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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용기(9)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대하14:9-15)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083 추천수:6 112.168.96.218
2017-11-26 09:36:08

 

신앙인의 용기(9)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

역대하 14:9-15

 

옛날에 짚신을 삼아 장터에 나가 파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답니다. 장터에 나란히 앉아 전을 벌이고 파는데 이상하게도 아버지 것은 쉽게 팔리는데 아들의 것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비교해 볼 때 아무리 봐도 기술에 차이가 없는데 어째서 자기 것이 팔리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었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임종 때 아들이 애원하며 물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제발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아버지가 숨이 넘어가면서 해 준 말은 “털” 한 마디였다고 합니다. 아들이 짚신을 다시 꼼꼼히 비교해 보니 아버지 것은 부푸러기가 잘 다듬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비법은 끝마무리였다고 합니다. 상품가치는 끝마무리에 있다고 합니다. 끝마무리는 1%의 수고가 들어가지만 100%의 효과가 난다는 것입니다. 물건도 끝이 좋아야 명품이 됩니다. 좋은 영화는 마지막 장면이 좋습니다. 좋은 소설은 결말이 아름답습니다. 좋은 경기는 끝이 좋습니다. 좋은 사랑은 끝까지 아름답고, 끝이 좋아야 명품, 명인, 명가가 됩니다. 풀러 신학대학의 리더십 분야 교수인 J. 로버트 클린턴 박사는 광범위한 연구 결과 리더들의 70% 이상이 결말이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한결같이 끝이 안좋은 것을 발견합니다. 요즈음 언론에 대형 교회 목사님이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목회자들도 끝이 안 좋은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복음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런 일로 인해 전도의 문을 막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끝이 좋지 않습니다. 초대왕 사울을 보십시오. 대단하게 출발합니다. 그러나 자신도, 자식도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1천번 제를 드려 지혜와 부귀영화를 얻으면 출발한 솔로몬도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여인을 거느리며 나라는 두 쪽으로 나누어져 버렸습니다. 여러 왕들이 있지만 대부분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유다의 3대왕 아사왕도 마찬가지입니다.

 

1. 처음에는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를 가진 아사왕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어있을 때 남쪽 유다를 통치하는 3대 왕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적폐청산을 부르짖으며 개혁을 하여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처럼 아사왕도 왕이 되자마자 1,2차에 걸쳐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방 신상들을 다 없이해 버렸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오직 여호와의 명령을 지킨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었습니다(2). 그래서 나라가 어떠했습니까? 평안해졌습니다.(1,5,6,7, 15:15). 종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평안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갑자가 평안을 깨뜨리는 사건,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구스 사람 세라가 군인 백만과 병거 지금 말하면 전차 300 대를 거느리고 쳐들어 왔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군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58만이었습니다. 숫자적으로 볼 때 1/2입니다. 전력으로 볼 때 그들은 전차 부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창과 방패로 싸워야 합니다. 졸지에 나라는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풍전등화의 처지입니다. 바람 앞에 서 있는 등불입니다. 평안은 없어지고 불안인 전국을 휘감고 가정과 개인은 불안한 상태에 처해있습니다. 이 때 아사왕이 어떻게 합니까?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하나님에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만 의지합니까?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하나님밖에 도와줄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우리 편이 되어 주시면 수의 많고 적음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힘이 세고 약한 것도 아무런 상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언어로 말하면 자본의 많고 적음이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있고 없음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력의 많고 적음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모, 권력의 있고 없음이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능시험을 보았는데 성적이 나왔습니다. 수능 시험 본 아이들에게 있어서 오늘날 대입을 놓고 “주님만 내 편이 되어주시면 수능시험점수의 높고 낮음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합니까?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 엄청난 전쟁의 위기 앞에서 무엇을 합니까?

마레사의 스바나 골짜기에 진을 치고 전투태세를 갖춘 후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 하나님이시니 사람의 힘으로 결코 주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오늘날 똑똑히 보여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비밀을 털어 놓습니다. 아픔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죄짐을 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버스에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는 것은 의지의 행위입니다. 맡기면 평안해지고 맡기면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시편 37:5에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고 했습니다. 잠언 16:3에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7에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결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용기가 있는 자가 위기 가운데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없이는 이렇게 위기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용기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① 열조의 하나님(4)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아들을 낳을 수 없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게 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하신 하나님입니다. 순종하는 이삭에게 100백의 축복을 하신 하나님입니다. 사기꾼 같은 야곱도 들어쓰신 하나님이십니다. 저 큰 선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요, 약속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인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궁지에 처했을 때 늘 찾아주셔서 문제를 해결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창12:17; 창26:24;창46:2).

