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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8) 모든 사람이 서로 섬기기를 원하십니다(마가복음 10:45)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195 추천수:3 112.168.96.71
2016-10-23 07:45:39

 

하나님의 마음(8) 모든 사람이 서로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마가복음 10:45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돈 많은 분이 질병에 걸렸답니다.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면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질병을 고치려 교회에 나가게 되었답니다. 목사님께 말했답니다. "목사님, 제 질병이 치료되어 생명이 연장된다면 제가 교회를 건축하겠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님은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를 하였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질병이 깨끗이 나은 것입니다. 약속대로 땅을 사고 교회를 건축했답니다. 교인은 많아졌고 그분은 그 교회 장로가 되었답니다. 목사님은 장로님을 교인들에게 자랑했답니다. 땅을 사고 교회를 건축한 분이 장로님이라고 새로 오는 사람에게 소개했답니다. 사람들이 장로님을 잘 섬겨 주었답니다. 무엇을 하든 앞세워 주고, 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따로 장로님 방에 차려 주었답니다. 교회에서 왕처럼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큰 교회 목사님은 제국의 황제처럼 대접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연세가 들어 돌아가셨답니다. 천국에 간 것입니다. 천국식당에 가서 앉아있는데,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와서 뭘 드시겠냐고 물어보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참다못한 장로님은 지나가 버리는 한 종업원을 억지로 붙잡고 따졌답니다. "왜 물도 갖다 주지도 앉고 뭘 드시겠냐고도 물어보지도 않는 거요? 천국 서비스가 뭐 이래요? 천국이 우리 교회보다 못하네요?" 종업원이 하는 말, "장로님, 여기는 셀프서비스입니다." 그 말을 듣고 장로님이 다시 질문했답니다. "그러면 왜 저기 있는 사람들은 셀프서비스가 아니고, 종업원들이 서비스를 직접 하는 거요?" "아 저분들 말입니까? 저 분들은 집사님들과 평신도들입니다. 저분들께서는 지상에서 서비스를 항상 남에게 베풀고 남을 잘 섬겼기 때문에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종업원의 이 말에 장로님은 황제처럼 대접을 받았던 목사님을 생각하며 다시 물었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목사님은 어디에 있소? 보이지를 않는데............" 종업원이 말했답니다. "아 그 목사님이요? 지금 막 배달 나가셨어요." 사람들은 섬김 받기를 좋아합니다. 이룬 성과와 업적으로 끝없이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출세하는 것도 섬김을 받으려고, 지방 자치단체 장이나 의원이 되는 것도 섬김을 받으려고, 교회를 건축하고 부흥시키는 것도 섬김을 받으려고, 사업을 크게 하는 것도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섬김받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 때 유행어였던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함께 쓴 '승자독식사회'에 의하면 사람들은 몇 달러 혹은 몇 십 달러를 더 내는 한이 있더라도 최고 가수 음반을 구입하지 보통 이상의 재능을 보이는 가수 음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사회가 되다 보니까 최고로 예쁘고, 잘생기고, 재능 있는 연예인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됩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만 모든 관심이 집중됩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 동메달도 대단한 것인데 금메달 못 땄다고 눈물을 흘립니다. 기업도 그 분야에서 최고만 알아주고 책도 베스트셀러만, 심지어는 교회마저 최고의 교회만 찾고 있습니다. 설교도 최고의 목사의 설교만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할까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인생의 목적을 섬김에 두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은 달랐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3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영광중에서 우의정 좌의정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섬김의 자리, 지배의 자리, 인정받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장로님이나 권사님, 안수집사님이 되는 것입니까?

마태복음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이모입니다. 그러면 다른 제자들은 왜 예수님을 따라다녔을까요? 4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열두 제자가 듣고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들도 똑같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목적이 우의정 좌의정에 있었다는 속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오직 권력의 힘, 명예의 힘, 물질의 힘, 인기의 힘, 건강의 힘, 지식의 힘을 을 차지하기 위해 예수믿고 교회에 나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결혼한 목적, 정치하는 목적, 교회 다니는 목적, 사업을 하는 목적, 공부 열심히 하는 목적이 무엇이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섬기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말구유에 탄생하신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섬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섬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섬김의 비전, 섬김의 목적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사람을 섬기고, 가정을 섬기고, 세상을 품고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계속 우리를 유혹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처럼 되라고 유혹을 합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을 할 때도 사탄은 유혹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사탄에게 엎드려 경배하라” 그러면 어떻게 해주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사탄은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최고가 되라고 말합니다. 섬김받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한 번 사는 세상인데 멋지게 권력과 돈을 쥐고 섬김 받으며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지배하고 사는 삶이 훨씬 가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유혹에 초대왕 사울이 넘어졌습니다. 아간이 넘어졌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넘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가 넘어졌습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던 니골라가 넘어졌습니다.

