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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용기(2) 용기의 구성요소(사무엘상30: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762 추천수:1 112.168.96.218
2017-09-03 08:57:31

 

신앙인의 용기(2) 용기의 구성요소

사무엘상30:6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 1권과 2권이 나와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 책 출판 사상 최장기 베스트셀러라고 합니다. 이 책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착안하여 아들러 철학을 설파하려는 철학자와, 이에 대해 의문을 계속적으로 제기하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청년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라고 말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모든 인간의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카네기도 인간의 행복과 성공의 85%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관계에는 네 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자신), 너(상대), 관계, 환경”입니다. 만족할 만한 인생살이를 하려면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상대입니다. 바꿀 수 없는 상대를 내가 바꾸려고 할 때 갈등과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대보다 쉽다는 것입니다. 직장을 그만 둘 수 있고, 교회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관계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 관계도 부부 관계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기를 바꾸는 것보다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먼저 변화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 결정성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선택과 행동의 결과이고 미래도 지금 나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불행을 자꾸 과거의 원인으로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환경, 조건, 사건이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건설적으로 대응하고 행동할 수 있고, 비건설적으로 대응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파괴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건설적으로 창조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용기라고 합니다.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책임도 인정하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활양식을 수정하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극복하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연결된 뇌세포 17%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83%는 자율신경 세포로 노력하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열등감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나로부터 세상으로 옮기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 미움 받을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월성 추구에서 벗어나 평범해질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들러는 5남 2녀의 둘째로 태어나 성공한 현 그늘에서 자랐고 형이 왕성한 운동을 할 때 구루병으로 붕대를 감고 벤치에 구경했으며 학교생활은 그림도 못 그리고, 산수는 낙제를 받아 “아들러는 구두수선공 시켜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키는 155cm 정도였답니다. 신앙인임에도 정통 기독교의 신학과는 조금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는 용기 있게 자기 열등감을 극복하고 신앙인으로 프로이드와 이별하고 용기 심리학을 외쳤습니다. 용기를 중요하게 생각한 아들러는 "만일 나의 아이들에게 단 하나의 재능을 줄 수 있다면 용기를 주겠다."라고 용기를 강조했습니다. 미움 받을 용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행복해질 용기’ ‘나를 사랑할 용기’ ‘가르칠 수 있는 용기’ ‘불완전할 용기’ ‘행동하는 용기’ ‘존재의 용기’ ‘용서의 용기’ ‘가난해질 용기’ ‘떠나는 용기’ ‘실패할 용기’ ‘상처받을 용기’ ‘벼랑 끝에 설 용기’ ‘버텨내는 용기’ ‘늙어갈 용기’ ‘삶을 바꾸는 힘 용기’ ‘나와 마주서는 용기’ ‘포기하는 용기’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등등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는 책들이 쏟아졌습니다. 용기가 용기가 되려면 구성요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용기는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겠습니까? 요소(要素)라는 것은 “사물의 성립이나 효력 발생 따위에 꼭 필요한 성분. 또는 근본 조건. 그 이상 더 간단하게 나눌 수 없는 성분.”이라고 국어사전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가의 기본적 구성 요소는 무엇일까요? 국민, 영토, 주권입니다. 국가가 되려면 이 세 가지가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육의 구성요소는 무엇일까요? 교사, 학생, 교육과정(교재)가 있어야 합니다. 용기도 용기가 되려면 용기의 구성 요소가 있습니다. 용기의 3대 구성 요소는 무엇일까요? 당양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Rate은 위험, 두려움, 고상한 목적을 용기의 세 가지 구성요소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용기가 성격적 기질인가 아니면 상황적 특성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여 용기는 위험한 상황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정을 위협하는 위험이 존재할 때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용기가 두려움을 포함하는 개념인가 아니면 두려움을 포함하지 않는 개념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여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보니까 택배 기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이들 두 명을 살리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살린 기사를 보았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서 뛰어들어 간 것이 아니라 분명히 객관적인 두려움의 상황이 존재하는데도 주관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위험한 상황으로 뛰어 들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용기가 고상한 또는 도덕적으로 선한 목표를 포함하는가 아니면 포함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용기는 개인 혹은 타인이나 사회에 가치 있는 고상한 목적을 위해 위험상황을 견뎌내는 자세라는 것입니다. 살인이나 도둑질을 하기 위해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도덕적으로 선한 목적을 위해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것이 용기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신앙인의 용기에 있어서 용기의 구성요소는 무엇일까요? 지난주에 신앙인은 용기의 근거는 첫째는 하나님이 앞서 가심을 절대 신뢰하는데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신뢰하는데 용기의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절대 신뢰하는데 용기의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용기의 근거를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임재를 절대 신뢰하는데 두고 사는 신앙인의 용기에 어떤 요소가 필요하겠습니까?

