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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1) 경건 훈련-경건 훈련의 유익(디모데전서4:6-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791 추천수:6 112.168.96.71
2017-02-05 09:43:16

 

훈련(1) 경건 훈련-경건 훈련의 유익

디모데전서4:6-8

 

전 세계 스포츠 스타 중 2016년 1년간 돈을 가장 많이 번 사람은 누구일까요? 호날두라고 합니다. 작년 한 해 호날두가 연봉ㆍ보너스ㆍ스폰서 등으로 8800만 달러(1010억원)의 수입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호날두가 축구로 어떻게 그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을까요? 공차기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그는 메시보다 재능은 뛰어나지 않지만 노력은 탁월하다고 합니다.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했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형은 마약 중독자였답니다. 어머니가 식당일로 번 월급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갔다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집에 물이 샜다고 합니다. 그의 희망은 축구뿐이었고 공이 없으면 양말 뭉치와 빈 깡통을 찼다고 합니다. 도로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다가 차가 오면 잠시 피한 뒤 다시 했다고 합니다. 15세 때 부정맥으로 축구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훈련을 하였다고 합니다. 스포르팅 리스본 코치는 “호날두는 늘 새벽까지 홀로 남아 양 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드리블 연습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슈퍼스타가 됐지만 요즘도 매일 훈련장에 가장 먼저 나타나 복근운동 3000회씩을 한다고 합니다. 훈련이란 대단한 힘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고된 훈련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군인이 나오고 고된 훈련을 통해 금메달을 따는 선수가 나오고, 고된 훈련을 통해 음악가가 나오고, 과학자가, 기술자가, 예술인이 나오는 것입니다. 훈련없이 탁월한 사람은 나오지 않습니다. 인재는 훈련으로 만들어집니다. 근육도 훈련할수록 튼튼해집니다.

 

1. 경건이란 무엇입니까?

‘경건(敬虔)’은 공경할 ‘경(敬)’자와 정성 ‘건(虔)’자로 되어있습니다. 즉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는 것을 경건이라고 합니다. 헬라어 “유세베이안”이라는 말로 유(좋은) 세베이안(두려움)의 합성어로 선한 두려움입니다. 공연 앞둔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경외을 말합니다. 경건(유세베이안)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공경의 태도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교제하는 것이 경건입니다. Living Bible이라는 현대번역 영어성경에서는 경건을 “하나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사는 것”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되 나의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래서

1) 성경에서는 "경건한 자"를 지칭할 때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의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경건한 고넬료를 말할 때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행10:2)라고 말합니다.

 

2)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말합니다(딛2:1,2). 세속적인 죄나 불의나 더러움과 구별된 거룩한 생활을 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말씀합니다.

 

3)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경건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의미는 성도의 영적, 인격적인 생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회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교제까지 포함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이처럼 경건은 성도의 예배와 거룩함과 사랑의 생활을 총칭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적 예배와 기도생활은 물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경건 훈련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훈련을 싫어하고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훈련 없는 좋은 결과란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훈련의 유익에 대하여 오늘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 이 땅에서 복된 삶을 사는 유익이 있습니다(8)

금생의 유익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육체의 훈련을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약간(프로스 올리곤)이라는 말은 시간의 길이를 뜻하는 ’얼마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일시적, 제한적인 유익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의 훈련도 영혼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 유익이 되지는 않지만 이 땅에 살면서 한시적인 유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경건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복, 천국 복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복도 경건 훈련을 통해 받는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이 훈련되지 않으면 그 회사 잘 되지 않습니다. 훈련되지 못한 직원이 서비스를 하면 그 회사 잘 되지 못합니다. 종업원 훈련이 회사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기술을 훈련하고, 전화받는 법, 인사하는 법, 써비스하는 법, 재무관리를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사의 이미지가 살아납니다. 훈련된 사람이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국 쓰촨성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7000개의 학교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한 중학교 학생만 다 살아났습니다. 상자오 중학교 학생 2323명은 모두 무사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적은 예지핑(55) 교장이 평소에 교사와 학생들에게 재난 대비훈련을 철저히 시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강진이 발생하자 학생들은 평소 연습한 대로 책상 밑으로 몸을 피한 뒤 신속하게 교실을 벗어나 농구장으로 대피했는데 전교생이 농구장으로 모이는 데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 가마이시에서 강진과 쓰나미로 사망 및 실종자가 1000명이 넘었을 때, 이 도시의 초·중학교 학생들은 2924명 가운데 사망 및 실종자는 5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2004년부터 쓰나미와 지진에 대한 방재훈련을 받은 덕분이라고 합니다. 중학생들은 각자 초등학생 한명씩의 손을 잡고 약 1㎞ 떨어진 고지대의 1차 대피지인 양로원으로 뛰었다고 합니다. 중학생들은 초등학생들과 양로원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산으로 뛰어갔는데 이들이 떠난 지 3분 뒤 쓰나미가 양로원을 덮쳤다고 합니다.

