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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용기(3)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여호수아8: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812 추천수:1 112.168.96.218
2017-09-10 10:31:48

 

신앙인의 용기(3)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

여호수아8:1-2

요즈음 북한 핵과 미사일 보도를 보면서 혹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만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 두려움이라는 균을 주입합니다. “뒤처질까, 잊혀질까, 쫓겨날까, 비난받을까” 전전긍긍하며 만성적인 두려움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옷을 벗기고 발로 차며 피범벅이 된 아이에게 소변을 붓고 강제로 마시게 한 학교 폭력 보도를 보면서 우리 아이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학부모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경찰에 신고하면 너희 부모도 산에 매장하겠다”고 협박했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두려움 때문에 신고도 못하고 그 끔직한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행복한 삶을 사는데 어려움을 당합니다. 부모와 교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두려움과 용기의 학습(호세 안토니오 마린)>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학교 폭력을 언급하면서 학교 폭력에는 세 가지 주요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공격자와 희생자 그리고 수동적인 구경꾼, 방관자입니다. 누군가의 작은 행동이 폭력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경찰을 부르거나, 지금 일어나는 부당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대의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는 사소한 용기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기를 통해서만 인간의 삶은 향상되고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용기를 스스로 행동하는 자유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행동하는 용기는 정의의 문을 열어주어 “욕구, 정치적 독재, 타인에 대한 의존성, 타락의 유혹, 두려움의 힘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특징짓는 대표적인 능력 중 하나가 용기라고 말을 합니다. 용기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처방전의 주재료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는 용기를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핑계 대거나 도망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두려움에 지지 않는 방법이 용기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지만 극복하는 것이 용기라고 말합니다. 용기는 무서워도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워하는 건 괜찮지만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건 괜찮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는 것이라고 합니다. 용기있는 사람은 고난이나 수고로움 두려움 때문에 정당하고 가치 있는 행동을 주저하지 않으며 중간에 힘들다고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용기는 두려움을 의식하지만 두려움에 선택권을 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용기는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한 지름길이지만 두려움은 우리가 선하고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렇게 살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행복해지고 가능성을 넓히려면 반드시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실패를 극복하고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정신이 바로 용기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앞에 놓고 두려움과 갈등이 있다면 용기라는 스위치를 누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는 “용기 없는 사람은 솔직할 수 없다. 용기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용기 없는 사람은 타인을 믿을 수 없다. 용기 없는 사람은 현실을 직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이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그다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용기는 두려움을 의식하지만 두려움에 선택권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용기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처방전의 주재료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슬로건은 ‘두려움 없는 삶’이었듯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런 삶을 꿈꾸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인이 성취와 행복을 방해하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용기있게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 한 후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아이성을 점령한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지혜를 배우시길 바랍니다.

1.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자가 쫓아오면 사슴이 도망가는 것처럼 동물도 두려움이 있고 인간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성이 있어 상상을 하기 때문에 그 상상에 의한 두려움이 동물보다 훨씬 강합니다. 두려움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상적인 두려움은 좋은 것입니다. 병적인 두려움이 문제입니다. 정상적인 두려움은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안전을 추구하게 하여 우리의 삶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위험한 동물을 만났을 때, 시험 볼 때, 연설하려 할 때 겪게 되는 정상적인 두려움은 사람을 좀 더 각성하거나 예민해지게 하여 직면한 문제를 효율적으로 잘 해결해 나가도록 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두려움은 사람의 잠재력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사명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에서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 해방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은 자신의 재능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그 재능의 극대화를 방해할 뿐 아니라 재능의 숨통을 죄게 한다는 것입니다. 세네카는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파괴적인 두려움의 부정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두려움의 포로가 되면 대인 공포증, 광장공포증, 고소공포증, 질환공포증, 죽음공포증 등과 같은 심각한 만성 공포증 환자를 만들어 버립니다. 부정적인 두려움은 성공을 방해합니다. 심리학자 린다 새퍼딘은 "두려움이 나를 망친다"라는 책에서 두려움은 사람을 수동적이고 소심하게 하고, 늘 경계심을 품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자신이 없게 만들고, 매사에 비판적이게 하여 자신을 망치게 한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두려움의 포로가 되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명을 잃어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병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교훈을 해 주시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실패한 여호수아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나게 하신 첫 번째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1절 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수8:1)"

