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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용기(5) 다시 일어나는 용기(출4:10-1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186 추천수:4 112.168.96.218
2017-09-24 17:27:42

 

신앙인의 용기(5) 다시 일어나는 용기

출애굽기4:10-17

 

아이들이 발을 떼고 제대로 걸을 때까지 몇 번이나 넘어질까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글을 보니까 평균 2천 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약 3천 번 넘어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하루 평균 20번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평균 몇 번이나 실패할까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답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이 크고 작은 실패를 합니다. 그런데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그 실패로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실패지만 실패를 자신의 성장에 활용하는 사람이 있고 실패를 자신의 인생을 퇴보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실패학 바람'을 일으킨 도쿄대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는 그의 저서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에서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패를 다루는 태도에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실패를 합니다. 실패를 극복하고 일어나는 삶을 살겠습니까? 실패로 좌절하고 포기하는 인생을 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에서 일어나는 용기를 가지길 원하십니다. 우리 신앙인이 실패에서 일어나려면 어떤 용기가 필요하겠습니까?

 

1. 우리가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려면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일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실패하는 데는 그 원인이 있습니다. 기업이 실패할 때는 외환위기같은 기업외 요인, 경영자의 능력 부족과 같은 경영자 요인, 시의성에 맞지 않는 것과같은 기업구조나 전략요인, 경영관리 요인, 제품 기술 생산 요인, 재무요인, 마케팅 요인, 조직 노무 요인 등 다양한 요인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경영자의 능력 부족으로 올 경우가많이 있습니다. 방만한 자금관리, 무리한 사업확장, 경영자의 지식·경험 부족, 경영자의 독단적 기업경영, 기술개발노력 부족, 유통망 관리의 실패,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 부족, 노사관계의 악화, 경영자의 부정, 마케팅전략의 부재 등으로 사업이 망했다면 중요 원인이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실패로부터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체념하거나 절망하고, 자조로 합리화를 시켜 버립니다. 결혼 실패, 사업실패, 신앙실패, 진학실패, 연애실패 등 수 많은 실패가 있는데 이 실패를 잘 못 처리하는 방법은 첫째가 이런 식으로 도피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바로 모세가 그렇게 했습니다. 자신이 왕자의 신분을 가지고 애굽에서 살 때였습니다. 40년간 왕궁 수업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보니 애굽의 노예로 완전히 절망의 끝에서 재기 불능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을 구해보려고 도전합니다. 그러나 살인자가 되어 수배령을 받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광야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망자 신세로 40년을 살았습니다.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동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 80입니다. 이제 다시 일어나기에는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재기를 위한 용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찾으셨습니다. 모세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모세에게 오셨습니다. 일어나 백성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다시 일어날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이미 세 번째 거절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네 번째 다섯 번째 거절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다시 일어나기를 거절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 4:10)"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합니다.

첫째는 본래 태어날 때부터 말하는 재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어 부르신 후에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강퍅한 바로를 설득할 수도 없고, 완악한 백성을 설득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낙인을 찍고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한 번의 실패 경험으로 태생적으로 능력부족이라고 스스로를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심리학 용어로 이런 것을 "정적 평가의 오류"라고 합니다. 계속된 실패의 경험으로 어느 순간에 가면 나는 해 보았자 될 수 없다고 시도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기 없는 3포, 4포, 7포 세대가 되는 것입니다. 실패의식에 사로잡히면 부정적 사고, 비관적 사고, 독선적 사고, 편협한 사고의 늪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가 그렇게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충격적인 실패의 경험으로 모세가 자기 비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7:2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그는 말과 행사가 능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학문을 다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궁중에서 왕자 대접을 받으며 차세대 지도자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의 지도력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 났습니다. 그는 말에 뛰어났습니다. 그는 행정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모세는 지나친 자기 비하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비하는 겸손이 아닙니다.

