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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9)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십니다.(살전2:1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007 추천수:4 112.168.96.71
2016-10-30 07:34:57

 

하나님의 마음(9)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십니다.

데살로니가 전서2:13

 

제가 오랜 전에 부목사로 봉사했던 교회가 있습니다. 그 때 뒤에서 안내를 했는데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성도들에게 “믿습니까?”라고 하니까 뒤에 있던 어린 아이가 “뻥이요”라고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성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원하실까요?

 

1.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2장 13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알려 주시려고 열어서 보여주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자연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알려 주십니다. 이것을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시편 19편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로마서 1장 20절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일반계시(자연계시)로만으로는 인간이 하나님의 생각을 충분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계시를 해주었습니다. 헬라어로 아포칼륍시스(Apokalupsis)는 "폭로한다",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뤠벌레이션(Revelation)입니다. "휘장을 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기록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인격으로 나타난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선포되는 계시인 설교, 중생한 영혼에게 영으로 임재하는 계시인 성령입니다.

헬라어에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을 표현 할 때 쓰이는 단어가 세 가지 있습니다. 로고스, 레마, 케리그마입니다.

로고스는 가장 보편적인 단어로 ‘말씀’ 전체를 뜻하고, 기록된 말씀을 의미합니다.

레마는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이 로고스인데 그 말씀이 성령의 도움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로고스의 말씀이 특별한 곳에서 특별히 작용하는 현상을 레마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이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이 될 때에 ‘레마’라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물을 담아 두는 수원지의 물이 ‘로고스’라면 내가 마신 물은 ‘레마’입니다. 게네사렛 바닷가에서 밤이 새도록 고기 한 마지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부인 베드로에게 이 말씀은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여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말씀이 그의 가슴에 닿는 것입니다. 이것에 레마입니다.

케리그마는 선포된 말씀으로, 주로 설교를 말합니다. 기록된 말씀을 설교자가 깨달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은 현재와 미래가 달라집니다.

 

말씀을 받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심각한 영적 병 중의 하나는 하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설교하면 또 설교해”라고 말합니다. 지루해 못견디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모임에 가면 설교는 되로록 짧게하고 형식적으로 해 달라고 합니다. 2부 행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늘 강제로 예배를 드렸는데 흉악범이 교수형을 받기 위해 사형장에 끌려왔답니다. 집행관이 물었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나?" "할 말 없습니다." "이제 곧 매월 첫째 일요일에 설교하시던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하시고, 기도해 주실거네. 잠시 기다리게." 그러자 흉악범이 대답했답니다. "하필 그 목사님이에요? 지루한 그 설교하기 전에 어서 목을 매 주세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도 말씀듣기를 싫어합니다. 따분한 말씀 전하지 말고 즐겁고 흥미롭고 부담없는 공연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건물을 짓고, 아무리 음향시절과 조명을 갖추고 수만명이 예배를 드린다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지 않는다면 그곳은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터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해갈 때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호4:6절 말씀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했습니다. 여기서의 지식은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지식을 말합니다.".....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했습니다(호4:6).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사 건건 시비를 하며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처음부터 경쟁자로 설정을 하니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행5:33, 행7:54에 나오는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복음을 듣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베드로를 죽이려고 합니다.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행 5:33)"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4)" 성경에 나오는 여러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고 귀를 닫고 심지어는 죽입니다.

오늘날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와 관계가 나빠지면 아무리 좋은 말씀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셋째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말씀을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받아들일 때 예수님이 씨앗 비유로 말씀하신 것처럼 네 종류의 받아들임이 있습니다(막4:1-9)

1)길가에 뿌여진 씨앗처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길가 같은 마음에는 아무리 좋은 씨가 떨어져도 새들이 먹어 버립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는 늘 나가시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에게 정말 교회에 나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당신 교회 목사님의 눈은 무슨 색입니까?"라고 질문했답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기도할 때는 목사님이 눈을 감으시고 설교할 때는 제가 눈을 감아서 한 번도 목사님의 눈을 본적이 없는데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 같습니다.

이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성장이나 열매는 물론 발아도 되지 못합니다. 아예 싹도 나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마태복음에서는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마 13:19)"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 영적 세계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마음이 강퍅해 있습니다. 교만합니다. 단단해 있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소신이라는 미명하에 때로는 고집으로 때로는 전통과 자기 신념,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하게 자기 방어를 합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성, 익숙함이라는 이유로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세상 지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자아가 너무 강하여 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빗장을 쳐 놓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 배후에는 누가 있다는 것입니까? 사탄이 지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15).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2) 돌밭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씨가 떨어져도 자라지 못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한 첫 단계가 밭이 씨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발아되어 잘 자라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뿌리가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밭이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돌밭은 뿌리가 깊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밑에는 암반이 있고 그 위에 흙이 살짝 덮인 밭입니다. 햇볕이 내리 쪼이면 말라 버립니다. 말씀을 받을 때는 기쁨으로 받지만 그 말씀으로 오는 환난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곧 넘어지는 신앙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상당히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금방 달구어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무엇이든지 다 할 것같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이 왜 저렇게 뜨겁지 못하냐고 비난합니다. 새벽기도를 하는데 냉냉하다고 합니다. 열정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환난과 핍박을 통해 신앙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심정적으로 아주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말씀으로 살다가 말씀 때문에 조그마한 어려움이 다가오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하고 원망합니다.

