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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1), 쓰임받는 사람 마리아(눅1:26-3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703 추천수:2 112.168.96.218
2017-12-03 06:59:29

 

성탄(1), 쓰임받는 사람 마리아

누가복음 1:26-38

 

앞으로 우리 성도님들이 종사하고 있는 일자리가 얼마 정도 버틸까요? 우리의 일자리는 안녕할까요? 알파고가 세계 바둑을 평정했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평정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합니다. 이세돌과 맞은편에서 안경을 끼고 바둑판에 돌만 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냥 기계가 지시하는 대로 돌만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200여 년 전, 제1차 산업혁명 때는 기계에게 사람이 일자리를 빼앗겼지만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기계가 예전과는 차원이 달리 이해하기,말하기,듣기,보기,대답하기,쓰기를 하며 스스로 학습는 ‘신기계 시대(new machine age)’에는 문제가 다르다고 합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인간과 감정을 교감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일본 전역의 매장 홍보와 영업 활동에 투입했고, 향후에는 백화점 안내, 콜센터,노약자 돌보미 역할도 맡길 계획이라고 합니다. 나가사키 현에 있는 헨나호텔에는 수십 대의 로봇이 이미 예약접수, 룸서비스, 짐 운반 등을 전담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전초밥 전문점 ‘구라스시’의 350개 체인점에서는 로봇이 시간당 3,500개(1초당 1개 꼴)의 초밥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들고 있답니다. 미국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5개 대학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복용할 약을 로봇이 조제하는데,35만 건을 조제 하는 동안 단 1건의 실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월스트리트 금융거래의 80% 이상은 이미 컴퓨터 알고리즘이 맡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앞으로 5년 내 선진국에서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시장 조사업체 가트너는 2025년에 이르면 로봇이 전체 일자리의 1/3을 대체하고, 2030년이면 90%가 대체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자신의 직업이 기계로부터 얼마나 안전한지를 옥스포 드대학에서 개발한 테스트가 있습니다(www.bbc.com/news/technology-34066941). 간단하게 자신의 현재 직업 혹은 희망하는 직업을 입력만 하면 자동화로 인해 대체될 확률, 그리고 대체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즉시 화면에 뜹니다. 저도 검사를 해보았는데 성직자도 그렇게 밝지 않습니다. 일반 사무직, 텔레마케터, 택시기사, 마트 계산원, 경비원 등은 100%로 대체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교육에 대해서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볼 때가 되었습니다.

EBS에서 다큐프라임(511회 03/13/2017)에서 <글로벌 인재 전쟁>을 방영하였습니다.

