11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율법으로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한 것을 분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율법을 다 지키면 저주를 받지 않고 살 수가 있습니다. “다 살리라”는 것은 영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레위기 18장 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이 저주에서 절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형벌을 받아야 하고 마침내 죽어 지옥에 가야 합니다. 저주 아래 놓이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도 못하고 의롭지도 못합니다. 심령이 속박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율법이 인간에게 복을 줄 수 없다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1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말씀은 하박국 2장 4절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이미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6절에서 창세기 15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계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박국서를 인용하여 다시 한 번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아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면 됩니다. 둘째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입니다. 율법은 칭의와 구원의 요건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믿음만이 칭의와 구원의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로 여기심을 얻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람이 그의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갈 때 이 사람은 이로 인하여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는 믿음을 구원의 길로, 행하는 자에게 행위를 구원의 길로 보여 줍니다. 그런데 아무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으니까 결국 율법의 끝에는 구원이 아니라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13:39)”

 

칼빈은 “바다로 항해를 가는 사람이 한 발은 땅에 딛고, 다른 한 발을 배에 닫고서는 결코 항해를 할 수 없다. 배를 믿고 그 배에 온전히 자신을 맡겨야한 항해를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3. 그러면 우리가 저주 아래서 벗어나 축복을 누리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13,14)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다 받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저주받은 자를 어떻게 했습니까? 신명기 21장 2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3)" 율법을 어긴 자들은 모세의 법을 좇아 사형 선고를 받으면 대개 죄인은 대개 돌을 던져 죽였습니다. 그 후에는 말뚝에 묶거나 나무에 달아 하나님의 버리심에 대한 징표를 삼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형벌이 있었습니다. 사극을 보면 저주받은 사람의 상징으로 목을 장대에 높이 꽂아서 매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삶을 따라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효수(梟首)라는 것은 목만 베서 메달아 놓는 것이고 효시(梟示)는 사람을 곤장으로 쳐서 죽으면 목을 베지 않고 그 사람 목을 맨 채 나무에 달아 오가는 사람들로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에서도 사람을 매다는 십자가라는 사형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땅에 묻힐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시체라도 누워 있어서는 안 될 못된 놈이다."는 의미입니다. 땅을 닿으면 땅을 더럽힐 정도로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저주를 받고 마땅이 감당해야 할 죄의 형벌을 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것입니다. “속량(贖良, redemption 혹은 ransom)”이라는 말은 값을 대신 지불했다는 말입니다. 노예 시장에서 노예가 갖고 있는 다른 빚까지 다 지불하고 그 노예를 산 것처럼 우리가 저주 아래 있는 노예였는데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대가로 지불하고 우리를 사서 양자로 삼은 것입니다. 죄의 속박으로부터 사탄의 노예로부터 죽음의 형벌로부터 자유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형벌도 다가오는 질병의 저주에서, 가난의 저주에서, 마음의 상처와 고통의 멍에에서, 인생의 각종 문제에서 궁극적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마20:28).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시시며 죄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8-19절에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는 형벌로 주어지는 저주를 결코 받지 않습니다. 13절을 자세히 보세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우리 대신)"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치환).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 즉 저주를 대신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 나무에 달려 희생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치환하시고, 형벌을 받으시고, 속량하시고, 희생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항하사 우를 위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요일4:10).

그래서 우리는 형벌의 저주 아래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다 받았으므로 우리는 저주 아래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서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저주가 두려워 점집에 드나들고 굳을 하고 부적을 부치고, 저주가 두려워 결혼 시킬 기일을 정하고 이사할 날을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상 때의 모든 것도 다 지나갔습니다. 내가 과거 예수 모르고 있었을 때 행하던 모든 일 다 지나갔습니다. 그 모든 것 다 십자가에 못 박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낸 되었습니다. 갈라디아 2장 20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과거 저주 하에 있던 예수 모르고 살았던 옛 자아는 완전히 십자가에 주님이 돌아가실 때 나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결코 저주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이것을 믿으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사역을 이룬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속량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물어 보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저주의 길에서 축복의 길로 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것이 믿어지는 것이 은혜이고 기적입니다.

 

