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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사다리(6) 희망 전염(호6:1-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091 추천수:5 112.168.96.71
2016-08-14 16:07:20

 

희망의 사다리(6) 희망 전염

호6:1-3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신나게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때 바로 옆 2차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고 있던 근사하게 생긴 남자가 엄마를 쳐다보고 엄마에게 ‘V’자를 하더니 살짝 웃고 지나갔답니다. 엄마는 갑자기 흥분해서 아들에게 말했답니다. “얘, 내가 아직 예쁘긴 예쁜가 봐. 저 아저씨도 엄마를 보고 승리의 V자를 보이고 가잖니?” 그 말을 듣고는 아들이 말했답니다. “엄마, 그건 1차로 타지 말고 2차로로 운전하라는 신호였어” 이 때 그래 “엄마는 아들인 내가 봐도 최고 미인이야”라고 말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날 희망 에너지가 팍팍 솟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희망의 풍선에 바늘을 치르는 초를 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희망 에너지를 팍팍 불어 넣어 줍니까? 초를 치고 다닙니까? 나이든 권사님이 미니스컷트를 입고 오시면 “권사님 10년 점게 보입니다.”라고 말합니까? “늙어 주책이야”라고 말합니까? 누가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나도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까? “은혜는 무슨 은혜”라고 말합니까?

희망은 전염됩니다. 제가 희망 척도 테스트(희망과 함께 가라. 셰인 J. 로페즈 저)에 나오는 희망 전염지수 부분 문제인 3문제를 읽어 주겠습니다. 나는 희망 전염지수가 높은가 낮은가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점에서 5점 사이를 주보에 적어 보시길 바랍니다. ‘절대 동의하지 않음’을 1점 ‘완전히 동의함은 5점을 주어 보시기 바랍니다.

1. 나는 다른 사람들이 미래를 생각할 때 신나고 즐거워하게 만든다. 1 2 3 4 5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주거나 그들을 지원함으로써 희망을 전파한다. 1 2 3 4 5

3.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한다. 1 2 3 4 5.

 

이 문항 점수의 총합이 12점 이상이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의 희망을 의식적으로 북돋아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점수가 낮다면 주변에서 희망 수준이 높은 사람을 찾아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라고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희망을 전염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정죄하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남을 비난하기를 좋아하고,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희망 전염지수가 낮은 사람들입니다. 장점보다 약점을 보기 좋아하고, 칭찬과 격려보다 책망과 지적을 좋아하는 사람은 희망 전염지수가 낮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오래 만나면 교회에서 멀어지고 신앙이 떨어지고 삶의 활력이 떨어집니다. 나폴레옹은 “리더는 희망의 분배자다”라고 했답니다. 특히 목회자나 장로님이나 권사님, 안수집사님, 마을교회 목자, 구역장, 교사들은 희망 전염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자녀가 행복해지기를 원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희망지수가 높아야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희망 에너지는 아낌없이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나면 슬픈 사람이 기뻐하게 되고, 우울한 사람이 활력을 얻고, 실패한 사람이 용기를 갖고,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과 함께 가라(셰인 J. 로페즈 지음)>의 맨 끝장의 제목은 “희망을 전염시켜라”입니다. 그 첫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리더는 누구입니까?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을 기입해 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이어 이분이 나의 인생에 기여한 점을 세 단어로 기술해 보십시오.” 무작위로 1만 명에게 전화 인터뷰를 해서 응답자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를 뽑았는데 연민, 안정성, 신뢰, 희망이었답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리더가 희망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를 바라볼 때 희망적인 부모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구역 식구들은 구역장님과 목자를 바라볼 때 희망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은 선생님을 바라볼 때 희망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회사에서 동료나 직원들이 희망적인 상사, 희망적인 직원, 희망적인 사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옆에 앉은 우리 교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희망적인 교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입만 열면 부정적이고 비난하고 비판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도 희망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희망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희망의 전염자가 되어야 할까요?

