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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7) 섬김 훈련(요13:12-1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078 추천수:4 112.168.96.71
2017-03-26 08:53:29

 

훈련(7) 섬김 훈련

요한복음13:12-17

 

요즈음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통령 선거철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20여명이 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여러 영웅이 각기 한 지방씩 차지하고 위세를 부리는 군웅할거 시대 같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한 교도소에서 어느 날 밤 죄수 한명이 갑자기 소리쳤답니다. "난 다음 달에 대통령이 된다!" 이 말을 들은 옆에 있던 죄수가 말했답니다. "그걸 어떻게 아나?"라고 말하자 "하나님이 나에게 말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죄수가 말했답니다. "내가 언제 그랬어, 짜샤!"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았어도 인간은 누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고 말했듯이 정치적이며 그 밑바닥에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습니다. 두 명만 모여도 남을 지배하고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니체는 일찍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권력에의 의지"라고 보았습니다. '권력에의 의지'를 자기 생존의 유지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파악하고 남보다 우수해지고 남을 지배하려는 의지로 해석하였습니다. 아들러 역시 인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원천을 권력에 대한 의지라고 말합니다.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든 인간의 삶의 모든 단계, 즉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인간의 본성은 바로 우월함에 대한 열망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권력을 차지하고 하는 사람의 욕구는 대단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역시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상대를 지배하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왕이 되면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고 싶어 했습니다. 권력을 잡고 싶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다른 제자보다 자신이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오르고 싶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자신의 아들들을 좌우편에 앉혀달라고 청탁을 하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청만은 아니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직접 간구하였습니다(막10:35). 이것을 지켜본 제자들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열두 제자가 듣고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들도 똑같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장면을 지켜본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7)"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라고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유월절 전 성찬식을 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일곱 가지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녁을 잡수시다가 갑자기 예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신 것입니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둘렀습니다. 제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대야에 물을 떠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의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날씨가 매우 건조해서 거리에 먼지가 많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발이나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외출하고 돌아오면 발을 씻었는데 특히 만찬 자리에서는 주인의 종이 손님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것은 제일 하급 종이 하는 일이었답니다. 대부분 이방 노예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무도 발을 씻겨주지 않고 서로 으뜸이 되고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강력하게 훈련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예수님 스스로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훈련을 받기를 원하실까요?

인간 예수님은 위대한 리더이고, 최고의 탁월한 코치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켄 블랜차드는 『섬기는 리더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십 모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예수님처럼 위대한 리더는 없다는 것입니다. 리더의 평가는 그를 따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제자들은 세상을 변화시켜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은 약 24억 7천 9백만 명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세계에 5백 5십 2만 7천여 개나 있습니다. 탁월하고 위대한 리더인 예수님은 사명과 비전이 분명했습니다. 예수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눅19:10),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요17:7)” 오셨다고 분명하게 사명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제자들을 선택하고 불렀습니다. 제자들을 의도적으로 훈련시켰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선택하고 부르실 때 그들을 부르신 목적과 사명을 분명하게 하였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기 위해 불렀습니다. 탁월한 리더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분명한 비전, 좋은 비전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좋은 비전은 세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목적, 사명. 둘째, 더 좋은 미래상, 셋째, 가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낚는 어부라는 분명한 목적과 사명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라고 명령하면서 미래상을 분명하게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핵심가치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분명하게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예수님처럼 사명을 이루는 리더를 만들기 위해 말씀훈련, 기도훈련, 전도훈련, 순종훈련, 고난 훈련 등 각종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3년이나 훈련을 받았는데 아직도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며칠 있으면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제자들과 헤어져야 하는데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 평생 잊지 못할 아주 강력하게 기억에 남을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무슨 훈련입니까? 섬김의 훈련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고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와 선생으로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으뜸이 되려고 하지 말고 발을 씻겨주는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옳다(오페일레테)”라는 말은 “빚지다, ...할 의무가 있다.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와 선생이 된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발을 씻겨주었으니 너희가 서로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꼭 해야 할 의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선택하신 방법은 ‘섬김’이었습니다. 그 섬김은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자들은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힘으로 로마의 권력을 물리치는 통치와 지배를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섬김을 제자들에게 의도적으로 훈련시키시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한 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닙니다. 발을 씻기신 것은 섬김의 본을 보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인” 것입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본이 훈련에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바로 제자들에게 비전에 맞춰 행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졌던 섬김의 비전을 제자들이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 본은 그들의 마음 판에 깊이 새겨져 제자들로 하여금 평생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리더는 훈련을 시킬 때 지시 행동(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시하기)과 지원행동(말을 들어주기, 결정행위에 참여시키기, 격려하기, 일의 진전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용이하게 해 주기)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지시하는 것을 끝내지 않고 지도하고, 지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지원하고 위임하는 것입니다. 모델을 제시함으로 강력하게 훈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섬김의 훈련을 받기 원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인간의 권력의지는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훈련받지 않으면 본능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교회들의 부정적인 모습의 대부분은 섬김의 훈련의 부족 때문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내 발을 닦아 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어떤 조건이 주어지더라도 섬김의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그만 무엇이 있으면 우리는 섬기기 보다는 섬김으로 받으려는 욕구가 꿈틀거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발을 닦아 주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하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세상 속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크게 구별되는 것은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리더십 네트워크'의 창설자이자 『하프 타임』의 저자인 밥 버포드는, 우리는 생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마지막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때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당신은 예수와 함께 무엇을 했는가?" 둘째는 "당신은 자신의 삶에 주어진 자원들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권력의지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섬김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길 예수님은 원합니다.

