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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3) 오직 믿음(롬 1:1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772 추천수:1 112.168.96.218
2017-08-06 11:21:19

 

오직(3) 오직 믿음

롬 1:17

 

우리는 계속해서 종교개혁은 큰 기둥이 된 다섯 가지 오직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두 주에 걸쳐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오직 믿음”입니다. 종교개혁을 단행한 루터는 1505년에 문법, 변증학, 수사학 등을 공부하고 차석으로 문학 석사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집에 왔다 에르푸르트로 돌아가는 길에 무시무시한 벼락으로 친구가 벼락에 죽고 루터는 땅으로 엎어지면서 광부들의 수호성인을 부르며 소리 질렀답니다. “성 안나(성모의 어머니)여, 나를 도우소서! 저는 신부가 되겠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사가 되어 죽음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며 예배와 기도, 묵상으로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을 지키고, 금욕하며 수행을 하였답니다. 일찍 일어나 찬물에 목욕하고, 금식하며 자신의 행위로 의로워져 하나님 앞에 바로 설수 있도록 자신과 싸웠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그의 담당사제에게 괴로움을 주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루터가 너무 자주 찾아오니 담당 신부는 “제발 죄를 모아서 한꺼번에 가져오라”고 말할 정도로 루터는 철저하게 회개하였답니다. 그럼에도 루터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답니다. 그는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신학 박사를 받고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루터는 교황청이 있는 로마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답니다. 로마에 계단성당이 있는데 28계단이 있었답니다. 로마를 찾는 사람들은 이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면서 기도를 함으로써 자신의 죄가 사해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루터도 무릎으로 이 계단을 기어 올라가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에서 돌아온 그는 이 말씀을 연구하면서 인간은 행위를 통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이신칭의” 진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루터는 이 복음진리를 발견하기 전까지 한 번도 죄의식과 죄에 대한 공포를 떠나서 살아 본 적이 없었는데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죽음과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스콜라주의 신학은 인간의 선천적 본성인 자유의지의 결단과 노력이나 선행의 열매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백성들에게 행위 구원을 강조하며 16세기의 일부 교황들과 신부들은 돈과 여자와 권력에 탐닉하여 부당한 세금을 받아들였고 축첩 제도까지 도입하며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루터가 1520년에 쓴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낸 서한] 에서 그 당시 중세 교회의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황제가 일층 왕관을 쓰는데 교황은 삼층 왕관을 쓰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추기경들도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도적놈처럼 돈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 교황청은 성직매매, 술주정, 사기, 도둑질, 강도질, 사치, 매춘행위, 협잡질 등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로 가득 차 있다.”

 

1. 행위 구원

로마 천주교는 은혜와 믿음 그리고 구원과 영생보다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의식과 제도, 거기에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인위적인 노력, 고행, 선행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결과 중세의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다고 하는 단순하고 확실한 복음의 진리보다는 마리아 숭배, 성체 숭배, 성상 숭배, 유골(성골) 숭배, 천사 숭배, 성화 숭배, 십자가상 숭배, 그리고 십자성호, 성수, 묵주기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성로선공, 성월기도 등의 미신적 의식들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거룩한 로마 여행, 십자군의 종군, 면죄부 취득 등이 천국 가는 티켓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도 자신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주교가 주장한 ‘공덕축적설’, ‘이행득구주의’와 비슷한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만 사죄와 구속함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세례를 받을 때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하며 “인간의 행위와 세례”라고 하는 교회 의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구원을 얻는 데는 믿음과 선행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 천주교에서는 구원이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온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강도는 주와 함께 낙원(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는 세례도 성찬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행위를 통한 구원관은 불교와 유사합니다.

수도를 통해 절대적 존재로 합일함으로 극락세계에 가는 자력 구원입니다. 자기 스스로 수행을 통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열심과 노력과 수행을 통하여 우주의 실체인 브라만과 합일하게 되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상에서 6가지를 수행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 첫 번째가 보시(布施)입니다. 베푸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계(持戒)입니다. 계명을 유지하는 것,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인욕(忍辱)입니다. 인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매를 맞아도, 사기를 당해도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정진(精進)입니다. 게으르지 말고 꾸준히 수행을 계속해 나가라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가 선정(禪定)입니다. 번뇌와 염려를 떠나 마음을 고요히 하여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섯째가 지혜(知慧)입니다. 무집착, 자기 비움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자력구원은 천주교나 비슷하고 대부분의 자연종교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를 자신의 행위로 메우려는 인간의 종교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아담과 같습니다.