 

2) 영육간에 승리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줍니다(8)

경건 훈련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영적 훈련은 몸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 유익을 줍니다(고전9:27 고후 11:7) 경건은 불이익을 주고 피곤하고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큰 이익이 있습니다(딤전6:6) 육신의 건강을 위해 육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경건 훈련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 보십시오. 범사에 유익이 있습니다. 메가톤급 유익이 있습니다.

성경은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벧후2:9)라고 했습니다. 심판날에 구원을 받습니다.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습니다. 육체적 훈련은 금생에 제한되어 있지만 영적인 훈련은 금생에서도 경건한 삶을 살게 할 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과 무한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생과 내생의 약속인 것입니다.

경건 훈련이 잘된 성도들은 사단의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보호받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형통하고 강건해 지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근신하여 의를 행하는 성도에게는 사단이 틈탈 약점이 적기 때문입니다(잠2:11)

가정이 보호됩니다. 이혼율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혼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이 배우자 부정입니다. 간통죄를 폐지하고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을 앞세워 방종하는 것입니다. 훈련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결혼예비 학교, 신혼 부부 학교, 부부 제자 훈련, 가족 힐링 캠프 등을 통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을 경건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제자 훈련을 받으면 탈선하지 않고 미래가 밝아집니다. 필리핀에 한달 동안 연수 같다 온 아이들이 편지를 써 왔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예배드리며 훈련받은 경건의 유익에 대하여 다들 간증하고 있고 열심히 예배드리고 공부하겠다는 다짐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경건 훈련을 받으면 인생이 승리하는 삶으로 전환됩니다. 경건 훈련의 수준만큼 삶의 수준이 향상됩니다.

 

3) 예수 그리스의 좋은 일꾼이 되어 쓰임받게 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경건의 훈련을 받아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선한(칼로스)이란 “훌륭한, 목적에 잘 부응하는”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에 잘 부응하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일꾼은(디아코노스)는 “집사, 그리스도 예수를 섬기는 자”라는 말입니다. 훈련을 받아야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경건의 훈련을 받아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벗어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에게 시험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계3:10). 시험에서 구원을 해 주십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벧후2:9)”

 

망령되고(베벨루스)라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거룩한 것의 영역 밖에 있다는 말입니다(1:9; 6:20; 딤후2:16). 계시된 진리 밖에 있는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허탄한(그라오데이스)는 본래 늙은 여자를 의미하는데 교양 있게 늙지 않은 여자들이 남을 피곤하게 하는 쓸데 없는 말을 하든데서 “허탄하다”라는 뜻이 파생된 것입니다. 신화는 사실이 아닌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이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상처 죄악의 짐, 증오, 질투 미움 던져 버려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거짓으로 미혹하는 자들로부터 계속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말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항구도시로 무역이 성행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하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신전에 살던 신녀들과 예배자들이 벌이는 성적 방종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기호에 맞는 종교를 선택했습니다. 어느 때든지 더 새로운 것, 솔깃한 종교가 생기면 종교를 바꿨습니다. 유대 율법주이, 동양의 신비주의, 영지주의 등 여러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각종 그럴듯한 신화가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신화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날도 우리를 유혹하는 종교 다원주의가 있습니다. 귀를 솔깃하게 자극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진회론적 무신론이 유혹합니다. 유물주의적 무신론이 유혹을 합니다. 훈련받아야 이것들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으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합리적이고 그럴듯하게 우리를 유혹합니까?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다. 천국이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동물에 불과하고 이기적인 유전자의 조합에 불과하며 세상은 권력과 돈과 성이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등학교까지 신앙생활 잘 하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쉽게 넘어져 버립니다.

