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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7) 하나님 장애물을 극복케 하옵소서(행9:23-3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271 추천수:4 112.168.96.71
2017-06-04 16:21:19

 

애원(7) 하나님 장애물을 극복케 하옵소서

행9:23-31

 

라이언 홀리데이가 쓴 <돌파력>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임금이 대로 한복판에 커다란 바위를 가져다놓아 도시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숨어서 백성들의 반응을 지켜보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대부분은 바위를 치우려고 애쓰는 척하다가 이내 포기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심지어는 임금에게 비난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불운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정말로 뭔가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한 농부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위를 치워보려고 있는 힘을 다 했습니다. 바위가 꿈쩍하지 않자 농부는 근처 숲으로 들어가 사방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커다란 나뭇가지로 지렛대를 만들어 길을 가로막은 바위를 굴려냈습니다. 바위 밑에는 금화가 가득한 주머니와 함께, 임금이 쓴 쪽지가 한 장 놓여 있었습니다. “모든 장애물 속에는 더 나은 현실을 만들 기회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사시는 우리 성도님은 장애물 앞에 어떤 유형의 사람입니까?

살다보면 장애물이 많이 있습니다. 못마땅한 외모, 가난, 질병, 학력, 능력부족과 같은 물리적인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두려움 경험 부족같은 정신정인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환경적 장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장애물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다윗은 골리앗이란 장애물을 만났지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장애물을 삼키고 목동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삼손은 드릴라는 장애물을 만나 드릴라에게 삼킴 당해 사사에서 죄수가 장님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가나안이라는 장애물을 만났지만 열 명의 정탐꾼은 장애물 앞에 메뚜기가 되어 광야에서 다 죽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장애물을 먹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같은 장애물이라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보약도 될 수 있고 독약도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거침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애물을 극복하면 장애물보다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고 장애물이 더 큰 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장애물이 행동을 유발하고 그 장애물을 극복하면 장애물은 디딤돌과 보약이 됩니다. 장애물 속에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장애물은 크게 네 가지 부분에서 다가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 부분인 믿음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어느 정도 믿느냐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부분입니다. 둘째는 세계관 부분입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 부분입니다.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부분입니다. 이 세상이 진화된 것인지 창조된 것인지,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고, 역사는 어떻게 흘러가고, 인생이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로 흘러가는가 등에 대한 세계관입니다. 셋째는 윤리부분입니다. 신앙인의 인격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살 것인가의 영역입니다. 넷째는 사역 부분입니다. 신앙인의 능력부분입니다. 주어진 달란트과 은사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데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과 인성의 절대화로 수많은 방해물들이 있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데도 바른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데도 장애물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주어진 사역을 바르게 하는데도 장애물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 땅에 살면서 이 장애물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열한 싸움을 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신앙생활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한 평생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위대한 인생을 사신 바울의 초기 장애물 극복 장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의 장애물, 가정의 장애물, 직장의 장애물, 교회의 장애물을 보약으로 먹고 일어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우리가 장애물을 잘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시각으로 장애물의 특성을 정확히 알고 대처해야 장애물 극복방법이 자랑거리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어떻게 장애물을 인식하고 극복해야 할까요?

