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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용기(8) 불행한 과거를 떠나보내는 용기(막10:46-5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453 추천수:2 112.168.96.218
2017-10-29 14:38:41

 

신앙인의 용기(8) 불행한 과거를 떠나보내는 용기

막10:46-52

 

<신경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2017년도 아마존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53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였답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마크 맨슨 입니다. 그 책에 보면 그는 13살 때 마약 문제로 퇴학을 당하는 문제아였습니다. 부모는 이혼 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 한 동안 직장을 가지지 못하여 친구네 집 소파를 전전하던 백수였습니다. 냄새나는 매트리스에서 잠을 청하며 이력서를 20통이나 보내었지만 답장을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뚜렷한 삶의 목표나 확고한 가치관도 없이 그저 되는대로 하루하루를 보냈답니다. 대마초와 담배를 피우고 술과 비디오게임을 즐기며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불안장애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불행한 과거를 다 떠나보내고 지금 180도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현재 그의 미디어 파워는 메이저 언론에 버금갈 정도라고 합니다. 50개국 이상의 나라를 바쁘게 누비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중요한 가치를 찾는 방법을 설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 조시가 호수에서 열리는 파티에 자신을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술에 취한 조시가 10미터쯤 되는 작은 절벽에 올라 호수로 뛰어 내리자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는 친구와 같이 가지 않고 콘도에 왔는데 그 때 “이따가 어디에 있을 거냐”고 물었답니다. 친구는 “스스로 진리를 구해. 그러면 그곳에서 만나게 될 거야!”라고 말했답니다. 그들은 크게 웃고 조시는 절벽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는 여자 친구와 콘도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나가 보니까 조시가 물에 빠져 죽어 있었답니다. 그는 울부짖었고 그 후 깊은 우울증에 빠져 너무 슬퍼서 몸이 아플 정도였답니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조시가 꿈에 나타났는데 꿈속에서 친구에게 “네가 죽어서 정말 유감이야.”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조시가 웃으면서 “지금 네가 내 죽음에 신경 쓸 때니? 넌 여전히 사는 게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잖아.”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그는 꿈에서 깨어나 눈물을 흘리면 문득 깨달았답니다. 어차피 언젠가 죽을 거라면 두려움이나 민망함, 수치심 따위에 굴복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나는 죽은 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했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세상이 어떻게 달라질까? 더 나아질까?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어떤 영향을 남길 것인가?” 그는 말합니다. “죽음을 늘 의식하지 않는다면, 하찮은 것이 중요해 보이고, 중요한 것이 하찮게 보일 것이다. 죽음은 우리가 유일하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죽음은 다른 모든 가치와 결정의 방향을 정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비극이 일어난 후 그는 새사람으로 거듭났답니다. 인생 최악의 순간이 자신을 탈바꿈시킨 순간이 되었답니다. 그는 그해 여름, 대마초와 담배, 비디오게임을 끊었답니다. 책임감 있고, 호기심 많고, 성실한 사람으로 변했답니다. 체육관에 다니며 살을 엄청나게 뺐답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답니다. 공부라는 걸 실제로 했답니다. 자신을 시험해 보기 위해 50일 안에 논픽션 50권을 읽었답니다. 그 다음 해, 미국 동부 끝에 있는 명문대학교로 편입해 실력을 쌓았답니다.

오늘 온 가족이 함께 드리는 가족 예배로 드립니다. 우리 어린이와 학생, 청년 중에 혹 마크의 학생시절처럼 살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불행한 과거를 떠나보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다짐하고 새롭게 일어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은 우리 어린이와 학생, 청년들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불행했던 과거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한 시대 쓰임받은 요셉처럼, 다윗처럼, 다니엘처럼, 에스더처럼,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역사 속에 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들도 다 한 때 불행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했던 과거를 디딤돌로 삼아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불행했던 과거가 독약이 되어 죽은 것이 아니라 불행했던 과거를 보약으로 먹고 더욱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 보며 누구나 진학의 실패, 취업의 실패, 사업의 실패, 가정의 실패, 자녀교육의 실패, 인간관계의 실패, 도덕적 삶의 실패 등 생각하기도 싫은 불행한 과거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행한 과거를 끝까지 품고 불행하게 살겠습니까? 아니면 그 불행한 과거를 용기 있게 과감하게 떠나보내고 새롭게 살겠습니까?

