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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망(5) 범사에 순종하게 하옵소서(삼상15:22-2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080 추천수:2 112.168.96.71
2017-01-29 08:48:23

 

새해 소망(5) 범사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사무엘상15:22-23

 

어제는 민속 명절인 설날이었습니다. 설날이 되면 부모님과 어른에게 세배를 합니다. 세배를 할 때 늘 하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누구나 사람들은 복을 받고 사는 삶을 원합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할 때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역할 때는 화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의 법칙에는 자연법칙이 있고 도덕 법칙, 영적 법칙 등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법칙을 어기고 독약을 먹어 보십시오. 죽습니다. 심장도, 폐도 뇌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중력의 법칙을 어기고 13층에서 떨어져 보십시오. 죽습니다. 도덕 법칙을 어기고 죄를 지어 보십시오. 감옥에 갑니다. 영적인 법칙을 어기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할 때 영육간에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형통하고 강건한 축복도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병든 사람은 의사의 약처방 따라 약을 먹어야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승진하고 싶은 직원은 사장의 말에 잘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건강해지고, 잘되고, 행복해지고 형통해 집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면 인류는 복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복된 삶을 잃어 버렸습니다. 롯의 처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명령을 불순종하고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노아 홍수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다 결국 홍수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벧전3:20).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였습니다(민14:26-39). 요나가 불순종함으로 처절한 고통의 늪 속에 들어갔습니다.

 

한 번 따라서 하겠습니다. “순종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범사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현대인들은 순종을 구시대의 유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창의성과 자율성, 개성을 살리는데 순종은 독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할 때 형통하고, 순종할 때 복을 받고, 순종할 때 명예를 누리고, 순종할 때 건강해지고, 순종할 때 장수하고, 순종할 때 부유해지고, 순종할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J.S. 밀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선은 순종 속에 포함되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H. 자일스는 "진정한 순종보다 더 거룩한 것이 없고, 더 고상한 원리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올 한 해 범사에 순종하므로 복받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순종하시길 원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철저히)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순종할 때는 온전히(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적당히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순종하는 체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하면 공부하는 체만 하는 아이들은 성적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사장이 일하라고 하면 일하는 체만 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승진할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사울왕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왕입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막내아들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그가 졸지에 왕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왕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탄핵 재판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복인 왕위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이겠습니까? 아말렉과 전쟁을 하였습니다. 아말렉은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처음으로 그들의 길을 막은 족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아말렉은 사탄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족속입니다. 이 사람들은 간교하게 이스라엘의 후미를 공격해서 노약자와 어린이 병자를 공격하여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힌 민족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계속 괴롭혔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대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말렉을 멸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철저히 심판하라고 말씀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철저히 시행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은 새로운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될 때마다 항상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명령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에게도, 인류의 새로운 선조인 노아에게, 택한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도 동일하게 온전한 순종을 명령합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성소를 만들던 때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는 말씀이 열아홉 번이나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하신 대로 다 행한 후에야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 중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실 때도 광야 사람들이나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들이나 결론적인 말씀은 순종(레26장 신28장)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이 임명될 때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완전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보세요.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남겨 놓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으로 볼 때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왜 짐승까지 죽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가 하나님의 통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아담처럼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된 것이 성취된 것이 보시기에 좋은(토부)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일치되지 않는 것이 악인데 자기 스스로 선이라고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니까 온전히 순종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성 프란체스코가 수도원에 있을 때의 일이랍니다. 수도사가 되겠다는 두 사람이 수도원을 찾아왔답니다. 그때 그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을 했답니다. "배추를 거꾸로 심어라." 한 사람은 프란체스코의 말대로 순종했고, 또 한 사람은 "말도 안 된다"라며 제대로 심었답니다.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사로 입문하게 되었고, 제대로 심은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는 순종의 사람을 원했답니다. 하나님은 초대 왕을 세울 때 아담과 하와처럼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여 에덴의 축복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온전히 순종하는 대리 통치자로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합니까?