 

1. 우리 신앙인의 용기의 구성 요소에는 위험한 상황에 반드시 하나님을 힘입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용기를 가질 때는 어느 때입니까?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할 때입니다. 위험한 상황입니다. 왜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까? 자녀들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어떻게 되어서입니까? 3절 보십시오.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백성들이 시글락에 와 보니까 아말렉 사람들이 처자를 포로로 잡아가 버렸습니다. 사울이 계속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정치적 망명을 했습니다. 30대에 가족과 자신을 따르는 600명을 부하를 거느리고 아기스 왕에게 망명한 것입니다. 그러다 이런 위험한 상황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슬퍼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다윗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용기 없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꼭 이렇게 합니다. 살다 보면 위험한 환경, 좋지 않는 환경과 조건,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면 그것에 사람은 반응을 하는데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지 않는 방법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모델을 반사적 모델 반응이라고 합니다. 동물들이 외부에서 일정한 자극을 주면 즉각적으로 반응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이 자신에게 잘 해 주면 기분 좋아하고 조금 잘못 대해주면 우울해 하며 자꾸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 못되었으면 폭력적인 부모 때문에,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에서의 집단따돌림 경험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신체 때문에, 공부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밖의 모든 '~ 때문에 지금 나에게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회비하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의 600명의 부하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그렇게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다윗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어떤 위협을 당하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다섯 가지 오류를 범한다고 합니다.

첫째가 단정입니다. 죽었을 것이고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원래 안돼, 너는 될 수 없어” “이제 끝이야”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장하는 것입니다. 별거 아닌데 큰 일 난 것처럼 과장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간과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입니다. 부정에 초점을 맞추고 매사 부정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어려운 용어로 통각체계라고 합니다. 경험이나 인식을 자기의 의식 속으로 종합하고 통일하는 작용을 하는 체계를 말합니다. 개인을 특정 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같은 설교를 듣고, 같은 상황을 경험하더라도,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같은 글귀를 읽더라도, 다 다른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개개인의 통각체계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들러에 의하면 인생 초기 5 전후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일관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 지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삶의 의미, 평생 추구할 목표, 삶과 사람에 대한 태도와 접근 방식, 정서적 특징 등을 모두 포함하는 생활양식이 이때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완성된 후에는 마치 하나의 프리즘을 통해 사물을 보듯이, 자신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자신과 세상에 대해 주관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활양식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넷째는 지나친 일반화입니다. 지난주에 여선생님이 제자를 성폭행한 일이 기사로 났습니다. 그러면 다 그런 줄 알고 여선생님을 담임으로 둔 초등학생 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다섯째는 그릇된 가치관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도 그의 부하들과 똑같은 상황을 만났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가족도 잡혀갔습니다. 그것에 더 해 지금 그렇게 책임지고 믿고 이끌었던 부하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얼마나 위급한 상황입니까? 이런 상황에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위험한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부도가 나면 책임을 지고 용기를 가지고 극복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용기의 첫 번째 요소는 바로 이것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반사적 모델과 달리 주도적 모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는 유형입니다.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선택하고 결정하여 건설적이고 창조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반사적 모델과 주도적 모델의 차이는 아들러는 바로 용기의 문제라고 합니다. 용기를 가지면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인생의 과제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선택과 행동의 결과이고 미래도 지금 나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 결정성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환경, 조건, 사건이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건설적으로 대응하고 행동할 수 있고, 비건설적으로 대응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파괴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렇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인의 용기 요소에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의 용기는 자기 결정성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힘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힘입은 자기 결정성이 중요합니다. 자기 의지를 힘입는 용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용기의 대명사로 알려진 다윗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사무엘상 27장 1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나는 사울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그러면 사울이 이스라엘 안에서 나를 찾기를 그만 둘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그의 손에서 해방될 것이다.” 자기 주도적 결정을 하는데 너무 인간적인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자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멋진 미래를 약속해주셨는데(사무엘상 24:20. 25:30)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블레셋으로 도망가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자기합리화에 빠집니다. 그리고 16개월 동안 아기스라는 말처럼 “아, 기를 쓰고 빌붙어 아부하며” 살아갑니다.

