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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좋은 신앙인(골2:6-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402 추천수:4 112.168.96.71
2017-04-02 10:47:49

 

끝도 좋은 신앙인

골로새서2:6-7

 

지난주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전직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끝이 안 좋은 분이 많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적 영웅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이나 미국으로 망명을 가야 했습니다. 양아들 이기붕 부통령의 아들 이강석씨는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호가호위하다가 4.19 혁명 이후 자기 아버지 이기붕을 살해하고 자살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부인이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자신도 총에 맞아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임기가 끝나자 감옥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장남은 지금도 부친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감옥에 갔습니다. 딸은 92년 외화 밀반출 혐의로 법정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어떻습니까? IMF라는 치욕을 남겼습니다. 차남 현철씨가 97년 이권 청탁과 관련 66억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두 아들이 각종 이권 청탁에 관련되어 구속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박근혜 태통령은 탄핵이 되었고, 결국 구치소에 수감이 되었습니다. 1대부터 11대 박근혜까지 끝이 좋은 대통령이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끝이 안 좋은 대통령으로 회자될 것입니다.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될성부른 식물은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말처럼 시작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끝은 더 중요합니다. 시작이 반이면 끝은 전부입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은 것입니다. 직장생활도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끝이 나쁘면 나쁜 사람으로 평가받고 맙니다. 신앙생활도 잘 시작했어도 끝이 이단에 빠지면 불행해 집니다. 시작도 좋고 끝도 좋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잘못되었더라고 끝을 잘 맺어야 합니다. 끝이 좋아야 시작도 빛이 납니다. 끝이 좋아야 과정도 교훈이 됩니다. 끝이 좋아야 공로도 인정이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끝이 좋아야 합니다. 정치도, 사업도, 연애도, 공부도, 대인관계도, 신앙생활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물건도 끝이 좋아야 명품이 됩니다. 끝마무리 1%의 수고가 들어가지만 100%의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좋은 영화는 마지막 장면이 좋습니다. 좋은 소설은 결말이 아름답습니다. 좋은 물건은 끝마무리가 깔끔하고, 좋은 회사는 끝까지 책임지며, 좋은 경기는 끝이 좋습니다. 좋은 사랑은 끝까지 아름답고, 끝이 좋아야 명품, 명인, 명가가 됩니다. 결혼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부부도 끝이 좋아야 아름답습니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에서 낱말 맞추기 게임을 했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부부가 짝이 되었답니다.‘나온 단어는 ’천생연분‘이었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설명을 했답니다. “당신과 나 사이를 뭐라고 하지?” 아내가 대답했답니다. “원수” 남편이 당황하여 말했답니다. “아니 그것 말고 네 글자 있잖아?” 아내가 또 확신에 차서 대답합니다. “평생 원수”결혼할 때 원수로 생각하면서 결혼한 사람은 없습니다. 끝이 좋지 않으면 평생 원수가 됩니다. 인생 여행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끝이 좋아야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신앙생활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어떻게 끝도 좋은 신앙인될 수 있을까요?

 

1. 우리가 끝이 좋은 신앙인이 되려면 마지막까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안에서”에 밑줄을 그어 보십시오. 7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골로새서에서 계속 “그 안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골 1:2; 골 1:4; 골 1:14; 골 1:17; 골 1:19: 골 1:28: 골 2:3; 골 2:9; 골 2:10; 골 2:11; 골 2:12; 골 3:18; 골 3:20; 골 4:7; 골 4:17)