 

3)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씨가 떨어지면 조금은 자라지만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왜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겠습니까? 땅도 좋습니다. 습도도 적당합니다. 뿌리도 잘 내렸습니다. 줄기도 나고 잘 자라납니다. 그런데 가시덤불이 있습니다. 가시에 찔려 신음하게 됩니다. 가시덤불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의 욕심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염려의 유혹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일락의 유혹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4) 옥토같은 마음이 되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똑같은 말씀을 전했지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하며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행2:41-47)

우리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100% 받아들여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떨어질 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입니다.(눅8:15). 말씀 붙들고 내적인 모든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칩니다. 외적으로 다가오는 핍박과 환난을 말씀의 능력으로 인내하며 이겨나갑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사랑. 희락 , 화평, 온유, 절제, 인내, 양선, 충성과 같은 인격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게 되고 생명 구원을 통한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혀질 것입니다. 때가 되면 사역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될 것입니다.

2주 전에 한 자매가 하나님께 편지 기도를 드린 것을 읽어 보고 기도하였습니다. 제가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설교를 한 주간에 쓰신 편지 같습니다. 어느 분이 그 설교를 듣고 저에게 너무 수준이 높은 이야기라고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매가 편지를 써서 헌금함에 넣어 보내왔습니다.

다 읽어 줄 수 없지만 일부를 읽어드리면 이런 내용입니다.

“설교 말씀을 듣다 보면 생각해요. 저건 누구에게 필요한 설교일까? 지금 누가 저 말씀을 필요로 하고 있을까? 어쨌든 지금 나에게 꼭맞는 설교는 아니네? 그런데 그 주를 지내다보면 그 설교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예언의 말씀과도 같다는 것 깨달아요. 나에게는 매주 어려움이 생기고 그럴 때마다 매주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한 주를 메꿔나가고 있어요. 그렇게 나는 한 주 한 주 살고 있어요.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해, 하나님은 이 고백을 원하셨던 것이지요? 아직도 나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요라고 100% 진실되게 말할 수가 없어요. 나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게 너무 많거든요. 부끄럽지만 고백하고 싶어요. 나는 욕심많은 인간이기에 많은 것을 움켜쥐고 싶어해요. 나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싶어요. 하나님 주님 하나 분만으로 내가 만족하길 원해요”

하나님의 말씀은 내 수준에 맞지 않고 현실적이지 않게 보일지라도 그냥 그 말씀을 100%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늘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스마타폰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교회에 가서 말씀듣는 것이 짜증이 났답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빠에게 말했답니다.

“아빠하고 엄만 내가 싫어하는 걸 잘 알면서 일요일만 되면 꼭 나를 교회로 데리고 가는데…”

아빠가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라고 했답니다. 아들이 “아빠도 내 나이 때 교회로 끌려가는 게 싫었을 거잖아.” 그러자 아빠가 “솔직히 말해서 싫었어.” 아들이 “그럼 성경 말씀대로 하면 좋잖아요?” 아빠가 “그게 무슨 소리냐?” 아들이 “남들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남에게 해주라는 말 있잖아요.” 이렇게 성경을 이용하면 안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라고 말
씀하면 모든 짐을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라고 말씀하시면 쓸데 없는 염려의 늪에서 신음하지 말고 다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내 이성과 환경과 처지에 맞지 않아도 용서하라고 하면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면 사랑해 버리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라고 말씀하시면 무식한 것같지만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면 조건 보지 말고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사는 것입니다.

“또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성전 공사의 모든 일을 마치기까지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대상 28:20)”라고 말씀하시면 그 아들이 나라고 생각하며 내게 주신 사명 다 이룰 때까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고 나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우리에게 역사하시길 원하십니다.

말씀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현실 감각이 없고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주문이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상처를 싸매주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며, 죄의식에서 해방시켜 주고 죽음에서 자유를 줍니다. 병든 가정 치료해 주고 꿈이 없는 자들에게 미래를 약속해 줍니다.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서 받을 수 없는 놀라운 것을 줍니다.

 

정리하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살면 크게 세 가지 역사가 일어납니다.

첫째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디모데후서 3:15에는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인간 구원을 알려 주는 책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에만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 천국에 가게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

이 사실을 믿습니까?