 

용기는 평안할 때 갖는 것이 아닙니다. 안정을 깨뜨리는 위험한 상황 때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용기를 위험이 있을 때 신체적 위험을 감수하고 하나님 힘입어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위험이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용기 있게 선택하고 결단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위험이 있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때로는 지하 철 철로에 뛰어들어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처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권력자일지라고 소신을 말하는 것처럼, 강도나 소매치기를 뒤쫓아 빼앗긴 물건을 되찾는 것처럼 신체적 위험 감수하고, 개인적 유익 포기하고,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2. 우리 신앙인의 용기의 요소에는 두려움 속에서 반드시 기도가 들어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다윗과 그의 신하들은 어떤 반응을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다윗도 그의 그와 함께 한 백성도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600명의 남자들이 다 불 타 버리고 가족이 다 잃은 상태에서 얼마나 처절한 통곡을 했겠습니까?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운 상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월성을 추구하는데 살다보면 실패하고 무기력하고 상실하게 됩니다. 이들도 잘 살아 보기 위해 망명까지 했는데 모든 것을 상실할 두려운 현실 앞에 놓인 것입니다. 이 두려운 현실을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성장과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핑계대고 도피하여 더 좋지 않은 상태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더 낳은 상태, 상황을 개선시킬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도망칠 방법, 더 추락할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두려움 앞에서 자꾸 도망치면 축적된 열등감으로 우울증과 같은 신경증적 증세를 달고 살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용기는 두려움이 있다는 문제가 아니라 두려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럴 때 “넌 능력이 없으니까 할 수 없어”라는 식으로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야 합니다. 아들러는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용기를 가지고, 열등감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 번째로, 잘못된 생활양식(인지오류)을 수정하라는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과도한 열등감(지나친 억측)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으므로 오류의 내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것을 수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에 잘못된 생활양식(life style)이 형성되면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를 겪는다는 것입니다. 생활양식은 네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다고 합니다. ① 자아개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신념입니다. ② 자아이상: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신념입니다. ③ 세계상: 세계, 사람들, 자연 등 자기 이외의 존재에 대한 신념입니다. ④ 윤리적 신념: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신념입니다. 이것이 신체적 약점이나 부모의 애지중지하는 양육태도, 방치된 양육태도에 의해 잘못된 생각과 감정, 행동을 하게 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들러는 "불완전함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자신에게 너무나 높은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다보면 지나친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결점 투성이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남보다 못한 것에 집착하며 열등감에 괴로워하기 보다는 '내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상당이 설득력 있는 말입니다. 우리 신앙인인 두려움 앞에 용기를 가지는 요소 중의 하나가 기도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다윗이지만 기도할 때와 기도하지 않을 때 다윗이 두려움 앞에서 다윗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두려움 앞에서 기도하지 않았을 때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27장 5절을 보십시오. 비굴의 탈을 씁니다. 8절을 보십시오. 위선의 탈을 씁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거짓의 탈을 씁니다. 아기스의 신임을 얻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왕의 신임을 받기 위해 그술과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과 겐 지역을 공격하였다고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천하의 다윗이 이렇게 밀려가고 추락을 하였습니다. 용기를 잃은 다윗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밀려간 것입니다. 28장 2절을 보십시오. 왕의 경호원이 되었습니다. 29장 4절을 보십시오. 아기스 왕은 다윗을 이 전쟁에 끌고 갔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다윗의 충성심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입니다. 진짜 망명인지 가짜 망명인지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29장 10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새벽에 일어나 전쟁터에서 쫓겨났습니다. 30장 2절을 보십시오. 목숨이라고 살겠다고 망명 왔는데 달랑 자기 목숨 남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재산도, 아내도, 자식들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자기 하나 믿고 따르던 부하들의 식구들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 앞에서 기도할 때 다윗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 신앙인의 용기의 요소에는 두려움 가운데 기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두려움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질병으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그 두려움 앞에서 용기 있게 기도하여 치유받았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두려움 앞에서 좌절하고 원망하고 핑계 대는 것이 아니라 용기있게 기도하여 잉태의 복을 누렸습니다. 다니엘도, 에스더도 두려움 앞에 기도로 용기를 가지고 일어납니다.

