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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10)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 대하듯 하게 하옵소서(마25:31-4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467 추천수:2 112.168.96.218
2017-06-25 16:17:22

 

애원(10)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 대하듯 하게 하옵소서

마25:31-46

 

지구의 종말이 있을까요? 과학자들은 태양은 온도가 계속 올라가고 나중에는 적색거성으로 변하면서 지구 온도는 700도까지 올라가 바다도 사라지고 생명이 살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지구의 서식 수명이라고 합니다. 어떤 천체물리학자들은 40억년가량 남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17억년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난 주 신문을 보니까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노르웨이에서 열린 천체우주과학축제인 스타무스 페스티벌에서 "소행성 충돌과 인구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인간이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될 겁니다. 30년 안에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구가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는 건 시간문제"라며 "화성과 달에 식민지를 세우고 그곳에 노아의 방주처럼 보관 시설을 세워 지구 동식물의 종(種)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근대 물리학과 천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은 2060년 세계 종말을 예언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불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심판의 날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계 6:14)"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인류의 종말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다.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어느 때입니까? 예수님의 재림의 때, 인류 심판의 때입니다. 32절을 보니까 양과 염소를 나누는 때입니다. 인자는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만 마지막 재림할 때 모든 천사와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아 심판 주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모든 민족을 모으고 심판을 하십니다. 양과 염소로 구분하여 오른 쪽에는 양, 왼 쪽에는 염소로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른 쪽에 있는 양은 어떻게 됩니까? 34절을 보세요. 예비된 나라에 들어갑니다.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왼쪽에 있는 염소는 어떻게 될까요? 41절, 46절을 보세요. 영벌에 처해 집니다.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말일까요?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될 확실한 진실입니다. 성경은 예언은 정확합니다. 바톤 페인(J. Barton Payne)의 성경예언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성경에 기록된 예언은 총 1817개로, 구약성경엔 1239개, 신약성경엔 578개의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8,352 구절에 들어있으며 이는 전체 성경 내용의 27%나 된다고 합니다. 그 예언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된 것을 보면 성경은 인간의 책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사야42:9). 성경 기록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려 3,000번이 넘게 언급했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애매한 표현이 아니라 명료하고 구체적입니다. 한 가지만 보십시오. 구약성경에 있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은 모두 191개나 나옵니다. 메시아에 대한 최초의 예언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창세기(3:15)의 예언을 필두로 해서, 메시아의 동정녀 탄생(사7:14 마1:18,22,23), 탄생지(미5:2 눅2:4,6,7), 애굽에서 유년기(호11:1 마2:14,15), 메시아의 가계도, 메시아의 선구자, 메시아의 사역, 죽으신 목적(사53:4-6 고후5:21,벧전2:24), 배반(슥11:12,13;13:6 마26:14-16;27:3-10),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시22; 마27), 그리스도의 부활(시16:9,10 행2:31,32),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191개의 예언이 모두 나사렛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오신 후에 기록되었습니까?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53:2-12)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열두 가지의 특징이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미가는 예수님의 베들레헴에서 출생(미 5:2)을 예언했습니다. 스가랴는 은 30에 팔리 것을 예언했습니다(슥 1:13), 그 은 30은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했습니다(슥 11:13) 얼마나 정확합니까? 수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메시야에 대한 16개의 예언이 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확률은 10의 45승분의 1이라고 합니다. 48개의 예언이 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확률은 10의 157승분의 1이라고 합니다.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언은 나사렛 예수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살아계셔 역사를 주관하시고 곧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기름 부음받은 메시야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부인 할 것(마26:34), 제자들의 흩어짐에 대하여(마26:31), 베드로의 순교(요21:18), 사람들의 손에 넘기어질 것에 대하여(마17:22), 3일만의 부활할 것에 대하여(마20:19) 수많은 예언을 하셨는데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지구의 마지막 날에 대하여 우주적 종말에 대하여, 대환난에 대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예언하셨는데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1-46)의 말씀은 마태복음 에 나타난 예수의 다섯 개의 커다란 설교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해 있고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 걸쳐 나타나는 1일곱 개의 재림 비유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인 일곱 번째의 비유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중요한 말씀입니다. 천국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주 강조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천국에 가야하겠습니까? 지옥에 가야 하겠습니까? 양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염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기서 천국에 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33절에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34절에는 아버지께 복받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37절에는 의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다 천국에 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염소가 아무리 좋은 일 한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염소는 염소일 뿐입니다.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는? 사람은 죄를 짓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댓가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치르는 대속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우리도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양이고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복받는 자들이고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예수님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1)”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이것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영적 법칙입니다. 세상에는 자연과학의 법칙이 있습니다. 인문과학의 법칙이 있습니다. 영적 법칙이 있습니다. 중력의 법칙인 자연과학의 법칙을 어기고 20층에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런 것처럼 영적 법칙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법칙을 어기면 죽습니다.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예수님 지옥갈 형벌을 받을 내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속량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이것을 믿어야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어여뻐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맘착해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후렴>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까? 질문했을 때 입으로 시인하였다면 그것이 믿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가짜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증거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눅 6:44)”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답게 행함이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도둑질이나 하고 다니고 입만 열면 남을 욕하고 비난하면 그것은 믿는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라고 했습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라고 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선행의 보상으로 천국에 간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의 증거는 선행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천국 백성이 된 우리는 이 땅에서 믿는 사람답게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가장 작은 자에게 예수님께 하듯 대하며 살아야 합니다(40, 45).