바울이 어떻게 했는가 보십시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극적으로 변화되어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사명이 무엇인가 9장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개인적인 사명, 가정적인 사명, 교회적인 사명, 직장에서의 사명을 받습니다. 바울은 사명을 받자 어떻게 합니까? 2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습니다. 사명을 받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사명받고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사명 받고 사업을 번창시키려고 합니다.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장애물이 없습니까?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인간 장애물이 다가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듣는 사람들이 다 놀랍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인입니다.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변한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자기편이었는데 이제 적이 된 것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의 회심과 설교는 유대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죽이기를 공모합니다. 여러 날은 19절의 며칠과는 달리 상당히 긴 기간을 말합니다. 바울이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전하니까 위기감을 느끼고 사울을 죽이려는 계획을 짠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밤낮으로 성문을 지킵니다. 고후 11:32절에 보면 ‘아레다 왕의 방백’이 성을 지켰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나바티안 족의 방백을 매수하여 행정력과 군사력을 동원하여 사울을 잡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유대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전에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결박하도록 위임할 정도로 신뢰한 사람이고 마음을 같이 하였던 사람들입니다(행9:1-2). 그러나 변화된 그를 보고 이제 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공모하였습니다(23,29).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때는 아군이었지만 자신에게 부익을 줄 때는 순식간에 적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인간 세계입니다. 바울은 조직적으로 자신을 제거하려고 하는 이 엄청난 인간 장애물을 어떻게 돌파합니까? 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야반도주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로마의 권력 앞에서도 당당했던 사도 바울의 인품을 생각하면 너무 실망스럽지 않습니까? 광주리를 타고 야반도주하는 것이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다메섹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제자들이 그 방법을 권했을 것입니다. 과거 자존심 강한 사울 같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졸렬하고, 비굴하고, 수치스런 장애물 극복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면 돌파하지 않고 몰래 광주리타고 도망가는 것을 수치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먼 훗날 이 사건을 언급할 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고후 11:30-33)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그 사건을 자랑거리고 삼는 것입니다. 광주리를 타고 야반도주한 것은 바울의 약함과 비천함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도 오히려 그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약한 자신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장애물을 바라본 것입니다. 자기 잘나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어 약하고 약한 자신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존심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살아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다는 사실을 이방인들과 이방 임금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수치를 다 감당하고라도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골리앗이란 장애물을 만난 다윗처럼 가나안이란 장애물을 만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시각으로 장애물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면 어떤 수치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인간의 억울함도 감당했습니다. 견디기 힘든 채찍을 다 맞았습니다. 모욕도 참았습니다. 핍박도 견디었습니다. 옆구리에 박히는 창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가시면류관도 못 박힘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침 뱉음도, 욕도 다 받아들였습니다. 팬티를 빼앗는 수치도 감당했습니다. 장애물은 주신 사명을 이루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장애물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장애물이 있습니다. 장애물 앞에서 주저 않느냐 장애물을 돌파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느냐가 문제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창39-41장) 모세를 보십시오(출2-4). 엘리야를 보십시오(왕상 17장).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야곱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들은 장애물 앞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장애물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물을 어떤 시각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느냐 그 장애물을 통해 무엇을 이루느냐가 중요합니다.

