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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6) 모든 사람이 높은 자존감을 갖기 원하십니다(벧전2: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060 추천수:7 112.168.96.71
2016-10-09 06:51:12

 

하나님의 마음(6) 모든 사람이 높은 자존감을 갖기 원하십니다

벧전2:9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을 쥐라고 망상하고 있던 사나이가 마침내 정신병원을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원 출입문에서 발이 땅에 달라붙어 버렸는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의사가 이상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그러고 서 계시오?" "바로 앞 저기 고양이가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이제 쥐가 아니라는 걸 아셨지 않소?" "그건 틀림없습니다만 고양이 쪽에서는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자존감이 지극히 낮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존감(Self-Esteem)이란 자아 존중감으로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비슷한 말로 자존심, 자신감 등이 있는데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자존감은 자기 평가에 대한 기준이 자신입니다. 남들이 무슨 말을 하던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존귀한 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존심은 기준이 타인에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존중해주면 천국으로 올라가고 다른 사람이 비난하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 중에는 상대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인정받으려고 결혼식을 거창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명품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도 있고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자존심이 상하여 화를 내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풀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감은 성공경험을 통해서 생기는 삶에 대한 태도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존감”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행복도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자기존중은 정신건강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합니다. 자존감이 아주 낮으면 스스로 ‘나는 세상에 무가치한 존재야’ ‘나는 능력이 없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누구도 나를 환영하지 않아’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외모나 상태에 대하여 늘 불만족합니다. 선풍기 아줌마처럼 “어머니 날 낳으시고, 원장님 날 만드셨네.”라고 끝없는 성형수술의 유혹을 받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중년 여성이 심장마비에 걸렸답니다. 그녀는 거의 죽음을 경험했는데 하나님께 물었답니다. “제가 죽을 때가 됐나요?” 하나님께서 “아니, 아직 40년은 더 남았지”라고 말씀했답니다. 그래서 40년을 살 것을 생각하고 병원에서 성형 수술을 했답니다. 김태희처럼 리모델링을 해달라고 했답니다. 지방흡입술도 하고 복부지방제거 수술도 했답니다. 할 수 있는 것 몽땅 다 받았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수술까지 마치고 퇴원하던 길에 그녀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져 물었답니다. “제게 아직 40년이나 남았다고 하셨잖아요? 왜 저를 차가 오는 방향에서 빼내 주시지 않으셨죠?” 그 때 하나님이 대답하셨답니다. “야, 못 알아 봤다!”

자존감이 낮으면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무시하여 스스로를 자해하며, 심한 경우 자살합니다. 잠재력과 꿈을 마비시켜 버리고, 대인관계를 원만히 갖지 못합니다. 타인을 통해 인정욕구를 채워 보려하는 것이 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집착하거나 소유하고 조정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서운하게 하고 대접을 해 주지 않으면 “내가 누구지 몰라?”라고 타인에게 분노하고 적으로 삼고 위해를 가하려고 합니다. 남에게 조금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으면 참지 못합니다. 인정해 주지 않으면 하던 일도 하지 않고 어깃장을 놓습니다. 어떤 회장처럼 야구방망이로 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심하게 자존심이 상하면 살인하고 자살하기도 합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지나친 죄인의식과 부정적 사고, 비교의식, 완벽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완벽을 추구하여 늘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아이들을 볼 때도 잘 못된 점만 보고, 다른 사람이 기도해도 틀린 점만 보며, 설교를 들어도 말꼬리만 잡아 상대를 비난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진위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어떤 마음(태도·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지레짐작하는 과오를 쉽게 범합니다. 과잉확대 혹은 과잉축소를 하는 것입니다. 객관적 사실보다는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걸 보니까 사실임에 틀림없다.'는 식으로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타인을 비난함을 통해 자신을 높이려 합니다. 신앙인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의 의'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포장하기 위해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합니다.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안하무인이 되는 영적 교만에 빠집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약점을 과장이나 허풍으로 방어하려고 하려고 합니다. 직분자 투표에서 되지 않으면 실망을 하고 봉사나 헌금생활도 하지 않고 교회를 떠나거나 심할 경우 믿음도 떠나버립니다. 사람을 대할 때 항상 반항하고 도피하며, 무시하거나 비판하기 때문에 원만하고 정서적으로 친밀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늘 다른 사람을 의식하므로 자신을 비하하며 자신 스스로에게 비굴함과 분노를 느끼게 되고 관계 속에서 삶의 순수함과 진실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아 중심적이어 심하면 칭찬 중독증에 걸려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고 합니다.