마지막 심판 때 예수님 양과 염소를 가르시면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4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4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누구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바로 지극히 크신 자 예수님께 하신 것이나 똑같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내 형제는 단지 예수님의 동생들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좁게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넓게는 예수님이 돌보신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35,36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6종류의 사람과 예수님을 동일시하여 말씀하십니다. 주리는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예수님 대하듯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바로 그렇게 가치관이 바뀝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용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내 유희물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물건이나 짐승처럼 보지 않습니다. 차별대우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경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으로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오승재씨가 쓴 "소설 우리 예수님"이라는 소설책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교회"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입니다. 엘리트 신앙인들이라고 생각하는 제일 교회 교인입니다. 아주 잘 지어졌습니다. 문화시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일에 헌 누더기를 걸치고 왼팔이 없는 누더기 옷을 입은 거지가 봇짐을 걸머진 채 교회에 들어옵니다. 안내를 보던 남 집사가 떠밀어냅니다. "나 예배 보러 왔소" "이런 꼴로 예배 보면 안 된다."며 송 집사는 백 원 짜리 하나 쥐어 주고 보내려고 합니다. 이 때 부목사가 "어디서 왔소." 물어봅니다. "예배 보는데 어디서 온 게 무슨 상관이요, 나 집이 없는 줄 뻔히 알지 않소." "누구 소개로 왔소" "거리에서 예수 믿으라는 말 듣고 왔소." 부목사는 들여보냈습니다. 송집사는 헌금 훔치러 왔으니 보내자고 합니다. 그 주변에는 아무도 앉지 않습니다. 부목사가 나가면서 인사합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이요. 그럼 다음 일요일에 많은 친구들을 데려 오겠소." 거지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다음 주 헌금 시간에 헌금바구니를 그 앞에 돌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헌금할 수 없소." 당회에서 구제비 주고 못 오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거지아이가 "우리 아저씨가 목사님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라고 급히 말합니다. 부목사가 가보니 다리 밑에서 가마니로 가리고 사는 천막에 희끄무레 죽은 시체 같은 몸이 누워있었습니다. 그는 죽은 듯 소리 없이 한 쪽 손을 들려고 하였습니다. 손에는 꼬기 꼬기 꾸겨진 100원 지폐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끝내 말을 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신앙인은 한 우리의 형제를 예수님처럼 대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였습니다. 당시 아무도 상대하지 않고 부정탄다고 생각했던 문둥이, 간음한 여자, 부정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혈루증 앓은 여인, 심지어는 죽은 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 병든 자, 세리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 어떻게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 대하듯 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서로 주님을 대하듯 서로 돕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돕는 것으로 주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10:42)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소자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이니 하리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천국을 믿기 때문에 아끼는 마음 없이(신15:10) 성실함으로 즐거움으로(롬12:8) 은밀한 중에(마 6:3) 남을 사랑하고 남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 같이 다니면서 기분 나쁘다고 인사도 하지 않고 얼굴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기본이 인사입니다. 인사 잘 하는 믿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일본 사람 에가와히로시가 지은 <성공하려면 언어의 마술사가 돼라>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은행에 근무하고 있던 K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동 주택에서 나이 30인데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내성적이어 주변 사람을 만나도 인사 한 번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날씨 좋은 날에는 세탁물을 밖에 넌 채로 외출하는데 어느 때는 비가 와서 집에 오면 다를 이웃들은 다 거두어 갔는데 자기 세탁물만 흠뻑 젖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K씨는 에티켓 교실에 다니게 된 후 인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배우고 실행했답니다. 이웃 사람들 누구에게나 적극적으로 웃으면서 인사를 하였답니다. 1개월 쯤 지난 무렵 다시 비가내렸답니다. 오늘도 세탁물이 흠뻑 젖었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와보니 세탁물이 없었답니다. 누가 훔쳐 갔나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가 잠시 있자 옆집 부인이 와이셔츠와 손수건 등의 세탁물을 다림질까지 해서 가져다주었답니다. 어떤 부인은 겨울철 하수 공사를 하는 사람을 만날 때 아침마다 아이 유치원 데려다 주면서 “안녕하십니까 매일 수고가 많습니다”라고 웃으며 인사를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목욕탕 하수구가 막혔는데 수도 공사에 전화하니까 겨울철 인력이 부족하여 못 온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이 하수구 공사하는 사람들에게 들어가자 저녁에 그 분들이 와서 깨끗하게 공사를 해 주었답니다. 단순하지만 인사 잘하는 회사가 잘 됩니다. 저자는 3000개 회사 이상 경영진단을 했는데 인사 잘 하는 회사가 잘 되더라는 것입니다. 인사 잘하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인사 잘하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큰 사랑을 베풀어 주지 못할지라도 교인을 만나면 예수님 대하듯 반갑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시길 바랍니다.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예수님 대하듯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증표입니다.

