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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혈의 능력(3) 승리의 능력(계12:1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269 추천수:2 112.168.96.218
2017-11-12 06:17:43

 

보혈의 능력(3) 승리의 능력

요한계시록12:11

 

등산을 갔는데 옹달샘이 있습니다. 목이 말라 먹으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 샘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면 먹겠습니까? 아마 대부분 먹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 사람의 말이 맞는다는 근거도 없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미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물을 마실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 마시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그 물에 진짜 독약이 있다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다면 지옥에 가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천국에 가라고 하면 믿을까요? 만에 하나 지옥갈지 모르니까 믿을까요? 물은 거의 마시지 않을텐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은 믿지 않습니다.

왜 믿지 않을까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현상과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거짓이라고 단정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성이 완전히 다른 현상이나 개체를 오직 과학으로만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문학 작품을 수학 공식으로 해석하거나 수학 문제를 문학적 수사학으로 풀려는 것과 같습니다. 가끔보면 불치병 환자가 예수님을 믿어 완치되었다는 간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말기 암환자가 어느 날 완치가 되었는데 의학과 과학으로 설명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저 환자가 완치된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하면 되겠습니까? 과학과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나 완치된 것은 명백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되어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경험적 과학적 방법에 의해 직접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고 거짓이거나 믿을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적, 인식적, 과학적 방법론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검증되지 못하였을 뿐이지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못했다고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초과학적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고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말하는 것입니다. 비물질, 초자연적, 초월적 존재와 같은 초과학적 진실은 '현재의 이성', '현재의 지식', '현재의 과학적 진실', '현재의 경험적 방법론'로 설명이 불가능할 따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과학적인 직접적인 증거를 대보라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니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합니다.

이것은 궤변에 불과합니다. 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경험, 과학적, 인식론적인 검증 방법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당장 나에게 벼락을 치게 해 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벼락이 떨어지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없다고 억지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논리는 전제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이런 전제는 참이 아닙니다.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고 하나님은 인간의 요구에 반드시 응해주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입니다. 사아라 사막에서 원주민에게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 우승자라고 말하면 믿지 못하겠다고 사막에서 피겨 기술을 선보여 보라고 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모래벌판에서 어떻게 스케이팅 기술을 보여주겠냐고 하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증명하지 못했으니 당신은 피겨의 여왕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게 그런 요구를 하면서 그러니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식론과 과학적 방법론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증명하는데는 유용한 것이지만 하나님을 증명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입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물질적 속성을 초월하신 분이십니다. 영적이며 비물질적 존재이십니다.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하나님이 원인자이자 결과입니다. 이런 엄청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제한된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인식론적 방법으로 하나님을 명백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미적분을 알 수 있겠습니까? 미적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미적분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면 얼마나 궤변입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길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14:1)”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10:4)”

꽃 한 송이만 겸허하게 머물러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그런데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애써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3:14)” 믿습니까?