②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6,7,15:15)이십니다. 인간의 술수에 의해 평안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을 때 평안이 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③ 이 땅을 주신 하나님(7)이십니다.

④ 찾는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대하 15:2절)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밖에 도와주실 분이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국 용기 있게 하나님만 의지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12-15절을 보십시오. 구스 사람들이 패하고 도망하였습니다. 엄청난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적군을 지원했던 그랄 지역 모든 성읍 백성도 큰 두려움으로 떨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손쉽게 그 성읍들까지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2. 끝까지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를 갖지 못한 아사왕

그런데 이제 왕이 된지 36년이 되었습니다. 16장 1절을 보십시오.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이스라엘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 바아사 왕이 유다를 치기 위해 올라와 라마 성읍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사왕이 어떻게 합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람왕의 원조를 받기 위해 성전과 궁궐에 있는 금은보화를 아람왕 벤하닷에게 보냅니다. 북쪽 이스라엘을 쳐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권력을 의지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금은보화를 받고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지만 신앙에서는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대형교회를 자식에게 세습시키는 것은 성공했지만 복음적 삶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어떤 말로 정당성을 방어해도 상식 수준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실족케 하여 전도의 문을 막아 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기 정당성을 외쳐도 덕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버릴 수 있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하나니가 무엇이라 말합니까?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시 아람 군대를 쳐부술 기회를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시146:3-4)라고 말씀하시면 그냥 그 말씀을 믿고 용기 있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과거 하나님만 의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심히 많은 구스와 룹의 군대를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이기게 했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풀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쉬운말 성경은 “주께서는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어 오직 한마음으로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힘을 더해 주십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말씀합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렘17:5,7)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62:8)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125:1)

이 말을 듣고 아사왕이 어떻게 합니까? 10절 보십시오. 회개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12절에 보십시오. 죽을 병이 들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될 텐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다. 의원만 구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의사만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의지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까? 사람을 의지하다가 실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성경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사2:22)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자기와 관련 있는 것만 관심을 보입니다. 자신에게 이득, 이득, 필요가 있을 때 귀를 여는 것입니다. 선택적 지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입니다. 바보의 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 아버지께서 폐암 말기여서 의사가 이제 더 손을 쓸 수 없다고 하니까 계속 의사를 의지하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씀했답니다. 아버님은 예수님 믿어 천국에 가시니까 이제 못한다는 의사만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니까 아버지가 지금까지 입으로만 하나님을 의지하다고 하고 돈과 사람과 자신을 의지했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치유 받았다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아사왕은 결국 그 병으로 죽었습니다.

삶에는 세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있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는 삶이 있으며, 자신을 의지하는 삶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면 사람들은 다 결국 자기를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 풍파에 시달리다 보면 결국 의지할 것은 자신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이 의지할 만한 존재입니까? 그렇게 당당하고 힘이 있습니까? 자신을 그렇게 믿을 수 있습니까? 자신을 그렇게 신뢰할 만합니까? 얼마나 인간이 연약합니까?