 

권력의 의지를 가지고 권력욕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 됨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나라의 특징입니다. 4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상 권력은 자기가 왕이 되어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세상 원리를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구나 섬기는 것보다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최고가 되기를 원하고 최고를 좋아합니다. 자신을 대접하지 않으면 얼마나 불쾌하게 생각합니까? 교회의 직분을 서열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임직자 투표에서 장로가 되지 않고, 권사나 안수집사가 되지 못하면 목사를 대적하기 시작합니다. 고약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피해를 주려고 합니다. 편 가르기를 하여 자기 세력을 만들어 상대를 대적합니다. 왜 나를 알아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왜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에 대학교 때 기숙사 한 방에서 살았던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약 35년만에 한 방에 있었던 4명이 우리교회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부임을 하여 10여년 넘게 성실히 목회하여 교회가 부흥되고 건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헌당식을 끝마친 다음 주에 일부 교인들이 당회장실에 찾아와 교회를 사임하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분들은 자신이 그 교회에 부임하는 것을 반대했던 사람들이었답니다. 부임하려고 할 때 공동의회에서 통과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와 부임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왜 사임을 하여야 하느냐고 물어보니까 설교를 복사하여 한다고 증거를 내밀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설교한 것을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설교원고를 다 내어놓고 설명을 했답니다. 본문은 같지만 내용을 달리 설교를 한 것을 보여주니까 더 이상 트집을 잡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다시 여자를 사귄다고 나가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거를 대라고 했더니 증거를 대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좌지우지하려는 인간의 못된 습성이 교회 생활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자기 친구 목사님의 교회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딸을 결혼시키는데 믿지 않는 집안에 결혼을 시켰답니다. 사위될 사람은 교회에 나오는데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그 집이 가난했으면 시비를 걸지 않았을 텐데 그 집안이 부자였답니다. 그러자 평소 목사님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장로 한 사람이 선동하여 목사님이 돈만 좋아한다고 소문을 내고 일부 불만 있는 교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모아 그것을 시비하여 사임하라고 압력을 가했답니다. 결국 그것으로 교회는 세 패로 나누어졌답니다. 목사님 지지파, 반대파, 침묵파로 나누어져 행복했던 교회가 졸지에 불행한 교회가 되었고 결국 교회는 분리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고 말했듯이 인간은 정치적이며 그 밑바닥에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습니다. 니체는 "이 의지가 존재의 가장 심오한 본질이며 삶의 근본 충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아들러 역시 인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원천을 권력에 대한 의지라고 말합니다. 권력에 대한 의지로 발동하는 서열의식은 인간 속에 내재된 생존본능입니다.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든 인간의 삶의 모든 단계, 즉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인간의 본성은 바로 우월함에 대한 열망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권력을 차지하고 하는 사람의 욕구는 대단합니다. 사울은 자기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집요하게 쫓아다녔습니다.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의 왕위까지 빼앗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의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왜 교회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행복하지 못합니까? 왜 교회 생활이 재미가 없습니까? 왜 만족하지 못합니까? 왜 다른 사람을 험담합니까? 왜 목회자를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까? 왜 하나되지 못하고 다툽니까? 이유는 명확합니다. 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치가 왜 이렇게 낙후되어 있습니까? 섬김의 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섬김은 섬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을 위하여 또 다른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준 건강, 나에게 준 지식, 나에게 준 미모, 나에게 준 경제, 나에게 준 달란트를 가지고 참으로 멋지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보고 가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어려움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품고 섬겨야 하겠다는 비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섬겨야 하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창조 질서의 원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들었습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20)"입니다. 도와주라고 만든 것입니다. 지배하고, 다투고, 서열 경쟁하고, 권력욕을 가지고 다스리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섬기라고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옆에 있는 분 섬기라고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가족들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교회 직분 왜 주었습니까? 계급으로 주었습니까? 서열로 주었습니까?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2)"라고 했습니다.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월요일 날 힘들었던 한 목사님의 간증을 듣던 교회를 개척하여 900여명이 출석한 교회를 이루어 행복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 자기 교회 간증을 했습니다. 대형교회에서 개척하여 100여명이 같이 시작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장로님이 개척맴버로 따라 나왔다고 합니다. 그 장로님이 얼마나 교회를 잠 섬기는지 목사님 험담을 하고 다니는 사람 야단을 치고, 돈을 풀지 않는다고 말하면 내가 교회 재정이 어려우니까 절약하자고 했다면서 총대를 다 맵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대장노릇하려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으면 목사님 대신 장로님이 가서 야단을 쳤답니다. 7년 동안을 그렇게 교회를 섬겼답니다. 그래서 교회가 2400평의 땅을 사고 1000여평의 교회를 건축하고 900여명 나오는 교회로 부흥되자 자기가 대장노릇할 것같다고 다시 본 교회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얼마나 멋진 섬김입니까? 영국 속담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하루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동안 행복하려거든 여행을 하라. 한 달 동안 행복하려거든 집을 사라. 일 년 동안 행복하려거든 결혼을 하라. 일평생 행복하려거든 이웃을 섬기라"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섬김의 비전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종으로, 죽기까지 섬김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섬김의 비전을 가지면 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섬겨야 하겠습니까?