불행한 과거의 순간의 독약을 마시고 인생 전체를 불행하게 살겠습니까? 아니면 불행한 과거의 순간을 보약으로 하여 평생 행복하게 살겠습니까?

불행한 과거가 거침돌이 되어 넘어지겠습니까? 불행한 과거를 디딤돌로 삼아 일어나겠습니까? 불행한 과거에 미련두지 말고 과감하게 떠나보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행한 과거를 떠나보내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떤 용기가 필요하겠습니까?

 

1. 불행했던 과거를 떠나보내려면 인생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바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47,52)

오늘 성경에 보면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이름이 무엇입니까? 바디메오입니다. "바"라는 말은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바디메오는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이름도 없는 것입니다. 앞 못 보는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구걸하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사는 여리고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려한 도시에 사는 초라한 인생입니다. 가족은 있지만 가족의 짐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당시 이런 장애인은 저주받은 인생으로 취급받아 사람들이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대에는 장애인들을 공동체의 유지, 존속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추방하거나 유기하는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장애인을 강물에 던져 익사시키거나 투기장의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또한 뚜렷한 장애를 보인 아동들은 광장에 목매달아 죽였고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게 된 아동들도 살해하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이 과거의 불행을 떠나보내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긋지긋한 과거의 불행을 떨쳐버리고 영혼도 구원받고, 육신의 질병에서 치유 받았으며, 예수님을 따르는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4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합니까?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나사렛이란 천하게 쓰임 받는 이름입니다. 인간 예수님을 비하하여 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소경은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말합니다.