“만약 칼 벤츠가 세계 최초 가솔린 자동차 엔진을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마틴 쿠퍼가 세계 최초 휴대폰을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을 합니다. “앞서 벤츠나 쿠퍼와 같은 인재들이 과거에 세상의 변화를 주도했다면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주도할 인재의 조건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은 인재 전쟁시대입니다. 클라이스러는 “모든 사업 활동은 궁극적으로 3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사람,제품,그리고 이익이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만약 훌륭한 인재를 얻지 못한다면 나머지 둘로 큰일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핵심 인재가 기업의 운명과 기업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인재가 해결책이고 인재가 차이를 만들고 최고의 인재가 승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한 명의 인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입니다. 과거 대부분 인재의 조건은 (1)전문적인 개인 역량 (2)변화를 주도하는 국제 감각 (3)원만한 대인관계 (4) 올바른 가치관 등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송에서는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여 4차 산업혁명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인공지능과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그리고 로봇공학과 3D 프린팅. 이 6가지의 기술들이 앞으로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분야라고 합니다. 이 분야들로 인해,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로, 지구가 하나의 큰 네트워크로 연결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스스로 학습하고 결정하는 지능형 로봇들이 대거 등장한다고 합니다. 운전자를 대신하는 완전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활보하고 가상현실인 인터넷과 현실 세계의 결합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런 때 필요한 인재는 융합형 인재라고 합니다. 한 가지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당연한 것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너드(괴짜)’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 스스로 문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는 인재, 세상의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주도하는 변화를 이끄는 혁신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초강대국 미국의 저력은 빌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 엘론 머스크 같은 혁신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혁신가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것입니다. 호기심과 열정이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미국은 융합형 혁신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STEAM 교육 중이라고 합니다. “Science(과학), Technology (기술), Engineering(공학), Arts(예술), Mathmatices(수학)” 이 5개 분야가 융합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정부의 정책, 학교교육, 대학연구소, 기업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혁신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중시하고 정규 교육과정에 프로그래밍을 위한 코딩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아이들 무료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 교육이 산업인력으로서 필요한 보편적 기능과 소양을 익히는 것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적인 융합 능력을 키우는 것이고 그 중심은 소프트웨어(SW) 교육에 있다고 합니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SW 교육을 기초교육으로 규정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중학교는 2018년도부터, 초등학교는 2019년부터 SW 교육이 의무화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쓰시는 가정, 쓰시는 교회, 쓰시는 기업, 쓰시는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인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12월 첫 주일입니다. 12월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쓰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주인공으로 쓰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처녀로써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시는 데 쓰여진 그릇의 역할로 쓰임을 받았습니다(눅 1:30, 31). 마리아는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기적중의 기적을 역사 속에 실현한 기적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로서 만세에 복이 있다 일컬음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눅 1:48). 여인 중에 마리아처럼 인류 역사 속에 변화를 창출하고 이름을 남긴 자는 없을 것입니다. 일자리 창출로 말한다면 여인으로 마리아만큼 일자리 창출을 만든 여인이 어디있겠습니까? 여인으로 마리아만큼 인류 역사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아기 예수의 탄생부터, 십자가의 죽음, 3일만에 부활, 40일 후의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세례를 모두 체험하는 영광을 누린 여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 땅에는 외모도 뛰어나고 잘 교육받은 처녀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문 좋은 소녀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세계의 수도라 불리우는 로마에는 대단한 권력자의 휼륭한 요조숙녀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당시 천대받았던 갈릴리 지방에 속한 나사렛이란 초라한 동네의 평범하고 소박한 처녀를 선택하여 기적의 도구로 쓰셨을까요?

 

1. 마리아는 은혜를 받아 쓰임을 받았습니다.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3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수많은 소녀들이 있었지만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선택 여부는 인간적인 학력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재선택 방법은 독특합니다. 지위나 빈부에 있지 않습니다. 권력의 유무에 있지 않습니다. 지식의 유무, 실력과 기술의 유무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마리아는 하나님께 크게 은혜를 받은 복된 여인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저 세상을 마감할 시골 촌뜨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마리아를 알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정확히 마리아를 아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마리아 같은 사람을 알고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눈에 흐른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늘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그가 들으시죠. 그가 들으시죠.” 아무도 몰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를 쓰십니다.

이 은혜를 받으니까 마리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주의 여종이라고 말씀합니다. 개역 번역에는 "주의 계집종이오니"라고 번역했습니다. 종은 당시에 물건에 불과합니다. 4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신을 비천한 계집종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비천한 계집종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라며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으면 겸손해집니다.

사람들은 은혜를 받기 전에는 사람이 교만하고 자기를 잘난 맛에 살지만 은혜를 받으면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 받기 전에는 교만하였습니다. 자신 만만했습니다. 정의의 사도였습니다. 세상의 의로움과 강함으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니까 죄인중의 괴수라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용합니다. 무엇이 조금 있다고 우쭐 거리고 잘난 채하고 뻐기는 인간을 쓰시지 않습니다. 약한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있다 해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모세가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우고 왕자의 힘을 가지고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힘을 뺏고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겸손해졌을 하나님을 그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거들떠보지 않은 다윗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재 사용방법을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2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없고 연약한 자, 가난하고 불쌍한자, 불우한 환경에 처한 자 외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부들을 택하여 1세기를 변화시키는 인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장사의 아들 아브라함, 거짓말 장이 야곱, 살인자 모세, 술주정꾼 노아, 목동 다윗, 노예 다니엘, 배신자 베드로, 겁쟁이 기도온, 주부 드보라, 장애인 에훗, 일찍이 홀로된 여인 룻 등을 택하여 당 시대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받아 겸손해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교회의 역사가 일관성 있게 증거하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사람을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재능은 겸손의 바구니에 담길 때 가치 있게 쓰임받는 것입니다. 연말이 되면 하나님게 쓰임받은 것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것이야 말로 인생에 있어가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버림받는 인생이야 말로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쓰신다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엡 2:8) 은혜로 부름받아 은혜로 쓰임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겸손하게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고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겸손하게 쓰임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마리아는 믿음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씀합니다.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과 정혼하였지만 아직 결혼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런데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예수라고 말을 합니다. 저가 자기 백성의 죄를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말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그녀가 낳을 아들이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야곱의 집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남자와 동침한 것도 아닌데 아이를 갖게 된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당시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사형을 당했습니다. 정혼한 상태에서 아이를 갖는 것은 간음죄에 해당되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래서 34절에 보십시오. 마리아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일이 있으리이까?”라고 천사에게 질문을 합니다.

