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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용기(1) 용기의 근거(신명기31:6-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023 추천수:6 112.168.96.218
2017-08-27 10:41:41

 

신앙인의 용기(1) 용기의 근거

신명기31:6-8

 

한 초등학생이 짝사랑하는 친구가 생겼답니다. 이를 눈치 챈 아빠가 말했답니다. "아들, 좋아한다고 고백해봐. 용감한 사람이 미인을 얻는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자 아들이 말했답니다. "그럼 아빠는 결혼 전에 용기가 없으셨나 봐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무엇이든 시도도 하지 못합니다. 용기가 없으면 핑계를 댑니다. 포기를 합니다. 불평을 합니다. 원망을 합니다. 시작도 하지 않고 근심과 걱정만 합니다. 용기 있는 자가 성공할 수 있고, 용기 있는 자가 부자가 될 수 있으며, 용기 있는 자가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경영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성공한 기업은 예외 없이 누군가 한 때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베이 혼스타인은 “어느 조직의 쇄신이나 어느 국가의 산업부흥도 개인의 용기 있는 결단 없이는 일어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건강을 잃는 자는 많은 것을 잃는 것이고, 친구를 잃는 자는 더 많은 것을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자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고 용기의 중요성을 말했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도를 잘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업을 잘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앙 생활 잘 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부폐집에 가서 잘 먹으려 해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난 주 은혜네가 집을 사서 심방을 하고 식사를 하는데 은혜가 아주 용기 있는 아이로 바뀐 것을 보았습니다. 늘 만나면 숨고 그랬는데 다른 사람이 다 먹고 기다리는데도 부폐 집에서 용기 있게 이것저것 끝까지 갔다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도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용기란 좋은 시작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보다 낳은 미래를 제공해줍니다. 용기 있는 자가 위기 속에서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걸프전의 영웅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 있습니다. 미군 70만명 포함 100만에 달하는 연합군을 지휘하여 65만의 이라크군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입니다. 그는 실의에 빠져 여러 번 군복을 벗으려고도 했지만 그가 그렇게 미국인에게 존경받은 영웅이 된 것은 월남전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1970년 대령 시절 베트남 전쟁에 파견되어 대대장의 책임을 맡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부대의 한 병사가 지뢰에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답니다. 자신의 전용 헬기로 부상병을 후송하는 동안 다른 병사가 지뢰를 밟아 다리에 부상을 입고 땅바닥에 쓰러져 뒹굴며 울부짖었답니다. 부대원들이 이미 지뢰밭 한 가운데 있어서 누군가가 그 병사 곁으로 다가가서 뒹구는 것을 멈추게 해야 했답니다. 이 때 대대장 슈와츠코프가 직접 그 지뢰밭을 통과하여 그를 붙잡고 진정시키므로 모든 부대원들을 살릴 수가 있었답니다. 그 때 살린 병사가 흑인 이었는데 그가 흑인 병사를 살리는 장면이 신문에 보도가 되었고 그 후 장군이 되었으며 걸프전의 영웅이 되었답니다.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도 용기가 없었다면 결코 지금까지 존경받는 영웅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용기>의 저자 레나테 다니엘은 “지금 당신이 마주하는 실패, 두려움, 불안을 극복하는 힘은 오직 용기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야 말로 인간에게 첫 번째 덕목이다. 다른 모든 덕목들을 보장해 주는 가치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용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영웅들은 한결같이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물맷돌을 가지고 나아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것은 아브라함의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75년이나 정든 땅이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과감하게 버린 용기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으로 우뚝 서 기적의 가문을 만들려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 과감하게 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세가 80살 노인으로 민족을 이끄는 데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풀물불과 사자굴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게 한 것은 그들의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로 수많은 적과 싸우는 데는 용기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엘리야가 이방 신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었던 것도 용기이고,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왕 앞에 나아가 민족을 구한 것도 용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네카가 말한 대로 “일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해낼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해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일이 어려운 것입니다.” 신앙인이 행복하게 살려면 어떤 두려움에도 문제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용기,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할 용기, 열등감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 용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미움 받을 것을 피하지 않는 용기,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 싫은 사람을 용서할 용기 등이 있어야 합니다. 용기(courage)는 라틴어 'cor'(심장)에서 유래한 말로 살아가는 동안에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활력을 말합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땅을 정복하는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용기라는 말입니다. 이제까지 의지했던 모세가 죽습니다. 가나안 땅은 한 번도 살아 보지 않은 땅입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했는데 이제는 농사를 짓고 양을 기르며 살아야 하는 땅입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야 할 땅입니다.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하나님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가지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와 위기의 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용기입니다. 오늘 온 가족 예배를 같이 들이고 있는데 우리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살 세상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미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모바일과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로버트, 빅데이터 등에 의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산업사회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P)의 클라우드 슈바프 회장이 "인공지능(AI)로 인해 2020년까지 일자리 51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 승리하고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앙인의 진정한 용기는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우리가 용기를 갖고 사는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 기초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데서 옵니다.