당시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말입니다. 이사야 35장 5절에 보시면 메시야가 오시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시면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서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 분이 당신입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이 열리고 귀머리가가 듣고 있다"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그는 예수님께 어떻게 합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과거의 불행한 자신의 인생을 해결할 분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이렇게 못합니다.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수치와 창피를 당할 수 있습니다.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합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48절을 보십시오.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구약 성경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아로 믿은 것입니다(사35:5; 겔 34:16; 사 33:24; 사 35:6). 어떻게 그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까? 5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과거의 불행함 때문에 아무도 사람대접하지 않는 바디매오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예수님 앞으로 부르시고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신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믿음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47절을 보십시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간 예수라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아 예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언젠가 우리를 위해 재림하실 예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내가 왕이 되어 사는 삶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왕되어 사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어 사는 사람으로 바뀌면 불행했던 과거는 절대로 우리의 걸림돌이나 독약이 되지 않습니다. 불행한 과거를 마음속에 왕으로 모시면 절대 그 불행한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불행한 과거가 왕 노릇하면 인생의 불행한 과거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생의 왕으로 모시면 불행했던 과거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불행했던 과거는 예수님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면 그 순간부터 불행했던 과거는 달아나고 예수님과 더불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극복할 위대한 힘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믿음에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중증 장애인를 가진 사람이 있고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불치의 병이나 희귀병으로 투병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불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불구의 몸이 될 수도 있고 제법 잘 나가던 사람이 경제 불황으로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무거운 짐이 내 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순간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불행한 과거 경험이 있었던 사울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왕으로 모시니까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위대한 인물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죄일 지라도 다 회개하면 다 용서받고 어떤 불행한 과거가 있을 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다 어루만져 주시고 거듭나게 하여 새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불행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던 두 젊은이가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도박과 술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이들이 어느 주일 날 함께 클럽을 향해 가는데 길목에 있던 교회에 걸려 있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성구를 보았답니다. 한 젊은이가 교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같이 들어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한 친구는 뿌리치고 쾌락을 위해 클럽으로 갔습니다. 쾌락을 쫓는 것이 결코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닌데 그 친구는 그렇게 선택해 버린 것입니다. 쉽고 즐기는 일만 하면 결국 행복한 미래가 없는데 그 친구는 인생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날 설교를 듣고 젊은이는 예수님을 구주로, 자신의 인생의 왕으로 모시고 불행했던 과거로부터 완전히 결별했다합니다. 그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한 때 방탕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서 인생이 변한 것입니다. 그는 대학에 다니지 못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어깨 너머로 공부를 해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검사가 되고, 경찰 서장이 되고,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노총각으로 대통령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정적에 의해 그의 불행했던 과거가 폭로되었습니다. 어느 술집 과부와 사귀어 여자 아이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핏줄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깨끗하게 불행한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고 양육비를 주었습니다. 같이 바람피운 친구들이 모두 기혼자라 자신이 총대를 맨 것입니다. 결국 그는 47세로 미국의 최초 총각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30년이 지난 후 그 젊은이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22대, 24대 대통령이 된 클리브랜드(Glover Cleveland)입니다. 퓰리처상을 만든 조오셉 퓰리처는 대통령으로 그를 지지하는 이유 4가지를 말했는데 "1. 그는 정직하다 2. 그는 정직하다 3. 그는 정직하다 4. 그는 정직하다"라고 했답니다. 기회를 놓치고 여전히 도박. 술을 즐기며 방탕하게 산 친구는 감옥에서 한 때 친구였던 클리브랜드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눈물로서 지켜보아야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구주로 인생의 왕으로 모시고 살 것인가 내가 내 인생의 왕이 되어 살 것인가 선택은 자유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든 세상이 무슨 말을 하던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구주오 왕으로 모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선택에 있습니다. 쓸데 없는 것으로부터 신경을 끄는 기술도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주님으로 내 인생의 왕으로 다 모시고 불행한 과거를 날려 보내고 새롭게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치유시키시는 분은 인간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다섯 남편이나 둔 여인도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님으로 왕으로 모시니까 불행했던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니까 불행했던 과거를 날려 보내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세리장으로 불행한 과거로 온갖 비난과 멸시천대를 받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니까 최고의 찬사를 받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선천적인 장애인도(요9:1-41). 간질에 걸린 아이도, 중풍으로 누워 있는 자도, 12년간이나 혈루병으로 불행한 인생을 살던 여인도, 18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했던 여인(눅13:10-17)도 예수님을 만나 지긋지긋한 과거의 불행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왕으로 모시면 불행한 과거가 내 인생의 왕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2. 불행했던 과거를 떠나보내려면 신앙인의 의식으로 바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48-49).

불행한 과거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악몽같은 기억 속에 계속에서 자신을 가두어 놓게 됩니다. 불행한 삶은 불행한 의식으로부터 나옵니다. 전쟁 경험이나 심각한 폭행을 당했다면 과거에 집착하는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의식이 그 과거 불행한 사건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면 과거에 갇혀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고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는데도 과거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그 기억 속에 갇혀서 배우자를 믿지 못하고 친구를 믿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을 ‘성인아이’라고 말합니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의식은 아직도 어린 아이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왕으로 모시면 이런 의식을 바꾸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과거 불행으로 만들어진 거지 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진실로 성숙한 삶을 살려면 이 거지의식을 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 메시아로 고백하고 자신의 인생의 왕으로 모신 바디메오를 보십시오.

이제는 과거의 거지 의식에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입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것, 없는 것, 불행한 과거 붙들고 원망하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니까 어떻게 합니까? 볼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입술로 소리를 지릅니다(47) 눈은 볼 수 없지만 입은 있는 것입니다. 의식이 바뀐 것입니다. 잃은 것 보며 원망하지 않고 있는 것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문제를 해결받습니다.