 

1. 우리는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라는 희망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도로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치료하시는 여호와라는 말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처한 상황은 인간적으로 볼 때 절망적 상황입니다. 1장 2절을 보십시오. 아내는 창녀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멜은 이방 신전의 매춘부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고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멜이 낳은 아이들이 모두 호세아의 자녀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호 3:1-3절을 보면 아내가 다시 창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 때 호세아는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아내를 사왔습니다.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말라고 다짐을 합니다. 당시 지식인이고 선지자입니다. 그러 아내와 살면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큰 아들 이름이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을 가진 “이스르엘”입니다. 딸이름이 긍휼을 받지 못하다는 “로루하마”입니다. 막내 아들 이름이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의 “로암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크면서 친구들에게 얼마나 조롱을 받았겠습니까? 선지자 가정으로 얼마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절망적이겠습니까? 나라는 어떻습니까?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북쪽 이스라엘에서 선지자로 활동을 하였는데 그 때 왕이 여로보암 2세입니다.(1:1) 북쪽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가장 부강할 때입니다. 물질이 풍요롭자 그들은 교만하였습니다.(5:5) 그들은 인애(긍휼, 자비)가 없었습니다.(6:4) 그들은 성적으로 타락하여 버렸습니다.(9:1)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들의 삶은 우상으로 가득하였습니다.(13:2)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물질을 의지합니다. 물질을 가지고 퇴폐적인 향락에 취합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외면합니다. 물질 우상을 숭배합니다. 쾌락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인본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온 몸을 암세포가 지배한 것같은 절망적인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5장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자처럼 그들을 움켜가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절망적 상황입니까?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이런 절망적 상황속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은 찌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고 치셨으나 싸매 주실 것이라고 소망을 전합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희망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이 치료시켜 주신다고 희망을 전염시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사람과 사람의 입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늘의 시대를 절망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희망의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합니다. 3포, 7포, N포 세대, 헬조선, 흙수저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100만여 취업준비생, 627만여 비정규직 근로자, 1,300만여 정규직 직장인들도 정년까지 다니는 직장인은 겨우 7.6%에 불과합니다. 자영업 창업자 10명 중 2명은 1년도 못 버티고, 7명은 5년 안에 폐업을 한다고 합니다. 땀도 배신한다고 ‘안 된다’, ‘할 수 없다’, ‘미래도, 희망도 없다’라는 절망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고아 수출국, 포르노 사이트 접속, 음주 소비량, 양주 수입, 암 사망률, 산업 재해, 40.50대 여성대 남성 자살율 등이 세계 1위이고 성폭행, 뇌물 공여 세계 2위, 교통 사고 사망률 세계 3위인 것을 보며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를 도박 공화국, 마약 공화국, 음주 공화국, 음란 공화국, 폭력 공화국, 낙태 공화국, 부패 공화국이라고 비하하며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절망적일지라도 하나님께 나오면 얼마든지 희망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희망을 전염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이사야55:1-2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

사람은 죄악된 과거의 흔적, 실패의 흔적, 일어난 절망적인 일로 희망을 접어 버립니다.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앞에 나오면 과거가 깨끗하게 세탁됩니다. 그것은 모두 용서되고 깨끗해집니다. 희망은 과거에 근거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낫게 하시고 싸매주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어떤 죄악이든, 어떤 치욕스런 과거든, 어떤 실패와 좌절이든 하나님께 나오면 깨끗이 치유되는 것입니다.

치료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있더라도 하나님께 돌아 온 자들을 얼마든지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경험은 절망의 거울이 아니라 희망의 거울로 바꾸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숭배자였으나 아브라함에게 희망을 주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야곱은 사기꾼이고 욕심쟁이였고 네 명의 부인을 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12지파의 조상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신앙인은 세상에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도로 낫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싸매주십니다.” 이런 소망의 말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는 하루에 2만 5천 마디, 여자는 3만 마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세상엔 소망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바닦을 기는 아이일지라도 아이에게 희망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든지 너를 치유할 수 있다고 희망 바이러스를 전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희망의 말을 전해야 합니다. 아내 사별한 남편, 같이 사는 경우보다 사망률 4.2배 높다고 합니다. 남편에게 희망의 말을, 자녀에게 희망의 말을 전해야 합니다.

신의 손이라 불리우는 존 홉킨스 대학의 밴 카슨 박사는 원래 디트로이트의 흑인 빈민촌에 말썽을 일으키는 소년이었습니다. 늘 싸우고 학교성적은 맨 밑바닥에서 헤매고 소망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그런 아이였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그가 싸우고 돌아와도, 꼴찌의 성적표를 가져와도 늘 이렇게 말했답니다. "밴 너는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넌 노력만하면 너는 성공할 수 있어" 희망을 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었습니다.