1859년 여름, 프랑스 출신의 찰스 블론딘이 나이아가라 폭포에 설치해 놓은 외줄을 타고 미국에서 캐나다로 건너가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무려 48m 높이에서 약 18kg 무게의 장대로 균형을 잡으며 곡예를 하는 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한 발 한 발 밧줄 위를 걸어 폭포를 건너갔습니다. 관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열광하는 관중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그는 뒤로 걸어 건너기, 안대를 하고 건너기, 자전거를 타고 건너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했습니다. 환호하는 구름처럼 모여있는 관중을 블론딘을 소리쳤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사람을 등에 업고 이 폭포를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러자 관중은 “믿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블론딘은 “그럼 내 등에 업혀서 나와 같이 이 폭포를 건너갈 사람 한 분만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관중은 믿는다고 외쳤지만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 때 해리 콜코드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난 당신을 믿습니다. 기꺼이 당신 등에 업히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블론딘의 등에 몸을 맡겼습니다. 콜로드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당시 관중은 몰랐지만 사실 콜코드는 블론딘의 매니저였습니다. 콜코드는 블론딘을 신뢰했습니다. 그의 신뢰는 블론딘이 가지고 있는 줄타기에 대한 뛰어난 역량에 기초한 신뢰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을 담보할 정도로 신뢰한 것은 오랜 동안 수없이 그가 줄타기에 성공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의 메니저로서 지켜본 지식에 기초한 신뢰였습니다. 블론딘에 대한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정신적 동지가 되어 일체감에 기초하여 굳게 믿고 의지한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 용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 용기를 얻습니다. 하나님을 100%로 신뢰하면 어떤 경우도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할 때 어떤 경우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어떤 신뢰가 용기를 주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용기의 근거-하나님이 앞서 가심을 절대 신뢰

우리는 하나님께서 앞서가셔서 우리를 성공하게 하고 승리케 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면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1-4).

오늘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면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120살이 되어 이제 죽음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출애굽한지 40년이 지났습니다. 출애굽 2세대들입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요단을 건너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이 말을 백성들에게 말했을 때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했겠습니까? 한 번도 해 본이 일이 없는 일을 해야 하고,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길을 가야하고,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이제 끝났구나,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우리 민족은 이제 망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 기둥처럼 여겼던 가장이 병들거나 실직하거나, 천국에 갔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데 의지했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습니다. 의지했던 직원이 떠났습니다. 의지했던 물질을, 의지했던 명예가, 의지했던 권력이, 의지했던 지식이 떠났습니다. 두려움에는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다른 거의 모든 두려움은 이 기본 요소들의 조합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소멸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둘째는 절단입니다. 신체의 부분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셋째는 자유의 상실입니다.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마비되거나, 제한되거나, 갇히거나, 덫에 빠지는 것과 같이 두려움입니다. 넷째 분리입니다, 버려지고, 거부되고, 관계를 잃어버리는 데 대한 두려움입니다. 다섯째 자아의 죽음입니다. 실패하고, 거절당하고 창피함, 수치심 등을 당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서 오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두려움을 물리치고 용기를 가지고 요단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무슨 말씀을 해 주십니까? 3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신 31:3)"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승리하고 성공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 성도님과 저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미 신명기 1장 30절에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하나님이 너보다 먼저 건너가신다는 것입니다. 앞서 가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 네 앞에서 두려워하는 적들을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지 못하지만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가 너희들 앞에 건너간다는 것입니다. 의지했던 사람 떠났으나 새로운 지도자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앞장 서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그 땅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만 꼭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른 막대기로도 홍해를 가르시고, 돌멩이로도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5병 2어로도 5천명을 먹이시고, 나귀 턱뼈로도 천명을 죽이고, 찢어진 옷으로도 물을 가르십니다. 누구의 문제가 아니고 무엇의 문제가 아닙니다. 꼭 능력 있는 사람, 꼭 힘 있는 사람, 꼭 좋은 도구, 능력 있는 도구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불확실 성 앞에서 하나님은 너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용기의 근거를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믿고 용기를 내라고 예를 들어 주십니다. 4절에 읽겠습니다. 가나안 정복의 큰 장애물이었던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하나님께서 이미 멸하신 것을 말씀합니다.(2:24-3:11; 29:7; 민21:21-35)