이 말씀의 핵심 요지는 무엇입니까?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는 명령입니다. 한 번 패배했다고 두려움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두려움으로 주저 있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 사명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용기있게 사명붙들고 두려움의 늪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실패하고 두려워했습니까? 첫 번째 주원인은 아간의 범죄(7:1)입니다. 아간의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옷과 금은보화를 갈취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기원은 창세기 3장 10절에서 나타난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에서 찾을 수 있듯이 죄입니다. 죄로 인한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외면하게 합니다. 핑계대고 도피하게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전쟁에서 패한 후 그들은 어떤 상태에 들어가 있었습니까? 7장 5절을 보십시오. "물같이 녹아 버린 백성의 마음(7:5)"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정탐꾼이 가서 가나안땅을 보고 돌아와 간담이 녹았다(수2:24)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7장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니까 그 많은 군인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반응합니까? 멸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절망합니다. 단정해 버립니다. 9절 보세요. 끝났다는 것입니다. 일반화시켜 버립니다. 지금 상태를 보십시오. 아이성 인구가 12000명(수8:25)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무장할 수 있는 군인 6십만 1천 7백 30명이나 됩니다. 않자 그들은 이 삼천이면 될 줄로 알고 삼천으로 싸웠습니다. 일차 실패 때 사망한 사람은 36명에 불과합니다. 지금 이렇게 하고 있을 때이겠습니까?

이 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죄를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1절에 두려움으로 망설이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아이성으로 올라가 점령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는'이라는 단어는 '비겁함, 겁 많음, 겁에 질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실패를 한다 해도 두려움으로 주어진 사명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 나에게 주어진 아이성을 점령해야 하겠습니다. 두려울 때 그것보다 더 큰 것을 보아야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은 두려움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자식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가 물에 빠지면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아이를 건지러 용기 있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불러 각자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어떤 두려운 상황이 닦쳐와도 그 사명 붙들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순교자들은 복음의 사명을 위해 죽음의 두려움도 극복하며 사명을 이루었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계속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비겁하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움으로 사명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재기하는데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고 다시 일어났고 100세에 약속을 성취받았습니다. 모세는 80세에 다시 일어나 부름에 응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뿌리」를 쓴 알렉스 헤일리는 8년 동안 1백 번이 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일어나 55세가 되던 해에 세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거로 미국의 대통령이 된 헨리 트루먼은 평범한 농부로 살다가 천신만고 끝에 서른 아홉 살에 처음으로 공직을 얻었고, 뒤늦은 50세에 정치무대에 입성한 후 61세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한번 실패했다고 용기를 접지 말아야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귀머거리가 되어서도 축음기를 만들었습니다. 존 밀턴은 완전히 실명된 상태에서'실낙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영국 작가 서머셋 몸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말더듬이였습니다. 베토벤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링컨, 트루먼.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대학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석유왕 록펠러, 최초의 비행사 라이트형제, 자동차왕 포드 고등학교 중퇴자들입니다. 혹시 올해 나에게 주신 아이성, 사업의 아이성, 가정의 아이성, 교회의 아이성 실패하고 두려워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서양 속담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실패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고서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어떤 경우도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아무리 힘이 없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며, 미래는 반드시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견고해질 것을 생각하며 두려움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2.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왜 두려워합니까? 분리불안 때문이라고 합니다. 토마스 홉스가 “내가 태어난 날, 어머니는 쌍둥이를 출산하셨다. 나와 내 두려움”이라고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다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두려움은 어린 유아기 때부터 시작되는데 분리와 낯선 어른들에 대한 유아기의 두려움은 8개월부터 22개월 정도 유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분리되니까 아이들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회 공포증은 15살에서 20살 사이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친구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여 분리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에체부루아와 산딘의 연구 통계에 따르면, 40퍼센트 이상의 아이들이 강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10-20퍼센트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두려움에 대한 우리 기억의 일부는 편도체에 보관되어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유용할 수 있으나 반대로 파괴적인 효과도 있다는 것입니다. 파괴적인 때는 정상적인 두려움이나 과장된 두려움 정도가 아니라 병적인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병적인 두려움은 개인에게 통제할 수 없는 공포를 가져다주며 이는 공황 상태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 뿅뿅이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용감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뛰는데 어떤 아이들은 두려워 떨며 엄마의 치마폭만 잡고 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날까요?