무려 15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무를 비유해서 말한 것입니다. 뿌리를 박는다는 말은 문법적으로 완료형으로 예수님께 단번에 영구적으로 뿌리를 내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앙인을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한 것처럼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7절에서는 그것을 세움을 받아라는 말로 다시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움을 받는 것은 문법적으로 현재시상으로 연속적인 진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터위에 건물을 지을 때 계속 지어지는 것을 비유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고 과정을 예수님으로 이루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성령을 받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4:13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또한 요한복음 14:20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는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다른 말로 하면 끝이 좋으려면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성령으로 시작되지 않은 인생은 끝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끝이 잘못된 사람들은 대부분은 시작부터 잘못되었고 그 과정이 잘못된 결과로 끝도 안좋은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의 후광에 뿌리를 두고 최 씨 일가와 40년 지기 최 씨의 조언에 뿌리를 두고 거침없는 불통 정치를 하다가 결국 끝이 좋지 않게 끝났습니다. 정치인은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정치적 행위를 국민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뿌리를 잘 못 박아 끝이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무엇을 신뢰하고 그것을 신념으로 삼느냐가 중요합니다. 창조론을 신념(전제, 신앙)으로 삼는 사람과 진화론을 신념(전제, 신앙)으로 삼는 사람은 그 결과가 천지 차이입니다. 마음이 무엇인가를 신념으로 삼으로 우리 의 두뇌 지성은 그 신념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익숙한 것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가용성 편향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꾸 자기 신념을 정당화하는 것만 바라보게 되고 그런 자료만 수집하여 자신의 신념을 더욱 정당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귀납법적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아주 비합리적이인 믿음과 결정을 하는 생각의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많은 공부를 했는데도 히틀러를 지지하고, 스탈린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좌파=종북=공산주의, 우파=애국=자유민주주의와 같은 구조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공산주의와 싸워온 역사로 기억하는 사람과 독재와 싸워온 역사로 기억하는 사람은 신념 자체가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편협한 신념에 사로잡히면 합리성이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마비되어 버립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에 역사 교과서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빛만 보지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정서는 자신이 신뢰하는 것을 갈망하게 되고 의지는 그것을 수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뿌리가 잘못되면 끝은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마음의 뿌리를 예수님께 박아야 합니다. 무엇을 시작하든 예수님께 뿌리를 두고 시작해야 합니다. 무엇을 쌓아가든 예수님의 터 위에 쌓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신앙인들 중에서 끝이 잘못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출발 부터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이탈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예수님 밖으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서있어야 할 자리를 이탈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끝이 안 좋은 것입니다. 남편이 자리를 이탈하고, 아내가 자리를 이탈하고, 사장이 자리를 이탈하고, 목사가 자리를 이탈하니까 끝이 안 좋은 것입니다. 아담이 끝이 안 좋은 이유가 바로 인간의 자리에서 하나님 자리로 올라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끝이 안 좋은 이유가 바로 권력을 선물로 받자 교만하여 자리를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께 뿌리를 박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돈과 명예, 세상 권력, 자아 성취, 쾌락, 교만, 인기에 뿌리를 박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입니다. 받았다는 말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로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 삼아 주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뿌리로 출발하고 예수님의 터 위에 쌓아갈 때 신앙인의 인생은 끝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2. 우리가 끝이 좋은 신앙인이 되려면 마지막까지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7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끝도 좋은 신앙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믿음에 굳게 서서”에 밑줄을 그어 보시기 바랍니다.

8절을 같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철학과 헛된 속임수,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유혹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박고 출발했다고 해도 나무에 병충해가 오고 태풍과 가뭄이 오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유혹과 핍박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극복해야 끝이 좋은 수 있습니다.

끝이 안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유혹과 핍박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결혼 생활 잘 못하려고 결혼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다가 유혹과 핍박에 넘어가 변절되는 것입니다. 삼손은 잘 시작했지만 유혹에 넘어가 끝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끝이 좋으려면 변화는 하지만 변절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룟 유다같은 변절자를 싫어합니다. 끝이 아름답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변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은 의욕과 꿈을 가지고 모든 것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혹과 핍박 앞에 변절하게 되고 그 변절로 인해 다시는 만나기 싫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위기 앞에서, 자신의 이해타산 앞에서 절개와 지조를 명예에, 돈에, 쾌락에, 편리에, 이기심에 팔아먹는 것입니다. 시대 상황에 맞는 변화는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끝은 좋지 못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습니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절대 불변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고 유대의 유전을 전통이라고 생각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 못하고 유대주의에 집착하면 끝은 좋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본질 이외의 것을 그것이 전부라고 고집부려서는 안됩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생존'의 시대였습니다. 북한과 싸우고 가난과 싸웠습니다. 반공과 경제건설이 최고의 통치 철학이었습니다.