 

2.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삶이 곧 나를 위하여 사는 삶임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도와준 결과는 무엇입니까?(34)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에도 들어갑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 당할 때 나 홀로만 편하고 잘살겠다고 한 결과는 무엇입니까?(41,46) 저주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마귀를 위해 예비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영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친절일지라도 남에게 베푼 친절은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 하였습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을 베푼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에도 얼굴에서 훈훈한 미소를 잃지 않고 친절을 베풀면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물건도 사지 않고 스쳐가는 손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낭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낯선 방문객에게 친절을 베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하게 되었습니다(히 13:2).

오른 손이 왼손 모르게 선행을 행한 것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영혼의 만족함을 누리게 됩니다. “(사58:10-11)주린자에게 네 심정을 토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하면......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마른 옷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뼈를 견고케 하리니”

친구가 많아집니다(잠19: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은혜를 구하는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놓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친절과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자신이 복을 못받습니다.(잠28:27 신15:9) 자기가 부르짖을 때 들을 자 없습니다(잠21:13). 들어오는 물만 있고 나가는 물이 없으면 사해와 같이 아무런 생명이 살지 못합니다. 동맥경화에 걸린 사람과 같이 됩니다.

일본 사람 에가와히로시가 지은 <성공하려면 언어의 마술사가 돼라>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네바다 주의 사막을 한 노인이 뚜벅뚜벅 걷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는 다마라는 남자가 지프를 몰고 왔습니다. 다마 씨는 노인 옆에 차를 세우고는 어디까지 가는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라스베가스까지 간다고 말했습니다. 다마 씨는, "라스베가스까지 걸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근처까지 태워다 드릴 테니 올라타십시오."라고 말하고는 노인을 차에 태워 주었습니다. 라스베가스에 도착하자 노인을 내려 주고, 버스를 탈 때도 돈이 없으면 어떡하나 싶어 25센트를 주었습니다. "내가 차 태워 주신 보답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돈까지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하고 이 노인은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훗날 이 노인이 죽으며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유언장에는 이 때 일의 기록과 함께 '전 재산의 16분의 1을 다마 씨에게 주기 바란다' 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의 이름은 하워드 휴즈로 당시의 대부호였답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 대하듯 사랑과 친절을 베풀면 손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이 내가 잘 되는 첩경입니다. 목사님이 잘되어야 하고,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 우리 교인, 다른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이 곧 내가 잘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를 진짜 구주로 믿고 산다는 증거입니다.

 

3.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알고 언젠가 결산의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말, 내 행동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생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 보고 알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한 것 아무도 모른 것 같지만 임금님이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 그 일을 들추어내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증거는 바로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요즈음 청문회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아무도 모른 것 같았는데 사람들도 과거를 다 들추어내어 심판을 합니다. 마지막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31)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 결산은 어느 날 갑자기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이 땅에서 죽습니다. 역사도 끝이 날 때가 옵니다. 예고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 20:13)”