호세 안토니오 마린은 스키마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차이는 아이마다 감정과 인지(믿음), 행동,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감정은 인지에 영향을 주고, 인지는 행동에, 행동은 경험에, 경험은 다시 감정에 영향을 주는데 이것을 ‘감정 메커니즘’이라고 합니다. 이런 감정 메커니즘을 해석하는 저마다의 시스템이 있는데, 저자는 이를 ‘스키마’라고 부릅니다.

두려움이 많은 성향은 유전적인 영향보다는 양육 방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새끼 쥐들은 '용감한' 쥐들의 보살핌을 받자 용감한 쥐가 되었답니다. 자신이 이해하는 사유의 틀인 '스키마'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세상을 예측할 수 있는 지 없는지,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지 아니면 통제할 수 없는지, 세상이 안전한 곳인지 아니면 위험한 곳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세 가지 믿음을 초기 유아기에, 초기 양육자와의 관계를 통해 생활 속에서 습득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두려움의 힘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때로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병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공황장애, 사회적 공포증, 외상 후 스트레스, 강박적인 집착증, 불안증에 사로잡힙니다. 경험은 믿음에 영향을 주고, 믿음은 감정에 영향을 주며, 감정은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경험은 다시 믿음에 영향을 주게 되어 돌고 돌아 학습된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특정한 믿음의 체계를 스키마라고 말합니다.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 시스템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중 앞에 말을 할 때 스키마가 위험함이라고 되어있으면 두려워하고 회피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이어도 스키마가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반응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곳이다.’ ‘세상은 안전한 곳이다.’ ‘나의 삶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적절한 믿음을 형성해야 두려움의 힘을 약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적절한 스키마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과장된 두려움과 같은 부적절한 반응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절한 ‘두려움의 스키마’를 형성하도록 도와주는 게 두려움 교육의 중심축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어릴 때부터 가질 수 있고 아이들에게 그런 스키마를 만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게 아이성을 점령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1절을 다시 보세요. 다시 한 번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고 크게 읽어 보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아이성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무엇을 말씀합니까?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가 넘겨 주었다는 말입니까? “내가”입니다. 하나님이 다 정복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전투에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지 못하고 두려워 포기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음 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고 천국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만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용기 있게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우리 하나님 여호수아에게 무슨 말씀을 해 주었습니까? 여호수아서 1장 5-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말씀이 오늘 이 시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 성도님과 저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9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모세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신명기 31장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믿지 못하니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신 사명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차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주원인은 아간의 범죄(7:1)입니다. 둘째 원인은 지도자와 백성의 경솔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교만과 안일한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여리고성의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들의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그것을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1장 21절을 보십시오. 요단강가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정탐꾼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앞서 인도하여 하나님이 싸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32절을 보십시오.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 벌벌 떨면서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메뚜기 콤플렉스에 걸려 결국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부정적인 두려움, 파괴적인 두려움은 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두려움이란 괴물은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잠재력을 쓸 기회를 잃게 만들어 버립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움의 95%는 상상적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3.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줄이고 강인함을 증가시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믿고 사명감을 가지고 용기 있게 재기하라고 말씀하면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절을 보십시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성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아이성 뒤에 복병을 하라고 합니다. 일차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차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주원인은 아간의 범죄(7:1)입니다. 둘째 원인은 지도자와 백성의 경솔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교만과 안일한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여리고성의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들의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세 번째 원인은 그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이성 인구가 12000명(수8:25)밖에 되지 않자 그들은 이 삼천이면 될 줄로 알고 삼천으로 싸웠습니다. 결국 36명이 죽고 패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용기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처럼 기적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 직접 서게 합니다. 두려움으로 포기할 것인가 용기를 가지고 점령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합니다. 두려운 현실 앞에 직시하게 합니다. 주신 자원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사명을 감당하는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는 훈련을 시켰다면 이제 하나님은 사명감을 가지고 주신 자원으로 용기 있게 점령하는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가 어떻게 합니까? 3천명이 아니라 3만 명을 뽑아 성 뒤에 복병합니다(3). 그리고 그 다음 날 어떻게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아침 일찍 일어나 군사를 거느리고 직접 아이성 공략에 나섭니다. 장군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후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최전선에 나가는 것입니다. 백성 앞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고대 전투는 지도자가 죽으면 끝입니다. 그런데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최선봉에 서서 용기의 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용기도 모방하고 학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인책을 써 아이성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복병으로 치게 합니다.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의 자세가 26절에 나와 있습니다.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입니까?