바울을 보십시오. 병들었습니다. 자신을 지원해 주는 아들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 주는 아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풍부한 선교 자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보다 반대하고 핍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설교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전도하고 양육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를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하고 돈만 좋아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라고 말씀하며 주어진 사명을 용기를 가지고 이루었습니다. 똑같이 바람이 불어와도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돛입니다. 돛이 어느 방향을 향하느냐에 따라 배의 방향은 결정됩니다. 풍선이 높이 날 수 있는 것은 풍선의 색깔이나 바람의 방향이 아니라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두려움이 마음에 가득 차 있으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용기로 가득 차 있을 때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습니다.

농사꾼 아모스, 소모는 엘리사, 장애인 에후, 주부 드보라를 사용하여 민족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성취하게 하였습니다. 미래의 불확실 앞에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하나님께서 앞서 인도하시어 승리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절대 신뢰하고 용기를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2. 용기의 근거-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신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신뢰하며 용기를 얻어 성공하고 승리하여야 합니다(5-7).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절대시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다가오면 자기 생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며 포기해 버립니다. 내가 안되니까 하나님도 못한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과거 가데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 땅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살펴보고 와서 하나님의 생각 즉 하나님의 말씀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요단강을 건널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나가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밤새워 통곡합니다. 전쟁을 해 보지도 않고 이미 실패했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주어진 기회를 자학하고 원망하고 포기할 이유를 찾는데 사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 현실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정복하게 해 주신다고 했어 그러니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가자라고 했으면 그 때 가나안은 정복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실패한 그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출애굽 2세대를 향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5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너희 앞에 그들을 넘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한 것, 목표한 것, 기도한 것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용기를 가지고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용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사명감입니다. 말씀 붙들고 어떻게 사명을 이루라고 말씀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두려워하면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8절 하반절에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상대가 나보다 현격한 힘을 가지고 있다해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적극적인 마음을 가지고 맡겨준 사명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 땅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내가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시도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보다 자기 자신의 재능이나 환경, 여건을 더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 붙드시기 바랍니다. 용기 있게 이것저것 제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하면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면 사랑하고 포기하라고 하면 포기하고 가라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것입니다. 막막하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일지라도 말씀 붙들고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라고 하면 용기 있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요단강이 갈라집니다. 여리고성을 돌라라고 하면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도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물맷돌을 들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말씀에 근거한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난 것도 말씀에 근거한 용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80살 노인으로 민족을 이끄는 데는 용기도 말씀에 근거하여 나온 것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풀물불과 사자굴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게 한 것도 말씀에 근거한 용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로 수많은 적과 싸운 것도 말씀에 근거한 용기였습니다. 엘리야가 이방 신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었던 것도,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왕 앞에 나아가 민족을 구한 것도 말씀에 근거한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링컨을 보십시오. 부모가 둘 다 문맹이었습니다. 어머니는 9살 때 성경 한권 남겨 주고 돌아가셨습니다. 20세가 넘도록 제대로 된 직업 한번 같지 못했습니다. 그가 점원으로 일한 방앗간과 상점을 인수해 사업을 해 보았지만 1100달러의 빚만 지고 그 빛을 갚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수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결혼에 실패했습니다. 다시 사업하지만 또 망했습니다. 하원의원에도 실패 오랫동안 신경 쇠약으로 고생합니다. 상원의원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물려주었던 말씀을 붙들고 일어났습니다. 결국은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도 미국인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학교 다닌 기간이 채 1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은 신학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용기 있게 살았습니다. 노동자 농부 뱃사공 장사꾼 품팔이 우체국직원 변호사 갖가지 일을 하였지만 단 한번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병들 때, 부채가 무거울 때, 실패할 때, 가정에 어려움 있을 때, 장애물이 다가 올 때, 말씀에 근거한 용기를 가지고 넉넉히 이기시길 바랍니다. 내 생각으로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믿고 용기를 가지고 정복해야 합니다.