 

'마음 탐구'의 저자 Gary R. Collins은 가족치료의 영역 가운데 80%가 "자존감의 치유"의 영역이라고 했습니다. 자존감의 문제는 인간의 모든 문제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과 생각과 말, 그리고 그의 태도와 행동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이 자존감이 영향을 줍니다. 심리상담가인 토니 험프리스 '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라는 책에서 우리 자존감의 몸통은 8살 이전에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의 열쇠가 자존감이라고 말합니다. 아동상담 전문가 이영애 소장은 자존감은 아이의 성공을 재는 바로미터라고 말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공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그만큼 공감 능력이 있어 남도 사랑하고, 자신의 잠재 능력을 믿고 잘 발휘하면서 행복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치적인 성공으로 바로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자아존중감>에서 자존감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험해 보았습니다. 실험결과 자존감은 리더십, 공감 능력, 신체만족도, 자아상, 학업성취도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자존감지수가 높은 아이가 대체로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친구도 많으며, 자신의 지각과 판단에 확신이 있으며, 의사소통 능력, 적극성, 갈등조절 능력, 문제해결 능력 등도 뛰어난 것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자존감은 한 개인의 삶에서 평생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아마존, 「뉴욕타임스」자기계발 분야 5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 있습니다. <자아>라는 책입니다. 필립 맥그로라는 사람이 지은 책입니다. 의사였지만 그만 두고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해서 인생 전략가이자 법심리학자, 철학 박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가 행복하지도, 성공하지도, 단 한 번의 삶의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는 이유는 참된 자아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책에서 그는 인간의 자아상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아이들 실험으로 예를 들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을 실험 대상으로 파랑새 반과 노랑새 반으로 나누었습니다. 파랑새 반 아이들에게 이번 학년은 도전해볼 만한 것으로 그들의 재능을 십분 활용하기만 하면 진도는 더 빨리 나아갈 것이라는 말도 해주었습니다. 노랑새 반 이이들에게는 주어진 과제물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4개월 동안만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노랑새 반 아이들은 힘들게 견뎌나갔으며, 어려움으로 인해 심각한 낭패감과 자기 비하의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10년 뒤 연구자들이 이 아이들을 다시 관찰해보니 노랑새 반 아이들은 파랑새 반 아이들에 비해 여전히 시험 성적이 매우 낮았고, 운동과 음악 같은 활동에서도 성취도가 떨어졌으며, 위법 행위도 더 많았고 지능 검사에서도 현저하게 낮은 점수가 나왔답니다. 자존감이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자존감이 아이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낮은 아이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살기 원할까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살기 원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장 9절을 큰 목소리로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1.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라는 가치감으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자존감을 이루는 첫 번째 요소는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태도입니다. 자신의 존재의 중요성에 대해 느끼는 가치감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분에 대하여,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로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택하신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선택한 고귀한 존재입니다. 믿습니까? 대통령에게만 선택받아도 얼마나 자존감이 높아집니까? 얼마나 자신을 가치있는 존재로 봅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존재라는 말입니다(신명기10:15)

전에는 우리가 죄인으로 긍휼을 얻지 못했습니다((10)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완전히 신분이 바뀐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짐승에게 진화된 비계덩어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예술품의 가치는 만든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황소의 머리"는 자전거의 좌석과 손잡이로 만들었지만 피카소가 만들었기 때문에 천문학적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 쓸모 없는 돌인데 미켈란젤로가 만든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에 「모세」가 값으로 살 수 없는 걸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보시기에 심히 좋은 자로 창조하였습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하였은즉"(사43:4)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내 여호와라”

가난합니까? 병들었습니까? 지위가 없습니까? 외모가 모자라다고 생각하십니까? 집안이 안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장애가 있습니까? 사별하였습니까? 이혼하였습니까? 자식이 없습니까? 능력이 없습니까? 지식이 없습니까?