마르틴 루터는 그의 ‘대요리문답’에서 “무엇이든 당신의 마음에 의지하는 것, 어디든 당신의 마음이 머무는 곳, 그들이 사실상 당신의 신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것은 자신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은 현명한 사람은 75%는 자신의 내적 판단에 의지하고, 25%만 외부의 의견을 참고한다고 그의 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적 처세술은 될지 모르지만 신앙적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있는 신앙의 사람은 자신의 75%, 다른 사람의 25%를 의지하지 않고, 100%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렘17:9) "너는 마음을 다하고 여호와를 의지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3:5)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느니라." (잠11:28)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아사왕이 왜 말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힘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감히 자신이 왕인데 자신의 의견에 거슬리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시나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잘못을 해도 당장 벼락을 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지 주술적 도구나 종교적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주어지면 인간들이 대부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주어지면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어릴 때 부모는 의지하다가 성장하여 부모의 도움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면 부모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간섭하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한 인간은 절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실 때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는 훈련을 시켜 사용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모세를 광야로 보내어 훈련시키십니다. 왕궁의 부요함을 내려놓고 광야에서 40년간 고난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전적으로 의지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를 주어 광야 과정을 통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인간적 방법으로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험을 25년 동안 겪게 하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훈련을 시킵니다. 요셉을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게 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만듬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시켜 총리로 만듭니다. 하나님은 욥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게 하는 과정을 통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훈련을 시킵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사람 엘리야를 그릿 시내가로 보내어 눈물의 빵을 먹게 함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로 훈련을 시켜 능력의 사람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바울이 자신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음을 통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형제들에게 소외되게 하고, 장인에게 죽음의 위기를 당하고, 자식과 신하들에게 배신당하는 것을 통하여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훈련을 시켰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합니다. 불행을 가져오는 핵심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영적인 암입니다. 건방짐입니다.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돈과 권력, 명예, 지식, 미모 등이 주어지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거드름을 피우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닫습니다. 영적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합니다(눅18:11, 13; 창3:5). 잘 나가면 하나님을 인간은 의지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없으면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부족함 없는 사람이 되면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지식이 많고 미모가 특출하고, 건강이 완벽하고 물질이 풍요로우면 하나님을 잘 의지하지 않습니다. 파도를 타려면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합니다. 파도에 몸을 맡기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한 번 의지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의지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을 나는 개구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못에서 개구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학처럼 독수리처럼 하늘을 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어느날 개구리가 마음씨 착한 새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새는 개구리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기발한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나뭇가지 한 쪽은 새가 물고 한쪽은 개구리가 무는 것이었습니다. 새는 오르기 전에 개구리에게 당부를 했습니다. ‘나뭇가지 단단히 물어 절대 입을 벌려서는 안 돼!’ 새는 날갯짓을 하며 하늘 높이 날아 올랐습니다. 평생 작은 연못 속에서 산 개구리는 난생처음으로 하늘 높이 올라가니 세상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온 세상같던 연못이 콩알만했습니다. 날마다 지지고 복았던 동료 개구리들은 깨알만했습니다. 그때 연못 속 개구리들이 하늘을 나는 개구리를 보고 부러워 외쳤습니다. “와 멋지다. 누가 그렇게 멋진 생각을 했지?” 하늘을 날던 개구리는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업었습니다. "나야, 나, 내가..." 그 순간 개구리는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교만하다 말로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출5:2)나, 웃시야(대하26:16)나, 히스기야(대하32:25)나, 하만(에3:5)이나, 느브갓네살(단4:30)이나, 벨사살(단5:23)이나, 헤롯이 모두 교만으로 쓰러졌습니다. 인간은 작은 씨앗 하나라도 만들 수 없습니다.

 

세상 살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디에서는 어떤 일을 만나든지 누구 앞에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다니엘처럼 에스더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니엘이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그들의 음식을 거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본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성경이 만든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는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용기를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변두리에서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2년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교회학교에서 신앙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10살 때 성경을 사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는 돈이 37센트 밖에 없어 2달러 75센트 성경을 외상으로 사 나머지 2달러 38센트를 갚기 위해 1년 반 동안 벽돌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13살 때 벽돌공장에서 노동을 하였는데 교회 입구가 조금만 비가 내려도 진창이 되는 것을 보고 하루 품삯 7센트 중 일부로 날마다 벽돌 한 장씩을 사 그 길을 포장하였습니다. 그의 작은 헌신을 알게 된 교인들은 각성하여 새로운 교회를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의지했기 때문에 교회 목사님을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챔버스 목사를 영적인 '멘토'로 모셨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목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23세 때 조금씩 저축한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1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가 의류점을 창업한 후 4일 만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여 출발부터 사업의 미래는 어두웠고, 적자였지만 실망하지 않고 군복과 경비원 유니폼 등을 제조와 소매를 동시에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소비자는 왕이다"라고 말하며 고객을 왕으로 받들었고, 현금 정찰제 판매와 판매한 제품의 반품을 허용하였습니다. 결국 사업은 번창하여 세계 최고의 백화점을 만들었고 백화점의 창시자로, 상인의 왕으로, 비즈니스의 개척자로 불리며, 미국 10대 재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재벌이 되었어도 그는 돈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꿈을 키운 그는 사업을 한다고 주일학교를 등한히 하지 않았습니다. 허름한 건물 귀퉁이에서 21살에 베다니 주일 학교를 설립한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67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습니다. 1958년 27명으로 시작한 주일학교는 1892년 3천명을 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주일학교 어린이 숫자는 형제교회를 포함해 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심방은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었고 그는 수천 명의 주일학교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웠습니다. 1858년 월세 5달러로 시작한 베다니 교회는 1874년 5천명을 수용하는 자체 건물을 짓게 됐고, 1902년 그는 땅을 기증하여 세계적 규모로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미국 제 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으로부터 체신부 장관이 되어줄 것을 요구받았을 때도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조건으로 수락을 하였고, 워싱턴과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4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베다니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는 아무리 사업이 바빠도 매 주일 아침 9시 반부터 밤 9시 반까지 12시간 이상을 교회에서 봉사했으며 사업 초창기부터 주일날에는 모든 점포의 문을 닫게 했습니다. 체신부 장관이 되어 시골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우편물이 무료로 배달 되도록 했고 소포우편제도를 정착시켰습니다.