20절을 보세요.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끌어 왔습니다. 아각왕을 살려두었습니다. 전쟁 승리의 업적을 삼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내겠다는 것입니다. 명예 앞에서 철저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적당히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하는 체 하는 것입니다. 100%가 아니라 80% 순종한 것입니다. 부분적인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다만이 문제입니다. 이 때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아담이 에덴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민 32: 11은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민32:11)“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은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민 32 : 12, 14: 24, 신1:36, 수14 : 9).

에덴동산에서부터 성경의 마지막까지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22:14에서 "그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라고 말씀합니다. 12:17에서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을 설명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기록하였고, 14:12에서는 성도들의 인내에 대해 설명하면서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낙원의 상실에서부터 회복에 이르기까지 그 법칙은 변함이 없이 생명나무와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오직 순종뿐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번번이 실패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불순종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고 요한계시록에서의 순종은 다시 그 길을 회복케 했습니다. 그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또한 빌립보서 2:8-9 "…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그리고 히브리서 5:8-9 "그가… 순종함을 배워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이처럼 그리스도의 모든 구속사역의 목적은 순종을 다시 회복하는 데 있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청명한 하늘에 거대한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노아는 바로 예수님의 모형이었습니다(창6:22).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온전히 순종한 아브라함도 마찬가지 입니다(창22:1 이하).

롬 5장 19절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 2장 5~12절)”하였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고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자격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면 적당히 순종할 것이 아니라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50%만 순종하려고 하지 말고 100%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순종은 동의와 다른 것입니다. 내 뜻에 맞는 것에 따르는 것은 동의입니다.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것만 따르는 것은 동의입니다. 순종은 이해되든 안 되든, 내 맘에 맞는 안 맞든 따르는 것입니다. 말씀한 분의 권위와 능력, 인격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할 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롬6:17; 엡6:5; 대하34:31)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기쁘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사1:19). 세상 나라 사람들과는 구별된 하나님의 통치권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용서하라고 하면 용납이 안되어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고 하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라고 하면 상황이 안 되어도 전도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말씀으로 훈계하라고 하면 현대 교육철학에 맞지 않아도 말씀으로 훈계하는 것입니다.

순종의 질은 축복의 질이 됩니다. 순종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입니다. 순종지수가 높아야 삶의 질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철저히,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올 한 해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여 복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왕상 2:3)"

 

2.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할 때 끝까지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순종의 질입니다. 끝까지는 순종하는 것은 순종의 시간문제입니다. 순종을 통한 성화를 말씀합니다. 순종의 계속성을 말합니다. 오늘은 순종하다 내일은 순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 순종으로 끝나기 원치 않습니다. 밥 한 번 먹고 죽을 때까지 배부른 것 아닙니다. 축복은 순간순간의 순종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울은 어릴 때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준수한 소년이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미남이었다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크다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해서 산지사방을 돌아다닐 만큼 순종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의 모습은 사무엘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스스로 작게 여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 순종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축복을 받아 왕으로 기름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지금은 어떻습니까? 최고의 권력을 잡고 부해지고 왕의 명령 한 마디면 산천초목이 떠는 권력을 가졌을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가 탈취하기만 급급한 것입니다. 셋째가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는 것을 행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누구의 목소리를 들은 것입니까? 백성의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것입니까? 자신이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시선을 옮기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돈에게, 권력에게,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것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은 상대적인 것이 되어 버립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유익이 될 때만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온 것입니다. 그의 부가 누구에게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온 것입니다. 사람이 부족하고 연약할 때는 잘 듣습니다. 그러다 조금 높아지고 있어지면 교만해 집니다.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릇이 차 있으면 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알면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버립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의 복을 잃어버린 것도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얼마 전에도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13장 9절을 보십시오.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입니다. 사무엘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자신이 하나님께 화목제와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월권을 행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제사장 역할을 해도 괜찮은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위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왕이 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때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왕위를 패하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공으로 통치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망각하고 결국 악령에 사로잡혀 시기와 미움으로 다윗을 죽이려는데 마음이 빼앗기고 맙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이렇게 타락해 버립니다.