우리는 가치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천하보다 귀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을 구원하여 천국 백성 만들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까지 사랑하는 우리 하나님이입니다. 그만큼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된 죄인으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회복된 사람입니다.

지금 볼품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차 예수 그리스께서 재림할 때 예수님처럼 영화롭게 변화될 것입니다(요일3:2)

신체적 자아에 대하여 하나님이 만든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창조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정서적 자아에 대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적 자아에 대하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하나님이 허락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회적 자아에 대하여는 우리는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유일한 사람,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이고, 길이나 질로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은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입니다. 장애가, 키 작은 것이, 실력 부족이, 가난이, 질병이, 실패가 자기 존중감의 추가되어 인생을 수장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키가 작다고 눈이 작다고 외모가 뛰어나지 못했다고 가난하다고 직위가 없다고 장애인이라고 무가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만큼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할 때도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양육하여 자존감 높은 아이들로 만드시길 원하십니다.

자존감은 어릴 때 부모의 양육태도로부터 결정됩니다. 자존감은 부모로부터 대물림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학자들의 정설입니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어머니 밑에서 양육 받은 자녀는 역시 자존감이 낮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삶의 원천이 되는 기본적인 자존감은 7-8세 이하에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아이를 양육할 때 부모들이 흔히 저지르게 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양육태도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이렇게 해야 돼'라고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안돼, 안돼’를 반복하면서 아이를 부모의 의도대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옷을 입게 하고, 아이가 읽은 책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마가 원하는 책을 강압적으로 잃게 하는 것입니다. 그려면 아이는 무력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매사 책망하게 되고,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하며 수준미달이라고 자녀에게 주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강압적 태도는 아이의 자존감 발달에 치명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라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은 틀리게 되어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잘못된 태도는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자존감을 살려주고, 기를 살려주며, 창의성을 길러준다고 방임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누워 드리든 밥을 먹을 때 텔레비전을 보고 보든 식당에 가서 상을 엎고 다니든 좋아하면서 방임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고 강압적인 태도 못잖게 위험한 태도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존감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원칙, 비현실적인 자아상을 가지게 되어 학교 가면 왕따를 당합니다. 사회생활에 적응을 할 수 없습니다. 자존감이 아니라 인성이 갖추어지지 않은 자존심만 커져 자기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분노를 폭발합니다.

