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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2) 죽기까지 섬기러 오신 예수님(마1:21, 마20:2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774 추천수:4 112.168.96.218
2017-12-10 06:55:34

 

성탄(2) 죽기까지 섬기러 오신 예수님

마1:21, 마20:28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딸을 결혼 시키는 어머니가 머리를 다듬기 위해 평소에 다니던 미장원에 갔답니다. 미용사가 평소처럼 “파마를 할까요?”라고 물었답니다. 무심코 그렇게 하라고 하고 파마약을 바른 채 여성 잡지를 이리 저리 뒤적였답니다. 그러다 무려 3시간을 미장원에서 보내고 말았답니다. 어머니가 나타나지 않자 전화가 온 것입니다. 부리나케 결혼식장에 달려갔지만 이미 결혼식은 끝이 났답니다. 12월 25일은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언론에서는 구세군 자선남비를 주인공으로 보도합니다. 백화점에서는 산타클로스가 등장합니다. 마케팅 시장에서는 크리스마스 팝이 울려퍼지고 여기저기서 가족과 함께하고, 불우이웃을 돕고,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절기로 홍보를 합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산타도, 자선남비도, 불우이웃 돕기도, 세계 평화도 아닙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우리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성탄절에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이 시대의 잃어버린 이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읽은 것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1. 예수님의 섬김은 성육신(Incarnation)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의 낮아지시의 끝자락에 성탄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피조물의 위치로 낮추신 것을 의미하고 피조물의 삶의 방식을 택하시고 피조물들 가운데 들어오셔서 인간의 비참한 삶을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인간의 슬픈 일을 보고 같이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시고, 인간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애환을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계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화적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입니다. 옥스포드의 문학자인 C. S. Lewis 역시 무신론자였던 어린 시절에 예수는 신화이며, 모든 종교는 단순히 인간이 지어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고학과 초기 비기독교적 설명, 초기 기독교적 설명, 초기 신약 필사본, 역사적 영향을 살펴볼 때 예수님이 실제 인물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까요? 오늘 성경은 천사 가브리엘이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인류의 구세주로 탄생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태어나기 전에 이름을 알려 주시는데 그 이름의 뜻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예수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태명이 아닙니다. '예수'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이름 '예수아' 혹은 '여호수아'의 헬라식 명칭입니다. ‘예수아’는 ‘구원하다 구속하다’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야솨’에서 파생된 고유명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할 자, 구속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악에 빠진 인간과 그의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구속자 해방자라는 말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입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죄 없으신 완전한 인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탄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은 단지 한 명의 인간이 더 태어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탄생보다는 강림이 더 적합한 말입니다. 하나님이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성육신(成肉身)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 곧 자기를 비워 모든 조건에서 인간과 같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빌 2:6-8)라고 말씀합니다.

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까? 인간이 아니면 참으로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죄 없으신 참 사람이 아니면 인간의 죄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정녀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인간적 결혼을 통해 태어나면 아담의 원죄를 가진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맺은 대표언약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번째 아담 예수님이 오셔서 그 죄의 댓가를 다 치루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과 저를 위해 변호할 뿐 아니라 피고의 자리에 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이 계획은 어느 날 생긴 것이 아닙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선지자를 통해 이미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처음으로 창세기 3장 15절에 이미 선포하였습니다. 곧 하나님 자신이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 사탄의 세력을 파하시고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기 위해 대속적 죽음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라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성경에는 약 250회 정도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섬기기 위해 아브라함의 씨(창12:1-3, 마1:1)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공주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고 천대받는 시골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화려한 궁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선호하는 유명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힘 없은 아기의 모습으로 구유에 누워계신 것입니다.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조기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것이 아니라 목수의 아들로 성장하였습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무덤도 없이 남의 무덤에 묻힐 정도로 가난하게 사신 것입니다. 역사 속에 태어난 우리처럼 역사 속에 오신 것입니다(단9:24-27). 화려한 로마 수도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나사렛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미5:2, 마2:5,6). 나사렛 사람(시22:6-8,13)으로 오셔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슥13:7, 마26:31). 가난하고 병든자 죄인들의 친구로 사셨습니다. 은 30에 노예 값으로 팔리셨습니다(슥11:12, 마26:15). 알량한 힘을 가진 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사53:5,6, 시22:16)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십자가 상에서 조롱과 침뱉음을 당하며 로마 군병들에게 옷을 제비뽑힘 당하였습니다(시22:18, 마27:35) 신포도주를 마시며 모욕을 당했습니다(시69:21, 마27:34). 군병이 창으로 찌라는 수모를 당하였습니다(슥12:10, 요19:37) 사랑했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신임해서 회개를 맡겼던 제자에게 인신 매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노하지 않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함으로 섬겼습니다. 배신하는 자를 절교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 사랑을 회복시킴으로 섬겼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스토커들 앞에서 보복을 칼을 가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복음을 전함으로 섬겼습니다. 한센병자를 손을 내밀어 섬기셨고, 두 소경의 눈을 만지시면서 섬기셨고, 각색 병자들 위에 손을 얹고 병을 고치시면서 저들을 섬기셨습니다. 권력다툼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기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이렇게 섬기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 우리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아무도 내 고통 내 아픔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주님은 내 모든 고통을 다 당하였습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눈에 흐른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늘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고통을 다 경험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동정)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라고 말씀합니다. 전쟁과 기근, 불행과 죽음, 죄와 고통, 불안과 근심의 해답은 과학문명의 발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사랑하는 대상처럼 된 것입니다. 눈높이를 맞춘 것입니다. 재난 지역을 방문할 때 하이힐을 신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것입니다.