 

그는 권력이 주어질 때도 권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체신부 장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 큰 사업에 바쁠 뿐 아니라 체신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천 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정색하며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일학교가 나의 정작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입니다. 나는 45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었단 말입니다." 의류점 점원으로 일하던 19살 때부터 YMCA(기독교 청년회)와 인연을 맺은 이래 청년 부흥운동을 주도했습니다. 매일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갔던 그는 가게 일을 소홀히 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마무리하고 퇴근하였습니다. YMCA대표로서 활동하며, 3백 개 이상의 신앙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종로에 있는 한국 YMCA 건물도 그의 후원금으로 건축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선교비로 헌금하였습니다.

 

그는 말년에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용기를 가지고 말씀 붙들고 자신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명을 이루었습니다.

어느 날 중국을 방문하여 그곳에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를 보고 감격하였습니다. 때마침 한 노인이 소 한 마리와 한 젊은이가 함께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상하여 노인에게 "왜 젊은이를 소와 함께 멍에를 메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노인은 "우리가 저 예배당 건축에 헌금할 돈이 없어 소를 팔아 헌금하고, 한 마리의 소 대신 아들이 멍에를 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감동하여 "주님, 나로 하여금 멍에를 메게 하사 저렇듯 희생적인 헌신의 즐거움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 신학 공부를 시켰는데, 그가 바로 중국 복음화에 헌신한 성문삼 목사입니다. 그는 평생 성경으로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경영하며 하나님의 일에 우선순위를 가지고 평생을 헌신했고 가정과 교회, 기업, YMCA 등에서도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하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는 성경이 만든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입니다. 워너메이커는 "나는 일생동안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서 노력하고 하나님 안에서 땀 흘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내 인생의 표어 였으며 내 인생의 전부였다"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시대 정신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라고 계속 우리를 세뇌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과학문명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세계미래보고서 2055>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표지에는 "모든 경계와 한계가 살아지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기술, 뇌 임플란트, 바이오 4D 프린팅,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로 인하여 앞으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미래가 곧 당신의 미래다"라고 말을 합니다. 새로운 물질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청동기, 철기시대를 지나 다양한 2차원 재료들로 조합된 새로운 물질이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크리스퍼라는 유전자 가위기술이 나왔는데 인간이 유전자를 만들거나 옮기거나 붙이거나 제거함으로 획기적인 질병 치료뿐 아니라 하나님만 가능한 영역에 도전하여 지구촌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체를 탄생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학 기술은 불멸의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2045년 이후엔 종교는 과학 이전 사회의 유물이 될 것이고 말합니다. 기계가 인간이고 인간이 곧 기계인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계발한 방법에 의해 죽지 않고 영생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는 계속적으로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행복을 추구하려던 인간의 꿈은 노아의 홍수로 멸망하고 하늘 끝까지 쌓아 스스로 세워 보려했던 인간 문명의 바벨탑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을 추방하고 인간 스스로 쾌락을 추구하려는 쾌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역시 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과학과 이성적 학문을 통해 하나님을 추방하고 낙원을 건설해 보겠다는 인간의 노력은 결국 바벨탑처럼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 없이 홀로 영생하고자하는 교만한 인류를 향해 영생 불사의 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과학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아니면 죄의 문제도 죽음의 문제도 해결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축 한 번 흔들면 인류의 문명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만 떨지 말아야 합니다. 껍질이 굳어지면 고목이 됩니다. 빈 깡통이 더욱 소리가 요란한 법입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것입니다. 튀는 물고기가 도마에 먼저 오르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를 도우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와 주리라. 내가 너희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너희를 붙들어 주리라." (사41:10)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나를 의지하라. 나는 너희의 도움이요 너희의 방패이니라." (시115:9) 말씀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이 시대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두루 찾고 계십니다. 그들을 찾아 능력을 베풀어 주시려고 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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