참된 논리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것을 논증할 때는 연역적 방법과 귀납법적 방법을 사용합니다. 연역적인 방법으로 한 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것을 공리라고 합니다. 자명하게 참이라고 인정되는 전제입니다. 어제 학습문답을 하는데 학생에서 어디서 태어났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디에서 태어났냐고 부모에세 물어 봅니다. 부모가 태어나게 했습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계속 올라가면 궁극적인 대답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은 아담과 하와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만물의 시작점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적 진화론에서는 “그냥 원래 있었다”는 결론을 냅니다. 만물의 시작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것이 맞을까요? 무신론은 수학적으로 말하면 무한대 이전의 시간부터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시작점이 없으니까 우주의 과거 사건의 수는 무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최고의 수학자 중의 하나인 데이비드 힐버트가 무한대(infinity)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단지 아이디어, 개념일 뿐이라고 말한 것처럼 무한은 실재 존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무한대 빼기 무한대면 0일까요 무한대일까요? 수학자들은 '존재하는 사물의 무한수'라는 개념은 자기모순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일련의 과거 사건과 원인들은 '영원'과 '무한'이라는 미궁 속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없고, 반드시 시작한 시점이 있어야 한다는 수학적인 결론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빅뱅'이론에서도 우주 만물이 '무한대 이전의 시간부터 그냥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으로부터 130억년 전이라는 분명한 시점에 시작되었다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가 원래부터 있었다는 무신론적 가설을 과학이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절대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없습니다. 텅 빈 상자에서 금덩어리가 저절로 만들어지겠습니까? 창조주가 있어야 유가 나올 수 있습니다.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주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무신론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우연히 만들어졌고 인간마저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생각을 하는 우리의 두뇌가 물질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하면 이것이 합리적이겠습니까? 우연히 만들어진 두뇌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둡다는 말이 있는 것은 밝음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말입니다. 추하다는 말도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말입니다. 무신론 역시 하나님이 존재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있으니까 자녀가 때어나는 것입니다. 책상이 있으면 책상을 만든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주가 존재하면 우주를 만든 분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자연만물이 혼돈에 이르지 않고 질서가 있다는 자체가 고도의 지적 설계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자연계에 자연계의 법칙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연과학은 이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의 삶의 도리에 대한 인간계의 삶의 법칙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인간은 인문과학을 통하여 이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특별히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영계에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이 영계의 법칙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성경을 통해 이 영계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영계를 창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물질계, 생물계, 인간을 창조할 뿐 아니라 영계도 창조하였습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라고 말씀합니다. 천사를 창조하였다는 말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입니다. 천사와 씨름하던 야곱(창세기32,24)의 이야기부터 예수 탄생을 알리던 천사 '가브리엘'(누가복음1,19)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영적인 천사의 존재에 대해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천사들, 그룹들, 스랍들, 가브리엘, 미가엘, 정사. 권세. 보좌. 주관자 등의 칭호로 성경에 기록되어 잇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께 예배와 찬양을 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집행자하며 하나님의 사자로서 경고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마리아에게 예수 탄생 예언해 주고 예수의 부활을 여자들에게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개혁개정판 성경을 검색해보면 천사에 대한 기록이 215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에만 천사에 대하여 40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사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사는 믿는 우리를 도와줍니다.

 

2. 그런데 천사 중에 타락한 천사가 사단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9절을 보십시오.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요한계시록 12:9)” 본래 천사였습니다. 마귀 사단이 된 것입니다. 옛뱀, 마귀와 사단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사단이 되어 쫓기게 되었겠습니까? 그 답을 하나님은 이사야서 12장 12-14절에서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하나님이 계시된 말씀을 통해 영계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왕권에 도전하다가 사단이 된 것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을 보십시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가 바로 마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을 읽어 보십시오. 큰 붉은 용입니다. 머리가 일곱 뿔이 열 그리고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흉내 내는 그림언어입니다. 영물이기 때문에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이 때 그 사단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그의 졸개들이 있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하늘의 천사 1/3이 사단에게 가담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의 사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귀신들입니다. 사단은 귀신의 왕이과 귀신의 사단의 졸개들입니다.

 

3. 이 사단과 귀신들이 무엇을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용으로 표현된 사단이 무엇을 합니까?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던 그 아이를 삼키려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해 놓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바로 그 여자의 후손이 누구겠습니까? 갈다디아서 4장 4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의 아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탄은 자기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도 타락시키기 위해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마침내 타락시켰습니다(창세기3장). 그리고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머리를 밟으러 오시는 예수님을 끝없이 대적합니다. 바로를 통하여 아이들을 죽입니다. 사악한 아달랴를 통하여 다윗의 후손들을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헤롯을 통해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다 역사 속에 있었던 일이지만 보이지 않은 영계의 전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합니까?

요한 일서 3장 8절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에서는 “그를 없이 하기 위함이라”(히2:14)고 하였습니다. 이미 창세기 3장 15절부터 예수님이 오셔서 마귀를 멸할 것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사단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1-27절에서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들이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1:24)”라고 말했습니다.

 

4. 그러면 어떻게 사단을 멸하고 승리했습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어린 양의 피입니다. 창세가 3장 15절에서 예언한 것처럼 사단이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합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활하심으로 사단이 머리를 완전히 부숴버리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이 받아야 할 죄를 사해 주신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피로 승리할 것을 예언해 놓았습니다. 아담이 범죄할 때 에덴동산에서 피흘림을 통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아브라함이 이삭을 살리게하는 어린 숫양으로 대신 드려 대속하게 했습니다(창22:13). 출애굽할 때 문설주에 뿌려진 어린양의 피(출 12:7)를 뿌려 죽지 않고 살게 했습니다. 세계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성찬식을 베풀면서 자신의 몸을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오직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9)"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보혈의 능력으로 죄사함 받고 우리가 죄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죄의 노예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1:5) ”

보혈의 능력으로 원수간에 화목하여 인간관계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요일4:9).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

우리의 더려운 죄가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해 지는 것입니다(요일1:7).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입니다(롬5:9).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히13:12).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히10:19).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사단의 유혹과 핍박을 이기는 것입니다.