불신자에게는 지옥과 천국에 가는 심판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상급의 심판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눈물 다 닦아 줄 날이 옵니다. 언젠가 우리의 억울함 다 풀어 줄 날이 옵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우리의 외로움, 우리의 고독, 우리의 아픔 풀어 줄 날이 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라는 신앙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초가 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값진 재물도 내겐 없지만 내게 주어진 하늘나라에 가면 내게 황금과은만 았네 나 가난해도 외롭지 않네 천국 길 가니 실망 없다네 나그네로서 면류관 쓰며 거문고 타는 천국 가네 내게는 하늘 저 위에 집 있네 햇빛 비치고 찬란한 그 곳 그날이 오면 다시 방황치 않고 순황금 길을 거닐겠네”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1896년 미국의 조합교회 목사인 찰스 먼로 셸던이 쓴 기독교소설입니다.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라는 책을 쓰신 정근모 박사님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물음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레이몬드시에 헨리 맥스웰이라는 목사님이 부유한 지역의 대형교회인 레이몬드 제일교회 담임 목사로 섬겼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설교 준비를 하는데 3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찾아 왔습니다. 그는 인쇄공이었는데 새로운 인쇄기계가 나와서 거기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여 그만 실직을 당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그만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도 친척 집에 맡겨놓고 일자리를 구했지만 구하지 못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를 그냥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일자리를 하나 구해 주십시오. 그러면 아이들도 친척 집에서 데리고 와서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맥스웰 목사님은 설교 준비에 방해되는 이 사람이 귀찮아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신에 제가 기도를 해 드릴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가 쓸쓸이 나간 후 이 일로 맥스웰 목사님의 마음은 편치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날 예배시간에 참여하고 예배가 마치자 회중석 앞으로 나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섭섭한 말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냥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저에게 일자리를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아무도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이 모두 놀라서 웅성거렸고 맥스웰 목사님은 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정성스럽게 돌보아 주었지만 “목사님 참 감사합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아마도 목사님처럼 그렇게 하셨겠지요.” 이 말을 하며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주일날 맥스웰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오늘부터 일 년 동안 우리교회 교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이 질문을 하면서 살도록 합시다. 우리가 사업을 하면서도 직장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반드시 이 질문을 하고 일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목사님의 이 제의에 교인들은 모두가 아멘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업을 하는 교인들은 그 사업을 하기 전에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질문을 하면서 모든 사업을 했고 변호사도 그 일을 하기 전에 이 질문을 하면서 자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 년 뒤에 교인들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고 교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은 자아도취에서 빠져나와 교인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임재로 무의식 중에 자신을 높이려는 모습이 사라지고 경건의 침묵과 부드러운 사색으로 찬양을 듣고 감동을 받습니다. 서로의 삶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부분들을 공유하며 해결책을 나누었습니다. 안일무사와 타성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모습을 닮기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하고 뜨겁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경 갈라디아서 2장20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결산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했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살면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 마지막 그 날에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는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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