4.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복이 주어집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 가지 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방인인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이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들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왕성케 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또 그 후손에게까지 축복을 연장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 편 땅이 없는 그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처럼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는 뜻도 있으나 더 중요한 뜻은 궁극적으로 천국을 상속하도록 하시겠다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당대에 남들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축복의 분배 자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후대에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온 세상에 축복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 이런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례를 행하거나 율법을 지켜서 이런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자유케 되고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로다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2월 21일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99세로 지난 주 천국에 가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총 185개국 2억여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들의 영적 멘토로 활동했고 두 차례나 방북하였고, 북한 김일성도 만나 복음을 전하신 분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룰’을 천명하여 돈·권력·섹스·거짓의 유혹을 떨치고 정직한 삶을 살자고 주장했는데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왔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이 룰에 따라 아내 아닌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 원칙을 지킬 정도로 미국인들의 신앙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나라를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를 사랑한 목사님입니다. 우리나라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방한해 복음 집회를 가졌고, 1973년에는 110만명이 모여 부흥의 전기를 마련하신 목사님이십니다. 엑스플로 74 전도집회에는 334만 명 이상의 인파가 운집했고, 100만명의 결신자를 내었습니다. 그의 후손 2남 3녀 자녀들이 목사·부흥사 등으로 쓰임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이런 복을 누렸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그에게 복음을 전했고 성경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고 합니다. 목욕시킬 때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시작하사~”로 시작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읊었답니다. 벽에는 성경구절이 적힌 달력을 걸어놓고 외우게 했답니다. 김활란 박사는 첩의 딸이었지만 예수를 믿어 이대 총장이 되었습니다. 백낙준 박사는 백수 무당의 아들이었지만 예수님을 믿어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내셨고, 문교부장관을 지내냈습니다. 이 백낙준 박사의 아버지가 무당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수무당하면 자식이 망한다는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과거를 정리하고 선교사 집에 와서 허드렛일 도우며 살았는데 선교사님이 아들을 미국에 유학을 시킨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았다면 저주 아래 놓여있을 사람이 예수 믿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지난 주 기독교계 어떤 신문을 보니까 “예수 잘 믿어도 성공 못하는 청년들”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청년이 공무원 시험을 보았는데 세른 중반까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한 때 교회에 가서 위로를 받았지만 교회에 가는 것이 부담되어 교회를 방학했다는 것입니다. 믿어 보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믿으면 잘 된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번영신학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예수 안에서 복 받는 것을 오해한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성공이라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다 보면 각자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개인에게 맡게 복 받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죠지 뮬러는 어릴 때 거짓말, 도둑질, 도박, 욕설 등을 하며 산 아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불신자였고, 어머니는 14세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죽어가는 그 시간에도 친구들과 거리에서 방황했던 저주 아래 사는 나쁜 아이였습니다. 16살 때는 도둑질 하다 붙잡혀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저주 아래 산 아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변화되어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은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저주 아래서 축복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저주 아래서 축복으로 인생이 바뀝니다. 가정이 바뀝니다. 세상이 바뀝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예수님을 믿으면 용서받고 새로운 삶을 삶입니다. 도끼로 인간을 죽인 살인만도 예수님을 믿으면 저주에서 벗어나 축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절망과 실패 가운데 자살을 결심한 사람도 예수님을 믿으면 저주에서 벗어나 희망을 가지고 축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한센씨병 환자가, 혈루증 앓는 여인이, 앉은뱅이가, 나인성 과부가 예수님을 믿으니까 저주 아래의 삶에서 축복의 삶으로 변했습니다. 교회만 다니지 말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설교만 듣지 말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공부만 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봉사만 전도만 친교만 하지 말고 예수님을 진정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신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약속의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인도받게 되는 것입니다. 일찌기 요엘 선지자가 요엘서 2장 28-32절까지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요엘 2:28-32)"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행2:1-4; 17-21)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역사는 특수한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성령의 선물을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이가 없이 믿는 자에게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4장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저는 진리의 영이라”라고 했습니다.

그 진리의 성령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이 성령의 약속을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성령의 능력을 복으로 누리고 성령의 은사를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교회에 다니고, 교회에 다니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던 아이들도 성령을 받으면 교회 가는 것이 재미가 있고 기대를 가지고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체험을 하기 전에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갔지만 오순절 성령 체험을 한 후 제자들은 능력의 사람들이 되어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복음을 전하여 3천명 5천명을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여 성령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1738년 5월 24일 성령 체험을 하였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예수님을 강하게 신뢰하고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의 인생을 바뀌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영국과 미국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무디였지만 성령 체험을 한 후 위대한 부흥사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라는 책을 쓰신 과기처 장관을 하셨던 정근모 장로님을 아실 것입니다.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에도 수석으로 들어 고등학교 과정을 4개월 만에 마치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답니다.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교회에 다니는 아내 따라 교회에 나갔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확신이 없었고 “하나님의 존재를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이 거대한 우주 자체가 곧 하나님인가.”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이 '만성신장염'에 걸려 앞으로 그 신장은 5년이 지나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진단을 받아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IQ 152인 아들이 시한 부 인생을 살아가며 우울증에 걸리고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결국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구원'이니 '은혜'니 하는 말보다는 아들이 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급했답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며 기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병세는 더욱 악화될 뿐이었답니다. 자신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확신이 없었답니다. 다른 사람들이 큰 소리로 기도하면 마음속에 '그래도 지성인인데…….' 하는 교만이 도사리고 있었답니다. 어느 권사님이 "정 집사 부부가 먼저 참 기독교인이 되어야 아들의 병이 낫게 된다."라는 말했는데 그 말이 계속 귓전을 때려 왔답니다. 장로님도 다른 기독교인들처럼 '성령 체험'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답니다. 부흥회를 참석하여 에베소서 2장 1절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는 말씀을 들을 때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예리한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그 예리한 말씀들은 눈물샘을 파고들어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 냈다고 합니다. 통곡하며 울었답니다. 체면이나 지위도 아랑곳없이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답니다.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답니다. "아들아! 너는 네 아들에 대하여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아들 때문에 감사할 수가 있는가?'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답니다. "네가 지금껏 큰 짐으로 생각해 왔던 네 아들을 통해 너와 네 가족이 구원받지 않았느냐?" 그는 너무나 감격하여 엉엉 울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 뜻대로만 살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날이 바로 1982년 3월 14일이었답니다. 집에 돌아와 다섯 식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을 터뜨렸고 서로 손을 잡고 교대로 돌아가면서 통성으로 기도했답니다. 그때부터 장로님의 가정과 부부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은 최대의 기쁨이었고, 믿음 좋은 신앙인들과의 교제는 큰 즐거움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건강을 되찾은 후 결혼도 하고 자신감 넘치는 생활로 변했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말합니다.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벌써 신이 아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다. 어찌 과학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 삶을 통해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 세미한 음성으로 때로는 위로해 주셨고 때로는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셨던 그 하나님을 믿는다.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보면 더욱 그것을 깨닫게 된다." 성령님께서 믿게 해 주어 저주 아래 사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저주 아래서 축복으로 바뀌는 것은 열심히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학위를 받고, 돈을 벌고, 권력과 명예를 얻는다고 저주 아래서 축복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유일한 길 예수님을 내 죄를 속량하신 구세주로 믿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저주 아래서 벗어나 축복으로 삶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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