바디매오가 소리를 지르니까 예수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48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모를 때는 그런 장애물이 다가 오면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원망하고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그는 어떻게 합니까? 48절 보십시오. 더욱 심히 소리 질렀다고 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가 무슨 비난을 하던, 누가 무슨 조롱을 하든, 사람들이 어떤 오해를 하던 거기서 무릎 꿇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히 12:2)"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어떤 장애물과 어떤 인간의 방해와 비난이 있어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의식이 바뀐 것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소극적인 마음이 적극적인 마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비관적인 마음이 낙관적인 마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살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의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의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

조그만 장애물이 와도 조금만 비난을 받아도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비난하고, 정죄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십자가에서 그 모든 수난과 모욕을 감당하면서 사명을 이루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면서 이런 거지 의식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2차 대전 때 일본이 망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의 작은 섬 루방에 파견된 일본 군인들은 자기 나라가 망한지 몰랐습니다. 일왕의 친서를 공중에 살포해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오노다 30년 동안 그곳에 숨어 살면서 곤충과 설치류를 잡아먹고, 흙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민간인을 살해하며 사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되었는데 과거의 노예가 되어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어떻게 의식이 바뀝니까?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라고 말합니다. 과거에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과거의 자신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다시 산 것입니다.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 우리의 부끄러움, 우리의 불행한 과거를 십자가서 지고 돌아가신 그 십자가에서 불행했던 과거를 다 파묻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 역시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이사야 43장18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의식을 학문적 용어로는 고정 마인드가 아니라 성장마인드라고 합니다. <마인드 셋(캐럴 드웩)>라는 책이 있습니다. 학문, 예술, 사업, 운동 등의 분야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새로운 삶을 살려면 마인드 셋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문 첫 머리에 “‘아직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리 경향,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의 힘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천재는 날 때부터 정해져 있고, 무엇인가 실수하면 재능이 없다고 끝났다고 단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정 마인드 셋을 갖지 말고 성장 마인드 셋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성장 마인드 셋을 가지면 얼마든지 천재가 아니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윈과 톨스토이도 어린 시절에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고, 위대한 골퍼로 추앙받는 벤 호건도 어렸을 때는 둔하고 버릇없는 아이였답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인 사진가 신디 셔먼은 자신의 첫 사진 수업에서 낙제했고, 최고의 여배우 제럴딘 페이지는 ‘재능이 없으니 연기를 그만두라’는 얘기까지 들었답니다. 앨비스 프렐스리도 잠재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저명한 교육학자인 벤저민 블룸(Benjamin Bloom)은 120명의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연구했답니다. 유명 피아니스트, 조각가, 올림픽 수영선수, 세계적 테니스 선수, 수학자와 뇌과학자 등이 포함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기 전에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도 못했답니다. 지속적인 동기 부여와 헌신, 주변의 도움이 그들을 최고의 자리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블룸은 이렇게 결론짓고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해외를 포함해, 학교 교육에 대한 내 40년간의 집중적 연구한 결과 ‘적절한 학습 조건만 갖춰진다면, 그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변화된 의식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해 주십니까?

4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머물렀습니다. 서서 그를 부르라 했습니다. 더럽고 추하다고 팽개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짐짝 같은 인간이지만 작은 신음에도 응답해 주십니다. 믿습니까?

그러자 장애물 역할을 했던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부르신다고 말합니다. 불행한 과거로 비우호적인 그들이 우호적인 사람들로 변합니다. 사람들이 쉽게 비난하는 이유는 부정하고 비난하는 일을 쉽고 즐겁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힘들고 불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식을 바꾸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나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우리가 의식을 바꾸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비우호적인 사람도 우호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나에게 장애물이 되었던 사람도 디딤돌로 역할이 바뀌어 집니다. 나를 낙심하게 했던 사람도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불행한 과거로부터 떠나는데 어떤 인간의 장애물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장애를 인정하고 내 인생의 장애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는 사실을 믿고 장애물 때문에 오히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행복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아픔은 쓸모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은 우리 몸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더 겸손하게 하고 더 예수님을 닮도록 하는 것입니다.

 

3. 불행했던 과거를 떠나보내려면 믿는 사람답게 행동을 바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50-52).