네 번째 거절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선천적으로 말 못한다고 하는데 너 스스로 말 못한다고 하는 그 입 내가 만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입 하나님이 다시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을 확실하게 신뢰하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재능없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재능이 없다할 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활용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실패는 하나의 훈련 과정에 불과합니다. 재능을 개발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재능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걷기를 배울 때 넘어지지 않고 어떻게 걸을 수 있겠습니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 넘어지지 않고 어떻게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겠습니까? 넘어지면서 기술을 연마하여 성공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패배자(폴프 슈나이더)>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몇 사람을 제외한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말합니다. 역사 속에 살았던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 비참한 패배자들, 영광스런 패배자들, 승리를 사기당한 패배자들, 왕좌에서 쫓겨난 패배자들,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몰린 패배자들, 끝없이 추락한 패배자들, 세계적인 명성을 도둑질당한 패배자들, 더 큰 영광의 시간을 박탈당한 패배자들, 살아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 패배자 등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맨 마지막 부분에서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인생들로 윈스턴 처칠과 덩샤오핑, 리처드 닉슨을 소개합니다. 덩샤오핑은 세 번이나 재기에 성공했고 닉슨은 수없는 실패를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네 번 패배한 후에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훌훌 털고 일어나 네 번이나 승리를 쟁취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서른 한 살에 자유당 내각에서 식민 차관으로 관직을 시작해서 1911년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영국 해군 장관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처칠은 독일과 동맹을 맺은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실패하고 해군장관직을 사임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절망하지 않고 소령 계급으로 자원하여 프랑스 전선에 나갔고 1917년 군수 장관이 되어 신무기인 '탱크'를 만들어 전선을 승리케 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장관에서 물러났고 세 번이나 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실패로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64세에 다시 24년 만에 해군장관이 되어 승리하였고 드디어 수상이 되어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76살에 다시 수상에 선출되었고 1953년에는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 책에서는 소개 되어 있지 않지만 그는 중학교 때 3년이나 진급을 못했다고 합니다. 영어에 늘 낙제점을 받았답니다. 그는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실력이 없어 포병 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실패를 통해 큰 그릇이 된 것입니다. 실패를 통해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실패한 만큼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닙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어릴 적에는 "열등아"였습니다. 초등학교를 3개월 다니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12살 때는 기차간에서 신문팔이도 했습니다. `전쟁와 평화'의 저자인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계속 낙제점수를 받았습니다. 교수들은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산업혁명의 계기를 만든 J 와트도 "얼간이"로 낙인 찍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했습니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 근대 물리학을 개척한 영국의 대과학자 뉴턴도 초등 학교시절에는 "낙제생"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에게 모든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사는 신앙인입니다. 주어진 자그마한 재능을 하나님이 사용하면 그 재능이 극대화되어 그의 인생 전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어떤 실패 앞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들입니다. 실패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한 번 혈기 부렸다고 우리는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공부의 실패, 인간관계의 실패, 사랑의 실패, 용서의 실패, 인내의 실패, 신앙생활의 실패, 계획의 실패, 전도의 실패, 성경읽기의 실패...... 등 무수히 우리는 살면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실패 했습니다. 주님 3번 부인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실패 했습니다. 가뭄으로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 누이라고 2번식이나 속였습니다. 약속을 믿지 못하고 첩을 얻어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이삭이 실패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흉년이 들자 먹고 살기 위해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야곱이 실패 했습니다. 형과 아버지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탈취하였습니다. 다윗이 실패했습니다. 자기 부하를 고의적으로 전장에서 죽게 하였습니다. 남의 아내를 간음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영원토록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우리 하나님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우리를 하나님은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실패한 우리를 하나님이 주신 재능에 기름부어 하나님이 다시 쓰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실패했다고 너무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고 비관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부족하다고 그 재능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쓰시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내 재능에 근거를 두지 말고 쓰시는 하나님에게 근거를 두고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거친 돌도 위대한 조각가가 들어 쓰면 위대한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아무리 부족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쓰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오른손 불능자 왼손잡이 에훗도 쓰십니다. 당시 여인으로 물건처럼 취급당하는 드보라도 사용하십니다. 겁쟁이 기드온, 사기꾼 야곱, 아내를 내어놓은 아브라함, 배반자 베드로, 살인 방조자 바울도 하나님은 그들의 재능을 사용하십니다. 지금 모세의 상황이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모세는 살인자로 도망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가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나이 80입니다. 그를 지지해주고 환호하는 사람들 없습니다. 40년 왕궁 생활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광야의 목동에 불과합니다. 엄청난 상실의 고통에 처한 것입니다. 실패자의 늪에 갖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은 할 수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성도님의 형편이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그래도 이 성경 속에 지금 소개되고 있는 모세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의 현장에서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려면 우리에게 동역자를 붙여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일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실패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의 실패입니다. 모세도 과거 자기 백성들에게 배신을 당해 실패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 1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민족애와 의협심을 가지고 자신의 민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끼리 싸웁니다. 모세는 지도자로 그 일에 개입했습니다. 그 때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출 2:14)"라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의 지도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삼불 즉 “불이익, 불편, 불쾌” 앞에서 끝없이 배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 때문에 수없이 실패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마 그 때를 기억하면 대인 기피증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렇다고 과도하게 일반화를 시켜 버립니다. 실패를 잘 못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그 아픔을 끝까지 간직하고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그 과거의 실패 경험이 현재를 포로로 삼는 것입니다. 선입관과 편견을 갖게 되고 결국 유사한 사람을 상종하지 안게 됩니다. 그러면 모세처럼 은둔해 버리는 것입니다. 직장을 포기하고, 다시는 도전하지 않습니다.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모세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주여 보낼 만 한 자를 보내소서." 다섯 번째 또 거절합니다. "나 같은 사람 보내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자신은 민족을 구원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실패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4장 1절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잇습니다.