신천지 이단을 보십시오. 대학에 들어가면 아이들을 설문조사를 통해 동아리 모임으로 유혹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이들은 과잉친절을 베풉니다. 날마다 공부만 하라고 한 부모에게도 받지 못한 친절을 베풀어 줍니다. 신천지인들은 포교가 지상과제이기 때문에 섭외 대상자들에게 과잉 친절을 베풀어서 환심을 사려고 합니다. 상대가 매혹이 되도록, 가족도 베풀지 못하는 친절을 베풀어 줍니다. 포섭 대상자가 신장 투석으로 고생하면 “OO 집사, 내가 신장을 떼서 줄게”라고 합니다. 추수꾼들은 포교를 위해선 간이라도 떼어 줄 정도로 사람들에게 잘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그 사람이 신천지 사람이라고 하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신천지 사람이냐고 오해를 합니다. 포섭에서 제외대상이 되면 안면몰수로 바뀝니다. 밥 먹을 때도 포교 방법을 생각하고, 화장실에 가서도 포교 오직 24시간 포교를 생각하고 회의하고 전략을 짜는 집단입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의문점을 툭툭 던집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 등의 7구절을 던지며 성경공부로 유도합니다. 교회 밖 성경 공부로 안내합니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절대로 비밀로 해 달라고 합니다. 얼마간 이들의 교리를 배우면 그동안 교회에서 들어 보지 못한 것이라고 세뇌되어 버립니다. 공산주의 자들에게 세뇌된 사람들처럼 기성 교회에서 듣는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초반부에는 성경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며 성도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아전인수 격으로 성경 구절들을 연결하여 “이는 성경이 말하는 답이다”라고 합니다. ‘성경은 모두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고 말을 합니다. 복음방 과정을 통해 성경 공부의 중요성, 필요성, 당위성에 대해 가르치며 세뇌합니다. 주로 선악의 이분법, 짜맞추기 비유풀이로 성경을 가르칩니다. ‘씨’는 말씀이고, ‘밭’은 사람의 마음 혹은 교회라고 가르칩니다. <나무 = 사람>, <가지 = 제자>, <잎 = 전도자>, <열매 = 말씀과 성도>, <새 = 영> 등으로 노래로 만들어 외오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오늘 밭에서 씨를 뿌렸다”라는 말을 비유풀이 공식으로 “나는 오늘 교회에서 말씀을 뿌렸다”는 식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그리고 감추어진 영적 비밀을 푸는 것이라고 믿게 합니다.

공중화장실하면 일반인들은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공중= 하늘, 화장= 얼굴을 예쁘게 치장하고 고치는 것, 실=장소”라는 뜻으로 풀어서 공중화장실은 하늘에서 얼굴을 예쁘게 가꾸는 장소라고 풀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맛을 본 사람들은 목회자들의 설교가 밋밋하고 맛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도덕적 교훈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2개월 동안 신학원에서 비유풀이를 집중적으로 배우게 합니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게 보이지만 나중에 가면 끝이 다른 곳으로 인도해 버립니다. 의식화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사상 중독이 되는 것처럼 신천지 교리에 중독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로 사상이 중독이 깊이 되면 절대 전향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50년을 살면서도 전향을 하지 않습니다. 신천지 교리에 중독되면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한국 교회·교계·목회자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목회자를 우습게 여기게 만들고 기존 교회를 구원이 없는 바벨론 집단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위장 교인 추수꾼을 거짓말을 모략이라는 말로 미화시켜 교회를 추수밭으로 둔갑시켜 투입시키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그러는 것입니다.

교회 유력 인사와 친분을 쌓고 교회의 취약한 부분을 틈타 교회의 분열을 도모합니다. 목회자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고 교회를 소란케 하고 어지럽히는 데 앞장서 결국 교회를 파괴하고 점령해 버립니다.

목사 사모도, 자녀도, 장로의 자녀도 신천지에 빠집니다. 결국 이만희 씨가 이 시대의 약속의 목자요 구원자 보혜사라고 세뇌되어 추수꾼으로 교회에 들어와 교인들을 허탄한 신화로 끌어들입니다. 듣지 못한 새로운 것이라고 솔깃해서 빠집니다. 기성 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진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영은 반드시 육을 들어서 역사한다”라고 말하면서 영이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이만희 씨의 육체 가운데 들어와서 그를 통해 역사한다는 주장합니다. 경건의 훈련을 받아야 이런 이단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건강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요9: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그와 교제를 나누시는 분이십니다(시145:19;요14:23,24). 하나님은 기만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3. 경건 훈련을 받아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기서는 말, 행실, 사랑, 믿음, 정결 등 다섯가지 영역을 말씀합니다.

1) 믿음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을 계속 듣지 않으면 금방 믿음이 식어져 버립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도,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도, 승리에 대한 확신도, 용서에 대한 확신도, 인도에 대한 확신도 약화됩니다. 한 달에 한 번 나와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예수님의 부활도 의심하게 되고, 천국에 대한 소망도 살아져 버립니다. 그래서 딤전 6장 3절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 지 읽어 보십시오. 교만해져버리고 변론과 언쟁만 좋아하게 되고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10절을 보십시오, 돈이 마음을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11절을 보십시오. 이것들을 피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란 돈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말씀합니다. 예배와 기도, 전도, 구제, 봉사가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도 잘 되지 않습니다.

