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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오직 한 복음으로(갈2:1-1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486 추천수:3 112.168.96.218
2018-01-28 08:24:19

 

새해, 오직 한 복음으로

갈2:1-10

 

벌써 새해 첫 달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새해가 되어 각자 목표를 정해 놓고 출발하지만 그 일을 이루는 데는 많은 갈등 요소가 발생하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 결혼했지만 살다보면 갈등이 생깁니다. 그 갈등을 잘 극복하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지만 잘 해결하지 못하면 불행해 집니다. 어떤 목사님의 글을 보니까 그 목사님은 대심방할 때 온 가족을 함께 모아 놓고 예배를 드린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정을 위해 기도하도록 한답니다. 어느 여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가 말씀을 전한 후 먼저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기도하라고 했답니다. 아들은 한참 주저하다가 기도를 시작했답니다. "주님, 우리 엄마와 아빠가 각방을 쓰지 않게 도와주세요. 엄마는 아빠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싫다고 하십니다. 아빠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던 아들은 기도하다 말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결혼했지만 남편은 과다한 회사업무와 상사의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고자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아내는 번번이 12시 넘어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아내는 그 갈등의 해결 방법으로 각방을 선택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신앙 생활하면서 다가온 갈등을 잘 해결한 것같습니까?

이런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신앙인으로 잘 믿어 보려하다 수많은 갈등을 겪으며 삽니다. 외적 갈등이 있습니다. 직장인은 신앙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직장이 요구하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적당히 비신앙적인 자세로 임하면 그리스도인으로 소명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고 근본주의적인 신념을 고수하면 직장에서 왕따 혹은 부적응 문제로 고통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신앙인이 ‘입맛’에 맞는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습니다. 신앙을 가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직장에서 자신의 재능이 발휘되기 원하는 욕구, 다른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욕구, 개인의 목표와 직장의 목표가 조화되기 원하는 욕구 그리고 신앙생활과 직장생활이 일치하기 원하는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외적 갈등은 회사에 가서 동료와 상사와 후배 직원들과 겪는 갈등 뿐 아니라 사회, 국가 이슈 등이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외적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 갈등도 매일 매일 겪으며 삽니다. 눈 오는 날 아침 출근할 승용차로 출근할 것인가 전철로 출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수많은 내적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갈등을 주변이 아니라 오직 복음의 핵심에 접근하여 풀어야 합니다.(1-3)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바울에게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 간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첫째 갈등은 구원문제입니다. 다른 복음과 바른 복음의 문제입니다. 바울이 개척한 교회인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믿은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권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했는데 갈라디아 교인 가운데는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갈등이 생겼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 기독교인 때문입니다. 이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가르쳤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적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힘을 가지고 그들과 혈투를 벌이며 제압하거나 논쟁하지 않습니다. 갈등을 일으킨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갈등은 더 증폭됩니다. “누구”보다는 “무엇”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갈등의 근원을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바울은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자신이 전한 오직 한 복음을 붙들고 누구를 만났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유력자들입니다. 그 유력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야고보와 베드로 요한(9)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갈등의 핵심에 접근합니다. 갈등의 본질, 중심에 접근합니다. 다른 사람 말을 들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왜곡되고, 조작되고, 축소 확대되기 때문에 문제의 당사자를 그 문제를 가지고 나아간 것입니다. 가만히 들어온 자와 씨름하는 것보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인정해 주면 그것으로 끝나고 갈라디아 교회의 신앙적 갈등은 해결되기 때문에 그들을 만난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문제를 가지고 문제의 발원지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바울은 14년 후에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가 신뢰하는 유대인이고 디도는 바울이 전도하여 사역자를 삼은 헬라인입니다. 디도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입니다. 할례받지 않는 디도를 데리고 간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은 지옥의 땔감으로 생각할 때이고 만약 디도에게 문제가 있다면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가 문제를 제기했을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적극적으로 그가 전한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변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올바른 해석과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이방인에게 전한 복음을 설명했고 유명한 사람들,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같은 사람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열심히 전한 복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때입니다(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적절한 때입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때가 참 중요합니다. 내가 임으로 하기 때문에 그 때가 맞지 않아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고 더 안 좋은 쪽으로 풀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간 것입니다. 결과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을 승인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디도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그들이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가운데 갈등이 있으면 회피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가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갈등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욕구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감정이 다른데 어떻게 갈등이 없겠습니까? 갈등은 변화를 위한 과정입니다. 갈등은 관계를 재정립해주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갈등은 성장의 씨앗입니다. 핵심은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사명입니다.

