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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1)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고전15:9-1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242 추천수:4 112.168.96.218
2017-07-23 10:56:36

 

오직(1)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고전15:9-11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5대 강령이 있었습니다. 다섯 가지 ‘오직(솔라 Solas)’입니다. 독일의 마틴 루터가 세 가지 ‘솔라’를 외쳤습니다.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 ‘솔라 피데(오직 믿음)’를 외쳤고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존 칼빈에 의해 ‘솔루스 크리스투스(오직 그리스도)’, ‘솔리 데오 글로리아(오직 하나님께 영광)’가 더해졌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이 되었습니다. 제가 5회에 걸쳐 이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유사 기독교가 판을 치고, 이단들이 영혼 사냥을 하는 때 이 말씀을 잘 들으며 바른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오직 은혜”라는 말은 “설교 시간에 은혜 받았다, 은혜로 합시다”라는 말과 같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깨달음이나 덮어둠”의 의미보다는 구원과 관계된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조차 믿음이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구원과 관련해서는 우리의 공로는 1%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열심 있는 사람에게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구원에 관한 한 스스로 인간 자체에 구원의 가능성과 잠재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에로 부름 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죄로부터 용서받고 속죄 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게 된 것도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된 것도 은혜입니다. 성화되는 것도 은혜입니다.  
11세기 말 십자군전쟁 때였습니다. 7세기 중엽 신흥종교였던 이슬람교를 따르는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했고, 그 후로 줄곧 예루살렘을 장악했습니다. 교황 우르반 2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성지 탈환을 위해 11세기 말에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누가 죽을 수 있는 전쟁에 참여하고 싶겠습니까? 그러자 십자군에 참여해서 전사하거나 살아서 돌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죄의 징벌을 면제해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참전하지 않아도 돈을 내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결국 십자군 전쟁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후 교황 율리오 2세가 1510년에 ‘희년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교황 레오 10세도 1513년에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당시 면죄부 판매 책임자였던 요한 테첼은 면죄부를 구원의 만병통치약으로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통해 천국 장사를 한 것입니다. 그는 “면죄부는 하나님의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와 친구들이 지금 저 무저갱 바닥에서 애타게 울부짖고 있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까? ‘우리가 너희를 낳고 양육하고 재산까지 남겨주었는데, 너희는 어찌 그리 잔인하고 인색해서 작은 돈을 내어 우리를 건져내려고도 하지 않느냐?’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부모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전이 부모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동전이 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납니다. 여러분은 저들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기를 원치 않습니까?”라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잘못된 종교가 공포 마케팅을 통해 천국 장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단들이 144000에 들어와야 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이 구원을 받아야 가족도 구원을 시킬 수 있다고 미끼를 던지며 교주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구원 장사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현혹되어 면죄부를 샀습니다. 한 때 간음과 여러 수치스런 죄를 범한 테첼의 이런 설교에 대하여 루터는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였습니다. 공개 토론을 위해 95개 조항을 비텐베르크대학 부속 교회의 정문에 붙였습니다. 면죄부와 이를 매매하는 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인지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이 때 테첼은 95개 조항에 격분하여 106개 조항에 달하는 반론을 펼쳤지만 루터는 ‘면죄부와 은혜에 대한 설교’로 답하며 오직 죄인인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1. 구원은 공로는 0%이고 “오직 은혜”로 받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천국에 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1%로의 인간의 공로가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 속에는 어떤 이단의 교주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 속에는 어떤 인간의 공로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바울이 구원받은 것, 구원받은 것을 끝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 전에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8절에 보십시오. 자신을 만삭되지 않아서 낳은 자 같다고 말씀합니다. 9절에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핍박한 자고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한 자였다고 말씀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디모데 전서 1장 15절에서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그가 구원받고 사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말리엘 문하생이기 때문에, 로마의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열심히 있어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님과 저도 구원받을 만한 어떤 조건이 있어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구원에 대하여 로마서11장 6절에서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된 것 뿐아니라 구원은 오직 은혜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공로는 1%로도 들어갈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이하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구원 받기 전의 성도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합니다(엡 2:1).