불행한 경험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그 불행한 경험 때문에 더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불행한 과거로 인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불행한 과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가 권력있고 부자였다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바디매오를 부르시니까 제자들이 안심하고 일어서라고 합니다. 그 때 바디매오는 어떻게 합니까? 50절을 보십시오.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납니다. 겉옷은 그의 전 재산입니다. 시각장애인으로 사는 데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기온차가 심하기 때문에 밤에는 그것을 덮고 자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벗어던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뜬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버려버린 것입니다. 눈을 뜨게 되면 거리에서 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믿고 확실하게 실행하는 것입니다. 과거 불행한 삶을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믿는 사람다운 사람의 양식을 갖는 것입니다.

그가 겉옷을 벗어던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5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모습을 보고 네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물어 보는 것이 아닙니다. 늘 구걸하는 입술이 변하길 원했을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믿은 것이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는 실행하는 믿음을 보기 원한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구걸하던 입술이 바뀌었습니다. “한 푼 줍쇼.”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구한 것입니다. 보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 그에게 예수님 말씀합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의 문제를 완전히 치유시켜 주십니다. 그가 보게 되자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은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어떻게 했습니까?

보게 되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10장 17절 이하에 나오는 부자는 돈 때문에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소경은 이제 과거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불행한 삶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할 수 있습니다. "과거 너 소경이었지?" 우리가 주님을 좇는 삶에서 그런 과거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너 창녀였지" “너 이혼했지” “너 간음했지” “너 거짓말 했지” “너 실패했지” " 거지였지"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변했습니다. 얼마나 그가 예수님께 충성하며 제 2의 인생을 살았겠습니까?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인생은 완전히 변했을 것입니다. 이제 거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좇으며 주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누구나 과거의 불행했던 삶의 십자가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 붙들고 망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그것 붙들고 예수님 따르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과거든 이미 지나간 것이고 기억에 남은 것입니다. 느낌과 감정으로 마음의 파동이 되어 우리의 의식과 삶을 지배합니다. 이 때 불행한 과거의 정서적 협박에서 벗어나려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씻어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냥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은 젓는다고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맑은 물이 계속 들어가면 맑아지는 것입니다. 행복을 방해하는 유전자인 과거의 불행한 경험은 씻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재생되는 것입니다. 이미 과거는 확정되었지만 과거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는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은 오늘 나의 삶이 어떠냐에 따라 행복의 요소도 될 수도 있고 불행의 요소도 될 수 있습니다. 신혼여행이 경험이 나를 풍요롭게 해주는 것을 보유효과라고 합니다. 그러면 좋았던 옛날이 됩니다. 그러나 이혼하여 고통을 당하면 신혼여행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행한 옛날이 됩니다. 이것을 대조효과라고 합니다. 만성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은 현재를 과거의 긍정적 사건들과 자꾸 대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부모․연인․친구와의 갈등, 질병, 실연, 이별, 폭력, 사고 등 다양한 불행한 과거의 상처가 있다면 자꾸 방어하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나의 십자가로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도망치지도 말고 잊으려고 몸부림 칠 필요도 없습니다. 방어하고 회피한다고 불행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생각보다 남들은 나의 불행한 과거에 대하여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흠 없이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불행한 과거를 통해 나를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잘못은 깨끗이 회개하면 됩니다. 나를 속이는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꾸준히 주님을 따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탄이 우리의 불행한 과거를 붙들고 끊임없이 고자질을 합니다. “너 같은 것이 목사라고 너같은 것이 사장이라고, 너 같은 것이 선생님이라고” 그러나 그것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과거를 숨기려고 몸부림을 치며 칠수록 자신도 자신의 주변도 더 불행해집니다.

스탈린은 권력을 잡기 위해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을 다 죽였다고 합니다.