우리는 순종하되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조금 높아졌다고 조금 안다고 교만 떨지 말아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되어도 순간순간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당연히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려고" 부르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니 우리도 이 의에 대하여 순종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은 바로 참된 거룩의 출발점입니다. 벧전 1:22에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특징의 유일한 보증이라고 말씀합니다. 요일 3:18-22에서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중국의 순 임금이 신하들을 다 불러 모았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큰 항아리 하나를 주면서 "이것을 왕궁 뒤뜰에 있는 우물곁으로 가지고 가서 그곳에 있는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길어서 항아리를 가득 채워라"고 명령했답니다. 중간에 구멍이 난 항아리였답니다. 꾀 많은 신하들은 구멍 난 항아리를 보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 자리를 다 떠났답니다. 그런데 신하 중에 우직하고 신실한 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물론 그도 구멍 뚫린 항아리를 물로 가득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임금님이 말씀을 하셨으니까 그 말씀을 어찌 이행하지 아니하리요."하면서 계속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길어다 항아리에 부었답니다. 아무리 부어도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지 않았지만 임금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온종일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는 계속해서 물을 담았답니다. 마침내 우물물이 바닥을 드러내었답니다. 바닥난 우물에는 큰 황금 덩어리 하나가 있었답니다. 깜짝 놀란 신하는 그 황금 덩어리를 꺼내어 임금에게 갖다 바쳤답니다. 그러자 순 임금은 그것을 보고서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것은 임금의 말에 순종하는 충신에게 주기위해서 하늘이 내린 상급이니 그대가 그것을 가지도록 하게." 순종은 때로는 손해가 되는 것 같고, 순종은 때로는 우둔하게 보일 수 있으며, 순종은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순종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청명한 하늘에 거대한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노아(창 6:22),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한 아브라함(창 22:1 이하), 이성과 상식에 맞지 않는 아버지의 지시에 묵묵히 순종하는 이삭 등은 순종을 통해 축복을 누린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다윗 보십시오. 최고의 권력을 가졌을 때에 성전을 건축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단선지자가 피를 너무 많이 묻혀서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얼마든지 어기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순종을 합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해 놓고 그것으로 마칩니다.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안 된다고 합니다. 선교의 명장입니다. 판단력이 있습니다. 예측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 된다고 하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죽기까지 순종을 합니다.

 

그러나 사울을 보십시오. 전쟁에 이기고 무엇을 합니까? 15장 12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웁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영광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교만이 극치에 이르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긴 것이 자기의 힘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앉게 해 주시고, 능력 주기고 은혜 주어서 승리한 것입니다.

명예욕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극복하지 못하면 진정한 순종, 끝까지 순종하는 순종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잘못을 지적합니다. 그 때 그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왕이 순종하지 않아 버렸다고 하니까 그가 사무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30절 보십시오.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 앞에서 자신을 높여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자고 하면서 자신을 높여주기 위해 예배를 같이 들이자는 것입니다. 결국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사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레셋과의 마지막 전투 길보아산전투에서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생명을 잃고 맙니다. 그는 스스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의 생이 이렇게 비참하게 끝이 났습니까? 16장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버려 버린 것입니다. 15장 23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조금 배우고, 조금 돈이 생기고, 조금 살만하고, 조금 세상에 명예를 얻고, 조금 권력을 받으면 교만해져 하나님 무시하면 안 됩니다. 불순종합니다. 삼손이 불순종하다 결국 포로가 되고 눈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순종하여 복 받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누가복음 2:51).

순종 교육은 모든 교육의 기본이고, 인성 교육의 근간입니다. 하나님은 자녀의 순종 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라고 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를 놓치지 말고 조기에 순종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캐츠(Joseph Katz)는 지난 20년 간 보고된 연구들을 종합한 결과 유아기의 경험은 한 인간의 생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유아들은 매 발달 단계마다 적절히 이루어야 하는 발달적 과업이 있는데 미국 심리학자인 해비거스트에 의하면 개인의 생애 중 어떤 특정시기에 나타나는 과업을 잘 성취하면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아기는 신체발달, 감성발달, 기본생활 습관형성, 친구사귀는 기술의 발달, 뇌 발달, 학습태도형성, 지적능력의 발달 등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시기로 이때의 경험은 이 후기 발달의 기초가 됩니다. 특히 기본생활 습관형성의 측면에서 보면, 예절 지키기, 청결 유지하기, 질서 지키기, 절제하기 등과 같은 기본습관이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이 때 한 단계의 발달이 잘못되면 다음단계 발달에 나쁜 영향을 미쳐서 초기 잘못은 성장해갈수록 누적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가급적 조기에 교정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초기에 잘못된 경험으로 발달에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경우, 그 이후에 초기의 잘못을 알고 그것을 보상하여 충분한 자극과 경험을 제공하여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고 합니다. 유아기의 발달이 잘못되면 후에 아무리 노력을 많이 해도 그 결손을 완벽하게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복받는 삶을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순종과 예절 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합니다. 부모에게 존댓말을 쓰게 하고 아침저녁으로 인사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예절 교육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릴 때 시켜야 습관화되지 중학생이 되면 이미 때가 늦습니다. 순종교육도 적기가 있습니다.