하와이에 ‘몰로카이’라는 섬이 있습니다. 옛날에 한센병 환자 죽음의 수용소였습니다. 죽어가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벨기에에 살던 다미엔이라는 신부가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을 섬기기 위해 환자들을 모아 놓고 ‘참 자유와 평화’에 대해 설교를 했답니다. 그러자 환자들은 “당신 같이 성한 사람이나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지, 온 몸이 썩어 들어가는 우리에게 무슨 자유며 평화냐”고 빈정대었답니다. 돌같이 단단한 그들에게 다가 가기 위해 다미엔 신부는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주님, 저에게도 문둥병을 주셔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소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병환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그는 몰로카이 섬에 온지 11년이 지난 1884년 어느날, 목욕물을 준비하다가 뜨거운 물이 발에 쏟아져 물집이 생겼지만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답니다. 그의 감각은 점점 죽어갔고, 눈썹이 빠지고 관절이 떨어져 나갔답니다. 이러한 문둥병자의 모습으로 그들 앞에 선 다미엔은 외쳤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문둥병에 걸린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럴 때에 수많은 나병환자들은 전류에 감전된 듯한 감동을 받았고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답니다. 예수님이 바로 돌덩이처럼 강퍅한 우리의 마음을 열어 구원하기 이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섬기신 이 예수님을 성탄절기를 맞이하여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스캇 펙이라는 신경정신과 의사는 하버드 대학을 나와 심리상담사로 미행정부 요직을 역임하였습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종교들을 연구하던 중에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종교들이 주장하는 신 중에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친히 섬기는 신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고 희생한 신은 더더욱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2. 예수님의 섬김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완성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섬김은 어떻게 완성됩니까?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정확히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의 자녀(엡2:2)가 되었고, 세상의 자녀(눅16:8), 마귀의 자녀(마13:38), 진노의 자녀(엡2:3)가 되어 사망과 지옥의 형벌에 처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중보자로 오셔서 죽을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입니다.

목숨을 주는 섬김을 통해 죄로부터 구원을 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죽기까지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생명은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주심으로 섬김을 완성하였습니다.

성탄절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삶을 모델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예수쟁이들입니다.

