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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회생활 DNA 사랑(1)-사랑의 가치(고전13:1-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671 추천수:6 112.168.96.71
2016-07-10 08:49:22

 

행복한 교회생활 DNA 사랑(1)-사랑의 가치

고전13:1-3

 

지난 목요일 만만만 생명운동 일로 모 은행 대표를 만나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천에 있는 어느 교회를 섬기는 장로님이었습니다. 장시간 자신이 섬기는 교회와 자신의 담임 목사님을 자랑하였습니다. 일산에 사시는데 부천에 있는 교회까지 무려 한 교회를 35년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순종을 가장 중요시 여기며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35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겼으면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을 텐데 교회에 대하여 불평의 말, 부정적인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참 행복하게 신앙 생활하시는 장로님이이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교회와 목사님을 열심히 자랑하는 장로님의 말을 들으면서 ‘그 교회는 부흥되는 교회이겠구나’라고 짐작을 했습니다. 장년만 3천여 명이 예배드리며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교인이 많이 나오든 적게 나오든, 상가 교회든 건축한 교회든 교회 생활은 무조건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인도 열린교회를 다니면서 행복하게 신앙 생활했으면 좋겠습니다. 늘 교회 나오면서도 입만 열면 불평불만을 터트리고, 목사 흠잡고 교인들 욕하면서 행복하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하는 것을 늘 부정적으로 말하면 열심히 섬기는 사람까지 자기편에 끌어들여 행복한 교회생활의 방해꾼,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지난주에 만난 장로님처럼 한 교회를 35년 섬겨도 늘 자기가 섬기는 교회를 자랑하고 만족해하는 행복한 교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멀리 살면서도 35년을 한 교회를 섬기면서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한 마디로 십자가의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아가페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독생자까지 내어준 하나님의 사랑, 감정에 좌우되거나 이해타산에 흔들리는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는 하나님의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교회 생활 행복하게 하고 싶지요. 그렇다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십자가의 사랑에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행복의 보증수표입니다. 남편의 조건, 아내의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안에 십자가의 사랑이 있으면 가정생활도 행복합니다. 교회생활 행복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교회생활을 행복해 집니다. 주일이 기다려지고 성도를 만나는 것이 기다려집니다. 주님 사랑하면 어떤 조건에서도 우리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 주님 한분밖에는 아는 사람 없어요 가슴 깊이 숨어있는 주를 사랑하는 맘 주님 한분밖에는 기억 하지 못해요 처음 주를 만난 그날 울며 고백하던 말 나는 행복해요 죄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주님 한분 밖에는 사랑할이 없어요 작은 가슴 뜨거웁게 주님 피가 흘러요 주님 한분 밖에는 약속 한이 없어요 나를 믿고 따르는 자 반석위에 서리라 나는 행복해요 죄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이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채우고도 남아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를 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잃어 버렸습니다. 사랑은 신앙생활의 바닥과 같습니다. 기초와 같습니다. 그릇과 같습니다. 바닥이 무너지면 그 위에 세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립니다. 그릇이 없으면 담을 수 없습니다. 모래 위에 세운 성은 비가 오면 아무리 화려해도 다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있으면 교인들이 천사같지만 십자가의 사랑을 잃으면 교인들이 마귀처럼 변합니다. 십자가 사랑을 잃으니까 고린도 교회가 지옥처럼 변합니다. 고린도 전서를 보면 고린도 교회는 한 10가지 문제가 나옵니다. 서로 싸우면 법정 고소를 하고, 십자가의 도는 사라지고 세상 지혜가 교회에 판을 치고, 육신적 판단이 앞서고, 심지어는 세상의 풍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교인 가운데도 첩을 거느리고 삽니다. 아버지의 첩을 아들이 겁탈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예배의 질서는 무너졌습니다. 목회자의 권위가 사라졌습니다. 제멋대로 제 방식대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제 잘난 맛, 제 멋대로, 제 소원대로 “내가 복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바리새인처럼 형식주의로 흘러 찬양만 하고 예배는 드리지 않습니다. 자신은 찬양 담당자입니다. 연극배우가 되어 자기 배역만 하고 가버립니다. 기도만하고 예배는 드리지 않습니다. 설교만하고 예배는 드리지 않습니다. 헌금만하고 예배는 드리지 않습니다. 예배는 나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내가 무엇을 받고 내가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내 생각 내 몸, 내 물질을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시간이 예배시간입니다.