호세 안토니오 마린은 용기를 배울(획득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용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첫째, 두려움을 줄이거나, 둘째, 강인함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훈련하라고 말합니다. 용기의 공식은 분자가 개인적 강인함이고 분모가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인 강인함이 크면 클수록 용기 지수는 높아지는 것이고 두려움이 작으면 작을수록 용기 지수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진정시키고 개인적인 강인함을 길러주기 위해 어릴 때부터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겁이 많고 소심한 아이,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고 겁이 많아 화장실고 혼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키워주기 위해서는 부모의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그 자체는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행동하게끔 하는 소중한 감정입니다. 문제는 두려움 그 자체가 아니라 과장되고, 해롭고, 병적이기까지 한 두려움입니다. 더 많은 용기를 가지려면 강인함을 키우거나 두려움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도적 태도, 적극적인 대응, 좌절에 대한 탄력성, 단호함, 인내심, 저항력, 단단함, 낙관주의, 정신적 에너지, 회복탄력성 등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습관처럼 나만의 반응 스타일(순향적인 사람)로 변화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스키마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반응적인 사람은 나는 “원래 이래”라고 말하지만 순향적인 사람은 “더 잘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사람을 “가능성을 살펴보겠다”라는 사람으로, 출구가 없다는 사람을 “해결책이 있다”라는 사람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스키마를 변화시키기 위해 세 가지로 시도했답니다. 행동 심리학자들은 주체 내부에서 어떤 일어나는지 신경 쓰지 않은 채 행동만을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보상과 벌을 잘 조절하면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지심리학들은 행동이 주체의 믿음과 사고방식에 따라 변하므로 믿음과 사고방식을 바꾸면 행동도 바뀐다고 믿는 것이었답니다. 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인지행동주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행동의 원인이 되는 생각과 감정을 행동과 분리할 수 없다는 걸 깨달고 통합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강인함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순향적 태도 즉 긍적적이고 적극적인 태도와 행동을 가지게 하라고 말합니다. 행동만이 우리를 의존성, 수동성, 우울증, 두려움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겨내고, 충동을 적절히 통제하려면 주의를 집중하게 하고, 적절한 내적 대화로 두려움을 관리하게 하라고 합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강화하고, 가능성을 확장하고, 실패에 대한 지구력 증가시키키고, 부단한 노력을 하라고 말합니다. 가짜 믿음을 버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최악이야’, ‘모두들 나를 미쳤다고 생각해’, ‘절대로 나를 좋아하지 않아’, ‘항상 나를 놀려’ ‘나는 모든 동료가 나를 비웃는다고 확신한다.’라는 믿음으로 바꾸게 하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부정적인 감정의 50퍼센트는 유전에, 그리고 다른 50퍼센트는 학습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두려움에 감염되어 두려움을 동지로 삼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과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두려움에 협력하거나 강화시켜주지 말아야 합니다. “험하고 힘든 일”을 바로 포기하는 겁쟁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쉬운 길로 가고 싶은 유혹은 누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줄이고 강인함을 증가시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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