우리도 섬기는 사람을 살아야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늘 시험에 드는 것이 섬김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조금 원하는 만큼 대우해 주지 않으면 금방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 시간, 재능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차피 한 평생 사는 것입니다. 너무 이기적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기 싫다는 데 왜 그러냐고 너무 나 중심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연말이 되면 교회 봉사하기 싫다고 자꾸 발을 빼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험 들어 교회 생활 너무 깊이하면 피곤하다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예배만 참석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하기 싫어도 주님이 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삶입니다. 섬김도 기회입니다. 기회 잃으면 섬기려 해도 섬길 수 없습니다. 저도 담임목사라는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과 교회와 우리 성도님들을 열심히 섬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신문에 보니까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6년 생명표’가 나와 있었습니다. 지금 60세된 한국인 기대여명, 男 22년, 女 27년이라고 합니다. 작년 태어난 아이는 85세 살지만 20년 아프게 산다고 합니다. 의료기술 발달로 노년의 여생은 갈수록 길어지미만 그만큼 병을 앓는 기간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건강 측면에서 삶의 질은 오히려 퇴보할 것이라고 합니다. 기대수명은 늘어났지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수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저를 생각해 보니 평균 수명으로 따지면 이제 20여년입니다. 마지막 주님 앞에 설 때 잘 했다 칭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섬김의 사명감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1) 섬김은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섬김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필수 사항이고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섬기지 않으면 죄입니다. 영광에 집착하는 삶보다는 영광을 버리는 삶을 예수님은 택했습니다. 너무 서열의식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높아지면 얼마나 높아지겠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강림했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 하늘의 영광과 권위를 버리고 친이 낮아지고 낮아졌습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한다고 영원히 높아집니까? 영원히 권력을 휘두를 것같았던 리비아의 카다피나 이집트의 무바라크, 튀니지의 벤 알리를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가다피는 반군에게 쫓기다가 하수구에서 총에 맞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무바라크는 병든 몸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고, 벤 알리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자꾸 대접받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보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인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자꾸 섬김을 외면하지 마시고 무엇인가 섬길 거리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섬긴다고 썩는 것이 아니고 섬기지 않는다고 남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것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식사의 시중을 들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서 돌보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섬기로 오신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서로 제자들이 싸울 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라고 말씀합니다. 요즈음 교회가 섬기는 자는 줄어 들고 있고 소비자는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섬기기 위해 교회를 다니기 보다는 즐기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세상에 살면서 섬김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삼고 섬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섬기러 다는 곳입니다. 섬김을 배우는 곳입니다. 섬김을 실천하는 곳입니다. 섬김의 용광로입니다. 섬김받기를 좋아하기 보다는 섬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와 알베르트 까뮈는 모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박사 학위를 다섯 개나 되는데 아프리카에 들어가 흑인 나병 환자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아프리카에 들어갈 때 모든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섬김을 예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고 노벨상 상금으로 아프리카에 병원을 짓고 흑인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까뮈는 상금을 받아 자신의 즐김과 안락을 위해 한적한 교외에 별장을 지었습니다. 그는 신나게 승용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다가 전주를 들이받고 즉사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인생이겠습니까? 후회 없을 정도로 섬기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2) 섬김은 신앙인의 사명입니다.