"그들이 저를 믿지도 않고 제 말을 듣지도 않으며 여호와께서 제게 나타나시지 않으셨다고들 말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세 가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합니다.

첫째, 지도자로 자격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종으로서 공인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의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겠습니까? 과거의 쓰라린 실패 경험으로 나온 말입니다. 과거 백성들은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로 믿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로 자격문제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로에게 밀고해 버렸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과거 경험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결코 다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가지려면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십시오. 수없는 사람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모독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의 사명을 포기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인간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십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첫째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자신감 있게 실행해야 하며 셋째는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이룰 때까지 시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고, 사람에게 불이익을 당하면 자신감도 안 생기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과도하게 일반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면 결코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내 인생의 성공을 방해하는 사람인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재기할 것을 거절하는 모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아론이 말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나로 나온다는 것입니다.(14) 너를 지지해 준다는 것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기쁨으로 일을 함께 일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14) 15절을 보십시오. 아론에게 말하면 하나님이 아론의 입과 모세의 입에 함께 있어 모세가 행할 길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형이 모세의 권위를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16절 보세요. 너의 권위를 하나님처럼 인정해주고 함께 일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해 줄 신실한 동역자를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고 붙여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실패한 후 사람들은 다 도둑놈이며, 나의 적이고, 늑대라고 생각하면서 대인 기피증에 걸려 좌절하고 실패의 늪에서 갇혀 살아서는 안 됩니다. 증오감의 노예가 되어 복수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한명이라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요나단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로 나를 지지해 주며 다시 일어나 사명을 감당하게 해 주실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사람을 다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나의 약점을 감싸줄 사람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공대 졸업생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성공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퍼센트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머지 85퍼센트는 좋은 인간관계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만 잘 만나도 인생은 실패에서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도망갔지만 한 명의 신실한 군인이 그를 따라 결국 승리했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홀로 있다고 생각하며 죽여 달라고 주저앉아 있을 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칠천 인을 동역자로 남겨 놓았다고 말씀하시면서(왕상19:18) 다시 일어나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를 쓰시기 위해 하나님은 설리번 선생님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바울을 홀로 사역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순간순간 수많은 사역자를 붙여 주었습니다. 바나바, 디모데, 에바브로 디도, 등 여러 동역자와 함께 일하게 하였습니다. 부족함을 보완해 주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동역자를 주십니다. 다윗에게는 자신을 생명처럼 사랑한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동역자를 기대하며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실 동역자를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일어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KFC의 창업자인 커널 샌더스는 스스로 고안한 닭튀김 제조법을 가지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때 무려 1005번이나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1005명이 거절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을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그 중에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 1006번째의 사람을 만나 다시 일어선 것입니다. J.K 롤링은 '해리포터'를 내기 위해 8개 회사로부터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뉴욕 백화점의 사장이 된 R. H. 매시는 일곱 번이나 거절당했다가 8번째 간신히 뉴욕 백화점에서 일자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소설가 존 크리시는 753번을 거절당한 뒤 첫 소설을 출간했고 그 뒤 563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3. 우리가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려면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일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실패하면 상실감에 사로잡힙니다.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집트 왕궁을 잃었습니다. 권력 전쟁에서 밀려났습니다. 재물을 잃었습니다. 부모 형제를 다 잃었습니다. 이제 나이 80입니다. 배운 학문도 이제 40년이 지나 다 잃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르는 군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을 이끌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즈음 사업하는 사람의 말로 하면 집도, 돈도, 기술도, 직원도, 거래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하나님은 지금 들고 있는 지팡이를 사용하여 재기시키겠다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지팡이입니다. 익숙한 지팡이입니다. 한 번도 기적을 일으켜 보지 못한 지팡이입니다. 전쟁에는 아무 쓸모없는 지팡이 입니다. 백성들을 이끄는 데는 아무런 가치 없는 지팡이입니다. 양치는 데는 필요하지만 전쟁을 하는 데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는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 이적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으로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지팡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볼품없는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저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귀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지팡이지만 하나님이 쓰시니까 위대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줍니다.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니까 뱀이 됩니다(출 7:9)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까 피로 변합니다.(출7:17) 지팡이로 개구리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합니다(출 8:5)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니까 이가 됩니다(출8:16)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으니까 뇌성과 우박이 내입니다.(출9:2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으니까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들입니다(출 10:13) 강퍅한 마음을 녹이는 도구가 됩니다.