라이언 홀리데이는 그의 책 <돌파력>에서 장애물을 돌파하는 데는 가장 중요한 세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출발점은 우리의 문제점, 우리의 태도나 접근 방법을 구체적으로 직시하는 단계(인식)라고 합니다. 장애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장애물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장애물이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엄청난 무기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적이고 주관적이고 근시안적으로 장애물을 바라보면 문제만 더 복잡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감정을 통제하고 흥분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균형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라고 합니다.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고 통제 가능한 부분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되 거시적인 안목을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장애물을 극복하고 성공한 여러 사람의 예를 듭니다. 세계 최고 부를 누렸던 록펠러는 석유업에 뛰어들기 전에 소규모 금융업자로 회계 일을 하면 투자자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는데 범죄를 저지르고 가족을 버렸답니다. 16살에 취업하여 일당 50센트를 벌어 금융업자로 순탄하게 살 것 같았는데 1857년 금융 위기가 강타했다고 합니다. 이 때 금융업을 포기하지 않고 면밀히 현실을 관찰했답니다. 차분히 돈을 모으며 남들이 하는 실수를 지켜보며 변화와 충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25살 때 투자자들이 50만 달러의 거금을 내놓으며 적당한 유전을 찾아 투자해 달라고 했을 때도 그는 적당한 때가 아닌 것을 알고 단돈 1달러도 투자하지 않았답니다. 남북 전쟁을 비롯하여 1873년, 1907년, 1929년 엄청난 위기를 만났지만 냉철한 자제력과 객관성을 가지고 그 장애물을 뛰어 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온 지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석유 시장의 90%를 장악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시장이 급격히 요동칠 때 재산의 대부분을 축적했다는 것입니다. 장애물이 무엇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장애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식으로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존 록펠러는 “나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재난이 다가올 때마다 내게 좋은 기회가 되게 하려고 노력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장애물을 하나님의 주신 기회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장애물 앞에 충동과 본능의 노예가 되면 장애물 앞에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감정에 휘둘리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물은 기회라는 것입니다. 심각한 불경기와 경제 위기 가운데 장애물을 잘 극복하면 위대한 기업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페덱스는 1973년 석유파동 때, UPS는1907년의 공황 때, 월트 디즈니 사는 1929년의 시장 붕괴 때, 휴렛 패커드는 1935년 대공황 때, 스탠더드 석유는 남북전쟁 때, 제너 럴 모터스는 1907년 공황 때, 마이크로소프트는1973~75년 경기 침체 때 장애물을 딛고 일어선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포춘〉 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절반은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서거나 불황이 한창일 때 첫발을 내딛었다고 합니다. 의미 있는 분석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시각으로 장애물의 정확한 특성을 알고 대처하여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장애물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것이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거침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독약이 될 수도 있고 보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회피와 후퇴의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도전과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했던 인생의 장애물이 먼 훗날 아무에게도 말못하는 수치덩어리가 아니라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2. 우리가 장애물을 잘 극복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붙들고 믿음의 행동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그들 죽이려는 유대인만 바울의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아군으로 생각했던 그리스도인도 그의 장애물이었습니다.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다메섹 사건 바로 후에 일어난 사건처럼 되어 있지만 갈라디아서 1장 18절에 보면 3년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가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동안 훈련을 받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15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이 때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 줄 것으로 알았던 사도들과 신앙의 동지들은 바울을 어떻게 대합니까? 다 두려워합니다. 그가 제자됨을 믿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교인들로부터 의심을 받았습니다. 사울의 회심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소문만 들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인들을 사울을 신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회심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도 없었고 악명 높은 그가 위장하고 신앙인을 잡아 죽이려고 전략적으로 변신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데 인정해 주지 않고 의심하는 아군의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합니까? 집을 잘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아내가 남편이 의심합니다. 직장을 잘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동료들이 의심합니다. 교회 생활 잘 해보려고 하는데 목사님이 의심합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바울을 사도들 앞에 보증해 주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구부로 섬 출신인 바나바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친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신임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가 사도들에게 바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한 것이 진실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 줍니다. 다메섹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한 것을 보증해 줍니다. 다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기편이 되어 줄 사람을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것입니다. 신비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을 구조로 믿는다는 공통점만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의 도움을 받고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무엇을 합니까? 2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주 예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합니다.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는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합니다. 복음 증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자신이 진정 변화된 사람인 것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돌파하려면 생각에서 머물면 안 됩니다. 어떤 위험이 있다고 해도 실행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회심 즉시 무엇을 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즉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예수님만 전하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그것을 입증해 준 것입니다. 핵심을 붙들고 행동하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무엇이 장애물이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와 다소에서도, 벨릭스 앞에서도, 로마에서도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녔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라이언 홀리데이는 그의 책 <돌파력>에서 장애물을 돌파하는 두 번째 단계로 뜨거운 열정과 창의력을 발휘해 실제로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기회를 만들어내는 행동 단계의 원칙을 말합니다.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굴의 끈기와 유연성을 발휘하여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동과 결정이 인생을 규정하는데 신중하고. 과감하며. 일관된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날 때까지 멈추지 말고 정열과 끈기를 가지고 반복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평생 그렇게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하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 남의 도움을 기대하는 행동은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웅변가 가운데 한 사람인 데모스테네스 예를 듭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다고 합니다. 거의 언어 장애에 가까운 약점을 안고 있었답니다.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양육을 위탁받은 이들이 그에게 남겨진 거액의 유산을 가로챘답니다. 그는 불행한 아이가 겪는 거의 모든 시련을 경험했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은 장애물 앞에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아테네의 법정에서 본 어느 위대한 웅변가가 능숙하고 강력한 언변으로 만인의 귀를 사로잡는 것을 보고 자신도 이런 인물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답니다. 자신의 위탁비를 다시 찾기 위한 목표를 세운 것입니다. 우선 언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독특한 훈련법을 고안했답니다. 입에 자갈을 가득 물고 말하는 법을 연습했답니다. 단 한 번의 호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연설 하나를 마무리하는 연습도 했답니다. 그 결과, 조용하고 나약하던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맑고 강한 울림을 토해냈답니다. 데모스테네스는 땅굴을 파고 그 속에 틀어박혀 독학을 시작했답니다. 바깥세상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머리를 반만 박박 밀었답니다.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목소리와, 표정과, 논리를 가다듬는 공부에 열중했답니다. 그는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한 후견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변호사들은 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답니다. 결국 승소하여 돈을 받아낸 것입니다. 그는 훌륭한 웅변가를 넘어 아테네를 대표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학자가 데모스테네스에게 대중 연설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무엇이냐고 물었답니다. 그 때 그는 "행동, 행동, 행동!"이라고 했답니다. 장애물 앞에 정면으로 도전할 것인가 피해 달아날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합니다.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는 생각이나, 불평이나, 주장 보다 장애물을 극복하는 행동을 그냥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명 붙들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누가 뭐라해도 사명붙들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사명 붙들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사명 붙들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실행력이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보다 더 중요하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 입니다. 홀리데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길밖에 없는데 그것은 올바른 행동으로 자신의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습니까? 다 우리를지지 하지 안는 것같이 보여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예비해 놓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장애물을 잘 극복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붙들고 믿음의 행동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3. 우리가 장애물을 잘 극복하려면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장애물을 정복해야 합니다.