지금 주어진 두려운 환경이 무엇입니까? 건강을 잃어 버렸습니까? 재산을 잃어 버렸습니까? 명예를 잃어 버렸습니까? 믿음을 잃어 버졌습니까? 기쁨을 잃어버렸습니까? 행복을 잃어 버렸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용기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기도로 직면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는데도 위험한 상황에서 두려움이 없이 기도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도전하는 것을 기도로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로 많은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서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기도로 자진해서 나서는 것입니다. 사회적 비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숨기지 않고 기도로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도로 찾아왔고...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찾고, 찾고, 찾은" 것입니다. 우리도 두려움 앞에 좌절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용기 있게 기도로 찾고 찾는 역사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 신앙인의 용기의 요소에는 선한 목적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용기를 강조한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의 동인을 우월성의 추구로 보았습니다. 프로이드가 리비도로 본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그는 시선을 '나'로부터 '세상'으로 옮기는 용기를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용기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회적 관심'입니다. 그는 "우리는 사람들이 단지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것만을 추구하며 사적인 이익만을 따라 움직이는 인생관을 배격해야 한다. 이는 개인과 인류 공통의 진보에 대한 최대의 장애이다. 인간의 모든 능력은 이웃에 대한 관심에 의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며, 공헌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회와 결속되어 있을 때만 안정감을 갖고 행복하고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았다면, 아들러는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았던 것입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접근 방법입니다. 그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직면해야 할 인간관계 상의 과제를 세 가지로 말을 합니다. 첫째는 부부, 부모 자식 간의 과제 둘째는 우정, 셋째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각 과제마다 관계 교류, 감정 교류, 심리적 거리감을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과의 관계는 공동의 운명체로 끊을 내야 끊을 수 없는 결합관계이고, 우정의 관계는 끊을 수도 있는 영속적 연결의 관계이고, 일과의 관계는 언제든지 끊을 수 있는 일시적 관계, 상관관계라고 말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의 교류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도 우정은 이성과 감정이 동시에 작용하고 일은 감정보다는 이성이 먼저라고 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용기를 강조하는 궁극적 목적은 자립과 조화를 통한 공동체 감각 키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자신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다 할 때 사회 공동체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땅 부자 5%가 전체 개인토지의 82.7%를 가지고 있고, 상위 1%가 소유한 땅은 51.5%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모든 용기에는 선한 의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악한 일을 하는데 과감하게 하는 것을 우리는 용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용기는 반드시 선한 의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여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 바로 6백명을 거느리고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그를 쫓아가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때 다윗은 몹시 지쳐 있을 때입니다. 1절에 보면 아벡에서 시글락까지 3일 동안 달려온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시니까 즉각 그 길로 나아갑니다. 망설이지 않습니다. 앞뒤 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감하게 말씀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기입니다.

브솔 시내에 오자 2백 명의 낙오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지쳐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6백 명이다 가도 모자라는 군인입니다. 그 때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멈추지 않습니다. 낙오자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 하면 모든 사람이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교만입니다.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7명은 무관심하고 2명의 비판하고 1명만 지지하는 것이 일반적이 법칙입니다. 다윗은 따르는 자 4백 명만 거느리고 추격을 합니다. 이것이 용기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가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굶주린 그에게 떡과 물을 먹게 해 주었습니다. 밤낮 3일을 굶주렸고 병들어 주인에게 버림받았다고 합니다. 위장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안내자로 삼습니다. 이것이 기도한 자의 용기입니다. 그런데 16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이 보내어준 인도자가 되어 준 것입니다. 광야의 나침반이 되어 준 것입니다. 200명의 중도 포기자보다 훨씬 다윗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위기를 극복할 키멘을 만난 것입니다. 그가 다윗을 아멜렉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당시 아말렉 사람들은 반 유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일정 지역에 정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잘 아는 안내인이 없으면 찾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6절, 17절을 보십시오. 적은 군인으로 기습 공격하여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2백 명의 낙오자들에 대하여 다윗을 따른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4백 명의 용사 중에는 악한 자와 불량배였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은 자들에게는 전략물을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처자만 돌려주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의 진정한 신앙인의 용기의 요소가 드러납니다. 이 때 다윗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용기를 발휘한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전쟁에 갔던 자들이나 피곤하여 남아 소유물을 지켰던 자들이나 동일하니 같이 분배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용기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바로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용기 있게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우리 성도님과 저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인의 모든 용기의 요소에는 선한 의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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