1980년대는 '민주'의 시대였습니다. 노동3권을 스스로 쟁취했고 군사정권을 끝낸 시대였습니다. 민주화를 외치던 시대입니다.

1990년대는 '개방'의 시대였습니다. 독일이 통일했고 사회주가 몰락했습니다. 40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하던 '군인의 시대'가 끝나고 '기업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금은 무슨 시대입니까? 정보화 시대를 지나 바이오 기술 중심의 5차 산업혁명시대라고 합니다. 소비자 시대입니다. 이제 국민은 '시민'도 아닌 '소비자'가 된 시대입니다. '국민 세대'는 권리보다는 의무를 더 중요했지만 '소비자 세대'는 의무보다는 권리를 먼저 찾는 것입니다. 65살 이상 된 분들은 젊을 때 마을에 텔레비전 한 대와 전화기 한 대였습니다. 40~50대가 어렸을 때는 집집마다 티브이와 전화기가 한 대씩 들어왔습니다. 지금의 20~30대는 티브이와 전화기를 한 대씩 갖고 다닙니다. 모든 것을 선택하는 시대입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상위 0.01%가 1.74%, 0.1%가 4.46%, 1%가 12.97%, 10%가 48.05%의 소득 점유율을 보이고 하위 70%가 18.87%에 불과하고 하위 40%는 2.05%라는 믿을 수 없는 소득 점유율을 보이는 극단의 시대입니다. 비정규직이 600만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지역갈등과 이념갈등의 불이 세대갈등, 계층갈등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도 '누가 옳으냐' '무엇이 정의이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파, 좌파, 패거리 정치, 진영논리로 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호(好), 비호(非好)의 게임으로 바뀌었습니다. 유권자들이 물건을 고르듯 자신의 취향과 느낌, 이익에 맞게 후보를 고르고 있습니다. 정치도 하나의 상품이 되었습니다. 이미지 마케팅을 하는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 세대인 50-70년의 프레임에 갇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직권남용, 독직, 뇌물수수 등에 대하여 자신과는 무관하고 사심을 품지 않았다고 일관성 있게 주장하다 결국 탄핵을 당하고 구치소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분이 수의 번호로 이름이 불리고 일거수일투족 cctv에 감시당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변화에 잘 적응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변절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변절은 아름다운 끝마무리에 구멍을 내어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을 침몰하게 하는 것입니다.

 

변화한다고 헬라철학을 수용하고 세상 초등학문을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박 전대통령도 그분의 말처럼 뇌물 받으려고 대통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하고 경제 개발의 업적을 다시 한 번 이룩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40년 지기라는 최씨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유혹에 넘어가 끝이 안 좋은 것입니다. 사울왕도 가룟 유다도 유혹에 넘어가 끝이 안 좋은 것입니다.

끝도 좋으려면 어떤 유혹이 온다할 지라도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에 근거하여야 하겠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신앙을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결국 끝이 좋지 안습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유혹과 핍박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교훈 받은 말씀과 그 말씀을 들음으로 가지게 된 견고한 믿음입니다. 끝도 좋으신 우리의 영원한 모델이신 예수님께서 수없는 유혹과 핍박을 말씀을 통해 물리쳤습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구원 받은 믿음으로 어떤 유혹에서도 유혹을 물리치고 굳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믿음 밖에 없습니다.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오늘 본문에는 교훈을 받은 대로입니다.

로마서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성령께서 감동을 시켜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능력을 행하는 믿음으로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능력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단지 지식적으로만 아는 믿음으로는 유혹을 이기지 못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19)" 이 믿음이 구원얻는 믿음이나 능력을 행하는 믿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역사적인 믿음입니다. "목사님이 그러다고 하더라,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다." "예수님은 4대 성인 중의 하나다." 이런 식으로 종교적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에 근거한 확실한 믿음으로 유혹과 핍박을 이기고 끝까지 좋은 신앙인으로 남아야 하겠습니다.