아이에게도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참으로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매일 반복적으로 말해주고 축복해주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자기를 진정으로 알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감정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나는 사랑스럽다. 하나님이 나를 천하보다 귀중하게 여기니 나는 가치있다”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소속감으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의 소속이 어디에 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소속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신7:6) 제사장은 제사장인데 어떤 제사장입니까? 5절을 보세요. 예배를 드릴 그 예배를 기쁘게 받을 예배를 드릴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부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자존감은 소속감, 유용성, 받아줌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자존감은 자신이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가를 통해 높아질 수도 있고 낮아 질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존감은 자신이 얼마나 유용한가에 따라 높아질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인정받고 쓰임받으면 자존감은 높아집니다. 즉 소속감의 문제입니다.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왕따를 당하고 버림을 받으면 자존감은 땅에 떨어집니다. 자신이 어디에서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자존감은 높아집니다. 아무데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존감을 낮아집니다. “김집사님은 전문가라 우리 교회 건축에 유용성이 있습니다”라는 말은 들으면 자기 존중감은 높아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아내가 안받아주면 자신을 받아주는 마담을 남자들이 찾아갑니다. 교회에서도 어떤 조건일지라도 교인들이 받아주어야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데 어머니가 이웃집 친구 어머니와 대화를 합니다. 그 때 어머니가 “우리 아들 우리 집을 일으킬 기둥이야”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아들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자존감이 높아질까요 낮아질까요? 친구 어머니가 자신에 대하여 착하다고 칭찬하니까 어머니가 “그 애 밖에서만 착한 척 해, 집에서는 개망나니야”라는 소리를 들으면 자존감이 올라갈까요 낮아질까요? 부모는 자녀의 거울입니다. 영유아기 때 부모와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자존감은 떨어집니다. 똑똑한 엄마보다 따뜻한 엄마, 사랑스런 엄마가 중요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소속감을 가지게 되면 자존감은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분비 호르몬인 옥시토신(oxytocin)이 분비되어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원하며, 용납하며, 돌보아주며, 즐기며,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면 자존감은 쑥쑥 올라가게 됩니다. 아이를 인정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고 칭찬해 주면 자존감은 높아집니다. 부모로부터 거부감을 받은 사람들은 낮은 자존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임신할 때부터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고 어머니가 생각하며 아이를 양육한다면 아이는 소속감을 가지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가난하다고 못생겼다고 지위가 없다고 능력이 없다고 집안이 안 좋다고 장애가 있다고 사별했다고 이혼했다고 자식이 없다고 학벌이 안 좋다고 누구도 받아주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41:14)” 우리 하나님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간 야곱도 버리지 않고 사랑하여 12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살인하고 도망가 소외된 모세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부하의 아내를 겁탈하고 부하를 죽인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스라엘 나라의 기초를 세우는 성군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인하고 배신한 베드로도 사랑하여 다시 사람 낚는 어부로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발광하는 바울을 받아들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로 사용하였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용서해 주시고 받아주었습니다. 세리 사기꾼 마태, 기회주의자요 포악한 성격의 요한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였습니다. 일곱 귀신들렸던 여인 마리아, 다섯 남편을 둔 수가성 여인도, 비겁하게 밤에 찾아와 진리를 가르쳐달라던 부자 관원 니고데모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받아 주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금방까지 함께 욕하던 우편강도의 청을 거절치 않으며 포용했습니다. 자기를 세번식이나 부인 저주 맹세하고 도망간 베드로도 다시 찾아가 다시 한 번 사명을 주었습니다. 술주정뱅이, 깡패였던 죤번연도, 선교사의 머리통을 깨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깡패 김익두도 품었습니다. 17명이나 죽인 살인마 김대두도, 100여명을 죽인 마녀같은 김현희도 관용으로 받아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자이든 가난하건, 건강하던 병자이든, 간음자이건 살인자이건 , 무식하던 유식하던, 사기꾼이든 깡패이든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 하나님 나라 백성을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 나오면 우리를 버리지도 않고 우리를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해 우리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31:6)”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 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미친 것 전혀 없네”

아이들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부된 아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귀찮게 생각합니다. 자존감은 중요한 타인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분이 부모입니다. 부모가 완전주의적 양육방식을 통해 방치하고 거절하고 학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나는 환영받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무의식 깊은 곳에 기억이 됩니다. 그러면 거부된 자아상이 아이의 견고한 틀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자존감이 낮게 됩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무관심하거나 잔인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분, 비판하고 불공평하신 분으로 생각을 합니다. 낮은 자존감이 그 인격 속에 형성되어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나, 자신을 받아준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떤 경우일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한일서 4:9)”

오늘 성경에 보십시오. 우리를 거룩한 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을 시민 한 사람을 나라로 생각하며 어디에 있는지 가치있는 사람으로 대하듯 우리 하나님이 성령이 내주하는 우리 한 사람을 하나님 나라로 대해 주시고 있는 소속감있는 사랑받는 존재입니다(출19:6)

우리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을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였습니다.(요한복음 3장 1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경건치 않았을 때,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38-39에서는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자로 끝까지 사랑해 주십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3.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자신감으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까?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히7:1,계1;6).

계5;10절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왕권으로부터 비롯된 왕적인 기능과, 그의 제사장직으로부터 비롯된 제사장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때, 자신의 유용성 즉 소속감이 분명할 때 높아집니다. 그리고 자존감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할 때 높아집니다.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어.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잘 처신해 나갈 수 있어. 나는 생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라는 느낌에서 자존감은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감은 자존감의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매사 생각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비관적입니다.