 

2) 언어생활에 경건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경건 훈련을 받지 않으면 언어생활을 통해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늘 부정적이고 비신앙적이고, 만나면 남 흉보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험담하는 말을 달고 살면 경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6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려야 합니다(딤후2:16).

 

3) 행함에 경건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디도서 1장 6절에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행함이 있는 경건을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라고 경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가난한 자를 돌보되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함으로 돌보는 것이 진정한 경건생활이라는 말하는데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느날 아는 것이 행함으로 나타나고 습관화되고 인격화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2절에 보면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씀하면서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건한 삶을 산 것입니다.

 

4) 사랑에 경건함이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도 훈련없이는 잘 되지 않습니다. 부모를 죽인 원수까지 어떻게 훈련없이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디모데 후서 3장 5절을 보십시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딤후 3장 2절 이하를 보십시오. 교회는 다니지만 자기 사랑, 돈 사랑, 자랑, 교만, 비방, 부모 거역, 감사하지 않음, 거룩하지 않음, 무정, 원통풀지 않음, 모함, 무절제, 사나움, 선한 것 좋아하지 않음, 배신, 조급, 자만, 쾌락 사랑 등이 바로 경건의 모양만 있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정결에 경건함이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정결해 지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정결하게 사는 것 쉽지 않습니다. 군 생활해 보신 분은 집단 생활하면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체험했을 것입니다. 이성적인 면에서 물질적인 면에서 사상적인 면서서 도덕적인 면에서 깨끗하게 자신을 지키는 것은 대단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깨끗한 그릇이 쓰임받게 되어 있습니다.

“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4. 어떻게 경건 훈련을 받아야 합니까?

1) 계속해서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연단하라”는 말은 헬라어 “귐나제”를 번역한 말로 문법적으로 현재 명령형입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훈련하라는 말입니다. 훈련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자비하리만치 냉혹하고 뼈를 깎는 수고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단련하는 것은 참으로 지루하고 따분하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전쟁에 나가 승리하기 위해 훈련하는 군인이 적당히 하면 결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고된 훈련과 연습을 감당해야 훌륭한 연주자와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습관적으로 익혀지게 하는 것이 훈련입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이론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예배드리고 실제 기도하고 실제 구제하고 실제 전도하고 실제 봉사해야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밭도 가꾸면 옥토가 됩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가꾸지 않으면 잡초만 무성해 집니다.

훈련의 목적인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멈추지 말고 계속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갑자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모세는 40년간 궁중에서 훈련을 받았고 40년간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기음부음을 받은 후에도 17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바울도 바리새인으로 어릴 때부터 철저히 훈련을 받았고 예수님을 만난 후도 광야에서 3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니엘도 특별히 궁중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을 받아야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12) 훈련을 받아야 사역의 진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15)

 

2)경건훈련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버려버려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TV, 영화, 취미생활, 컴퓨터 게임, 술, 도박 등이 경건생활을 방해한다면 과감하게 버려버려야 합니다. 취할 것을 지속적으로 훈련을 하여 향상 시켜야 합니다.

디도서 2장 12절에서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말씀하였습니다.

 

3) 말씀과 기도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무엇으로 훈련합니까?

믿음의 말씀은 참된 복음의 말씀을 말합니다. 선한 교훈은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가르침을 말씀합니다. 선한 교훈은 믿음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따르다는 것은 “옆에서 바싹 따르다 어떤 일에 열중하다”라는 말입니다. 양육받으리라는 말씀은 문법적으로 현재 분사로 한 번 받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딤전 4:5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가장 기본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멀리하면 결코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배의 정기적으로 드려야 합니니다. 성경 읽기, 기도하기를 정기적으로 하여야 합니다. 마을 모임, 구역 모임, QT를 정기적으로 하여야 합니다. 훈련은 정기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탁월한 군사가 되려면 탁월한 일꾼이 되려면 고강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으로만 안주하지 말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훈련을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은 제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경건한 생활을 위해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목사는 늘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첫째, 너는 항상 기도하는가? 둘째, 너는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셋째, 너는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넷째, 너는 욕심내는 것이 없는가? 다섯째, 너는 두려워하는 일이 없는가? 여섯째, 너는 네 중심에 연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일곱째,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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