 

2. 예수님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섬기기를 원할까요?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행한 것같이 그렇게 섬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이 가장 천한 종이 되어 제자들을 발을 씻어 준 것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신분의 옷을 벗어 던지는 것입니다. 그 신분 영원하지 않습니다. 더러운 발을 닦아줄 수건을 누구에게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섬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수건을 바로 닦을 수 있도록 허리에 두르는 것입니다. 섬김은 준비된 자에게 나오는 것이지 어느날 섬김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준비 되지 않으면 고추 모종, 상추 모종 하나 주는 것도 아깝습니다. 물을 떠 오는 수고를 감당하고, 무릎을 꿇은 낮아짐으로 더러운 발을 씻어 주는 것입니다. 섬김을 자랑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하여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며 그들의 죄를 다 씻어 주었습니다.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섬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섬김의 훈련을 받은 제자들은 결국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실 때 “우리 중에 누가 크나” 또는 “주의 나라에서 누가 권좌에 앉겠느냐”라고 질문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기까지 섬기셨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목격하고 완전히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지배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섬김을 위한 인생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제자들의 삶을 보십시오.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 집을 내어 놓고 기도회로 모일 수 있도록 섬깁니다. 사생활 보호라고 집문을 꼭꼭 닫는 것이 아니라 개방하여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며 삶을 나누었습니다. 말씀을 증거하다 핍박받는다고 주보 한 장 돌리는 섬김도 외면한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 갇힌다고 해도 말씀을 증거함으로 섬깁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주보에 광도를 내지 않아도, 신문에 선행이 대문짝만하게 나지 않아도, 헌금하라고 강요한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눔으로 섬깁니다. 전 재산을 팔아 굶주린 사람을 섬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신도 하루 한 끼 먹고 살기 힘든 경기였지만 음식을 나눔으로 섬깁니다. 남만 섬기라고 하면서 자신은 구경하며 그 섬김의 해택만 누리려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집사가 되기 위한 경쟁의 섬김도 아니었습니다. 생색내는 일에만 얼굴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섬김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섬김이 아닙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섬김은 쉬 지쳐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섬길 때 지속적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의 권력과 유대인의 방해가 심각하고 먹고 살기에도 힘겨운데도 예배당에 모이기를 힘씀으로 섬깁니다. 매일 일어나는 일이 식민지 사회에서 탄압과 더러운 정치인들의 권모술수가 판을 쳤지만 예배당에 모여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찬양으로 섬깁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돌봄으로 섬겼습니다. 세상 지식 듣기에도 바쁜데 초라하게 보이는 나무 십자가의 말씀을 경청함으로 섬깁니다. 복음 전하면 구속될지도 모르는 힘든 상황에서도 전도로 섬깁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와 어려운 현실에 처한 사람들의 회복을 위해 밤새워 기도로 섬깁니다. 가난한 사람의 옷을 해주고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자를 치료함으로 섬깁니다. 살롬으로 서로 인사하며 예의바른 섬김이 이루어졌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 이방나라, 다른 문화권에 나가 복음을 전함으로 섬깁니다. 스데반처럼 외적 보상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면 용서하며 섬깁니다. 섬김은 행사를 위한 섬김이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섬김입니다. 도르가(다비다)는 과부들의 속옷과 겉옷을 지어서 선물함으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않고 사람의 명성을 보호해주는 것 역시 섬김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도 귀중한 섬김입니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고 고난과 아픔을 나누는 서로 짐을 지는 섬김을 한 것입니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섬김이 아니라 몸에 배인 생활화된 섬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순교함으로 섬겼습니다. 숨은 섬김, 작은 섬김, 다른 사람의 명예를 보호하는 섬김, 섬김받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섬김, 서로를 예의 바르게 대하는 섬김, 대접하는 섬김, 말씀을 듣는 섬김, 이웃의 짐을 같이 지는 섬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섬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섬김, 기도의 섬김, 전도의 섬김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배의 공동체가 아니라 섬김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상에 탄생한 것입니다.