자존감이 낮으면 취직 시험에 합격했어도 “뜻밖에도 재수가 좋아서 붙은 거에요, 친구는 더 좋은 자리에 들어갔는 걸요”라고 말합니다.

다이어트해서 날씬해진 여성이 "아직 멀었어요. 금방 또 뚱뚱해질 건데요 뭘.."라고 말합니다.

옷을 예쁘게 입고온 권사님에게 "옷이 참 예쁘네요" 라고 말하면 "아니에요, 길거리에서 산 싸구려 옷이에요. 벌써산 지 2년이 넘은 건데요"라고 말합니다.

자존감이 낮으면 자신을 비하하고 부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려면 자신감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긍적적이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가지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성공경험을 많이 하게 해야 합니다. 성공경험을 많이 하면 자존감 지수(SEI)가 높아집니다. 너무나 높은 기준을 놓고 못했다고 책망만하지 말고 낮은 기준을 잡고 한 단계 한 단계 성공하면 그것을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면 공부도 운동도 예술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공경험을 방해하는 가장 큰 부모의 양육태도 2가지는 첫째가 비교의식입니다. 90점을 맞아도 이웃집 아이가 100점을 맞았다고 만족하지 못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는 할 수 없는 아이라고 자존감이 낮아져 버립니다. 두 번째가 과도한 간섭입니다. 사사건건 간섭하고 부모들이 다 해주는 것입니다. 기다리지 못합니다. 요즈음은 대학원 시험보고 취업 면접하는데 까지 부모들이 따라간다고 합니다. 이런 자녀들이 자존감이 높겠습니까? 의존증만 높아집니다. 홀로 서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는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자들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질병에 걸리고 감옥게 갇히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외모도 변변치 못했습니다. 능력 있는 아내도 없고 노후를 돌보아줄 자식들도 없었습니다. 편안한 집도 좋은 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복음 증거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바울의 자신감은 대답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사도 바울은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모든 환난과 죽음의 세력과 대항해서 싸워서 이겼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3-37). 이 자신감이 우리의 자신감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기는 아기 자체의 가치도 있지만 악기를 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열등감의 노예가 되어 자신감을 잃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른 손 장애인 에훗도 사용했습니다. 드보라는 당시 물건처럼 취급당하는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드보라에게 사명을 주시고 함께하여 한 시대 사용하였습니다.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습니다. 겁쟁이 기드온도 사용했습니다.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하였지만 그것으로 인생을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일어나 성군으로 일어섰습니다. 사람들은 실패했다고, 자신이 능력이 없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기능이 없다고, 실력이 없다고,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둔하다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래 너 가문 별 볼일 없어, 그래 너 능력 없어 그것 내가 너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너를 쓰는 것은 그렇게 때문에 쓰는 거야 능력 있는 내가 있지 않느냐? 능력 있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통하여 나의 일을 할 거야” 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근거로 자신감을 가지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과 낙관적인 태도로 살아야 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자존감을 높여주신 하나님이 그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9)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기 원하십니다. 수치를 당하지 않고 살기를 원합니다(6)

 

대머리입니까? 키가 작습니까? 돈이 없습니까? 실패했습니까? 실력이 없습니까? 사람들이 삼류라고 말합니까? 못생겼습니까? 차가 작습니까? 늙었습니까? 학벌이 내 놓을 것 없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도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어떻게 생겼던 하나님의 유일한 창조물로 보고 자기 신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낙천적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의 단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개선해 나갑니다.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부정적인 반응을 너그럽게 받아들입니다. 좌절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견뎌냅니다. 공감능력이 높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기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남을 억지로 무리하게 가르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해가 되지 않는 한 있는 그대로 둡니다. 거짓, 부정직, 가짜, 사기, 허위를 통해 자신을 과대포장하지 않습니다. 장애물에 쉽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갑니다.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합니다. 자신을 소중이 여긴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라는 가치감으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소속감으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자신감으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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