순종이란 말 속에는 신뢰, 긍정, 수용, 모방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녀들이 부모를 신뢰할 정도로 부모는 신실성을 유지하여야 하며,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모방하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순종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가 거세게 저항한다고 물러나지 말고 부모는 권위를 가지고 단호하고 "아니다"라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아이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악을 쓰며 질러대는 비명소리에 물러서면 순종 교육은 그만큼 물 건너가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자기 방 청소하기, 자기 밥그릇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기, 설거지하기, 심부름하기 등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게 작은 것에서부터 순종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순종을 강요하면 아이들은 수동적이 되고 자율성이 약화되며 창의력은 말살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조직의 기본은 순종입니다. 성경은 자녀가 잘 되는 길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예수님은 고난을 겪으면서까지 순종하였습니다(히브리서 5:8). 예수님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순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순종의 완전 모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므로, 부활의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빌립보서 2:8). 우리는 예수님처럼 끝까지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조금 안다고 으스대며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 2:30)"

 

3. 하나님은 우리가 불순종의 길에서 순종의 길로 돌이키길 원하십니다.

아담의 후예인 우리는 누구나 우리는 불순종할 수 있습니다. 불순종한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합니다. 내 귀에 양의 소리와 소의 소리가 들려오는데 하나님께서 양과 소도 다 죽이라고 했는데 어찌 된 것입니까? 라고 물어 봅니다. 그 때 사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핑계를 댑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것은 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백성에게 돌리고 하나님을 악하게 이용하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핑계대는 것처럼 똑같이 초대왕 사울도 가나안 땅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들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백성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여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백성 핑계를 댑니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워 버리는 것입니다. 솔직히 잘 못은 시인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면 될 텐데 그렇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멋대로 드리는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은 받지 않습니다. 시날 평지에서 자기 생각대로 바벨탑을 하나님을 흩어 버렸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습니다(민3장). 웃시야 왕이 나라가 부강하게 되자 교만해져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스스로 하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대하26장).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를 받고 싶어 하시지 아말렉의 짐승으로 예배를 받고 싶은 분이 아닌데도 제멋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했다고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사실은 탐욕인데 그것을 감추고 하나님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서 환경 핑계를 댑니다. 부모님 핑계를 댑니다. 자신의 머리 핑계를 댑니다. 공부하지 못한 이유가 자신이 순종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나쁘고, 부모님이 학원을 보내 주지 않아서이고, 공부방이 없어서이고, 친구들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사업을 못하는 이유가 도와주는 이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목사의 설교가 은혜가 되지 않아서라고 핑계를 댑니다.

우리 하나님은 불순종의 길에서 불순종의 핑계를 찾기를 원하지 않고 바로 회개하고 순종의 길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할 것 없은 의인을 원하지 않고 회개하는 죄인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회개할 것 없는 의인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찾아 구원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자꾸 우기고 변명하고 핑계댈 필요가 없습니다. 깨끗이 자복하고 순종의 길로 돌아 서면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윗과 사울을 비교할 때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어쩌면 다윗이 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금하신 인구를 계수하다가 수많은 백성들이, 온역으로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선지자의 지적에 바로 회개하고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은 어떻습니까?