높아지려고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십자가의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섬김의 방법으로 예수님이 택한 목숨까지 버리는 그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자신 있게 말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잘합니다. 그 자리가 탐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고 그 자리에 오르는 희생과 수고, 고난은 회피합니다.

교회에서 장로님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새벽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헌금도 하지 않습니다. 전도도 하지 않습니다. 봉사도 하지 않습니다. 목회자의 험담이나 하고 다닙니다. 교회 비판하는 교인들을 보고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헌금 생활, 예배 생활, 봉사생활을 보십시오. 겨우 주일 한 번 신앙생활하면서 잘 믿는체 위장하는 것입니다. 간첩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 편 만들기 위해, 상대를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이용해 먹기 위해 포장하고 위장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담임목사의 흠을 잡아 비판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나팔을 불고 다닙니다. 자신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간접적으로 자기를 높이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속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지난주 화요일에 지방에 만만만 모임이 있어 갔다 왔습니다. 그 교회는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일 년에 2회 한다고 합니다. 이번 주가 특별새벽기도 주간이라고 말하면서 이번에 임직자를 뽑는다고 자기 교회 이야기를 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나오지 않으면 임직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만약 임직자가 되었는데 새벽기도회를 교회에서 정한 기준 이하로 나오면 바로 시무에서 명예직으로 바꾸어 버린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서약하고 그렇게 시행한다고 합니다. 일 년에 장로님은 25명 전도를 해야 하고, 권사님과 안수집사님은 20명씩 전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전도를 못하면 장로님은 전도헌금을 일 년에 250만원, 권사님 안수집사님은 200만원씩 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그것을 못하면 시무에서 바로 명예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희생과 봉사, 섬김이 없는 직분은 명예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못된 습성은 수고 없이 자꾸 열매를 거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심는 수고 없이 열매만 거두려고 합니다. 그렇게 장담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어떻게 합니까? 다 도망갑니다. 섬김의 비전이 있다면, 섬김을 인생의 목적으로 삶았다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야 합니다. 섬김의 십자가를 짊어져 보십시오. 수고해 보십시오. 희생해 보십시오.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통해 종처럼 살아 보십시오. 어디에서나 대접해 주고 인정해 줍니다.

 