하나님은 죽은 인간의 상태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 3:10-11)라는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을 만족시킬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을 깨닫는 일에는 전적으로 무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기는커녕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오직 은혜로 살리셨습니다. 값없이 무조건적으로 구원해 주었습니다.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오직 은혜’가 아니라 ‘부분 은혜’, ‘거의 은혜’ 혹은 ‘대부분 은혜’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입니다.
과거 펠라기안은 인간은 ‘죽지 않고 타락하기 전의 아담처럼 생생히 살아 있는’것처럼 말했습니다. 오늘 날 우리 시대를 보면 자신의 자유 의지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구원자라고 말하는 이단들도 있습니다. 세미 펠라기안은 ‘죄로 인해 심각하게 손상되었지만 반쯤 죽은’것처럼 말했습니다.
알미니안은 ‘거의 죽었다가 산’것처럼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인간의 비참한 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자존심이 상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조금이나마 구원받을 만한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어주어야 하나님이 구원도 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은 비록 타락했지만 완전하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선한 양심이 남아 있으며 그러므로 그 남겨진 선한 양심에 의해서 구원에 필요한 믿음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행위구원론를 말합니다. 믿음과 행위를 동일한 조건으로 주장합니다. 구원받으려면 공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십자가 예수의 피를 불완전하거나 부족한 것으로 간주하고 또 다른 별도의 행위나 법규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교주 보혜사를 알아야 한다느니, 144000에 들어와야 한다느니 각종 행위를 주장합니다.
요즈음 극성을 부리며 한 달에 2000명씩 포섭한다는 신천지는 실상시대인 지금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예수의 새 이름인 이만희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바벨론 (기성교회)의 미혹에서 벗어나 약속한 목자 (이만희)와 성전 (신천지)에 대하여 바로 깨닫고 나아와 새 이스라엘 12지파에 속해야만 구원이 있다.”(『성도와  천국』,  1995,  (『계시록의 진상』, 1985).라고 주장합니다. 이만희는 자신이 이긴 자이며,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계2, 3장,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고 합니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며 마귀의 영에게 조종을 받는 자”라고 말합니다. 신천지에만 구원이 있으며 신천지만이 참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신천지에 등록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이만희, 『천지창조』, 2007). 자신을 보혜사, 이기자라고 주장하며 해괴망측한 교리를 퍼뜨리며 영혼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이만희 교주는 죄인일 뿐입니다. 인간은 모두 다 허물과 죄로 죽었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렘 17:9)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만희 교주가 영생 불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이긴자 이만희가 세운 12지파에 속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행4:12)을 주시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는다는 사실 외에 전하면 성경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
유다서 1장 4절에서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부정하는 이단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가 다른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공통적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가르치며 최선을 다하면 뭔가 좋은 것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가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의 피를 통해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우리는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라는 말씀을 인정하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노아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이고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고 은혜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오직 은혜”는 100%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이 100%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첫째는 복음은 싸구려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받았으니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0절 중반절을 보십시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정확한 의지마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여러 성경을 대조해 보았습니다. 뒤의 문장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는 것과 연결하면 자신이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수고했다는 말이 됩니다. 즉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독립된 문장으로 해석하면 바울은 자신이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치 없는, 보람없는, 쓸데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직접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가치 없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공짜로 받으면 가치 없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가를 많이 지불하면 지불할수록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기가 아무런 대가 없이 마신다고 가치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주 가치가 있습니다. 태양빛을 아무런 대가 없이 공짜로 언제든지 받는다고 가치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 은혜의 선물인 이유는 그것이 값어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지불할 수 없을 정도로 값비싸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 한 사람을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들에게 온갖 수치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침뱉음을 당하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배신을 당하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조롱을 당하고, 옷을 빼앗기고, 옆구리에 창에 찔리시고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아무나 대가 없이 구원하면 하나님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지옥에 보내고 누구는 천국에 보내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라고 말씀합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는 로마서 8장 29-30절에서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한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1장 5절과 11절에서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 예정론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하여 강한 적개심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신천지 이단은 “신천지의 교리는 예수교의 교리이며, 예수교의 교리는 계시 신학이요, 칼빈교의 핵심 교리는 절대 예정론으로, 이는 사람의 계명인 주석(註釋)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기준에서 장로교는 사이비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100%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불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한 명의 아이를 입양했다고 해서 불공평한 사람입니까? 