이 때 천사가 말합니다. 35절을 보세요.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신한 아이는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늙어서 아이를 가진 친척을 예로 설명해 줍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요셉과 동침하지 않은 자신과는 입장이 다릅니다. 이해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 때 천사가 다시 말씀합니다. 37절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믿습니까? 이 때 이 말씀을 마리아가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38절 같이 읽겠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가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 받으며 두려움을 넘어서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이유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유를 주저리 주저리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두려워서, 돈이 없어서, 지식이 없어서, 건강치 못해서 못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4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믿는 자가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시지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융합형 인재를 쓴다고 합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혁신가를 쓴다고 합니다. 창의력이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친 너드(괴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인재 기준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도구로 쓰임 받으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마리아가 회의적 태도나 불신적 태도에서 머물렀다면 하나님은 그녀를 쓰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이 쓰시는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마을 사람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선포하시면서 그들을 기적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기적으로 도구로 한 시대 쓰임받기 위해서는 믿어야 합니다. 단순하게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관습을 거역하는 것이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고 싶어도 믿음이 없어 쓰임받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믿음이 없습니다. 오래 전 연예인 교회에서 구봉서 장로님이 신앙생활 할 때였답니다. 당시 하목사님께서 목회를 하고 계셨는데 주일 오후 연예인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했답니다. 그날 목사님께서 동정녀 마리아 사건에 대하여 열정을 다하여 가르쳤는데 뒤에서 한 젊은 연예인이 손을 번쩍 들더니 "목사님 농담하지 마세요.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아요? 그런 얘기는 그만 하시고 예수님께서 좋은 일 많이 하셨잖아요. 다른 말씀을 가르쳐 주시지요."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목사님께서는 더 열정적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에 대하여 가르쳐 주니까 이 젊은 연예인이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성경 공부 분위기가 이상해지니까 그 때 구봉서 장로님이 벌떡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그 후배 연예인을 향하여 "야, 임마! 마리아 신랑 요셉도 믿었는데 네가 뭔데 안 믿어?"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갖추어져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아브라함이 미리 다 여행길을 탐사하고 예행연습하고 가나안을 간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 말씀 믿고 가는 것입니다. 믿고 가니까 이스라엘 역사를 만드는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이 낳을 것 병원에서 검사받은 것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믿고 나아가니까 25년에 후에 아이가 탄생한 것입니다. 노아도 다 경험해 보고 연구해 보고 방주를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믿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4차 산업혁명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든 것입니다.