이단들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필요 충분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단의 교주를 따르고, 교주가 가르쳐 준 것을 깨닫고, 그들의 공동체에 들어와야 하고, 헌금을 하고 14만 4천을 채워야 한다 것입니다. 신천지가 주장하는 신인합일 영생불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어떻게든 14만 4천에 들어가 순교자의 영이 자신의 영에 들어와 신인합일 영생 불사한다는 교리가 얼마나 황당합니까?

 

2. 복음에 의가 나타남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의란 헬라어 "디카이오쉬네"를 번역한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체데크'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의롭다고 하면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정의, 바름, 옳음 등과 같은 윤리적 특성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원칙을 지켜 의로울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말씀합니다. 법정 스님이 무소유의 삶으로 평생 살아도 완전한 의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40만명이 추모행렬에 참여했다는 안구를 기증하고 죽은 김수환 추기경이 완전한 의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구약 전도서에도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인간의 어떤 열심과 노력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온전히 다 지켜낼 수 있는 피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의로워져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롬10:3)”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디카이오수네)'는 관계를 맺고 있는 두 대상이 그 관계가 요구하는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내는 정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윤리적 특징이기 보다는 관계의 의로움을 말씀합니다. 책임을 이행할 때 의롭다고 합니다. 성경은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창 38:2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체데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볼 때는 불윤인데도 의롭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 언약을 인간이 지키지 않습니다. 아니 지키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성취하는 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로마서 3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의의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로마서 3장 21-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그 의의 내용이 뭡니까?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의의 '내용'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의'를 성취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가(imputation)시켜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받는 장면이 나옵니다(마3:13~15).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이 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이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모든 의가 이루어진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주의 홍해에, 저주의 홍수에 빠져 죽으시는 것이 '모든 의'가 이루어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의를 이루다'가 부정과거 시제로 단번에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의를 성취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언약을 지킬 수 없으니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다 성취한 것입니다. 인간이 당하여야 할 모든 저주를 다 당하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성취한 것입니다.

"나타나서"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칼뤼프테타이"라는 말로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계속적으로 계시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의가 지속적으로 효력을 미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의롭게 만들어 주어 관계를 정상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유앙겔리온, 굿 뉴스(Good news)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에 대하여 한 마디로 말씀해 주시는 곳은 고린도 전서 15장 3-4절 말씀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3-4)"

복음이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사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이 바로 복음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죽음에서 해방시킨 사건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복음을 주제로 대하드라마를 쓰신 것입니다. 구구절절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을 동원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스토리를 만들어 오시고,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의 정점으로 오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라고 하셨는데 바로 여자의 후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 와서 옛뱀 사탄의 권세를 십자가에서 무너뜨린 것이 복음입니다. 사망권세를 정복해 버린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종교 개혁자 M. 루터는 복음의 능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은 인간을 죄에서 의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며, 영생을 주고, 영원한 형벌로부터 영원한 기쁨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능력이다.”

생명의 단절로 말미암아 인간은 영적 사망, 육적 사망, 영원적 사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교제의 단절로 말미암아 영적 소경, 죄의 지배, 친죄 성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이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구원에 대한 대 서사시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고 영생의 가능성,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역함으로 결국 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이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순종함으로 이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죄로부터 모든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을 받아 예수님을 통해 영적 사망과 영적 소경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정죄의 신분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칭의, 양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친죄 성향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의 지배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도 성화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육체적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원적 사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화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구원사역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때문에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죄의 삯인 사망에서 해방된 것입니다(롬6:23).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하여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정적 선언입니다. 관계를 정상화하는 선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칭의입니다. 의롭다고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 의를 거져 주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함(롬3:25)' 인간에게 자신의 의를 보태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1:29~30)”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아브라함이 의인이 된 것이 자기 행위 때문이 아닙니다.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노아가 의인이 된 것은 자기 의로 된 것이 아닙니다. 노아 역시 술 취하고 아들을 저주하였습니다. 창세기 6장 8절에 “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 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 하였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3. 이신 칭의(믿음으로 의롭게 됨)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의 근원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의로움의 통로는 믿음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 해 주셨는데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고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하나님이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방법, 의롭게 하는 방법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추구하는 모든 방법과 이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기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의롭게 되는 영적 법칙입니다. 구원의 법칙입니다. 이 외에는 없습니다. 과학의 법칙을 어기면 죽는 것처럼 이 영적 법칙을 어기면 사망에 이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본문 17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무엇으로 된 것입니까? 아브라함의 할례나 의로운 행위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라고 말씀합니다.