제가 부모로서 누구나 겪는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딸이 친구들과 놀고 저녁 12시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신앙으로 딸을 잘 양육하기를 원하는 부모는 그 말을 들고 10시까지는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딸은 다른 애들은 다 12시까지 같이 노는데 왜 나만 10시에 들어와야 하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이런 경우 우리 성도님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합니까?

이 때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갈등을 힘과 권위로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그려면 결국 힘이 약한 딸은 부모의 말을 듣고 10시 안에 들어오겠지만 갈등 해소에서 진 딸은 이긴 부모에 대해 적대감이나 원한을 품게 됩니다. 그냥 마지못해 따르게 되고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의존성을 길러 줄 뿐 아니라 부모와 인격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게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허용함으로서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입니다. 부모가 고집부리는 딸에게 "좋아 네가 이기고 내가 졌다."라는 식으로 갈등을 허용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갈등해소에서 진 부모는 이긴 딸에 대해 적대감이나 원한을 품게 됩니다. 딸은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되고, 부모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력한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이기심이 강해지고 협동심이 부족해지며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게 될 수가 있습니다. 갈등을 해결할 때 힘있다고 상대를 정복자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힘이 없다고 갈등 상황을 회피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갈등을 단순히 미루거나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렇다고 핵심의 본질을 무시하고 흥정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서로의 욕구만 집중하기 때문에 부수적인 갈등이 계속 발생하게 됩니다. 갈등을 임시 방편으로 덮어 놓으려고 하면 나중에 그것이 돌출되어 더욱 심각해집니다.

세 번째 방법은 갈등해결에서 서로 무패적, 서로가 승리하는 방법입니다.

"갈등"이란 인간관계에 있어서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의 욕구, 기대, 가치관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충돌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이 바로 공동의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딸의 공동의 목표는 무엇이겠습니까? 가정의 행복입니다. 공동의 목표가 없다면 갈등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나 바른 복음을 전하는 자나 중요한 것은 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원하는 복음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딸이 12시 넘어 교통수단이 끊기고 사고를 당할까 바 10시까지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딸도 가정의 행복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 때 갈등이 생기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입장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갈등의 문제는 아버지는 10시를 딸은 12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는 딸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딸의 안전만 보장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12시든 새벽 1시든 딸의 안전만 보장되면 허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딸은 친구와 우정에 금이 가지 않기 위해 12시까지 있겠다는 것입니다.

왜 이들이 양보를 하지 않고 타협을 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확고한 “가정”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12시 이후는 교통편이 없어 위험하다는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딸은 도중에 나오면 우정에 금이 간다는 “가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구름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10까지 집에 들어가는 것이 친구들과의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의 친구라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10시 이후에 교통편이 없다면 딸의 안전을 위해 12시에 아버지가 데리러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딸이 친구들에게 10시까지는 집에 들어가야 하니 모임을 빨리 끝내자고 일찍 집에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이고, 가정의 행복입니다. 이것이 공동의 목표입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이것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에서는 갈등이 생겼을 때 곁가지만 붙들고 낙심하고 회의하지 말고 핵심인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해결해야 합니다.