 

언제 완전히 멸해 버립니까? 계시록 20장 10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예수님의 재림 때 완전히 멸해 버립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 역사 속으로 들어온 사단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기 전 계시록 마지막이 끝나기 3장 전에 역사에서 살아집니다. 새로운 에덴이 회복됩니다.

 

5. 우리는 어떻게 승리할 수있겠습니까?

1) 우리는 적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싸워야합니다.

사단의 최고의 전략을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입니다. 사단을 이야기 하면 무식하다고 미신적이라고 하게 합니다. 심지어는 설교자도 사단을 쓰면 무식한 설교자로 낙인찍게 합니다. 영적 존재는 없다고 위장하는 것입니다. 엡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의 대적은 사단입니다. 이번에 미국 대통령이 와서 국회 연설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막말을 해서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인이 왜 트럼프를 지지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와서 국회 연설을 하는데 과감하게 지옥이라는 말을 쓰고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고 국민 만찬석에서 술을 먹지 않는 것을 보고 보수주의 기독교인을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단의 고도의 전략은 자기 정체를 숨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분명하게 영계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대표적인 교회 7교회를 보십시오. 그것을 계속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사단의 회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계 2:9)”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계 2:24)”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말슴을 보십시오(계 3:9)

 

2) 우리도 예수님의 피로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단은 두 날개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한 날개는 유혹의 날개입니다. 광명의 천사로 유혹합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사단은 속임수의 천재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살인자(요8:44)요, 거짓말쟁이요, 세상을 미혹하는 자요, 이간시키는 자요, 참소자요, 무너뜨리고 갈라지게 하는 자입니다. 사단이 역사하는 곳에는 분열과 비판, 찢어지고 갈라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단은 가정을 갈라놓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당을 짓게 만들고 형제와 형제 사이를 이간시켜서 미워하게 만들고 마침내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며 마지막엔 결국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악한 영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모든 유혹으로부터 이길 수 있습니다. 죽음을 극보하는 방법을 과학과 현대 문명으로 선전하여 알려 주고 있습니다. 죽음은 보혈로만 극복됩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죽음을 극복하고 승리하여 우리가 영생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요6:54-55).

죄를 극복하는 방법을 심리학을 통해 알려 주며 그리스도의 피는 필요업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질병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 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3)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말씀으로 이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단을 또다른 날개 하나는 핍박입니다. 베드로서에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말씀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단과 귀신들이 땅에 와서 온천하를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10절에 보십시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한다고 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을 줄 알고 크게 분내어 우리에게 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 때까지 무엇을 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합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교회를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그 전신 갑주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오늘 본문에서는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단을 말씀을 무력화시키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류 구속을 위한 공생애를 시작할 때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합니다. 만나를 내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라는 시험을 합니다.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고 합니다. 자기의 능력을 하나님처럼 과시해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영광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인척 이 땅을 절하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절을 받음으로 자신이 이 땅의 통치자임을 인정받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말씀을 모든 것을 물리쳤습니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는 사단의 핍박이 폭력적이었습니다. 불태우고, 목을 베고, 칼로 찌르고, 사자들에게 찢기고 옥에 가두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핍박은 고상합니다. 말씀을 무력화시켜 버립니다. 성경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종교적 형식에 불과하고 상징적, 신화적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고상하지 못하고 유치하다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된 사회에서 사단의 고도화된 전략입니다. 사단은 말씀만 무력화시키면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말씀을 상품화합니다. 말씀을 유희화합니다. 말씀을 공연화해 버립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분리시켜 버립니다. 식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렇게 함으로 사단은 하나님의 일에 대항합니다(살전 2:16). 복음을 방해합니다(마 13:19; 고후 4:4). 사람을 사로잡고 속이며 악한 자를 함정에 빠뜨립니다(눅 22:3; 고후 4:4; 계 20:7,8, 딤전 3:7). 하나님의 성도들을 괴롭힙니다(욥 1:12). 시험합니다(살전 3:5). 복음의 진리에 어둡게 합니다(고후 4:4) 의심을 심어 줍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통해 이겼듯이 우리도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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