말씀을 받아들일 때 예수님은 단지 4대 성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계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 왔다고 말씀합니다(요6:38).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요8:58) 창세 전에 계셨습니다(요 17:5)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며 (미5:2),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사9: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신 분이십니다(계1:8)

왜 성경을 기록했다고 말씀합니까?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영화 벤허라는 작품을 쓴 웰레스는 성경을 읽다 구원의 지혜를 얻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둘째 인격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디모데후서 3:16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합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습니다(히4:12-13)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죄를 깨닫게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무디 목사님은 ‘성경은 정보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변화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성도가 목사님께 물었다니었다. "목사님 저는 기억력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30년 동안 3천 번 넘게 설교를 들었는데 단 한편도 기억할 수가 없네요."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했답니다. "저는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3만번 넘는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끼도 메뉴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매끼 영양을 공급받았습니다. 저에게 그 많은 식사가 없었더라면 오래 전에 이미 굶어죽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다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강도가 변하여 성자가 됩니다. 살인자가 변하여 전도자가 됩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뮐러(George Muller)는 16살 되던 해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술과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뮐러가 20살 되던 해 성경 속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놀랍게도 그의 삶에는 대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의 전 재산 13만 5천 달러의 돈을 모두 이웃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쌍한 고아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타락한 어거스틴이 성경을 읽으니까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방탕하게 살던 부시가 성경을 보고 새사람이 되어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나라의 어두움이, 가정의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바이킹족이었던 스웨덴이 변하고 해적들이 신사로 변합니다. 온갖 죄악과 우상으로 타락한 로마에 성경이 들어가니까 2천년동안 엄청난 축복을 누렸습니다. 불모지의 땅 미국이 성경을 읽으니까세계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땅으로 변하였습니다.

 

셋째 사역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딤후 3:17)"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영혼을 소성시킬 뿐 아니라,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시19:7-8) 성경을 통해 세상적인 상대적 지혜를 뛰어 넘어 창조주의 절대적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둔한 자에게 지혜를 줍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죽음 후의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종말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의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범죄치 않게 합니다(시 119: 9) 말씀은 위로와 희락과 소망을 줍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육체의 건강도 줍니다.(시 31 : 9, 잠 17 : 22, 16 : 24)

말씀이 옥토같은 마음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불행하고 짜증나고 지루하게 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 준 말씀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말씀이 힘들 때 진정한 위로 줍니다(고후1:6). 말씀이 고난을 견디게 해줍니다. 말씀이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줍니다. 말씀이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성취하게 합니다.

존 워너메이커는 미국의 백화점 왕입니다. 그의 별명은 ‘성경이 만든 백화점 왕’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1838년 7월 11일 태어난 이후 오늘까지 무려 30,026일을 살았다. 나의 인생에서 투자한 것마다 많은 이윤을 남겼다. 그러나 나의 투자 중 가장 성공적 투자는 열 살 때 2달러 75센트를 주고 구입한 이 성경이다. 바로 이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 시카코 대학을 비롯해서 12개의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 대학 및 연구소를 지어 사회에 기증하고 4,928개의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바쳤다고 합니다. 록펠러의 인생에서 크게 세 가지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가장 가난했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것이고 두 번째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사회에 돌려주었으며 세 번째로는 98세까지 장수를 누렸는데 이빨이 하나도 썩지 않고 깨끗하게 살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젊을 때 사랑하는 여인조차도 이 남자의 장래가 없어 보인다며 떠나버릴 정도로 처참했답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을 일으킨 것은 말씀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는 주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켰답니다. 성경을 매일같이 읽고서 하루를 시작했답니다. 늙어서 눈이 어두워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되자 성경 읽는 사람을 채용해 성경을 들었다고 합니다.

"성경의 힘으로 꿈을 이룬 대통령 링컨"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의 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링컨을 만들게 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명문학교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겠습니까? 시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9개월을 다닌 게 학력의 전부입니다. 가정 배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겠습니까? 아버지는 글자를 써본 적이 없는 사실상의 문맹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가난하여 작은 통나무집에서 살면서 누나와 함께 땔감으로 쓸 나무를 주워 오기도 하고 아버지를 따라 옥수수 씨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링컨이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엇이 링컨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들었겠습니까? 링컨은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조그맣고 낡은 성경책을 들고 나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이 낡은 성경책은 바로 어머니께서 저에게 물려주신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 저는 이 성경책으로 말미암아 대통령이 되어 여기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대로 이 나라를 통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성경을 읽으니까 헨델과 베토벤, 톨스토이와 도스토에프스키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존 번연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만나 천로 역정을 지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를 일고 진정한 구원을 받고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마태복음 28:19,20절에 감동되어 선교사가 되었고 아프리카에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윌리암 캐리는 사54:2 말씀을 보고 세계를 향한 선교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채팅하는데 2시간 3시간씩 소비합니다. 성경이 최고의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장식품이나 지식 축적을 위해 주신 책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 주셨습니다.

일명 큰 바위 얼굴로도 알려진 유명한 미국 블랙힐의 러시모어 산 화감암 벽에는 미국인으로부터 존경받는 네 명의 대통령 흉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워싱턴, 제퍼슨,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의 대통령입니다. 이들은 다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격을 갖추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능력 있고 온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만들었겠습니까? 조지 워싱턴은 [성경이 아니면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은 성경을 반석으로 삼아 서있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링컨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라고 말하며 전쟁터에서도 애독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어떤 방면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그가 자신의 생을 참되게 가꾸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성경을 묵상하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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