 

2. 우리는 갈등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오직 복음의 본질은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4-5)

갈등의 왜 생겼습니까?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몰래 들어온 거짓 신자들 때문입니다. 복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도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신자들, 교인을 통하여 자신의 유익을 얻으려는 자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대주의적 신자입니다. 율법주의적 신자입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항상 그런 것입니다. 유럽에서 종교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왜 그렇습니까? 예수를 통하여 자신의 유익을 삼고자하는 자들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망각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때로 보면 교회가 고소 고발하고 싸우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에 문제가 있어서입니까? 교회가 문제입니까? 하나님이 안 계셔서 그렇습니까? 문제 교인들, 문제 목회자들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분을 전체로 보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과 문제를 구분하고 문제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접근해야 합니다. 교회 다니다 실망하는 사람들은 갈등을 보면서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도 잘 믿어 보려다가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여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병든 사람 병의 원인을 모르면 이 병원 저 병원 계속 돌아다닙니다. 나을 수가 없습니다. 원인을 정확히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이 기울어지면 기울어지는 원인을 정확히 발견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짜 신자들이 왜 갈등을 일으키는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까?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누리는 자유를 의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음으로부터, 죄로부터 자유함을 누린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들의 교리로 노예 삼기 위해서입니다. 진리가 자유를 주는데 진리를 가장하여 들어와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삼아 버립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결국 율법의 종이 죄고 죽음과 죄의 종이 되어 그것에서 영원히 해방되지 못합니다.

바울은 이런 갈등을 일으키는 거짓 신자들이 있는데 어떻게 대처했다는 것입니까?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은 한 시도 그릇된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복음의 진리 가운데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원인만 정확히 발견했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결방법이 나와야 합니다. 암걸렸다는 것 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치료 방법이 나와야 합니다. 복음으로 모든 것은 치료되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인간의 죄가 용서되고 복음으로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양심의 속박으로부터 죽음의 노예로부터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갈등이 있어도 세상에 양보할 것이 있고 양보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내를 직장에 보낼 수는 있지만 남의 남자에게 임대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도와 불량배들과 함께 살고는 있지만 불량배와 강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갈등이 있어도 복음의 본질은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그 진리는 밝히어 지게 되어 있습니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갈등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복음의 본질은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갈등은 갈등이 일어났다는 상황보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갈등의 사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알버트 엘리스(Albert Ellis)는 갈등에 대하여 ABC 모델을 말합니다. 어떠한 사건 또는 역경(Activating event)으로 인해 특정 결과(Consequence)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나의 생각 또는 신념(Belief)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늦게 들어와 꼭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저녁 모임이 있는데 남편이 마침 늦게 들어오겠다고 먼저 말해주면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갈등을 진행시키는 것을 잠시 멈추고 그 갈등과 관련된 사건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나의 생각과 해석이 펼쳐지는 방향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 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 온다고 짜증을 낼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저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등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합니다. 기꺼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남편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도 다른 방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원에 입원했다가 하루 아침에 운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고, 차를 차고 가다 앞차에서 떨어진 물건에 의해 돌아가신 분도 있는데 12시라도 어김없이 들어온 남편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내가 남편보다 오래 사는 이유는 게으름 피우는 남편, 한 눈 팔는 남편, 술 많이 먹는 남편, 양말벗어 아무 데나 던지는 남편, 늦잠 자는 남편 때문이라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족관에 작은 상어를 넣어 두면 물고기들이 먹히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며 운동량이 많아져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아내들도 남편이 적당히 긴장을 주어 오래 사는 것이니 남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억지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갈등도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고 다 죽어가는 귀순한 북한 군인을 살려낸 이국종 교수를 국민들이 다 알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6. 25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 국가 유공자였답니다. 어릴 때 친구들이 '병신의 아들'이라고 놀렸답니다. 중학교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아 병원에 갔는데 국가 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내밀자 간호사들이 싸늘하게 반응했답니다.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고 몇몇 병원을 돌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떤 아이는 그것으로 좌절하고 포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을 만나도 선택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다른 병원에 갔답니다. 그곳에서 '이학산'이라는 이름의 외과 의사를 만났답니다. 그가 내민 의료복지카드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그리고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치료해 주었답니다. 마음을 담아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격려해 주었답니다. 그 한 마디가 그의 삶을 결정했답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을 돕자,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 "환자는 돈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라는 그를 대표하는 삶의 원칙도 그때 생겨났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갈등이 있을 때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복음의 핵심을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어떤 갈등 상황에서도 버리거나 양보하지 않고 최우선 핵심으로 붙들고 살았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히12:2)”아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인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라는 말씀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3. 우리는 갈등이 생겼을 때 사역의 차이를 인정하고 오직 복음 붙들고 맡겨진 일에 힘써야 합니다.(6-10)