 

3. 우리가 끝이 좋은 신앙인이 되려면 마지막까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7절에 보십시오. 예수님께 뿌리를 박고, 말씀을 들은 믿음에 굳게 서서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곳에 다시 밑줄을 그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면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면 무엇을 맺히겠습니까? 오늘 성경에서는 감사의 열매를 맺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끝이 좋은 삶의 결과는 감사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끝이 좋은 신앙생활의 결과는 범사에 감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도 끝이 좋으면 감사로 나타납니다. 기업도 끝이 좋으면 감사로 나타납니다. "기업들의 전쟁"에서는 60년 동안 미국의 오토바이 시장, 70%를 석권했던 할리가 일본 회사 혼다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할 정도로 힘을 잃은 이유를 3 C로 진단했습니다. 자기 만족(complacenct), 과신(confidence), 오만(conceit)라고 했습니다.

끝이 좋지 않는 사람들은 늘 원망과 불평으로 끝을 맺습니다. 끝이 좋지 않게 끝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늘 불만족합니다. 늘 원망합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감격하여 찬양을 합니다. 조금 가니 마라의 쓴물이 있습니다. 원망합니다.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출 15:24)"

신광야에서 양식이 없습니다. 그러자 또 원망합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출 16:2) "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자 또 원망합니다. "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 17:3"고 원망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싫증이 납니다. 그러자 "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 거늘(민 11:5)" 원망합니다. 정탐꾼을 보낸 후에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민 14:2) " 감사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원망 자동기계입니다. 입만 벌리면 원망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면 포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포기하는 사람은 끝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면 주어진 사명을 포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면 맡기신 분에게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면 노아처럼 은혜를 망각하고 술 취해 추대를 부리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는 곧 인격 표현의 최고봉입니다. 인격이 좋지 않으면 끝은 좋을 수가 없습니다.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을 쓴 데이비드 거겐은 국의 대통령들을 연구하여 참으로 끝이 좋은 대통령,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7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인격의 문제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지난 30년 동안 가장 재능 있는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리처드 닉슨과 빌 클린턴이었다고 합니다. 뛰어난 능력도 있었고 호황도 누렸지만 두 사람 다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인격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격이 성숙하지 못하면 걸작품으로 남을 수가 없습니다. 감사는 인격의 기준점이 됩니다. 감사는 인격의 최고봉입니다.

지난 20년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탁월한 정치 지도자로 평가받은 만델라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깨끗하게 정계를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70개국의 정상이 조문한 금세기 최대 규모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무려 27년 간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나이 70이 되어 석방될 때 어떻게 이렇게 감옥 생활에서 건강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답니다. 그 때 그는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 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감사하면 인생은 끝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이방인의 죄를 지적할 때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했습니다. 말세의 특징 중 하나 입니다.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교회를 다니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늘 교회를 늘 원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다. 돌봐 주지 않는다. 뜨거움이 없다. 말씀에 능력이 없다. 비좁다. 프로그램이 없다. 갖가지 구실을 붙여 원망합니다. " 이런 교인들은 끝이 좋지 않습니다.

웰즈는 "완전한 교회를 찾지 마라. 찾을 수 없을뿐더러 찾아낸다 하여도 당신이 그 교회의 교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가정 생활하면서도 남편과 아내, 자식과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남편은 왜 이렇게 돈을 적게 벌어 오는가? 다른 집 남편은 진급을 하였는데, 우리 집 아버지는 왜 이렇게 출세를 하지 못하였는가? 우리 아들들은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가?" 이런 가정 끝이 좋지 않습니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직장을 늘 원망합니다. “왜 월급이 적냐, 왜 일을 많이 시키느냐? 왜 나에게 이런 일을 시키느냐?” 이런 직장인들 끝이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감사하면 끝도 좋아집니다.

 

“감사 감사 예수 감사 감사 예수 감사 감사 예수 내맘에 감사 감사 예수 감사 감사 예수 감사 감사 예수 내맘”

 

끝이 좋은 신앙인의 최고의 모델은 예수님이십니다.

끝이 좋은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까?

마지감까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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