4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생명을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김을 실천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희생을 통한 섬김의 실천력입니다. 실제로 고통을 감당하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겼습니다. 섬김을 위해 희생을 감당하였습니다. 섬김을 위해 수치를 감당하였습니다. 섬김을 위해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섬김을 위해 비난과 조롱을 당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이것은 종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발을 씻긴 것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 섬김을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섬김은 머리에서만 있으면 효력이 없습니다. 실행될 때 빛이 되고 향기가 됩니다. 우리도 주어진 것으로 예수님처럼 섬김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섬긴다는 말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대표적인 의미는 "식사 시중을 하다", "돌보다", "부양하다", "돕다"라는 말입니다. 섬기는 것은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힘이 듭니다. 그러나 실천하면 사람이 바뀌고, 가정이 바뀌고, 교회가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남이 나를 섬겨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난하지 말고 내가 섬기면 상대도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섬김은 내 입장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완전한 모습을 보고 섬겼겠습니까? 죄 가운데 있을 때, 구역질 날 정도로 모순된 삶 속에 있을 때, 이기주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 섬겼습니다. 섬김은 남의 입장에 서서 낮아지고 희생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예전에 등록한 집사님 댁을 심방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하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내가 필요로 하는 교회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교회에 다니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신앙이 참 성숙한 분이시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구역장으로 모범적으로 구역예배를 드리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봅니다. 교회는 섬김을 받으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다니는 것입니다. 죽음 섬김, 작은 섬김, 다른 사람의 명예를 보호해 주는 섬김, 보편적인 예절로 섬김, 대접하는 섬김, 들어 주는 섬김, 서로 짐을 져 주는 섬김, 생명의 말씀을 나누는 섬김 등 각종 섬김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다. 인사도 반갑게 하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라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로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디까지 섬깁니까? 종으로 죽기까지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다니면서 시험들 것도 없고 재미를 잃을 것도 없습니다. 섬겨 보십시오. 얼마나 신이 나고 행복하고 재미가 있습니까? 예수님같이 섬기면 섬김에 지치지 않습니다. 섬기는 채 하니까 지치고 재미가 없고 시험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교회에 나와 화장실 청소하고, 식당봉사하고, 전도하고, 꽃꽂이 하고, 차량운행하고, 봉사해 보십시오. 누가 더 섬김은 받느냐로 경쟁하는 교회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섬기느냐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물결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 즐겁게 섬기는 섬김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섬기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섬길 만한 것이 없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섬기면 됩니다. 경제력이 있으신 분은 경제력으로 섬깁니다. 지식이 있는 분들은 지식으로 섬기면 됩니다. 권력이 있으면 권력으로, 건강이 있으신 분들은 건강으로 섬기면 됩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쓰임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고 기쁜 일입니까? 오병이어 5천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같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의 음식이지만 그것이 섬김의 도구로 쓰이니까 5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목자로 있을 때 쓰던 것입니다. 익숙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섬김의 도구로 쓰이니까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통해 수많은 생명을 살려 냅니다. 아무리 좋은 구술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아는 목사님을 만나 최근에 아들 결혼시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혼을 하기로 날짜를 잡나 놓았는데 며느리 될 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였는데 폐암 말기 진단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딸의 결혼식을 앞당겨 하였답니다. 그런데 딸 결혼식을 마치고 이틀 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교회 장로님이셨는데 딸 결혼식 때 온 교인들이 참여하여 축하해 주었는데 장례식에도 온 교인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장로님으로 얼마나 교회와 교인들을 잘 섬겼는지 딸보다 교인들이 더 울더라는 것입니다. 특히 청년 대학생들에게 장로님 늘 밥을 사주며 용기를 주고 신앙을 지도했는데 청년 대학생들이 많이 울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우리가 섬겼던 추억들이 남게 됩니다.

Warren Wiersbe 목사님은 "오늘날 교회 속의 슬픈 현상은 유명한 사람들은 많지만 종들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이라고 했습니다.

D. L. Moody 목사: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종을 데리고 있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종으로, 죽기까지 섬김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섬김의 결과는 손해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올라가려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4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자리는 아버지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차지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법칙입니다. 43, 44절에 섬기는 자가 오히려 크게 되고, 종이 되는 자가 오히려 으뜸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설의 진리입니다. 섬기는 것이 박탈이나 손해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돈 들여 섬기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시간들여 섬기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자존심 상하며 섬기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섬김이 손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섬김을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섬김이 오히려 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김의 도를 가르쳐 준 후 "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 13:14-17)"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섬김의 도를 알고 행하면 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꾸 사람들이 섬김이 손해이고 박탈이라고 생각하니까 섬김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91세입니다. 시골에 계셨는데 치매가 왔습니다. 아들 셋인데 제가 큰 아들입니다. 둘째는 외국에 가있고, 셋째는 미혼으로 제주도에 살고 있습니다. 목회자로 부모를 모시고 성도들을 섬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결단을 내렸습니다. 저희 집에 모셨습니다. 아이들이 셋이기 때문에 모실 방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실을 막아 아들에게 거실서 자세하며 모셨습니다. 아들이 제대하여 겨울에도 거실에 살아야 하니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방 4개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내가 교회일 하면서 불평하지 않고 어머니를 정성 것 모셨습니다. 친정 어머니도 암에 걸려 어려운데 친정 어머니 집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자며 섬기는 모습을 봅니다. 두 어머니를 그래도 정성껏 섬기는 모습을 보며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는 목사 아내로 결혼하여 수많은 비판을 받고 아픔을 눈물로 담고 사는 모습을 보면 불쌍하게도 보입니다. 그런데 섬김에 기적이 있는 것을 봅니다. 몸은 힘들어도 섬김 끝에 행복이 있는 것을 봅니다. 가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던 어머니가 거의 정상적으로 정신이 돌아와 잘 걸어다니지만 못할 뿐이지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합니다. 장모님이 암에 걸렸지만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데 6년 넘게 고통 없이 사시는 모습을 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보면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1)" 언젠가는 상급받을 날이 오고야 맙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 7:17)"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때로는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지만 우리의 섬김의 눈물을 다 씻어 줄 날이 오고야 맙니다.