<희망심리학>을 쓴 심리학자 릭 스나이더(Rick Snyder)는 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희망의 크기와 그 전의 수능(SAT) 점수, 그리고 대학생활에서의 학점, 졸업 후 성취 정도 등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학생들이 대학 생활에서 좋은 학점을 받고 잘 적응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수능 점수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희망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학점이 높은 사람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졸업 후 더 많이 성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희망의 크기가 목표 설정과 성취, 노력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희망은 실제적인 힘이 있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을 향하여 "당신은 소생할 가망성이 없습니다."라고 절망적 말을 하는 사람보다 "당신은 아직도 소생할 수 있는 가망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살려 주실 것입니다."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에게, 외아들이 죽은 여인에게, 문둥병으로 쓰러져 가는 환자에게, 병든 자녀로 신음하는 자들에게, 배신한 베드로에게 소망의 말을 주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2. 우리는 “하나님은 살려주시는 여호와”라는 희망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이틀 후, 셋째 날이라는 숫자는 빠르고 확실하게 살리고 일으키실 것을 말씀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다시 소생시킬 뿐만 아니라 메시야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릴 것임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는 말씀은 이는 여호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섭리와 보호 아래서 살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창 17:18;렘 30:20). 자격을 말씀하는 말입니다. 신분의 변화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산다는 말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인류는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사고사이든 병사이든 자연사이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한 번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극복하지 못한 최대의 적은 죽음입니다. 인간의 가장 두려운 적도 죽음입니다. 사망의 강력한 독화살 앞에 부자도, 권력자도, 미인도, 학자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다 무너집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에 25만 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하루 685명, 한 시간에 28명입니다. 교통사고로만 하루에 26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은 이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수많은 일꾼들을 동원했습니다. 중국의 황제 진시황은 불멸의 생명을 꿈꾸며 연금술사들에게 죽음을 막아 주는 묘약을 찾아내라고 명령했습니다. 16세기 스페인 탐험가 후안 폰세 데 레온은 젊음의 샘을 찾기 위해 카리브 해로 항해를 떠났다고 합니다. 과학문명이 발달된 오늘날 과학주의 신봉자들은 과학이 영생을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히9:27)"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25:46)" 사람의 절망은 결국 죽음에 있습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절망을 무엇으로 해결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죽음의 백신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람의 가장 절망적인 병 죽음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죽음의 공포로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이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한다는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희망을 전파합니다.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질병이 치유되고 삶의 질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 앞에 나오니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살아났습니다(막5:21-24,35-43).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의 가정이 살아났습니다. 질병에서 놓임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집요하게 초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는 일마다 초를 칩니다. 요즈음 말하면 교회에서 무엇을 하면 “흥”하면서 하는 일마다 초를 치는 중직자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즈음 쉐마 비전스쿨 아이들이 눈빛이 살아나는 것을 봅니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빛이 눈에서 드러납니다. 사모님의 희망이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식 하나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남의 아이들 데리고 가르치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희망이 전염되면 아이들이 희망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만나니까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왕상17:17-24). 기적의 사람 엘리사를 만나니까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이 살아났습니다(왕하4:17-37)

예수님의 수제자 성령 충만한 베드로를 만나니까 다비다라 하는 도르가 살아났습니다(행9:36-43) 능력의 사람 바울을 만나니까 유두고가 살아났습니다(행20:7-12)

작년에 카터 대통령이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는 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중에도 매주일이면 꼭 자기 본 교회에 가서 교회학교를 섬겼답니다. 그렇게 큰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23년 동안 20여 명의 교회학교 학생들을 가르쳤답니다. 대통령에서 퇴임하고 나서도 자기 고향 조지아의 옛 교회로 돌아가 교회학교를 섬기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교회당을 청소했고 그 모습을 보려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기도 했답니다. 매년마다 전도 집회가 열렸는데 매년마다 14가정을 책임지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답니다.

카터 "'앞으로 살날이 몇 주밖에 안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러나 천국을 믿기에 놀랍게도 아주 편안해졌답니다. “항암치료를 받더라도 이번 주 일요일 주일학교 봉사활동은 빠지지 않을 겁니다.”"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활동은 매주 할 것입니다"라고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멋진 삶을 살았고, 수천 명의 친구를 사귀었으며 즐겁고 기쁜 생활을 누렸습니다“ "내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며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살려주시는 하나님임“을 의지하며 희망을 전염시키는 얼마나 멋진 신앙인의 삶입니까? 카터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치유가 되었답니다.