그 때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6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밤에 다 알려 주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19절 보세요. 백성이 문제가 아니라 왕이 하나님 말씀을 청종치 않은 것이고, 왕이 탈취하기만 급급한 것이고, 왕이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는 것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 지적을 받으면 항복해야 하지요. 하나님 잘 못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명령에 따라 절대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사울을 보십시오. 20-21절을 보세요. 나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이 마땅히 멸할 것을 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다시 말씀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아말렉 제물로 제사드리는 것 하나님이 안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원하시지 그런 불순종의 제사 받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왕은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퇴출되었다는 것입니다. 불순종이 얼마나 나쁜 죄인가를 보십시오. 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제사보다도 낫고, 반대로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

어 하시는 사술의 죄나 우상에게 절하는 죄보다도 더 무서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자신이 범죄했다고 시인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왕이 이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죄를 사해 주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결국 무었을 위한 예배입니까? 30절을 보세요. 자기 이름 내기 위한 예배, 자기체면 세우기 위한 예배입니다. 결국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 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빨리 회개하고 순종의 길로 돌아오면 복 받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 순간 불순종하여 축복보다는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순종하면 순종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불순종은 멸망의 통로입니다. 순종의 길로 돌이키는 데는 늦은 시간이 없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도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공로로 불순종에서 회개하면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해 주십니다. 모든 죄를 도말해 주시고 기억치도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불행해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불순종에서 회개하고 돌아와 순종하고 복받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집을 떠난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렘 7:23)”라고 했습니다.

 

만약 지금 불순종의 길을 걷고 있다면 순종의 길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불순종의 길은 불 보듯 뻔한 결과입니다.

어느 때든 불순종에서 회개하고 순종의 길로 돌아서면 축복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는 죽음 직전에서 돌이켜 용서받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순종의 길로 돌이키기만 하면 축복의 길은 열립니다.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순종하다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 그 자체가 최고의 성공이고 순종이 최고의 복이며, 순종이 최고의 섬김입니다. 순종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순종을 잃었습니까? 축복의 통로인 순종을 회복해야 합니다.

신명기 28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어떠하며(1-14),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리는 저주가 어떠한가를(15-68)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1),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1), 모든 복이 네게 임하고(2),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8,12).

순종하면(레위기 26 : 1-13) 비를 주시되 때에 맞게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4). 곡식을 여유있게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5,10). 평화를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6). 수를 초월한 승리를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7,8). 하나님께서 그들을 싫어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11).

 

그러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15,58), 모든 저주가 네 게 임하고(15,45,46), 모든 일에 저주가 임하고(20), 모든 민족에게 놀램, 속담, 비방거리가 되고(37), 모든 경내의 열매가 떨어지고(40), 모든 나무의 소산을 메뚜기가 먹고(42). 모든 성을 원수가 에워싸고(52,53,55), 모든 질병을 네 게 불겠다고 했습니다(60,61). 순종 안 하면(레위기 26:14-20) 우리가 하는 노력이 헛수고로 끝날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힘들여 지어 놓은 농산물을 대적이 와서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레위기 26 : 16, 신 28:33, 렘 5 : 16,17, 호 8 : 7, 삿 6 : 3). 하늘이 철과 같이, 땅이 놋과 같이 굳어져 비가 안 오니 헛농사가 된다는 것입니다(레위기26 : 19,20, 신 28: 23,24). 대적도 안 오고 비도 잘 와서 농사가 잘 되었다 하더라도, 메뚜기가 와서 그 잘된 농작물을 다 갉아먹으니 헛농사가 된다는 것입니다(신 28:38). 일군이 죽도록 고생하여 번 삯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게 되니 헛수고가 된다는 것입니다(학1:6).

순종을 구약 시대의 율법으로만 생각하며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얼마나 철저히 순종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 (요 14:23)”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0)”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4)”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니 순종은 필요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만큼 영혼이 깨끗하게 됩니다.(베드로전서 1:22) 우리가 순종한 만큼

성경의 공식은 단순합니다. 순종하면 복이 오고, 불순종하면 저주가 임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순종하면 물질적 축복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함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에 뿌리내릴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순종으로 믿음은 자라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순종하면 성령의 능력과 은혜로 복을 받는 신비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서는 순종하며 사는 사람에게 임하는 영적 권세에 대해 이런 확신을 줍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순종하는 자가 영적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기꺼이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신속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즐겁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는 마음으로(롬 6 : 17), 즐겨(사1:19),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서 1장 19절에서는 "너희가 즐겁게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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