섬김은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섬김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섬김은 섬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을 위하여 또 다른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습니다.(에베소서 2:10)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원받았습니다.(디모데후서 1:9)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부름 받았습니다.(베드로전서 2:9~10)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은사를 받았습니다.(베드로전서 4:10)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영적권위를 받았습니다.(마태복음 28:18~20)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왕성한 의료선교를 한 서서평 선교사님의 좌우명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였다고 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공을 뛰어넘어 섬김이어야합니다. 서서평 선교사는 간호학을 전공하고 32세 처녀의 몸으로 조선에 왔습니다. 독일에 태어나 갓 1살 된 자신을 버려두고 떠난 어머니로 불행한 시절을 보낸 분이었습니다. 서 선교사는 고아 13명을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고 38명의 홀로된 여인을 거두며, 한센인 요셉을 아들로 삼아 함께 살았습니다. 옥양목 저고리와 검정 통치마에 남자용 검정고무신을 신고 고아를 등에 업은 단발머리를 하고 금주?금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인신매매 반대, 축첩 금지, 공창제도 폐지 운동의 선봉에 서서 윤락여성 선도 사업을 주도하였습니다. 때로는 만주의 홍등가에 팔려갈 뻔한 19세 처녀를 돈을 주고 구해오기도 하고, 많은 창녀들의 빚을 갚아주고 새 삶을 찾게 했으며, 그가 설립한 이일학교에 이들을 입학시켜 공부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1933년 6월, 일본 총독부가 강제 거세 등으로 나환자들의 씨를 말리는 정책을 펼 때 동역자들과 함께 50명의 나환자를 이끌고 서울로 행진했고, 소식을 들은 전국 각지의 나환자들 530여명이 이 행진에 동참해 결국 총독부의 두 손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소록도 한센병환자 요양시설과 병원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진다리 교회와 봉선리 교회를 세웠고 이일학교를 세워 여성들의 문맹 퇴치와 계몽에 나섰습니다. 1934년 6월 서서평 선교사는 만성풍토병과 과로, 영양실조로 54세의 나이로 천국에 갔습니다. 서 선교사가 떠날 때 남긴 것은 담요 반 장,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뿐이었다고 합니다. 한 장의 담요도 찢어 다리 밑 거지들과 나누었고, 시신도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했습니다. 그가 죽자 당시 동아일보는 '자선과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민의 어머니 서서평양 서거'라는 제목과 '재생한 예수'라는 부재로 그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광주시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를 땐 수천의 광주 시민과 나환자들이 쫓아 나와 "어머니"를 부르며 오열했다고 합니다. 섬김을 사명으로 삼고 산 한 여인이 흔적은 오래가고 아름답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주님이 걸어가진 섬김의 길을 섬김의 사명을 가지고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헤쳐 나아가야 합니다. 섬기다 보면 힘든 일 많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신하고 인신매매도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섬깁니다. 사명이기에 어려운 일있어, 비난이 있어도, 광야길이라고 섬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비바람이 발 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 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 길 이 길은 승리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험한 파도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모진 바람 앞 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고난의 길 이 길은 생명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3) 섬기면 섬김을 받게 됩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태복음 20:26~28)”라고 했습니다. 섬기면 자신이 섬기는 사람보다 더 커지는 것입니다. 섬김은 손해가 아닙니다. 박탈감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회사도 서비스가 좋은 회사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혀도 열심히 섬기니까 마침내 총리가 된 것입니다. 모세가 철없는 백성들을 끝까지 섬기니까 그가 온유함이 온 지면에 승한 자요 위대한 목자가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100대 회사 중 하나인 〈팀하스〉라는 건축 설계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의 사훈은 “우리는 이웃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합니다. 대표자는 하형록 회장입니다. 그는 최우수 건설 기업가상, 필라델피아 올해의 엔지니어상 등을 수상했고 2013년에는 오바마 정부 국립건축과학원의 이사로 선임되었다고 합니다. KBS의 글로벌 성공시대에서도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2017년도 교보문고 종합 베스터 셀러가 된 “P31 : 성경대로 비즈니스하기”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잠언 31장 10절에서 31절까지를 토대로 하나님 기업의 성공전략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거듭해서 “페이버 :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었는데 한센병 환자 촌에서 목회를 했답니다. 나환자 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답니다. 열 세 살까지 그곳에서 살다가 선교사님의 도움을 받아 필라델피아에 가서 29살에 세계적인 건축 설계회사의 중역이 되었답니다. 아내와 두 딸을 둔 그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고, 그러한 삶이 영원할 것만 같았답니다. 그런데 1991년 10월, 서른 세 살 날이에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의식을 잃고 말았답니다. 병원에 가 보니 “심실빈맥!”이라는 진단이 나왔답니다. 심장이 불시에 빠른 속도로 계속 뛰어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라고 합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5개월 동안 성경을 읽었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때까지 성경 통독을 한 번도 하지 못했는데 성경을 읽으며 많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로 굳게 다짐을 했답니다. 이 병에서 고침받을 확률은 50%였답니다. 같이 입원한 환자 중에 밥먹으로 나오지 않으면 죽은 것이랍니다. 입원한 환자 중 반절은 살고 반절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매일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심장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합니다. 당당 의사가 가족에게 연락하라고 하는데 옆방 병실의 한 여성 환자에게도 똑같이 맞는 심장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방 환자는 심장이식수술을 받지 못하면 이틀 안으로 죽는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담당의사는 무심코 말을 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동안 읽었던 성경말씀이 생각났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말씀이 그를 붙들었답니다. 그는 주치의에게 진지하게 “만일 제가 오늘 그 여인에게 심장이식을 양보한다면 저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 보았답니다. 의사는 7일 더 산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의식 없는 상태로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의사는 식구들을 불러 결정하라고 했지만 그는 결정하여 옆방 환자에게 심장을 양보했답니다. 의사의 말대로 정확히 7일 후에 의식을 잃었답니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눈을 떠보니 심장 이식을 자신도 받았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알콜중독의 병력이 있는 ‘적합하지 않은 심장’을 이식받은 것입니다. 5년간 사용하니 심장이 나빠져 다시 병원에 입원하여 5개월 기다려 2번째 심장이식을 받았답니다. 두 번 째 심장으로 16년간을 살았는데 이상하여 병원에 가보니까 혈관 두 개가 막혔다고 의사가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반드실 뚫어야 하는데 뚫리지 않는다고 다시 시술을 했답니다. 응급처지를 했지만 미국은 법으로 두 번까지만 심장 이식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어 죽음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었답니다. 그런데 의사가 20여 년 전 일을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그 여성 환자에게 좋은 심장을 양보했기 때문에 당신은 한 번 더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섬김에는 공짜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섬기는 삶을 살수록 그분이 곧 존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복된 성품을 가지는 것입니다. 섬김은 무능도, 비겁도, 굴종도, 낭비도, 손해도 아닙니다. 섬기는 자가 인정받고, 섬기는 자가 높임 받고, 섬기는 자라 진짜 부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명예를 누리를 것입니다. 섬기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섬기는 교인이 많으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섬기는 집이 행복합니다. 섬김이 행복의 문을 열어주고 기쁨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합니다. 섬기는 회사가 매출이 올라가고 단골이 많이 생깁니다. 잘 섬기는 사람이 결혼 생활도 행복하게 합니다. 섬기는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마침내 상급을 받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도 예수님처럼 섬김의 사명을 가지고 섬김의 도를 삶의 현상에서 실천하여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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