홍해를 가르는 능력의 지팡이가 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불을 피우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도구가 됩니다.

르비딤 광야에서 생수를 나게 하는 지팡이가 됩니다. 메마른 마음이 옥토로 변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를 이루게 하는 지팡이가 됩니다. 어떤 지팡이이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금수저냐 흙수저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쓰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질그릇같은 나를 하나님이 붙들어 쓰시면 "내게 능력 주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무식하고 다혈질이고 실수 잘하고 배신하고 저주하고 도망간 베드로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니까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오천 명 돌아옵니다. 우리의 재능을 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는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어린 소년의 손에 있었던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가 하나님이 쓰시니까 5천명을 먹였습니다. 사렙다 과부가 마지막 먹고 죽으려 했던 기름과 떡을 하나님이 쓰시니까 그해 가뭄을 다 이기게 할 만큼 풍성하게 하였습니다. 소년 다윗의 손에 들렸던 물맷돌 다섯 개이지만 하나님이 쓰시니까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링컨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수많은 실패를 했지만 하나님이 쓰시니까 노예해방을 하고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한쪽 귀의 청력을 잃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쓰시니까 2천여 종 이상의 발명품을 인류에서 선물했습니다. 수없는 실패를 했지만 그 재능은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았습니다. 전구를 발명하고 완성할 때까지 무려 12만 번이나 기도하고 1만 번이나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한번 실패하면 3시간을 기도했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기까지 사랑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실패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부활로 승리를 했습니다. 살면서 수없는 실패를 하고 살지만 결과과 실패로 마감이 아니라 승리로 마감해야 합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남성복 전문점 경영에 실패하고 측량 기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모든 측량 기구들을 처분하여 빚을 정리해야 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군인의 길을 선택하여 대장이 되었지만 졸병으로 강등되었고 이상한 병으로 얼굴이 흉하게 변했습니다. 약혼녀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정치에 뜻을 두고 여러 번 선거에 입후보를 했으나 늘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여 결국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당선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실패는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의 기회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일어나는 용기를 가지라고 오늘날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활발하게 선교 및 봉사에 앞장서 일하는 평강한의원 이환용 원장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18만여 평 면적의 평강식물원을 만들어 동양 최대 규모의 고산식물 전시장 암석원을 비롯하여, 전 세계 식물 5,000여 종이 전시되어 있어, 우리나라 식물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장로님입니다. 9수만에 한의대 입학했다고 합니다. 난민촌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아래에 자라며 스스로 생계를 꾸려갔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다리마비로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답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한의대를 졸업하고 평강한의원을 개원했지만 몇 년째 은행에 빚을 갚지 못해 거의 망하기 직전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늘 새벽기도를 다니면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답니다. 새벽기도 때마다 처방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코나무 뿌리껍질을 먹고 축농증이 나았다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8년간의 연구 끝에 콧병치료약인 ‘청비환’을 만들어 비염 환자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됐어 TV에도 출연하는 유명한 한의사가 되었답니다. 장로님은 간증합니다. “실패는 끝이 아닙니다. 거기서 멈추었기 때문에 실패가 된 것이죠. 될 때까지 하면 꿈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저는 수많은 고난과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대학도 9수, 청비환을 만드는 데도 8년, 식물원도 8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신바 된 우리는 수없이 실패를 하고 살지만 실패로 끝은 내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실패는 하나의 과정이고 실패는 새로운 시작의 기회입니다. 마음대로 안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실패는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한 거울이고, 실패는 약점을 가르쳐 주는 것이며, 실패는 삶의 방향을 수정하라는 싸인입니다. 하나님은 실패에서 일어나라는 용기를 우리에게 지금도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려면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일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려면 우리에게 동역자를 붙여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일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려면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일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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