이 진리를 바울은 어떻게 설명하는지 4장을 펴 보십시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2)"라고 말씀합니다. 4:3을 보십시오. 믿으매 의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칭해 주신 것입니다. 4장 5절을 보십시오. 11절을 보십시오. 무할례 시에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3:6)”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8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하였습니다(엡 2:8-9, 갈 2:16).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 밖에 없습니다. 사도 요한도 다른 무엇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했습니다(요 1:12~1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믿음이 궁극적으로 얻게 될 구원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라 말했습니다(벧전 1:5, 9). 예수님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라고 했습니다. 행함이 구원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믿음 역시 구원의 동기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수단일 뿐입니다. 구원받는 믿음에는 행위가 따라오지만, 믿음에 어떤 행위가 따라와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볼 때는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의로움은 우리의 행위나 자격이나 업적이나 공로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러므로 이렇게 의롭다함을 받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8장 34절을 보십시오. 아무도 정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부족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형편없는 사람을 살아도 하나님이 끝까지 우리를 붙들고 가시는 것입니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37-39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숨겨 놓은 허물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죄도, 가족 내의 중독도 역기능적인 상황들도, 숨기고 싶은 가족의 비밀도, 자신의 신체적인 조건도, 부끄러운 정신적인 조건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직업, 직위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4. 믿음으로 사는 삶

그러므로 복음으로 의롭게 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행위나 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하박국서를 인용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게 망해가는 자신의 나라를 보면서 하박국 선지자가 왜 우리를 이 불의한 나라를 통해 망하게 합니까? 라고 하박국이 질문을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심판이 지체치 않고 이루어질 것이며 심판 때까지 인내하고 위로하시면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은 "의인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가운데서도 살 것이다"라는 말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18절부터 지적 타락, 정서적 타락, 의지적 타락을 하여 하나님이 심판할 것을 말씀하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믿는 사람은 산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개역성경 번역처럼 의인들은 이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믿음을 강조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능력이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의가 성도 안에서 일을 하는데 그 의가 성도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라는 어구는 'from faith to faith'입니다. 그 말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으로 끝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아브람의 믿음처럼 믿음의 성장을 말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산을 옮길 만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완성하게 합니다. 믿음이 과거적 구원과 현재적 구원과 미래적 구원을 이루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믿음으로 살도록 신앙을 발전시켜줍니다. 기초적인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이론적인 믿음에서 실제적인 믿음으로, 동의하는 믿음에서 체험하는 믿음으로 발전시켜줍니다. 고백적인 믿음에서 헌신하는 믿음으로 평범한 믿음에서 비범한 믿음으로, 머리 믿음에서 행함있는 믿음으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특성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4장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결국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까지 성장하였습니다. 믿음의 대상을 하나님께 옮겨버린 것입니다.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은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했는데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이런 능력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라(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처럼 미래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처럼 갈림길에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삭처럼 순종하여 그 해에 백배의 수확을 거두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믿음으로 약속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믿음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고 믿음으로 불의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고 믿음으로 시련도 견디는 것입니다.

비록 나의 약점과 과거를 가지고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고 흔든다고 해도 우리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쓰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한 때는 살인 방조자였고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열정을 부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깨달은 후 그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모세도 부끄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살인자입니다. 야곱도,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은 불륜의 태어난 아들입니다. 다윗은 간음한 사람입니다. 아들이 반역한 사람입니다. 아들이 그 반역으로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배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에 그들은 매몰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새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씀처럼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인도 선교사였던 스텐리 존스 목사는 89세가 되던 해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존스 목사는 수개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존스 목사는 병원에서 간호사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습니다. 아침이든 낮이든 자신을 볼 때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신은 신경마비로 인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그 말을 간호사가 하도록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간호사들은 존스 목사를 보면 언제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고 명령했고 그러면 그는 어눌한 입술로도‘아멘’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6개월 만에 치명적인 중풍에서 완전히 치유 받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스탠리 존스의 전기를 쓴 넬 마니 목사는, “존스 박사는 하나님이 피리어드(종지부)를 찍을 때까지는 결코 자기가 콤마(중간 종지부)를 찍지 않았던 믿음의 사람이다.”라고 소개해줍니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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