또 바울에게 어떤 장애물이 다가옵니까? 스데반이 순교당한 후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진 후 소홀히 했던 헬라파 회당의 유대인 사역을 감당합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달리 길리기야 다소 출신으로 헬라말에 능숙하기 때문입니다. 2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인 논증을 통해 치고 들어오는 바울을 반박할 수 없자 바울을 죽이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다시 헬라말을 사용하는 유대인의 음모에 죽음의 위기를 당한 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인 유대인들이 다시 사울을 죽일 음모를 꾸미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살해당할 뻔 했는데 또 예루살렘에서도 살해의 위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보내고 다시 그곳에서 배를 통하여 사울의 고향이 다소로 보냈습니다. 그의 고향에 가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안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자신의 편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따돌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변화되기 전 바울 같으면 이런 처사를 비굴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고향으로 가지 싫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향에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배신자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이중인격자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같은 수난은 16절에서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한 것처럼 바울이 당해야 할 고난이고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져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2장 18절 이하에 나온 바울의 간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 보내리라”고 말씀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고 형태는 최종적 사고(terminal thinking)와 관련적 사고 (relational thinking)가 있습니다. 예수 믿게 되면 모든 것을 하나님과 관련시켜 생각하고 주신 사명과 관련시켜 생각하고 장애물에 대하여 대처하는 것입니다. 주신 사명 내가 이루는 것 같지만 믿음 가지고 나아가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바울이 죽지 않고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그의 제자들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이름 없는 형제들입니다.

그가 어떻게 사도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바나바의 도움 때 문입니다. 이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시고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탁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죽을 때가 아닙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 때가 아닙니다. 장애물 붙들고 신음하지 말고 끝까지 사명을 붙들고 장애물을 먹이로 삼고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장애물이 크면 클수록 장애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어떤 장애물이 온다 해도 그 사명 이룰 때까지는 놓지 않고 장애물을 돌파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주신 사명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 다 가기까지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거듭해서 장애물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사명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사명, 자녀의 사명, 교회의 사명, 직장의 사명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어떤 장애물이 다가와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어진 사명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라이언 홀리데이는 그의 책 <돌파력>에서 장애물을 돌파하는 세 번째 단계로 거듭된 실패와 난관에 대처할 수 있는 내적 자아를 배양하고 유지하는 의지 단계를 말합니다. 그는 운명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내면의 힘 즉 의지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링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는 극심한 우울증과 싸우며 두 차례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으며,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청년 시절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습니다. 빚으로 고생을 하였고 수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 인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했다는 것입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를 해방시켜 미국을 하나로 만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모든 장애물을 이기는 그의 가장 큰 힘은 의지력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링컨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 것은 자기를 기반으로 나온 의지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나온 의지력입니다. 링컨이 제일 좋아한 격언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어떤 장애물도 돌파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날도 살아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날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힘으로 능으로 못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장애물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돌파하게 해 주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고 사명 꼭 붙들고 나아가면 됩니다.

사명을 이루며 홀로인 것 같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칠천 인을 남겨 두었습니다. 도망가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살인자로 민족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는 모세에게 “(출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떠내 보내고 홀로 남은 제자들에게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 2: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홀로 가는 인생길 아닙니다. 수많은 장애물이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그 장애물을 돌파하고 사명을 이루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이해 못할 장애물을 만나도 하나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의 사명을 이루어 주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느냐가 문제이지 이것만 확실하면 모든 장애는 기회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선을 이루시는 방법일 뿐입니다.

고난이 있습니까? 장애물이 있습니까? 오늘의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은 기회입니다. 축복의 수단입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은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종교개혁자 칼빈은 세상 떠날 때 이 요절을 27 번 외웠다고 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우리의 영광과 족이 비교할 수 없도다. 비교할 수 없도다" 하다가 27번 째 다 외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고린도 후서 4장 17절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장애물은 잠깐이요,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시 30:5)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장애물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대처해 합니다. 그럴 때 자랑거리가 됩니다.

장애물은 주신 사명 붙들고 믿음의 행동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장애물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정복해야 합니다.

 

모든 장애물을 격파하고 나아가니까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평안해 집니다. 바울이 피신함으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의 마찰이 해소되어 교회가 지속적으로 평안을 유지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복과 은총이 교회에 지속적으로 임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괴롭혔던 로마 황제 갈리굴라가 41년 1월 24일에 피살되어 기독교의 박해가 감소했습니다. 든든히 서 갑니다. 교회의 박해가 없어지고 교회가 성장해갔습니다. 교인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되는 데는 성도들의 주를 경외하는 삶과 성령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장애물들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대처하고 믿음의 행동으로 돌파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정복하여 가정과 교회와 직장 생활이 지속적인 평안을 누리고 든든히 서가며 성장이 이루어지는 축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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