 

그들의 교회 생활을 불행하게 하는 첫 번째 문제가 무엇인지 1장 11절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첫 번 문제가 분쟁이었습니다. 교회에 분파 파당이 형성된 것입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져 싸웠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장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잊은 것입니다(1:13). 3장 3-4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에 속한 신앙인이 되니까 분쟁만 일삼는 것입니다. 3장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어느 교회를 다니든 이 십자가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어느 순간 교회 생활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시험 들고 불행해집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고린도 교인들처럼 다툼이 생기고 증오와 미움이 생깁니다. 교회에서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끝까지 용서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교회생활의 행복하지 못합니다. 교회 생활을 행복을 잃어버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까?

 

고린도 전서 13장 13장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을 사랑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최우선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1. 행복한 교회 생활을 위해서는 서로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사의 말처럼 방언을 할지라도 그것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제 자랑을 하고 그것으로 분열과 다툼을 일으키는 도구가 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은 말만 청산유수처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언변이 좋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 섭니다. 이단들을 보면 추수꾼이라고 하여 교회에 속이고 들어와 유창한 속임수로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듭니다. 참 사람들에게 천사처럼 잘 대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위장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흠을 드러내고 없으면 만들어 말을 합니다. 간첩처럼 행동을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사이를 가릅니다. 성도의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성도의 마음을 가로채고 탈취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반역을 일으킨 다윗의 아들 압살롬 같습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말을 대단히 잘하는 것 같지만, 겉으로 보기에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같지만 결론은 자기는 잘났고 다른 사람은 나쁜 놈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말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저주하고 비난하고 침을 뱉고 창을 찌르는 사람까지 용서해 주시는 십자가의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단은 거짓의 명수입니다. 아주 달콤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교활하게 이간질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교회 생활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패거리를 나누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천사의 말처럼 사람들에게 혹하게 하는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 없는 말은 아무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무익한 말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아직 굽지 않는 빵과 같습니다. 미완성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자식이 부모에게, 성도가 성도에게 상처를 줄 뿐입니다.

당시 고린도 시에는 데모스테네스나 소포클레스 같은 달변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회중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교회 내에서도 말 잘하는 것이 높이 평가되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 중에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우쭐 대는 것입니다. 방언 못하는 사람들을 괄시했습니다. 사랑 없는 말은 혼란과 분열을 초래한 것입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시험 들고 상처를 받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입니다. 무심코 내뱉는 한 마디 말 때문에 교회에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가시 돋친 말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고 평생 동안 교회를 다니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을 전도하려고 하니까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혼 초에 교회에 나갔는데 식당에서 어떤 집사님이 밥을 많이 먹는다고 핀잔을 주었답니다. 신앙생활 오래 한 사람들이야 뭐 그런 사람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텐데 그 분에게는 그것이 상처가 된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교회에 발을 디뎌놓지 않았답니다. 어떤 분은 딸이 조금 몸이 날씬하지 못하였습니다. 고등학생인데 안수 집사님이 그 딸을 보면 “돼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이야 악의 없게 그렇게 말하였겠지만 듣는 사람은 다릅니다. 부모님이 장로님이시고 집사님이서 교회는 나오지만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제가 다섯 차례 쯤 심방을 하고 설득했는데도 교회를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는데 어떤 집사님이 인사를 하면 인사를 받지 않고 얼굴을 돌렸답니다. 한 번이면 몰라서 그렇겠지 생각했는데 몇 차례 그런 모습을 보니까 왜 내가 그런 교회에 나가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 그런 교회에 나가 그런 사람에게 멸시를 받아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제가 계속 심방 가서 오해를 풀어드리려고 설득을 했지만 결국 교회를 떠나 버렸습니다. 내가 하는 사랑 없는 말 한 마디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교회생활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진정 그리스도가 마음의 주인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말한다면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사실인지, 사실이면 그 말을 하면 그 사람에게 유익하지, 그 사람에게 유익하면 그 말이 모든 사람에게 덕이되는 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말을 하려면 긍정적인 말, 적극적인 말, 낙관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청산유수처럼 하는 말보다 사랑의 말 한마디가 더 중요합니다. 사랑의 말을 하고 사랑의 말을 들을 때 교회생활을 행복합니다. 따라서 합니다. “행복한 교회 생활을 위해 서로 사랑의 말을 합시다.”