아프리카 아이들 전체를 입양해야 공평합니까? 어떤 사람이 20명의 가난한 사람을 뽑아 100만원씩 주었다고 해서 왜 어려운 사람이 더 많은데 그 사람만 주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를 들어 말씀했습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추수할 때가 되어 품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아침부터 와서 일한 품꾼도 있었고 일이 끝날 때가 다 되어서야 와서 일한 품꾼도 있었습니다. 주인은 나중에 온 일꾼에게 다 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먼저 온자가 불평을 합니다. 어떻게 더 수고한 우리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만 받느냐는 것입니다. 그 때 주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눅 20:15)
은혜를 공정하게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은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란 무가치한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호의를 말합니다. 즉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를 완전히 배제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호의인 것입니다. 모두 죄로 말미암아 지옥갈 인생인데 그 중에 은혜를 베풀어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은혜와 공정은 영역이 다릅니다. 공정은 받는 사람을 고려하지만 은혜는 베푸는 사람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그냥 놓아두면 다 죄 가운데 지옥갈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도 구원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지옥에서 영원히 보내게 하셔도 완벽하게 공평하신 것입니다. 선택받지 못하다고 불공평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받아 마땅할 것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 19절 이하에서 명쾌하게 답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귀히 쓸 그릇도 만들고 천히 쓸 그릇도 만든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사야 선지자도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사 45:9). 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항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택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이 많고 정확한 판단력을 지닌 인간인 양 여기는 오만한 생각일 뿐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지옥을 만들면 안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여야 정의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여부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의 여하에 의해서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3. “오직 은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100% 은혜의 삶, 은혜에 보답하는 삶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고백합니까? 바울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의 선교를 통하여 기독교는 세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13권의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인류문명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신비적 체험을 했습니다. 천국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오해하거나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 응답이 되고, 신비 체험을 하고, 성과가 주어지면 그것을 은혜인 줄 망각하고 자신을 우상화합니다.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신천지 이만희 교주는 자신이 은혜 체험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짝이 있다고 하면서 비유풀이로 이성을 마비시킨 후 자신이 말씀을 받아먹었다고, 성경을 통달했다고, 보혜사라고 주장하며 교리 중독을 시킵니다. 결국 계시를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로 나누며 계시록을 푸는 자는 자기 밖에 없다고 예수님의 자리에 자신을 끼어넣습니다. 계 1~4장에서 예수님의 명대로 7별에게 편지하고 하늘에 올라간 사도 요한 같은 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2장~3장에서 니골라당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거룩한 성이 함께하는 이긴자가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10장 말씀과 같이 하늘에서 온 열린 책을 받아먹고 가르치는 약속한 목자가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12장의 해를 입은 여자가 낳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기로 포교하게 하고, 신천지를 부정하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아줌마로 부르게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를 사탄으로 보게 해 버립니다. 백번 양보하여 그의 신비 체험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가 신비체험을 받고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신비 체험을 하고 자기를 자랑합니까? 바울이 자신이 교주가 되었습니까? 바울교를 만들었습니까? 바울교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했습니까? 바울이 보혜사이고 바울이 이긴자라고 했습니까?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강조했습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교만 덩어리입니다. 은혜를 자랑하면 성자가 되지만 교만을 자랑하면 금방 사탄의 앞잡이가 됩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라고 말씀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높아지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는 것이 모세가 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것이 다윗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여호수아가 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였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되고 은혜로 많은 일을 할 때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미하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고난 받은 것도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기도 응답되지 않는 것도 병든 것도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는 말씀입니다. ‘오직 은혜’는 아무도 자기를 자랑치 못하게 합니다. 썩는 냄새 풍겼던 시체가 무슨 자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다윗처럼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라고 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감사하고 찬양드릴 뿐입니다. 결코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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