심각한 갈등 문제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리 일찍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억지로 자신들처럼 되기를 원치 않고 바울의 사역을 인정했습니다.(6,9). 6절을 보십시오. 유명하다고 하는 자들이 바울의 결점을 발견하여 할례를 부가해 주지 않았습니다(6).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바울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제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바울이 동일한 복음을 위임받았음을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유대인에게 사역을 맡겼음을 인정했습니다. 갈등을 해소하는데 중요한 것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다양성 있게 자신에게 맡겨준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 하면서 꼭 억지로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양성을 일정해야 합니다. 차이 때문에 보다 많은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다양성을 자신 만 옳다고 독단을 부리며 갈등을 더욱 조장해서는 안됩니다. “나”나 “너”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내 일 네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갈등은 전체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갈등 때문에 관계를 절단 내서는 안 됩니다. 서로에게 득이 되도록 갈등은 해결되어야 합니다. 공동의 목표 속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데는 필요사항 (needs)과 요망사항(wants)이 있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하여 꼭 필요한 사항은 서로 포기하지 말고 붙들고 포기가 가능한 요망사항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10시에 들오거나 12시에 들어오는 것을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부녀간의 좋은 관계는 꼭 필요한 것이고 가족의 행복은 같은 추구해야 목표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각자 전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유대인의 사도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습니다(8, 9하). 사역은 다르지만 그 사역을 위임한 하나님은 같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부탁한 것은 무엇입니까? 10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위해 힘써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10). 사도들은 바울의 사역을 인정하고 구제에 힘쓸 것을 부탁한 것입니다. 갈등이 있을 때 그 갈등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갈등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갈등으로 분열되어 원수가 되면 안 됩니다. 갈등으로 싸우고, 갈등으로 손실되고, 갈등으로 패배하고, 갈등으로 안정된 질서가 파괴되고, 고통에 처해서는 안 됩니다. 갈등이 있을 지라고 믿음의 사람들은 다 함께 천국 갈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믿음으로 함께 행복한 동행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생활을 하면서 얼마든지 다양한 부분에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갈등은 욕구 충동, 가치관 충돌, 감정 충돌에 의해 생기게 됩니다. 죽을 때까지 내적 외적 갈등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욕구와 가치관과 감정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이 일어날 때 사람보다는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갈등의 요인이 문제인가 사람인가

그 때 서로 원수되어 배척하지 말고 우리는 사역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복음으로 중점적 사역을 함께 힘써 해 나가야 합니다.

사역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은 사역의 차이를 인정하고 한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서로 잘 감당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옷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신앙인은 술과 담배를 안 합니다. 중국의 신앙인들은 아편을 하지 않습니다. 브라질 신앙인들은 커피를 하지 않습니다. 나라마다 옷은 달리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등이 있다고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를 놓고 동역자 바나바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인들은 바울이 돈을 좋아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중 인격자로 취급하였습니다. 설교를 못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하는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바리새인들과 심각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권력자들과 갈등으로 포박되어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라고 했습니다.

 

새해, 어떤 갈등이 있다고 해도 오직 한 복음으로 상대가 이해되지 않을 때 주변이 아니라 핵심에 접근하여 풀어 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갈등이 있다고 해도 갈등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복음의 본질은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갈등이 생겼을 때 사역의 차이를 인정하고 사역을 회피하지 말고 맡겨진 일에 더욱 힘쓰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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