 

2. 행복한 교회 생활을 위해서는 서로 사랑으로 은사를 활용해야 합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언의 은사, 지식의 은사, 믿음의 은사를 말합니다. 예언을 말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시에는 타인의 어떤 비밀한 것, 혹은 타인의 앞길에 관한 것을 말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입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활용되면 다른 성도에게 유익을 주고 용기를 주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랑이 없이 예언의 은사가 활용된다면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은사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제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예언은 자기 자랑거리가 되고 오히려 그것이 칼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도구가 됩니다. 오늘날 말하면 목회자의 설교입니다. 목자, 구역장, 선생님의 가르침입니다. 목사의 설교가 십자가의 사랑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난도질 하고 상처를 주게 됩니다. 생명 없는 말잔치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귀만 즐겁게 하는 생명 없는 코미디로 끝이 납니다.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도구로 말씀을 사용하게 되어 버립니다.

지식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여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멸시하게 합니다. 고린도 전서 8장 1절을 보십시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전 8:1)" 사랑이 없는 지식은 교만하게 할 뿐입니다. 조금 다른 사람보다 알고 있다고 나는 유명 목사님에게 훈련을 받았다고 교만하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그렇지 못한 교인들을 깔봅니다. 나는 유명 교회를 몇 년 다녔다고 작은 교회에 나오면 거드름을 피웁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많이 아는 것처럼, 교회 생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 교리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교만을 떱니다. 작은 교회 목사는 아주 무시하고 다스리려고 합니다. 세상의 지식이란 영원한 것 아닙니다.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까? 많은 지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면 그것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지식은 사랑으로 쓰임 받아야 가치가 있고 교회 생활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 유익을 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지식이 모자라서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부족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개척 교회를 하다 보니 참 많은 인간들의 실상을 보았습니다. 한 번은 어떤 여성분이 새벽 기도에 나와 큰 소리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도 아닌데 교회가 잠자고 있다는 깨어 달라고 큰 소리로 모든 사람이 다 듣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깨어 기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구 교회를 정죄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교인이 많이 나오는 교회의 권사라고 했습니다. 영적 교만이 충만해있었습니다. 개척교회 나오면 대부분의 교인들이 자신이 목사님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싫은 소리하면 목회자를 불쾌하게 생각을 합니다. 요즈음 말로 교인이 갑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같이 신앙생활하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타 지역 이사 비율이 일 년 16%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인들도 많이 이동을 합니다. 산술적으로 볼 때 7년이 되면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교인들이 거의 바뀐다고 보면 됩니다. 앞에서 예를 든 장로님처럼 사명감을 가지고 한 교회를 끝까지 섬기는 사람들은 한 20%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교인들이 평생 7교회 정도를 옮기면서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지역에 살면서 교회를 옮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교회에서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선호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교회 옮기는 것을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이단이 아닌 이상 다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를 떠나면서 몇 분이 저에게 불만 사항을 이야기한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나오는 큰 교회에 다니다 오신 분은 우리교회가 부흥이 되어 천명 이천 명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참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제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인사관리, 조직관리, 재정관리, 마케팅을 잘 해야 수가 많아지는데 그것을 제가 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가 얼마 나오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 나오든 교회는 더 중요한 것이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사랑하는 십자가의 사랑이 있으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은 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도 십자가의 사랑에 담길 때 행복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도가 넘으면 교만해지고 그것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교회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은사는 교회생활 행복하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은사는 사랑의 바구니에 담길 때 가치가 있고 빛이 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능력을 행하는 믿음 대단히 중요합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니까 얼마나 탁원한 능력있는 믿음입니까? 그러나 이 믿음도 십자가의 사랑이 없이 사용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교회 생활을 불행하게 합니까? 자신의 믿음이 기준이 되어 상대를 정죄하고 고소합니다. 이해심보다는 정죄의식이 강할 수가 있습니다. 주방 봉사하는데, 마을 교회 참여하는데, 구역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믿음 없다고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헌금하는 대단한 믿음이 있다고 헌금 못하는 사람 괄시하지는 않습니까?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데 너는 20년을 교회에 다녔어도 왜 이만한 믿음이 없느냐고 핀잔을 주지 않습니까? 그러면 피차 교회 생활 행복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있어야 온전한 것입니다. 그 믿음이 교회 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 5:6)" 모든 은사는 십자가의 사랑의 바구니에 담길 때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심오한 진리 깨달은 자도 울리는 징과 같네. 하나님 말씀 전한다 해도 그 무슨 소용 있나 사랑 없이는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3. 행복한 교회 생활을 위해서는 사명도 사랑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구제라는 헬라어는 ‘조각내어 준다.’는 뜻입니다. 자기 재산을 조각내어 자선기금으로 쓰는 선행을 말합니다. 자신의 재능과 자신의 물질과 자신을 시간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줍니다. 그런데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어도 사랑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순교를 말합니다. 