“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세상에서도 섬기면 손해되고 박탈되며 없어지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도 서비스가 우수한 회사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최상의 서비스"라는 책을 쓴 발 지(Val Gee)는 "고객의 68%가 단골이 되지 않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나쁜 서비스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만 고객이 10-20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비스도 상품이다 "를 쓴 칼 알브레히트는 "우수한 제품을 미흡한 서비스로 제공하느니, 차라리 평범한 상품을 우수한 서비스로 제공하는 편이 더 낫다."라고 말합니다. 서비스의 황금률을 "당신이 고객일 때 받고 싶은 대접 그대로 고객들을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섬김은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회사가 잘되고 섬기는 가정이 행복하고, 섬기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고 섬기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1등만이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닙니다. 1등도 다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들은 오래 도록 기억됩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차를 모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워 주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남에게 무엇을 베푸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좋은 동네에 사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이웃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이다"

주어진 인생 섬기지 않아도 썩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후회 없이 섬기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섬기면 섬긴만큼 행복해지고 신이 나는 것입니다. 교회 올 때 섬기기 위해 교회에 나와 보십시오. 예배드릴 때 섬기기 위해 예배를 드려 보십시오. 말씀을 들을 때 섬기기 위해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찬양할 때 섬기기 위해 찬양을 드려 보십시오. 행복해 집니다. 재미가 있습니다. 신이 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섬김의 결과는 손해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기를 원하십니다.

 

대전에 사시는 어느 목사님 부부의 섬김에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간증을 읽으면서 제 자신이 초라해졌습니다. 신문에 "울 엄마가 바로 날개 없는 천사"라는 기사로 실렸습니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신청을 할 정도로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사모님은 대학 졸업 후 충남 공주시 동곡요양원에서 본격적으로 자원봉사에 들어가 2년 동안 중증장애아들과 생활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그 요양원에 찾아와 "천사 같이 봉사하는 사모님의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아 잘 기르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려는 꿈을 가졌는데 아이를 계속 유산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사모님은 입양을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하은(여)이와 하선이(11) 자매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하은이는 눈동자가 바깥으로 몰리는 '간헐성외사시' 증세를 보였고, 하선이는 기관지염을 앓았답니다. 하선이는 폐가 좋지 않아 기침을 달고 살았답니다. 정밀검진 결과 폐 한쪽이 제 기능을 못해 이식수술을 받아야만 한다고 했답니다. 사모님은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합니다. '우리 하선이만 살려주시면 저도 다른 생명을 살리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모님의 기도를 응답해 주셔서 담당 의사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수술을 하지 않았는데도 흡입기와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운동장을 뛰어다닐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하선이가 건강해지자 한 편으로 겁도 났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키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모님은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자신이 신장을 주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30년 동안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내 주었다고 합니다. 또 마음씨 좋은 사람들 조차 입양하기를 꺼리는 장애 아이들을 자식으로 입양했다고 합니다. 이후 입술갈림증(구순열)으로 괴로워하던 하민이(여), 퇴행성 발달장애를 겪는 요한이(6), 심각한 안짱다리로 걷지 못하던 사랑이(5) 등 세 명의 장애아를 더 입양하여 기르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기까지 죄인인 우리를 섬겼습니다. 우리도 섬김의 비전을 가지고 종이 되어 죽기까지 섬김 예수님의 길을 회피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멸망의 길이 아니라 승리의 길이고, 비난의 길이 아니라 영광의 길이고, 불행한 길이 아니라 행복한 길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서로 섬기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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