그들의 섬김을 통해 허다한 무리들이 주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고 지배의 공동체와 다른 새로운 공동체 섬김의 공동체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섬김을 통한 섬김의 공동체의 확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까 “노동하는 목사의 간 쓸개 다 내주는 사랑”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최정식 목사님의 이야기였습니다. 막노동을 하면서 섬김의 도를 실천하고 있는데 남의 돈을 빼앗아 재단을 만들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 안에서 남을 돕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모르는 이에게 콩팥을 하나 떼어주었답니다. 다른 모르는 이에게 간의 반을 떼어 주었답니다. 또 다른 모르는 이에게는 골수를 기증했답니다. 헌혈도 186번 했답니다. 30년째 하루 한 끼만 먹었다고 합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개신교 수도공동체인 동광원을 설립한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을 스승으로 만나 스승의 삶을 좇아 1일 1식을 하고 4시간씩 자며 영성수련을 했다고 합니다. 스승에게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능력 안에서 남을 섬기는 일을 계속 할 작정이라고 합니다.

 

신문에서 필리핀에서 400여명의 한센인을 섬기는 김명환 선교사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버님이 장로님이신데 어머님께서 한센인을 도왔답니다. 어린 시절 한센인들을 끌어 안으셨던 어머니에 대한 강한 기억 때문에 전도사 시절 2년여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섬겼답니다. 그러나 소록도가 어느 정도 좋아졌기 때문에 2005년 필리핀 '딸라' 지역에 가서 한센인 섬김을 시작했답니다. 세례 중 권총 강도가 들이 닥치기도 하고, 환자를 유기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19세기 말 하와이 한센병 환자 선교를 위해 헌신하다 그 병에 걸려 숨진 데미안 신부와 같이 자신도 병에 걸리게 해달라고 생떼를 부리며 그들을 섬겼답니다. 그의 이러한 열정에 아내가 간호사가 되어 도왔으며 동생 목사도 사역에 동참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 섬김 사역에 동참했답니다. 그런데 2012년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일을 하다 피로가 몰려와 지쳐 있었답니다. 어머니가 잣죽을 끓여주시겠고 끓이려고 하다가 그만 가스통이 터져 어머니가 천국에 갔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센인 섬김을 포기하지 않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의 모델을 예수님입니다. 우리도 섬김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본받아 항상 겸손의 마음을 품고, 섬김의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남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 섬기고, 교회에서 섬기고, 직장에서 섬겨야 하겠습니다.