우리 하나님께 나오면 살려주시고 일으켜 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공포 가운데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이기게 하는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절망하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께 나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우리 하나님이 살려 주신다는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는 여호와“라는 희망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은 치유해주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이므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입니까? 여호와의 임재가 새벽 빛 같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울 때 어둠을 불평하지 말고 어둠 때문에 볼 수 있는 별을 보며 희망을 가지면 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비는 퍼붓거나 흡족하게 내리는 10월 초부터 2월말 사이에 오는 겨울비를 가리킵니다. 늦은 비는 추수하기 전 3-4월 중에 내리는 봄비로서 곡물의 수확에 가장 중요한 비입니다. 이와 같이 만물을 소생케 하는 겨울비와 봄비처럼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힘써 아는 백성들에게 풍요로운 은총과 축복을 내리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4장 4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소성(7)시켜 주시고, 번성(5-7)하게하십니다. 일시적인 번성이 아니라 뿌리가 박히고(5) 많은 사람이 그 그늘 아래 돌아오게 합니다.

호세아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축복해 주시는 희망의 하나님을 전염시키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알고 사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축복입니다.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여호와를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시해 준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영안이 성령에 의해 열려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다는 사실을 전하는 희망의 전염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난과 질병, 취업난에 절망하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 나오면 축복의 문이 열린다는 희망의 소식을 호세아처럼 전염시켜야 합니다.

"나는 소망 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라는 말을 한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학도병으로 공군지원단의 고사포부대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는 고모라 작전에서 4만 명이나 불타 죽는 사건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고모라 작전의 화염 속에서 갈기갈기 찢겨진 친구들의 시체를 목격하였습니다. 그 순간 그는 하나님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나는 살아남았다. 밤에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에게 외쳤다. 나의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무엇 때문에 나는 살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않았습니까?" 그 후 그는 신의 죽음의 신학이 팽배한 때 '희망의 신학'을 외쳤습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외쳤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를 바라보며 절명하지 말고 예수님께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고 들어 쓰신다는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이번 가족 수련회 주제가로 부른 찬양입니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천지는 변해도 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 두려워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실망치 말라 네 소원 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 돌리리 영광의 그 날이 속히 오리니 내게 찬양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세상의 소망이 사라졌어도 온전히 나를 믿어라 두려워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인내하며 부르짖어라 인내하며 부르짖어라 부르짖어라

네 소원 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돌리리 영광의 그 날이 속히 오리니 내게 찬양하리라 (반복)”

 

예수님을 믿기에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 나올 때 있다는 사실을 전염시키는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볼티모어에 사는 메리 니콜스, 올로 니콜스 부부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데도 희망의 전염자로 살기로 했습니다. 한국의 시각장애인 네 명(엘렌, 킴, 마크, 세라)을 입양하여 사랑과 정성으로 양육하였습니다. 그들은 수차례 입양을 원했지만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한 복지단체의 맹인부모교육을 받고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입양 당시 2살이었던 킴은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금은 운전이 가능할 정도로 시력을 회복했고 결혼하여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인 마크 또한 부모의 노력으로 현재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시력이 회복되어 음반가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엘렌은 두 오빠와 달리 선천적인 신경계 이상으로 현대의학으로는 이식수술이 불가능하지만 잘 성장하여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니콜스 씨는 미연방사회보장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곧 은퇴를 앞둔 일흔이 가까운 나이이지만 아직 쉴 수 없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정신연령이 여전히 두 살배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세라의 뒷바라지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이목구비를 갖추고서도 비난하고, 자신의 유익을 타인을 짓밟는 세상인데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부부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희망을 전염시키는 자가 얼마나 멋이 있습니까?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범했을 때, 블레셋 군대는 전차 3만, 기마병이 육천, 보병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백성들은 바위틈에 숨고 떨며 흩어졌습니다. 패배감과 무기력증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때 요나단과 그의 부관은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나단이 말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 그들은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골리앗 앞에 절망하는 백성들에게 다윗은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5-47)”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자신들은 메뚜기같다고 절망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라고 외쳤습니다. 민족이 죽음 앞에 놓여있을 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희망을 전염시키며 민족을 살렸습니다.

사회학자들은 나쁜 종류의 바이러스가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염되는 좋은 바이러스를 ‘N(need)-바이러스(Virus)’라고 부른답니다. N-Virus의 사람은 모두가 "절망이다". '어렵다." "불가능하다" 등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희망의 메시지를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며 “그들 보기에 우리는 스스로 메뚜기와 같다”고 말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며 희망을 전염시켰습니다.

 

기쁨도 전염되고 슬픔도 전염됩니다. 기분도 전염되고, 열정도 전염되며, 행복도 전염됩니다. 희망도 전염이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염시키는 사람입니까? 절망을 전염시키는 사람입니까?

불평과 원망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치료시켜 주신다. 하나님이 살려 주신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라는 희망, N-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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