한 미국인(스타마티스 모라이티스)이 1976년 10명의 의사로부터 "폐암으로 9개월밖에 못 산다"고 진단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고향에 내려가 그냥 살아 날 것을 믿고 고향 음식인 '이카리아식' 식사를 하며 살았는데 97세가 되어도 죽지 않았답니다. 그는 "어떻게 암이 나았는지 설명을 들으려 10년 전 병원에 갔지만 의사 10명이 다 죽고 없더라"라는 것입니다. 소아마비와 천식을 앓아서 촛불 하나도 제대로 끌 힘이 없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열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을거야." 그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 후 그는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의회 의원이 되었고. 후에는 뉴욕 주지사가 되었으며.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던 이 사람은 바로 데오도르 루즈벨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라고 믿음의 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기본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죄를 이기고, 믿음으로 절망과의 싸움에서, 질병과의 싸움에서, 고독과의 싸움에서, 유혹과의 싸움에서, 분노와의 싸움에서, 증오와 미움과의 싸움에서 이겨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사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시대 하나님의 기적으로 도구로 쓰임 받으려면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3. 마리아는 말씀에 헌신적으로 순종하여 쓰임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하였지만 아직 그와 동침치 않은 상태였습니다. 유대의 관습에 의하면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어떻게 합니까? 3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이것은 보통의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대단한 결단이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면 순종하지 않을 이유가 수없이 많습니다. 얼마든지 이유를 들어 불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 소녀가 임신을 하면 조롱과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미혼모로 평생 무거운 짐을 져야 합니다. 돌팔매질을 다하며 부모와 가문에 수치를 안기며 죽을 수 있습니다. 일평생 감당해야 할 그 댓가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시므온은 누가복음 2장 34-35절에 의미심장한 예언을 합니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폐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문제 그대로 칼에 찔리는 아픔으로 일생을 살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그 고통을 보는 육신의 어머니로서의 고통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말입니다. 이해 되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있어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이기 때문에데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가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은혜 받은 마리아의 말은 자신의 몸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쓰시라는 헌신적 결단을 하는 말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헌신의 순종입니다. 사람들이 헌신의 순종을 기피하는 것은 헌신의 대가를 두려워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몸을 예수님을 잉태하는 도구로 목숨을 걸고 드린 것입니다. 35절에 천사가 성령의 도구로 그녀의 몸을 쓰시겠다고 하니까 말씀대로 이루어지도록 자신의 몸을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목숨과 바꾸는 것입니다. 이런 헌신의 순종이 있었기에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시는 데 쓰여진 기적의 그릇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주님을 위해 쓰임받는데는 헌신적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이 헌신적 순종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처녀가 임신을 하면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비난을 감수하는 순종입니다. 처녀가 임심을 하면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헌신이 요구되는 순종입니다. 이런 순종의 자질이 쓰임받을 수 있었던 자질입니다. 순종하지 못한 사울은 결국 쓰임받지 못했습니다. 합리적 이유로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려 버렸습니다. 순종은 이유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다가옵니다.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종은 과학이나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관계의 문제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100% 신뢰하는 것입니다. 자기 신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비판력이 뛰어난 사람이 쓰임받는 자질처럼 숭배되는 세상입니다. 교회에서도 목회자에게 순종하면 아부한다고 비난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바른 소리하는 사람이 지성인처럼 보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앤드루 머레이는 "반항은 죄인의 체질이다. 그러나 순종은 고된 학습이다"고 말합니다. 헌신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고자하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 손에 붙들려 쓰임받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이런 순종의 사람들에 의해 역사의 기적은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힘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홍해가 갈라집니다. 여리고가 무너집니다.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메시아가 탄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순종으로 활짝 꽃이 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로마를 정복해서 구원사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순종함으로 구원사가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얼마든지 힘을 상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순종하였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힘의 원리와 은혜의 원리입니다. 힘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 하는 사람이고 은혜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나라는 힘의 원리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고 하나님 나라는 은혜의 원리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그 힘이 돈일 때는 재력이라고도 하고, 벼슬일 경우에는 권력이라 하며, 지식일 때는 실력, 육체적 건강일 때는 체력, 숫자일 때는 세력, 아름다움 일 때는 매력, 영적인 것일 때는 영력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자들은 이것을 추구하여 얻고 그것을 자신 마음대로 휘두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하나님이 사용하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이 땅을 통치하시고 은혜로 섭리하는 도구로 내어놓는 것입니다. 은혜로 아브라함을 불러 믿음의 조상을 만들고 이삭을 바치는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모세를 은혜로 나일강에서 구원하여 순종으로 택한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합니다. 목동의 지팡이지만 순종할 때 그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나게 만듭니다. 다윗을 은혜로 불러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고 순종할 때 그 물맷돌이 골리앗을 넘어뜨리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힘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나아가면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 주십니다. 힘으로 능으로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창12:1~3). 이삭을 바치라고 합니다. 모세에게 애굽에 가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라고 합니다.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의 순종을 통해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큰 은혜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그릇을 통해 기적을 일으킵니다. 쓰임받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단순한 원리입니다.

 

이 시대에도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은 쓰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 겸손한 자로 쓰임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큰 믿음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헌신적 순종으로 쓰임받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기본 요소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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