 

3. 용기의 근거-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절대 신뢰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며 용기를 얻어 성공하고 승리하여야 합니다(6-8)

용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절대 신뢰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나 홀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용기를 잃어버리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2세대를 향하여 가나안 땅을 앞에 높고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6절 중반절을 보십시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절대 신뢰하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겠다는 말씀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어 지도력의 공백이 생겨도, 요단강이 앞에 있고, 백성의 수는 많고, 전쟁 경험이 없고, 전략 무기는 없다할 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미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갔습니까? 여리고성을 어떻게 무너뜨렸습니까? 아이성을 어떻게 점령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너가고 무너뜨리고 점령하였습니다.

여호수와와 갈렙처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은 우리의 밥이 될 것이라"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늘 홀로라고 생각할 때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는 계속되는 신변의 위협과 역경에 극도로 지쳐 있었답니다. 공회에 나가 변론해야 하는데 잘 못하면 화형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이 극에 달해 루터가 용기를 상실하고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 있었답니다. 그 때 그의 부인이 상복을 입고 나타났답니다. "누가 죽었오?" 루터가 묻자 부인은 "하나님이 죽었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시오"라고 루터가 화를 내자 부인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이토록 좌절할 리 없잖아요. 믿음 안에서 다시 일어나세요"라고 말했답니다. 이 말을 듣고 루터는 용기를 얻고 “교황청 지붕의 모든 기왓장이 마귀라 할지라도 두렵지 않다. 능력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라고 외치며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고 합니다.

잘못된 삶, 잘못된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잘 못된 종교, 미신, 이단에서 빠져 나오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미신이나 이단에 빠지면 네 가지 상실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분별력 상실입니다. 둘째는 죄책감 상실입니다. 거짓을 말해도, 부모를 거역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셋째는 자유와 자율성 상실입니다. 무당의 지시나 이단 교주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그들의 조정을 받습니다. 넷째는 개방성 상실입니다. 자기 모습을 공개하지 않고 모든 것을 비밀로 합니다. 이것들로부터 탈출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탈출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용기는 두려움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가능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어떤 경우든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장사의 아들 아브라함, 부인을 누이라고 속인 실패의 사람 아브라함, 살인자하고 도망간 모세, 간음하고 살인한 다윗, 여러번 실패하고 예수님을 부인 한 베드로, 기생의 아들 입다, 기생 라합, 바람둥이 삼손, 겁쟁이 기드온 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집 나간 탕자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라는 책을 쓴 존 파피가 있습니다. 양팔이 없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매일 수많은 절망에 부딪쳤습니다. 옷입고 용변을 보는 사소한 일도 그에게는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실의 아픔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을 붙들고 우등생으로 공부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아 회사를 경영하는 전문 강사가 되었습니다.

환난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것은 없습니다. 다 떠나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아내가 떠나고 남편이 떠나고 자식이 떠나고 동업자가 떠나고 믿었던 사람들, 친구들이 떠난다 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이 사실을 안 바울은 노년에 사랑했던 데마도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렸고 그레스게도 디도도 떠나 버렸지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떠났을 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7-18)"

요셉은 이복형제들로부터 인신매매되어 노예로 팔려 혼자 있는 것 같았지만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여 그를 형통케 하였습니다.

 

미국의 어느 노인학교에 70대 노인이 있었답니다. 그의 일과는 그저 할 일 없이 멍하니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거나 다른 노인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답니다. 어느 날, 젊은 자원봉사자가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말했답니다. "할아버지, 그냥 그렇게 앉아 계시는 것보다 그림을 배워보시면 어떠세요?" "내가 그림을? 에이, 나는 붓을 잡을 줄도 모르는데..." "그야 배우시면 되지요."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나는 일흔이 넘었는걸...." 젊은 자원봉사자는 할아버지에게 다시 말했답니다. "제가 보기엔 할아버지의 연세가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 문제 같은데요?" 젊은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결심했답니다. 그리고 곧 미술실을 찾아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답니다. 이후 많은 사람의 격려 속에서 수많은 그림을 남겼으며 101살의 나이에 22번째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삶을 마쳤답니다. 이 할아버지가 바로 '미국의 샤갈'이라 불리던 미술가 해리 리버맨입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막상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시작하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살면서 무엇 때문에 할 수 없는 게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없을 뿐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성공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용기의 근거는 나의 능력이나 나의 실력에 있지 않습니다.

용기의 근거는 “하나님이 앞서 가심”을 절대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용기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신뢰하는데 있습니다.

용기의 근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절대 신뢰하는데 있습니다.

6절 말씀, 너희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00이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00이 하나님 여호와 그가 00와 함께 가시며 결코 00을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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