1907년 농부로 위장해 은행에 들어가 폭탄을 터뜨리고 2만5000루블(약 3억원)을 훔쳤다고 합니다. 한 달 사이 은행 다섯 곳을 떨었답니다.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 한 가운데서 현금수송마차도 떨었다고 합니다. 돈은 모두 34만루블(약 40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이들이 잡혔지만 6년 후 러시아 혁명으로 모두 석방되었답니다. 사실 이 강도단의 주모자는 스탈린이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로이 메드베데프에 의하면 스탈린은 레닌의 눈에 들기 위해 혁명 자금을 그에게 바치기로 했고 스탈린은 은행을 털어 혁명 자금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카모를 비롯해 10여 명의 공산단원을 포섭한 스탈린은 직접 모든 계획을 세웠고, 당원들에게 은행을 털게 해 모두 레닌에게 바쳤답니다. 1922년 스탈린은 레닌에 위독해지자 공산당 서기장 자리에 올랐고 그 과정에서 반대파를 마구잡이로 숙청했답니다. 이에 크게 실망한 레닌이 스탈린 지지 의사를 철회했고 트로츠키가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답니다.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과거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는 소식에 스탈린은 은행 강도단을 반역자로 몰아 사고사나 병사로 위장해 살해해 버렸답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꼬리 자르기를 한 것입니다. 은행 강도단 두목 카모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뺑소니로 사고를 당해 죽고 말았고 은행 강도 단원들은 줄줄이 죽고 말았답니다.

일본은 종군 위안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불행했던 과거를 감추기 위해 위장하고 미화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달랐습니다. 그는 동네 친구들에 의해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놀림 받으면 자란 불행한 과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분단된 조국을 통일시켜야 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꿋꿋하게 성장하여 1969년 마침내 서독 총리가 되었습니다. 총리가 괸 빌리 브란트는 이웃 나라인 폴란드를 방문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폴란드는 독일 때문에 인구의 20%가 죽어 독일은 물론 빌리 브란트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1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하여 독일 나치 정권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 앞에 섰습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빌리 브란트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묵묵히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전 세계가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빌리 브란트가 희생자 추모비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서양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완전한 복종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총리가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비 내리는 땅에 무릎을 꿇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리 브란트의 용기 있는 행동은 독일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고 그의 행동에 감동한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에 대한 미움을 씻어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 언론도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라며 빌리 브란트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옵션B>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2015년 멕시코 휴양지 호텔에서 남편 데이브 골드버그가 헬스장에서 쓰러져 숨지자 가슴과 폐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초등학생인 아들딸을 홀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고, 자신감은 하루아침에 부서져 가루가 되었답니다. 아들의 운동화를 사주는 것까지 상의할 정도로 자상했던 남편을 잃자 무너지고 말았답니다. 남편을 일찍 발견했다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에 휩싸였답니다. 고통이 일상의 모든 것을 뒤덮은 채 영원히 지속될 것이란 두려움에 사로잡혔답니다. 자신과 아이들을 챙기는 부모, 형제들에게는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답니다. 그러다가 애덤이 “남편이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다 심장부정맥을 일으켰을 수도 있지 않았냐”고 생각해 보라고 했답니다.

자책하지 말고, 훨씬 더 나쁜 상황을 생각해 보라고 조언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아이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미치도록 감사했답니다. 매일 일기를 쓰며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꼽아보았답니다. 눈물이 터져 나오면 참지 않고 엉엉 울었답니다. 고통을 겪은 후 이전보다 더 성장했다고 합니다. 셰릴은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비영리조직 ‘OptionB.org’를 세우고 기부하며 행동에 나섰다고 합니다.

 

절대로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과거의 나쁜 기억과 마음속 상처 속에서 벗어나려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간증거리가 되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되고 그것이 인생의 교훈이되어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고 진정 하나님의 아들 딸 답게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불행한 과거를 과감하게 떠나보내려면 인생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바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행한 과거를 과감하게 떠나보내려면 거지근성에서 믿는 사람다운 신앙인의 의식으로 바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행했던 과거를 떠나보내려면 믿는 사람다운 행동으로 바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50-52).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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