 

3. 섬기면 어떤 결과가 이루어질까요?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섬기면 손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물질적 복보다는 영적인 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자가 더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역설의 진리입니다. 섬기는 것이 박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존심 상하며 섬기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섬김이 손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섬김이 오히려 복이라는 것입니다. 나만 잘 되고 나만 부자되고 나만 건강하고 나만 출세하는 것만을 복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물론 그것도 복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세상이 건강해 지고 이웃이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것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내 주어진 건강과 재능과 물질과 힘과 지식과 명예와 권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복이 있는 삶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보면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1)" 언젠가는 상급받을 날이 오고야 맙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 7:17)" 우리의 섬김의 눈물을 다 씻어 줄 날이 오고야 맙니다.

 

사탄은 최고가 되는 것이 복이 있다고 유혹합니다. 섬김은 받는 것이 복이 있다고 유혹합니다. 한 번 사는 세상인데 멋지게 권력과 돈을 쥐고 섬김 받으며 살아라고 유혹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지배하고 사는 삶이 훨씬 가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섬김은 창조 질서의 원리입니다. 최초의 인간을 보십시오. 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왜 만들었습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20)"입니다. 도와 주라고 즉 섬기라고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옆에 있는 분 섬기라고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가족들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교회 직분 왜 주었습니까? 계급으로 주었습니까? 서열로 주었습니까?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2)"라고 했습니다.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돈이 많은 자가 진정 복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그 돈으로 섬기는 자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명예와 권력과 지식이 많은 사람이 진정 복있는 사람이겠습니까? 그 명예와 권력과 지식으로 섬기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건강이 있는 사람이 진정 복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그 건강을 가지고 섬기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섬기면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 됩니다. 섬기면 교회가 행복한 교회가 됩니다. 섬기면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섬기면 직장이 행복한 직장이 됩니다.

섬길 것이 없다고 불평하지 마시고 있는 것으로 섬길 때 복이 있습니다.

일명 "없다" 시리즈 유머가 있습니다. <10대 "철"이 없다. 20대 "답"이 없다. 30대 "집"이 없다. 40대 "돈"이 없다. 50대 "일"이 없다. 60대 "낙"이 없다. 70대 "이"가 없다. 80대 "배우자"가 없다. 90대 "시간"이 없다. 100대 "다 필요 없다”> 어느 때나 없는 것은 있고 언젠가는 다 없어질 날이 옵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있을 때를 기다리면 섬길 기회는 없어집니다. 물질 있을 때 물질로 섬기는 자가 복이 있고, 아름다운 미모 있을 때 그 미모로 웃으며 인사하며 섬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건강 있을 때 그 장애인들 손을 한 번 잡아주는 것이 복이 있고, 권력 있을 때 그 권력으로 힘없는 자 돌보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지식과 기술 있을 때 그 지식과 기술로 섬기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누군가를 섬겨준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까? 오병이어 5천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의 음식이지만 그것이 섬김의 도구로 쓰이니까 5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한번 먹을 분량의 가루와 기름만 있었지만 그것으로 엘리야를 섬기니까 기근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는 물론이고 병의 기름도 없어지지 않는 복을 누렸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목자로 있을 때 쓰던 것입니다. 익숙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섬김의 도구로 쓰이니까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통해 수많은 생명을 살려 냅니다.

세상에서도 섬기면 손해되고 박탈되며 없어지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회입니다. 에스더가 황후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때 에스더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통해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 주어진 것으로 섬기시길 바랍니다.

 

회사도 서비스가 우수한 회사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최상의 서비스"라는 책을 쓴 발 지(Val Gee)는 "고객의 68%가 단골이 되지 않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나쁜 서비스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만 고객이 10-20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비스도 상품이다 "를 쓴 칼 알브레히트는 "우수한 제품을 미흡한 서비스로 제공하느니, 차라리 평범한 상품을 우수한 서비스로 제공하는 편이 더 낫다."라고 말합니다. 서비스의 황금률을 "당신이 고객일 때 받고 싶은 대접 그대로 고객들을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섬김은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회사가 잘되고 섬기는 가정이 행복하고, 섬기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고 섬기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승자독식사회'가 복된 세상이 아닙니다. 섬기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1등만이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닙니다. 1등도 다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들은 오래 도록 기억됩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차를 모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워 주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남에게 무엇을 베푸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좋은 동네에 사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이웃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이다"

주어진 인생 섬기지 않아도 썩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후회 없이 섬기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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