사랑 없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한 동기로 순교한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IS를 보십시오. 사랑 없는 순교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행복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까? 십자가 사랑 없는 열정을 핵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빠르면 빠를수록 불행을 자초합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빠르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구제나 순교 이 두 말을 함께 포함시키는 말을 사명입니다. 사명을 이룬다고 얼마나 많은 악행들을 저지르고 있습니까? 사명을 이루기 위해 순교의 자리에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불법을 행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의 법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 하는 사명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명에 붙들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익이나 편리나 기쁨이 없다하여도 사명이면 그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평생 동안 헌신 봉사합니다. 얼마나 위대한 신앙생활입니까?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까? 그런데 십자가의 사랑이 없으면 그것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무디 신학교 교장을 지내신 G. Sweeting 박사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방정식을 “인생 ― 사랑 = 0”라는 공식으로 설명했습니다. 저는 인생 곱하기 사랑이라는 공식으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큰 수라고 했고 곱하기 0이 되면 0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그 어떤 봉사나 섬김도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의지적인 십자가의 사랑이 빠져 버린 감정적으로 하는 선행은 결국 주님의 일이기보다는 자기의 일입니다. 결국 그것을 통해 자기만족을 누리고 자기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감정에 민감한 것입니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 것이 자기가 기준이 되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 나쁘면 헌금도 안하고 봉사도 안하고 예배도 안 드리고 감정 상하면 모든 것을 끝내 버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입성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니까 비난하고 침을 뱉습니다. 인간 감정은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마음속에 순간적인 감정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베푸는 선행은 대가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결과에 따라 웃었다 울었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랑에 감격하여 구제도 하고 순교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거래가 아닙니다. 거래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지만 십자가의 사랑은 억울해도, 섭섭해도, 손해 보아도, 부족해도, 욕을 먹도, 비난 받아도 묵묵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함을 당해도 다 용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을 보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잠언 10장 12절을 보면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으로 사명을 감당하면 다른 사람의 죄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라의 허물이 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모든 죄와 허무를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랑으로 사명을 감당하면 어떤 경우도 교회 생활이 행복합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십자가의 사랑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나도 교회 생활이 행복하고 내 사명 감당으로 말미암아 다른 교인들도 행복합니다. 한 주 전에 어떤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교인이 한 60여명 출석하는 교회입니다. 적은 인원이지만 부러울 것이 행복하게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교회에 하나 밖에 없으신 장로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물을 수집하는 장로님이시 답니다. 별로 배우지고 못했답니다. 그런데 장로님과 권사님이 얼마나 사랑으로 사명을 감당하는지 교인들이 행복해 한다고 했습니다. 주방 일을 권사님이 맡아서 한답니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 식사를 따로 평일에 모여 그 없는 산림에 대접을 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 노회 여전도회 100여명이 자신의 교회에서 모였는데 그 식사를 다 자신들이 대접한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대접한다고 해도 굳이 가난한 장로님과 권사님 대접한다고 대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얼굴 내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 아무 조건 없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그것을 보면서 모두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명을 감당하니 행복한 교회 생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자꾸 내 안에 나를 채우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꾸 주인 노릇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말로, 은사로, 사명으로 자꾸 자기를 들어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목사님이 바뀌어야 되고, 내가 듣고 싶은 설교를 해 주어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내가 원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끄는 사람으로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5)"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2)"

 

주님이 원하는 대로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가득 찰 수 있도록 내가 바뀌어야 행복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겨도 어차피 내 인생 내가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다 내려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내 안에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채우면 사랑이 풍성해집니다. 사랑이 풍성해지면 교회 생활이 가정생활이 직장 생활이 행복해집니다. 피차간에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 중에 한 가지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 사단의 종으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10)"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6-4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교인이 많아서만 교회생활이 꼭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설교를 잘해서만 교회 생활이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에서 인정을 받아서만 교회생활이 꼭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존재감이 들어나서만 교회생활이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생활의 행복의 DNA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교회 생활은 행복해 집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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